예루살렘(성분묘 교회)

047.(1) 입구 (2) 이슬람 경위소 (3) 종유의석 (4) 아담의 예배당
(5) 성십자가의 못의 제단 (6) 스타바트 마텔제단
(7) 십자가의 제단 (8) 카틀리콩 (9) 3곳의 마리아의 땅
(10)로튼다 (11) 그리스도 묘 (12) 고프트 예배당
(13) 쟈코 바이트 예배당 (14) 알라마타야 요셉의 묘
(15)막달라 마리아의 제단. (16) 프랑시스코회 교회
(17) 마리아의 아치 (18) 성스런 감옥 (19) 론지누스 예배당
(20) 성의 분배 예배당 (21) 성 헬레나 예배당 (22) 모욕의 예배당
(23) 라텡 내진석

048. 성묘교회 입구

= 성분묘 교회 =

예루살렘에서 가장 신성한 이 성분묘 교회는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감명을 주게 된다. 역사와 전승이 교차하고, 민간종교가 교의와 일치 하는 곳,깊은 감명을 받지 않고 이 교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땅은 전에, 성벽 밖에 위치하여 형장이 사형자를 4방에서 본보기를 보이는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필시 지금보다도 훨씬 높은 언덕에 있었을 것이다. 골고다라고 하는 이름은 아랍어 [해골언덕]을 의미하지만, 이것은 언덕의 둥근 모양이 두개골을 닮아 있다는 것과 또 여기에 아담의 두개골이 매장 되었다라고 전해지는 데서 유래한다. 예수가 매장된 언덕에, A.D. 135년 하들리아누스황제는 쥬피타, 유노,베누스의 3신을 제사지내는 성요새 아엘리아 카피트리나를 건축했다. 하들리아누스황제는 신전파괴후 더욱 이 성지를 계속 숭배하는 유대인의 희망을 분쇄하려 했다. 다행히 카피트리노를 건설한 때 황제는 분묘가 있는 암장을 파괴하지 않고, 웅덩이에 토사를 투입해서 매장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때문에 카피트리노의 토대인 토층은 분묘를 파괴에서 지켰다. A.D.325년 콘스탄티누스황제의 모친 헬레나와 사교 마칼리우스가 가피트리노의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묘를 발견했다. 황제 모친이 시작한 발굴에 의해 그리스도 묘가 거의 다치지 않고 발견된 것 외에, 구덩이 속에서 예수와 2사람의 범죄인의 십자가가 발견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6년부터 335년에 걸쳐 여기에 교회를 건립했다. 공사시 바위의 혼은 모두 제거 되었지만,2개소만이 특별히 남긴 곳이 있다. 하나는 십자가가 세워진 장소로 여기에 제단이 세워졌다. 또 하나는 원형의 거대한 건물로 구별되고 있는 그리스도 묘이다. 그 동쪽에는 5신랑과 십자가의 재발견을 기념하는 지하 예배소가 있는 바실리카가 있찌만, 614년에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돼 버렸다. 바실리카는 그 15년 후에 신부 모디스트 하에서 재건되어 1009년에 칼리프, 엘 하겐에 의해 지면이 고르게 될때까지 그 모습을 완전히 지키고 있었다.

1099년 7월 15일에 십자군이 마을을 정복했을 때,교회는 거의 구세주의 유체를 넣은 성소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거기서 십자군의 사람들은 대공사 끝에 1149년에 장식된 완전히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1808년에 방화라 생각되는 화재에 의해 그 대부분이 손상돼 버렸다. 이 불상사가 있던 무렵, 나폴레옹 지배하에 흔들리고 있던 유럽은 교회 재건에 협력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이용하여 오랫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견원지간인 그리이스 정교회는 교회 수복의 권리를 독접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가톨릭을 연상케하는 부분을 모두 파괴해버린 이 수복은 소위 새로운 파괴라 부를 수 있다. 오늘날 성분묘는 6개의 종파에 의해 분리되고 있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로마 가톨릭,그리이스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3개로,콥트,시리아 그리고 에티오피아 교회는 지붕위에 승원이 있다.

049.골고다의 성십자가의 못의 제단
050.스타바트 마텔이라 불리는 소제단(우)과 그리스도 마리아 요한의 인물 데이콘이 있는 십자가의 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