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쿰란

117.118.119.쿰람 오래된 유적은 멀리 사해를 바라보는 바위 지대에 있다.
길벗 쿰란 = 사해 서북안에 있는 세기말적인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 이 땅에는 기원전 2세기부터 A.D. 68년에 걸쳐 유대교 교단이 있었지만,68년에 베스파시아누스 왕제 군단이 이 땅에 도착했을 때에 교단은 이산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마사다로 도망갔다. 초기 그리스도교와 매우 닮은 금욕주의의 공동생활을 하고, 청렴과 금욕의 생활을 설득하는 그들의 ㄱ의는 예룻라렘의 화사함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의의 스승(이 회파의 창시는 이렇게 불린다.]의 제자들은 사막으로 도망가 그곳으로 자급자족,세례와 목욕, 다가오는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쓰여진 책을 배우면서 조심스런 공동생활을 했다.
식사는 공동으로 했다. 토지는 건조한 불모의 땅이었지만 적당한 햇볕이 없는한 식당은 물로 깨끗하게 되었다. 물에 대해서는 매우 배려가 되고 있어서, 고도의 기술에 의해 송수관과 저수조가 있고, 일단 동쪽 고원에서 끌어온 물은 배수관에 의해 전체 건물로 보내졌다.수도원 폐허를 보면, 여러가지 목적에 의해 다양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부엌,창고, 서물원(주위 동굴에서 발견된 유명한 두루마리식 책은 여기에서 작성되었다).그리고 공동체로 사용되는 식기를 굽는 전역노동자도 있다. 1947년에 양치는 소년에 의해 사원 근처에서 발견된 성서 두루마리의 이야기는 흥미를 끈다. 최초의 발견에 이어서 행해진 주위의 조사에 의해,600년 거슬러 올라가는 문서가 발견되고 학자들에 의해 공동체 서물원과 관계가 입증된 것이다.문서는 봉인된 항아리 속에 조심스럽게 넣어져 마의 장식 축으로 싸여서 주의깊게 숨겨진 것도 있지만,한편으로는 그다지 조심히 취급되지 않은채 방치되어 있는 것도 발견되고, 이것은 A.D.66년의 유대인의 반란때에 그들이 급히 이땅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문서는 고 헤브라이어로 그리이스.아랍어로 쓰여있고,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구약성서에서 더욱 천년 정도 오래된 것이다. 이 문서에는 에스텔기를 뺀 모든 구약성서, 유대 경전인 텍스트,제2정경전, 게다가 교단 규율과 교의에 의해 쓰여진 것등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