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북위 8°34' - 23°22' 위치하고 있으며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으로 북으로는 중국과 서쪽으로는 쯔엉(長)산맥을 경계로 라오스, 서남쪽으로는 캄보디아와 국경을 두고 있다. 국토의 면적은 약 33만㎢로 한반도 남북한 면적의 약 1.5배에 해당하며 국토의 80%가 산지로 되어있다. 하지만 호치민(사이공)으로부터 매콩강 하류와 남쪽으로는 거의 산을 찾아보기 어려운 평야지대이다. 베트남은 부드러운 S자 모양을 하고있으며 남북이 길어 기온 차가 심하나 전체적으로 아열대 기후이며 호치민을 중심으로한 남쪽은 최저 20℃, 최고 35℃정도를 나타내며 계절풍의 영향으로 우기는 5월-10월 사이며 건기는 11월-4월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9월이기 때문에 우기인데 우기는 우리 나라의 한여름과 비슷하며 하루평균 한차례이상의 비가 오는데 처음에는 아주 강하게 오다가 1-2시간 후에는 끝나는데 한국의 장마처럼 근래에는 길게 오거나 안오는 경우도 있어 현지에서는 이상기후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베트남은 매우 조용하고 분주하지 않은 매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포장된 도로를 발견하기 어려웠고 높은 5층 이상 되는 건물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곳은 수도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수도(하노이)보다 5-10년은 앞서있다고 현지인들이 말한다고 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항은 우리나라의 지방공항정도 되어보이는 것 같았다. 호치민의 이 공항은 미국이 마직막으로 철수하던 사이공 공항인데 건물만 다시 신축하여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가방을 놓고 여자검사원은 "오뿡, 오뿡"이라고 말하는데 무슨 뜻인지 내가 눈치를 체지못하고 있을 때 함께 동행한 자매가 가방을 열어 보였다. 미숫가루를 봉지에 가져온 것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이상히 여고 잠깐을 살펴보았다. 공항 밖으로 나갔을 때 "딱시 딱시"라고 말하며 택시를 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의 언어는 북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두고있어 한자음과 프랑스의 식민지를 통해서 영어의 프랑스식 발음이 강하게 형성되었다. 택시는 공항주변에 몇 대되지 않는 차가 서 있는 것이었으며 우리나라의 기아 프라이드베타가 영업용 택시로 많이 보였다. 그리고 외국인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오토바이 물결이었다. 이 광경은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교통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중앙선은 힌줄로 표시되어있으며 이것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가는 식이었으며 신호등이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460,000VND(동) 당 미화 11,830$이며 대학교수의 월급은 우리 돈으로 약 3만원 정도이며 보통 노동자의 월급은 2만-2만5천원 수준이다.
매콩강 차와 함께 배로건너게 되었는데 현재 우기로 며칠째 비교적 비가 많이 내려서 흑탕물로 강물이 넘실거렸다. 이곳에 아직 다리가 놓여있지 않아 여러 척의 배가 차와 물건들 사람과 함께 어수선하게 보였다. 배를 타기 위해서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로 많은 상인들과 아이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서 매달려 사정할 정도로 보였다.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이밀어 사달라고 난리이고 하나를 사면 또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매정하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을 아주 감고 문을 닫고 있으면 너무 더워서 문을 다시 열게되었다. 뻥튀기 과자 같은 것을 사정하는 아주머니에게 샀다. 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 차가 뒤에 밀려있는지라 기사 아저씨가 출발하였다.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줌마에게 돈을 주어야 하기에 차를 세우려고 하였다. 많은 거리를 달려갔는데 아주머니는 그곳까지 열심히 뛰어서 따라오셨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돈을 건네주었다.
부동산은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사유재산 인정이 어렵지만 그래도 베트남의 경우 자국민에게는 상당한 사유재산권 인정이 있는 것 같았다. 외국인이 거주하는 주택은 2-3층짜리 방이 3-4개 있는 집이 월세로 5-600$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근래에 많이 인상된 것이며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이 집을 얻을 경우 더 작은 방이나 또 작은집을 구하기는 어렵다. 가옥이 모두가 비슷한 식으로 되어있으며 한집을 모두 월세로 임대하는 방식의 계약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현지신문 SGGP 제7250호 97년 9월 16일자에 따르면 외국인은 공안당국에 거주 등록을 해야하게 되었다. 호치민 공안국의 지침서 제14/HD-CATP 97년 9월9일에 의하면 본인의 거주지인 Phuonh, Xa The Tran범위 밖에서 방문, 관광, 상거래 등의 이유로 잠시 숙박하거나 학습, 근무 등으로 일정 기간을 거주하게 되는 15세 이상의 사람은 모두 거주 신고를 해야 한다. 베트남 교포 및 외국인으로 가족 친척집이나 셋집 및 종교 단체 등에서 거주(숙박)하는 사람은 지역 Phuong, Xa, Thi Tran공안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내국인으로 가족 친척집에서 숙박하거나 왕래객 성격으로 각 기관이나 사회 단체의 집체적 거주 가옥에 숙박하거나 소형 선박을 정박하고 배 위에서 1박하게 되는 사람은 모두 보고 등록해야 한다.
이러한 법령은 얼마나 외국인이 현지에서 체류하기에 어려운지를 짐작하게 한다. 만일 이러한 법령을 어겼을 때는 강제출국이나 국내법에 의해서 조치된다. 베트남에서 사업이나 기타 일을 하기에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말해주고 있다.
정식 국가명칭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인 베트남은 지구상에서 몇 안되는 공산국가이기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가 생각하기 어려운 민족성을 띠고 있다. 공산국가가 붕괴한 원인은 수동적인 사람들의 행동으로 인한 경제침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사고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외세의 침략에 의한 타민족의 지배를 오랫동안 살아온 민족이라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혼합된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면 된다. 공산주의 사고가 얼마나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었는가는 잘 아는 것이겠지만 한가지 예를 든다면 방을 치워야 하는데 방 청소를 깨끗이 하라고 말하면 알아서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하는데 이것을 일일이 일러주어야 한다. 이것은 이리로 치우고 방은 쓸고 깨끗한 걸래로 닦아야한다 등의 식으로 구체적으로 일러주어야 한다. 성격이 급한 한국인은 차라리 내가하고 말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것은 베트남 사람들의 공산주의 성격과 더운 날씨로 인한 수동적인 성격 형성이 되어온 것인데 여기에 민족주의가 포함되어 있어서 베트남 사람을 쉽게 믿었다가는 나중에 실망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한 남자가 베트남 여인과 결혼하여 10여년을 넘게 살았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가정의 물건들을 모두 싸가지고 가버린 사건이 있었다. 한국남자는 정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만 베트남 여인은 그동안 한번도 자기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며 베트남정부나 사람을 비판하면 싫어할 뿐만 아니라 부부간에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을 잘 대변해 주는 것이 베트남이 어떻게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가르쳐주는 구찌 땅굴이다. 250Km를 25년에 걸쳐 호미로 소리 없이 파놓았다는 이 땅굴은 도처에 위장된 입구와 연기통이 있고 동굴 안에는 작전회의실, 식당, 우물 등이 있었으며 3층의 구조물로 비교적 1층은 크게 그리고 어떤 곳은 등치큰 미군은 들어올 수 없도록 아주 작은 구멍으로 만들어졌으며 여러 함정으로 미리 준비된 날카로운 대나무 쪽이나 철구조물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던 무기 같았다. 우리가 들어간 굴이 몇 개 있었는데 비교적 짧은 거리를 갔지만 한 굴은 30m을 가느라 오리걸음으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땀을 흘리면서 굴을 통과하였다.
베트남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54개의 민족이 있는데 킨족(베트족)이 55,900,224명(주 1989년)으로 전체인구 64,375,762명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소수민족으로 구분하고 있다. 53개의 나머지 부족도 처음부터 고정된 민족이 아니라 집단의 자기의식 변화 및 행정측의 인식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민족으로 인정된 집단이 생겨나기도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떤 민족은 실제로 물어보면 서로 다른 민족이고 생활의 습관이나 전통이 크게 다른 경우도 나타난다고 한다.
호치민의 베트남 사이공 교회는 남부전체에서 몇 개 안되는 정부가 인정하는 교회이며 베트남에세 제일 큰 교회로 약 1,700여명의 성도가 모인다고 한다.
평균 예배시간이 3시간 정도를 드리며 매달 첫째 주는 성찬식을 한다. 예배순서는 한국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설교전에 기도, 성가, 광고, 헌금시간이 있었다. 오늘은 매월 한번씩 재정보고를 하는데 비교적 중요한 사항을 소상히 알려주었다. 지난달 전체헌금이 500$ 이 조금 안되는 액수였는데 이것을 가지고 그동안 준비한 것과 합하여 발전기와 선풍기 등을 샀다는 것을 알렸다. 일년에 몇 차례는 사모님이 설교를 하는데 오늘 사모님이 설교를 했다. 베트남의 사모들은 거의 정규신학대학을 졸업한 분들이라고 한다. 순서지 주보가 없으며 그래서 그런지 설교제목을 휴장에 큰 글자로 적어놓았다. 전도활동은 교회밖에서는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하고 있다고 한다. 믿을 자유도 있지만 믿지않을 자유도 있는데 전도활동은 믿지않을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필자와 일행은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은혜로 베트남의 일정을 마쳤다. 베트남은 지리적인 조건이 우리와 매우 비슷하고 끝임 없는 외세의 침입도 비슷하며 특히나 60년대 한국의 젊은 용사들이 6만여명이 참전하여 오늘날의 한국이 있기까지 경제적 기초를 마련한 시기로 보아 우리는 결코 베트남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인가는 베트남정부가 스스로 말하는 "독립, 자유보다 귀한 것은 없다." 라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며 더 자유로운 그런 때가 오면 좀더 진실한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여러분 이 나라(베트남)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