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

158.159.160.161.162.왼쪽 위에 것 순으로 파수꾼탑,별모양과 삼각형이 새겨진 바위, 해안의 능보가 인상적인 광경, 십자군의 요새나 큰 방과 그곳에 새겨진 프랑스 백합의 문장. 아코 = 비옥한 반월지대의 대부분의 지방과 마찬가지로,아코 역사도 매우 오래됐다. 최고의 문자 기록에 의하면 이 마을 역사는 약 4천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ㅇ기원전 14세기경 텔아말루나 문자판에도 아코의 이름은 등장한다. 여러 민족은 이 입지조건에 은혜받은 좋은 항을 재패할 만큼 고래의 고통을 참아왔다. 이 때문에 마을은 점점 이름이 바뀌어 왔다. 그리이스인 도시 아카.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지배하에서는 틀레마이더스,로마 제국기에는 디아. 펠릭스.십자군 시대의 산 죠반니 다그리,아랍 점령하에서는 앗카라 할 정도이다. 1948년에 영국의 통치가 끝났을때 이 마을은 겨우 성서에 등장하는 본래으 이름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15세기경부터 이집트인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이 마을을 유대인이 재점령한 것은 훨씬 뒤에 시대이고, 이 때문에 유대인은 이 마을을 항상 성역으로 보아 왔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지배하에서는 아코는 상업과 어업이 번성한 것외에, 유리 제조도 매우 유명하고,플리니우스는 아코 마을을 유리 발상지로 주장할 정도였다.
163.164.어항과 바다로 향해 뻗치는 바위 벽
165.166.캬라반용 숙박소와 전형적인 스크의 소로

B.C. 48년 로마에 정복된 아코는 역사상 최초의 포장도로의 중요한 중계점의 하나가 되었다. 이 도로는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에 이해 괴멸적인 타격을 받은 소위 [바다의 길]을 복원해서, 이스라엘을 횡단하는 길이다. 636년부터 1104년까지 아랍인 지배하에 있던 아코는 제1차 십자군에서 제노바 함대에 원정되었지만, 다시 아랍 수중으로 돌아가,그후1192년에 영국의 리차트 사자심왕에게 정복되었다. 템플기사단이나,독일 기사단과 함께 이 땅에 있는 성요한 기사단 이름에서 1192년 예루살렘 함락후 아코는 산 죠바니 타네치아나 제노바,아말루피,마르세이유 등 상인이 교역하러 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 번영도 1291년에 회교도에 의해 파괴되고, 그후 450년간 완전히 페허로서 방치되었다. 18세기 후반 되어 아코는 호전적이고, 호담한 알바니아인 엘 자자르하에서 다시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트리폴리에서 다마스커스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세운 엘 쟈자르의 잔혹함은 속담이 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천재적인 도시계획의 재능을 갖추고, 폐허가 된 아코 마을을 보기 좋게 재건했다. 마을의 미화를 위해서는 근교의 궁전과 로마,비잔틴 시대의 유적을 전용 할 것을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건조한 모스크나, 욕장, 숙박시설을 찾는 것도 고대의 기둥과 플리즈, 기둥머리 등을 발견하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나폴레옹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마을의 주위에 2개째의 성벽을 세운것도 엘 쟈자르이었다. 19세기에 아코를 더듬어가는 역사는 트로코제국과 영국제국 간에 연결된 동맹과 연관이 깊고, 마을은 쇠퇴하여 항구는 얕게 묻히고, 동시에 수많은 국가의 수도로서, 군림하고 있던 이 마을도 그저 감옥용 요새로 전락해 버렸다. 1948년에 마을은 유대인에 의해 점령되어, 이스라엘 영토가 되었다. 이와같이 복잡한 과거의 역사를 갖은 아코는 마을의 도처에 이전의 영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예를들면 국내에서는 최대의 모스크, 엘 쟈자르 사원은 십자군 시대의 요새에 돔을 부착한 것으로 아라베스크 모양과 대리석으로 호화스런 장식이 펼쳐져 있다. 또, 현재 박물관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트루크 목욕탕과 장대한,수장의 관, 카라반용 숙박소 등도 대부분은 엘 쟈자르기의 건물이고, 훌륭한 장식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건축물의 호화스러움부터 보석의 거래를 위해 베네치아를 비롯해 마르세이유,암스테르담,앙트와프,런던등에서 상인이 직접 대량으로 사러온 19세기 후반까지의 번영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있다. 그런데, 아코 독특의 명소에 십자군 요새가 있다. 거대한 이 땅 지하요새는 전형적인 중세고딕 양식 건축이고,1191부터 1291년까지 십자군 병사의 군사 종교상의 거점이 되어 버렸다. 통칭 [크립타]라 불리는 광대한 객실에는 리차드 사자심왕과 루이 9세의 시대, 종교 의식과 회의 전쟁의 조정이 이뤄졌다. 필시 여기에서 병사들은 함께 식사를 했을 것이다. 방의 대들보에는 프랑스 왕실의 흰 백합의 문장이 새겨져 있지만, 프랑스 왕실은 이 문장을 여기에서 처음으로 사용했지만,또한 카페가의 신앙깊은 역대왕의 상징이 된 이 문장,실은 이슬람의 [거칠고 사나운]살라딘왕 문장의 모방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167.168.169.170.171. 마켓거리와,아름다운 엘 쟈자르 사원의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