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이적들

하워드 마샬(HOWARD MARSHALL)


  1. 이적에 대한 현대의 반론들
  2. 부활
  3. 이적들의 목적
복음서들은 35차례의 서로 다른 기회에 예수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들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것을 이적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또한 본문의 여러 기사들을 통하여 아주 일반적인 의미로 예수께서 이적들을 행하셨다는 말을 듣고 있다.

예수께 대한 이러한 기사들 중 절반 이상은 그가 열병과 문둥병(성경에서 이 명칭은 오늘날의 문둥병을 비롯,그밖의 피부병도 포함하고 있다).고창병,중풍병,소경,귀머거리,벙어리 등 다양한 질병에 걸린 자들을 어떻게 고치셨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다른 경우들에 있어서는 그가 귀신 들려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서 귀신들을 내어 쫓으심으로써 그들을 온전케 하셨다.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 :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들은 성 베드로의 물고기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알을 머금고 다니는 이 고기의 입은 동전을 머금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마17:27).

세차례에 걸쳐 우리는 그가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는 말을 듣고 있다. 나머지 기사들은 사물에 대한 그의 능력, 곧 보리떡 몇개와 물고기 몇마리로 큰 무리를 먹이시고, 물위로 걸으시며,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여 마르게 하시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게 하신 그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적에 대한 현대의 반론들

이적에 관한 성경의 기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 이적들을 본 사람들에게 끼친 엄청난 감명을 증거해준다. 설사 그 기사들이 전설이었다. 하더라도(결코 전설일 리가 없으나)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만들었던 비밀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고자 할 것이다. 처음부터 분명히 해 둘 것은 우리가 비이적적인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성경의 이적들을 버릴수는 결코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적들은 성경의 빠뜨릴 수 없는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사람들(자유주의자들) 이 그 이적들을 버리려든단 말인가?

첫째로, 과학은 이적의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 주장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전제, 곧 순수한 물질계 안에서는 그 자연적인 원인들이 규명될 수 없는 사건이 하나도 일어날 수가 없다는 전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우주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가정으로서 사실로 입증될 수가 없다. 기껏해야 이 가정에 근거해서 보통의 상태에서는 이적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상태에서 이적들이 일어날 수 없다해서 어는 경우를 막론하고 도무지 아무 이적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불합리한 주장인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그 점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자세가 되어 있으나 입증되지 아니한 전제나 가정에 동의할 수는 없다.

둘째로, 우리가 이적드렝 대한 신빙성이 있는 역사적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성경의 이적들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그 이적들이 이적 아닌 다른 사건으로는 설명될 수가 없다는 충분한 근거들을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적이라고 하는 특수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그 증거도 또한 아주 강력한 것으로 제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현대의 자유주의자들과 불신앙인들이 성경에 나오는 이적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기 보다는 그것을 본 사람들이 착각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부활

그런데 만일 한 가지 이적만 역사적인 것으로 주장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 이상의 이적들도 실제로 일어났었따는 것을 지적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 이적은 바로 부활이다. 신빙성이 있는 목격자들이 이미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고 주장한 증거(고전 15:3-8)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 증거의 의미를 바로 지적하는 유일의 설명은 곧 예수께서 이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납득이갈 만한 어떤 대안적인 설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부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일진대는 다른 이적들도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첫째로, 그 부활의 이적이 모든 이적들의 가능성을 아주 확고히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연질서 안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활동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부활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적인 답변"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 친히 자기가 이적들을 행하신다고 주장하신 바 있다(눅 7:21 이하,11:19).

이 증거는 예수께서 복음서들에 나오는 이적들을 행하셨다는 신빙성이 있는 역사적인 전승에 의해서 확증된다. 확실히 우리는 이적에 관한 기사들을 낱낱이 검토하여 그 순수한 역사적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확증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는 보다 많은 자료들이 소개되고 있으나 다른 경우들에 있어서는 단순히 이적에 대한 언급만 나오고 있다. 어느 경우이든 성경 그 자체의 증거들은 이 모든 사건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그리고 분명한 목적이 있는 이적들이었음을 가장 강력하게 확증해주고 있다.

이적들의 목적

신약 이적들의 역사성에 대해서 자주 제기되는 한 가지 중요한 논점은 곧 그 당시의 위대한 인물들에 관하여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하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미신들에 젖어 있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위대한 인물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그와 같은 이야기들을 꾸며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론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제1세기의 용어로 "가장 위대한 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는 자가 뭘 필요가 있었던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실제로 이적들을 얼마든지 행하실 수 있었고 또 행하셨을 것이라고 답변할 수가 있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곧 예수님에 관한 기사들이 다른 인물들에 관한 기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몇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이적들이 지니는 중요성은 그 이적들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있다기 보다는 그 이적들에 부여된 특별한 의의에 있다.

이 모든 사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의 이적들에 대하여 적용이 된다. 그것은 또한 초대교회 안에서 일어난 이적들에 대해서도 적용이 된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나타내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죄수들이 이적적으로 풀려나고, 심지어는 물리적인 심판을 행하는 권능들에 대해서까지 듣고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예수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동일한 능력이 그의 제자들 안에서도 여전히 나타나서 그들의 구원의 메시지를 확증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실재성에 대하여 경고하는 증표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