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比較 考察과 컴퓨터 "666" 主張에 대한 反論

저 자 : 이영제 목사
[3] 제 3 장 컴퓨터와 666

1. 수(數)

제 3 장 컴퓨터와 666

컴퓨터와 666의 관계에서 분명하고도 명확한 관계 정립이 되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666을 컴퓨터로 해석하는가 하면, 이론이 궁색한 이단 종파나 종말주의자들은 컴퓨터와 666 이라는 문제를 잘 이용하고 있다. 컴퓨터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방황하는가 하 면, 교회 전산화 문제와 관련된 많은 부분에서 무분별한 반대에 부딪쳐 진 보적 입장이던 교회가 사회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난 1991년 10월 21일부터 11월 10일까지 20일간에 걸쳐 전국 1020명의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요한계시록 13장 18절의 '666'은 컴퓨터와 관계가 잇 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0%가 직접 관계가 있다. 23% 간접 관계가 있다. 22% 아무 관계가 없다. 35%가 잘 모르겠다고 응답해 '666'이라고 생 각하는 응답자 수가 많았고 알 수 없다는 응답도 35%에 달하여 "컴퓨터 66 6"의 주제를 다룬 책들이 깊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와 선교 5주년 기념호", 한국컴퓨터선교회, 1991, P 28. )

르네상스 시대의 3대 발명품 중의 하나인 철판 인쇄기가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구라는 것은 사용하 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할 수 있다. 사탄의 손에 들리면 사탄의 도구가 될 것이며 천사의 손에 들리면 천사의 도구가 되어 좋은 일에 사용될 수 있 을 것이다.

그런데 이 컴퓨터를 마귀나 사탄으로만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을 자주 만 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사탄의 일을 돕고 있는가, 사탄 이 준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지만 아무리 생 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이러한 문제들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하여 결국은 또 컴퓨터 앞 에 앉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루는 사항은 특별히 어떤 책이나 개인을 상대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분별한 이론은 혼란을 초래하며 많은 사람들을 방황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필자가 생각한 범주 안에서 컴퓨터는 666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다.

컴퓨터를 666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부 분은 바 코드이다. 바 코드에서부터 컴퓨터가 666이라는 이론이 나오기 시 작했으며, 이 이론을 중심으로 컴퓨터와 연관되는 많은 부분에서 666이라는 숫자를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컴퓨터의 줄무늬 바 코드가 666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사람의 책 속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약 3년 동안 필자는 666을 바 코드로 나타낸 만국 상품 부호를 파악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읽고 또 설명도 들어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만족할 만큼 충분히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2년 동안을 조사해나갔다.( 메어리 S랠프, 장인순역, "세계독재자와 666", 문진당, 1988, p 40. )

필자도 위의 필자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666을 찾기 위하여 바 코드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으며, OO 바코드 시스템이라는 회사까지 찾아 바 코드와 666이라는 관계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 바 코드는 666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바 코드가 666 이라는 문제는 기독교 일각에서 너무 종말론에 치우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영제, "교회와 컴퓨터", 한국컴퓨터선교회, 1992, p 340. )

이 바 코드에 대하여는 뒤에서 더 언급하고자 한다. 이 조사 과정에서 필자가 확인하게 된 것은 한 가지 사실이다. 컴퓨터 바 코드는 한 가지 종류 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것과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재의 표준 제도와 국제 규격이 확정되어 일정한 규율은 있으나 이것은 지금 현시대에 정한 논리이기 때문에 더 좋은 방법이 나오면 또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사실이 지금의 바 코드가 어떻게 풀어 666이 되든지 안 되든지 사실 필자는 더이상 논란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성경이 가르치 고 있는 진리는 영원과 불변에 원칙을 둔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 6).

어떠한 경우에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함이다. 또한 성경에서 말 하는 666이라는 숫자가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도 그렇게 간단하게 의미없이 보이는 어떤 수로 나타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해석되 어야 하며, 잘못된 세대주의적인 해석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666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 수(數)

수가 발전하여 컴퓨터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알아봄으로써 컴퓨터와 수의 관계를 좀더 깊게 이해하여 컴퓨터가 666이 될 수 있는가를 알아 보고자 한다.

1) 수의 발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성경에서 처음으로 수의 개념이 나오는 구절이다. 성경도 처음부터 수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수를 몰랐다면 굉장히 불편할 것이다. 인간이 생각 할 수 있다는 것은 수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가 없었더라면 먼저 화폐가 있을 수 없다. 셈을 할 수 없는 화폐란 뜻 이 없기 때문이다. 1대 1의 물물 교환을 하는 수단으로 항상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화폐로서의 효용을 가지기는 하겠지만 화폐로서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이윽고 누군가 대상물에 대해 손가락을 1대 1로 대응시키는 것을 착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둘 있는 것을 2개로 하지 않고 집게손가락으로 나 타내며, 다섯이 있다는 것을 다섯개라고 하지 않고 새끼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식의 계산법도 있었을 것이다. 이 방법이라면 3속에 1이 셋이 있다는 수의 관계는 좀처럼 깨닫기 어렵다.

고대 그리스의 계수법도 원리적으로는 이렇다. 한 손으로는 5가 한도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두 손이 쓰여지게 된다. 10으로도 모자라게 되면 이번에는 발가락까지 이용하게 된다. 그러면 20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다. 이때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보태어 수의 벽을 극복했을지도 모르고, 자기 손가락을 다시 써서 20 이상의 수에 도전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익숙해지면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반복하여 50, 70으로 계수의 범위를 확대 하게 된다.

이 계수법이 이른바 20진법(진법)이다. 영국의 화폐 제도에서는 1 파운드 를 20실링으로 하는 20진법을 최근까지 사용했다. 이것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사용한 계수법의 유물이다. 디지탈이라는 말이 시계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디지트란 손가락을 말한다. 따라서 디지탈이란 손가락으로 세는 것과 같은 이른바 눈셈을 뜻한다. 디지탈 시계에서는 1분마다 숫자가 바뀌는데, 이것은 손가락 하나를 접는 것에 해당한다.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하면 셈의 연구가 시작되기 마련인데 이 수의 연구는 곧 과학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2) 수학

일반적으로 수학이라고 말하면 매우 간단한 것같이 들리지만, 학문으로 이를 분류하려 들면 수는 엄청나며 19세기의 수학부터 이야기한다 해도 그 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중에는 수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도 전달이 가능한 현상도 많으며, 따라서 상당한 전문적인 훈련이 되어있지 않 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현대 수학을 이야기하려면 자연히 어떤 특수한 일면만을 문제 삼게 되는 폐단은 불가피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전 제를 놓고 제일 먼저 등장하는 부문이 비유클리드 기하학(Non Eucl- idian Geometry)이다.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는 평면 기하학이 바로 유클리드 기 하학이다.

BC 300년 경에 생존했었다고 알려져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유클리데스가 집대성한"기하학 원본"에서 말하는 제5공준(공준)이 성립되는 공간을 말한 다. 제5공준이란 하나의 직선이 있고 그 직선 밖에 한 점이 있으면 이 점을 통과해서 그 직선에 평행하는 직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정리이다. 이와 같은 제5공준은 19세기 초까지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졌지만, 19세기 초에 로바체프스키와 볼야이가 평행선 공리를 담대히 부인 하고 소위"쌍곡 기하학"을 성립시킴으로써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그 지반을 굳히게 된다.

그 후에 리만이 로바체프스키의 사상을 발전시켜 "타원 기하학"을 확립시 켰고, 따라서 어느 일정한 직선 외에 한 점을 통과하여 이 직선에 평행한 직선이 많다는 가정을 세워도 하등의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 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20세기의 공리주의가 시작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비유 클리드 기하학은 그후 힐버트나 페아노 같은 유명한 학자들의 강력한 이론 적 뒷받침이 있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 (시공)의 성격은 유클리드적인 공간이 아니라 비유클리드적인 리만 공간이 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실질적인 현상의 뒷받침도 나타났다. 그러나 20 세기의 공리주의란 반드시 실제하지 않더라도 공리는 성립될수 있다는 것이 힐버트의 해석이기도 하다.

오늘의 수학의 세계를 요약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관점 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르게 요약될 수도 있다. 제아무리 공리주의가 성행 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물리나 생물 분야에서 수학이라는 용어를 구사하 면서 일정한 모델을 추구하고 있는 학자도 많으며, 이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수학은 미분 방정식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 수학에서도 미분 방정식이 차지하는 영역은 수학 전반에 걸쳐 매우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학을 한다는 사람끼리도 전공이 다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비교 집단(비교 집단)과 같은 분야가 있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대수 기하학"(대수 기하학)이요,"대수 다양체"(대수 다양체)분야이다.

수학에는 노벨상이 없다. 수학 분야에서 노벨상에 해당하는 상이 피일즈 (Fields) 상인데, 이 상은 매 4년마다 국제 수학 학술 회의(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s)에서 선정및 수여하는 것으로 40세 이하의 학자로 서 한 번에 네 명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한다. 상금 이래야 불과 1,500불 밖 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피일즈 상을 타는 사람 중에 대수 기하학이나 대수 다양체를 전공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인 그로땅딕이라는 사람은 연구 도중 이같은 비교적(비교적) 연구 그 자체에 회의를 품고 산속으로 은신하 고 말았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옛날 희랍 시대에 피타고라스 학파가 비교적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과 일맥 상통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세번째의 분야는 계산기를 이용하는 수학 분야이다. 위에서 언급 한 비교 집단과 같은 분야의 내용은 거의 무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오늘날 의 사회에서 계산기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존재이다. 계산기란 수학이라 는 본래의 뜻에서 말한다면 수학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 도 있지만, 그러나 오늘날 계산기를 수학에서 제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네번째가 [수학 기초론](수학 기초론)이다. 금세기에 들면서 발달한 분야 이며 한동안은 철학적인 색체가 농후하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근자에 와서는 그 철학적인 색체가 희박해져가고 있다. 요컨데 수학에 있어서의 개념 구성 법 및 논법에 대한 수학적인 반성이 촉진되어 나타난 분야가 수학기초론이 다.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욥 5:9)라고 욥은 고백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수학의 세계를 단순한 셈의 세계로 오인하고 다만 계산하는 기술만이 수학인 것처럼 오인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수학의 세계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에게 주신 사고(사고)의 세계를 더욱더 깊이 발전시키고 넓히는 인식의 세 계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아라비아 숫자의 발견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름의 감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8세기의 아랍 이 야기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사실은 당시의 아랍 문화가 상당한 수준에 있 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의 아랍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등 일군의 석유 산유국과 전쟁의 끊임이 없는 지역 이 될 뿐 그 문화는 문제가 안된다. 여기에는 남아도는 오일 머니가 있고 그것이 교육에 투자되고 있다는 보 도는 있긴 하지만, 이것은 문화의 낙오를 되찾으려는 노력으로밖에 받아들 여지지 못하고 있다.

중세 유럽이 이른바 암흑 시대의 터널에 숨어버릴 무렵 문화의 꽃은 사라센 제국에 피었다. 이 제국은 7세기에 인도로부터 북아프리카를 거쳐 에스파니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였다. 얼마 후 두 개의 교왕국으로 분할되었으나 역대 교왕은 학문, 예술의 진흥에 힘을 쏟아 아랍 문화를 세계에 으뜸가는 것으로 꽃피게 하였다. 고대 그리스 문화와 당시의 인도 문화를 흡수하는데 유리한 지리적 조건이었다는 것도 큰 혜택을 입었을 것이다.

문화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수의 표기법을 갖는 것이 통례이다. 당시의 아랍은 다종 다양한 민족의 집합체였으므로 지역에 따라 각양 각색의 표기 법이 채용되었다.

그들은 수에 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머리 글자로서 수를 나타내는 습 관이 있었다. 이윽고 그리스의 방법이 도입되어 아랍의 알파벳 26문자로서 수를 나타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 시대는 그 문화가 가장 고양된 무렵으로 바그다드의 교왕은 하룬 알-라시드였다. 그가 즉위하기 조금 전 773년에 한 천문학자가 멀리 인도에서 왔다. 천문학자는 천체 관측표를 왕에게 헌납하는 목적으로 인도 숫자도 함께 가져왔다.

그러자 그것은 요원의 불길처럼 상인, 수학자 사이에 번져나갔다. 이것이 아라비아 숫자로서 우리가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서 같은 3이 3,000 의 3에도, 300의 3에도, 30의 3에도 한결같이 쓰여진다. 대수가 아랍에서 태어났어도 그리스에서는 태어날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4) 10진법의 발견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10진법과 친숙하다. 손가락 수가 양손을 합해 10 이 되는 것에서 10진법은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는데, 수학자가 속출된 고대 그리스에서 그것을 몰랐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일 수 밖에 없다.

삐에르 시몽 라쁠라스라고 하면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활약한 프랑스 의 수학자인데,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10진법이라는 휼륭한 숫자가 발견 된 것은 인도에서다. 이 심원하고 중요한 발상은 겉보기에는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그 진가가 인식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모든 계산을 이 10진법이 단 순화하고 또 용이하게 한 결과 산술은 제 1급의 유용한 발명품이 되었다. 아르키메데스나 아폴로니우스와 같은 고대 수학자가 이에 생각이 미치지 못 한 사실로도 10진법의 위대성은 명백하다.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최고의 것이라고 상정하고 큰 수나 까다로운 계산을 전통적인 방법으로만 하였다. 그런 오만하고 밑바탕이 없는 사회에 갑자기 큰 수가 나타났다면 수의 표기상 획기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도에서 10진법이 발명된 것은 기원전 100년 경이라고 하는데, 10진법은 60진법과 더불어 바빌로니아에도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10진법은 인도보다 오래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인도의 경우는 아라비아 숫자라는 것을 가졌었고 0을 가졌기 때문에 월등하게 발달되었다. 0을 가졌느냐 가지지 못했 느냐, 표기법이 10진법에 적합하냐 아니냐로, 모처럼의 10진법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였다.

컴퓨터의 발명에 의해 2진법이 각광받게 되었다. 전기 장치로 수나 문자를 파악한다면 정보는 모두 스위치 ON과 OFF로서 조립될 필요가 있다. ON을 1, OFF을 0으로 한다면 수는 둘밖에 없으므로 2진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펀치 카드에서는 1에서는 구멍을 뚫고 0에서는 구멍을 뚫지 않는다. 2진법 이라면 0이 0,1이 1,2가 10, 3이 11, 4가 100, 5가 101, 6이 110, 7이 111 이 된다. 이 2진법으로 필산한다면 불편하기 그지 없다. 단 컴퓨터는 그것 을 전자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알 수 없고 컴퓨터가 속에서 이루어지 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2진법은 전자적으로 계산이 가능한 컴퓨터용 밖 에는 안된다. 현대의 우리는 10진법 외에 60진법과 2진법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5) 2진법과 비트(Bit: Binary Digit)

10진법과 2진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사용하도록 주신 암시이며 인간 은 그 수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이 열이며 발가락도 열이 라는 것은 10진법이며, 남녀가 있다는 것과 빛과 어둠은 2진법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힌트를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복잡한 수의 계산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알려진 바와 같이 0과 1의 2진법을 기본 원리로 구성돼 이것을 기초로 동작한다. 2진법에 사용되는 0또는 1을 비트(bit)라 부른다. 예를 들어 10110은 5bit이다. 따라서 컴퓨터에서 처리하는 최소 기본 단위는 bit라 할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도 결국은 bit에 의해 처리된다. 여기서 8 bit를 바이트(byte)라 하기도 한다.

byte는 16진법 등 다른 진법으로의 변환이 용이하기 때문에 처리의 기본 단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byte를 처리의 기본 단위로 하는 컴퓨터 는 동시에 8bit를 처리할 수 있다. 대부분의 마이크로 컴퓨터는 byte단위로 처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본 컴퓨터의 내부에서는 그 수를 사용함에 있어서나 어디에서도 666이라는 숫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컴퓨터의 내부 작동 방법과 원리는 2진법의 방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의 숫자 계산 방법은 10진법과 60진법, 2진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컴퓨터에서 6이라는 숫자는 1부터 시작하여 2,3,4,5,6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에서는 6이라는 숫자를 특별히 다루지 않으며 순서 상 오게 되는 확률일 뿐이다. 10진법으로 생각할 때 0-9까지 10번 중에 한번은 모든 숫자와 마찬가지로 한번은 6도 나오게 되는 것 뿐이다.( 이영제, "교회와 컴퓨터", 한국컴퓨터선교회, 1992, p 348. )


Top
[목차]
[요한계시록]
[Study Bible]
[KCM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