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100.라켈의 묘 :모든 시조중에 유일 헤브론으로 매장되지 않은 것이 라켈이다. 베냐민을 출산해서 죽음으로 베들레헴에 매장되어 <야곱은 그녀의 묘위에 기념비를 세웠다> 라켈의 묘는 오늘날에도 기도의 장으로서 유대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101.베들레헴 원경 = 예루살렘에서 수 키로미터 언덕위에 성서의 땅 베들레헴이 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에는 2개의 의미가 있고, 헤브라이어로 [빵집],아라비아어로는 [고기집]을 의미한다. 광대한 들판에는 수수한 검은 옷을 입은 목자들이 신앙과 양무리를 방목하고 있다. 천사가 예수 탄생을 알리는 들판은 [목자의 들판]이라 불리고 있다. 이 목가적인 풍경은 구약성서의 롯기에 등장하는 이방의 여인 보아즈와 롯의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그들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들 헤베드는 즉 ,다윗 왕의 조부가 된.유대인에 의해 최초의 위대한 왕 다윗이 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은 예수의 탄생보다도 천년전의 일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 땅은 유대인에게도 그리스도 교도에게도 성지인 것이다.
<그때,전세계의 인구조사를 실시 하려는 칙령이 황제 아우구스에게서 나왔다> 로마국의 기반이 된 징세를 정확히 실행하기 위해 국제조사라 행해졌다. 각 개인이 소유하는 토지를 신고할 것이 의무화되어, 이 때문에 요셉도 나사렛에서 자산이 있는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귀향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미 임신한 처 마리아와 함께>이곳에 채제하고 있는 중에 <마리아는 달이 차서, 첫아들을 낳고, 천으로 싸서,구유 위에 뉘었다. 각 방에는 그들이 있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된 일을 누가의 복음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탄생의 날짜에 대해서는 논의가 되고 있지만,로마 카톨릭 교회에는 A.D.5(또는 4)년의 12월 24일밤,그리이스 정교회에서는 1월 6일,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 18일로 보고 있다.

102.바실리카의 작은 입구는 [사랑의 문]이라 불리고 있다.= 하들리아누스 황제는 135년에 그리이스 이교를 이 땅에 들여와 아드니스에게 숲과 동굴을 바쳤다. 33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 숲을 개간하여 바실리카를 세울 것을 명하고,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자신이 그 공사를 감독했다. 각각 11개의 원기둥 열에 의해, 나눠진 5신랑식이 바실리카는 오늘날 기초부가 남아있고, 바닥면에는 오늘날에도 조그만한 모자이크가 보인다. 2세기후에 파괴된 바실리카는 그후 복구되어, 후진과 [탄생의 암실]로 통하는 옆계단이 더 있고,안뜰이 배랑으로 바뀌었다. 614년의 페르시아군의 점령시에 바실리카는 기적적으로 파괴를 피했다. 이것은 파풍을 장식하고 있던 모자이크 속에 3박사들이 페르시아 의상을 입고 있는 것에 침략자들의 시선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후 긴 쇠퇴의 시대가 계속되고, 1646년에는 트루코군이 포환을 만들기 위해 지붕의 납을 녹였다. 동시기, 그리스도교 사람들은 바실리카 입구를 매우 좁게 [불경의 족]이 말로 바실리카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합의했다. 이 문은 겨우 1m 20cm 높이로 [사람의 문]이라 불리고, 허리를 굽히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치 실제로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받는다.

103. 탄생의 바실리카 내부
104. 예수의 탄생장을 나타내는 은빛 별
105. [탄생의 암실]에 있는 [구유의 제단]과 [탄생의 제단]

내부에는 크린트식의 기둥머리를 한 아름다운 홍석 회암의 우아한 원기둥이 있고, 그 위에는 지금도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이름이 쓰여진 성인들의 프레스코화의 흔적이 보인다. 중앙 신랑에는 이땅, 1169년에 형성된 금의 땅 모자이크의 흔적도 남아 있다. 모자이크는 그리스도 조부와 최초의 7회 공회의를 나타내고 있지만, 후자중에 완전히 남아 있는 것은 최초의 콘스탄티노플리 만으로 나케아 에페소스 등은 단편이 남아있을 뿐이다. 제8번째와9번째의 창 사이에는 바질리우스 픽틀이라는 작자의 생명이 있다. 탄생의 암실은, 그리이스 정교회의 관할하에 있는 작은 공간으로, 벽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작은 예배당 안의 [그리스도 탄생의 제단]에는 그리스도교 각 종파가 소유하는 11개의 은제 램프가 있고, 또 은제 별모양이 예수가 탄생한 장소를 표시하고 있다. 별 위에는 라틴어로 <여기에서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났다.-1717>라고 새겨져 있다. 암실의 측면에느니 2개의 제단이 있다.하나는 막 태어난 갓난아이가 놓여진 [구유통의 제단]으로 성 헬레나가 발견한 점토의 구유 대신에 은제로 된 것이 놓여졌다. 그 측면에 있는 또 하나의 제단은 갓난아이를 경배하로온 [동방의 3박사 제단]이다.
[탄생의 암실]에서 동굴을 지나가면, 프랑시스코회에 의해 1881년에 설립된 성 카테리나 교회가 있다. 이 교회의 크리스마스 미사는 전세계에 중계방송 된다.
385년부터 420년 죽을때까지 35년간을 성 피에로님스가 지냈다 라고 불리는 동굴도 남아 있다. 이 좁은 동굴 속에서 그는 빌가타 성서의 이름으로 알려진 성서 라틴어역을 완성했다. 성 피에로 알스의 상이 꽃과 야시로 둘러싸인 십자군 시대에 새긴 우아한 수도원의 뜰에 서 있다.

106. 성 카텔리나 교회의 사원에 있는 성지로라모의 상
107. 유명한 탄생 미사가 행해지는 성 카텔리나 교회 내부.
108. 성 카텔리나 교회의 승원의 일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