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사리아

150.151.케이사리아의 고고학지구의 두 절경
케이사리아 = 마을의 이름에서 상상되듯이 헤롯대왕은 이 마을을 카에살에게 바치고, 현재도 흔적을 남기는 아름다운 대리석도 장엄한 건조물로 마을을 장식했다. 중요한 항구로서 제 민족의 지배를 받아온 이 마을은 B.C. 4세기에 페니키아인의 묘지가 되고, 1101년에는 십자군이 견고한 성요새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세운 성벽과 요새는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나누는데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성배의 탈회에 노력한 신도의 군세 체재의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영광의 마을에도 눈물과 공포의 흔적은 새겨져 있다. B.C.66년과 131년에 일어난 로마에 대한 반란이 제압된 때에는 보복조치로서 몇 천명의 사람들이 케이사리아 대원형 투기장에서 야수의 먹이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