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죤 심프선 (JOHN SIMPSON)


크리스마스
마태(A:18-25)와 누가 (1:30-35)는 둘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아버지 개입이 전혀 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셨으며 따라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고 진술한다. 우리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혹은 보다 정확히 동정녀 잉태-이라 칭한다.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과 사역 위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나 마리아와 협력하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나 성령의 창조적인 사역을 통해서 그는 새 인간 곧 새 인류의 시조가 되신 것이다.

이 일이 동정녀 탄생을 떠나서도 가능할 수도 있었다는 데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으나 성경의 증거는 이 이적을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택하신 방편으로 지적한다. 우리나 성육신의 생리학에 관하여는 아무 것도 듣는 바가 없으나 마리아가 수태한 것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였다는 확실한 사실에 접하고 있다.

실로 이것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이는 우리가 여기서 무한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세계안이 들어오시는 과정을 대하고 있고 또 이것은 창조사역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정녀 탄생이 하나의 이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될 수는 결코 없다. 최대의 이적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자체이다. 우리가 그 이적을 받아들일 것이면 하나님이 그 이적을 행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방법도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동정녀 탄생이 신약 다른 곳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균형을 잃지 말라는 하나의 경고가 된다. 동정녀 탄생의 사실을 진술하고 나서 성경은 아무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성육신 혹은 무죄하신 상태가 단지 그의 탄생의 방법자체로 말미암아 서거나 넘어진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이라 하는 아들을 낳으리라 한 이사야 7:14의 예언은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보다 깊은 의미를 갖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었다(마1:22-23을 보라) . 마가복음 6:3에서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셉이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소문에 근거한 모욕적인 의미가 담겼을 가능성이 있는 '마리아의 아들'로 불렀다. 요한복음 8:41도 비슷한 모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셨다'고 한 갈라디아 4:4과 또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곧 새 인류의 시조로 언급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15:45-47에서도 역시 동정녀 탄생에 대한 그 이상의 증거들을 찾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