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스(Tarshish)

=> 니느웨 / 욥바 참고
서바나 남방 지중해 연안에 있는 중요한 무역 시장으로 달시스(Tarshish)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1) 욥바 항에서 자주 선편이 있었다(사23:1-14).

(2) 요나 선지자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하려다가 고기 배속에 들어가 3일간 있다가 나왔다(욘1:3, 4:2).

(3) 여호사밧왕이 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과 배를 지어 다시스로 보내려 하였으나 여호와가 그 배를 파선케 하시니 가지 못하였다(왕상22:48,대하 20 :35-36).

(4) 옛날에는 다시스를 서단으로 생각하여 다시스의 배라 하면 먼 나라를 여행하는 배를 의미하였다(사66:19, 시72:10).

다시스로 가는 길(욘1:3)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요나는 그러나로 반응을 했습니다.
왕하14:25에 보면 요나는 이스라엘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는 것을 예언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크게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나에게 달았고 요나는 그것을 신이나게 전했었습니다. 그리고 요나가 예언했던 대로 이스라엘은 아주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신 말씀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니느웨는 자기들을 괴롭히는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그대로 순종하기가 싫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자기의 생각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이유를 달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고후1;20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아멘만 있어야지 그러나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정국의 불안과 6,7년이나 계속된 전염병과 또 대낮에 태양이 안보이게 되는 완전일식 등 여러가지를 통해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선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 두고 계셨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자기 머리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쳐도 안되는 일인데 니느웨 사람들이 듣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될 수 없는 일 같았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니느웨는 결코 아닐 것이라고 하는 자기 생각과 자기 확신의 벽을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러나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되는 줄 믿어야 하고,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양심적으로 살 것을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러나 세상이 다 이렇게 악한데 어떻게 나 혼자만 그러 수가 있습니까? 그래 가지고야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아멘이 있어야 할 뿐입니다. '그러나'의 조건부 신앙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갈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노라고 하나님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을 하고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롬 6:3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했습니다.
성도는 옛날의 자신은 죽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나는 없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입니까?
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다 아멘으로 받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가려서 들으십니까?
요나는 자기 철학과 자기 경험과 자기 생각과 자기 확신의 벽을 쌓아 놓고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결국은 큰 낭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히2:1에서 '우리가 모든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려 떠내려 갈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말씀을 보배처럼 받으시고,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시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순조로운 길(3중-)

왕상10:22에 보면 '솔로몬 왕이 바다에 다시스의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의 배로 삼년에 일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 왔다'고 했고 22:48에 보면 '여호사밧왕이 다시스의 선척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취하려 보내려 했었다'고 했습니다.
또 겔27:12에 보면 '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스는 금은 보화 등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자원이 풍부하고 해운이 발달한 곳이라 거기에 따르는 죄악도 많았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일일이 찾아 읽어 드리지 못합니다만 주보에 인쇄해 드린 성경구절들을 보면 다시스는 늘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죄가 관영했던 곳이 확실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인 욘1:3을 보면 한 절 말씀에 다시스란 이름이 세 번이나 언급되었습니다(3절-).
하나님의
니느웨가 싫어지면 세상의 다시스가 더 매력스럽게 생각되어 집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곧 바로 다시스로 가기 위해 욥바항으로 내려 간 것을 보면, 요나는 이미 다시스에 대해 많은 것을 들어 다시스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다시스에 대해 들어왔었지만 그냥 지나쳤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가 싫어지니까 요나의 기억 속에 숨어 있던 다시스에 대한 이야기가 꿈틀거리며 머리를 내밀었던 것입니다. 바로 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 속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밖으로 삐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니느웨가 싫어지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잘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꼭 매여 있어야만 하고, 늘 주님을 바짝 따라 가려고 애를 써야만 합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고 욥바항에 도책했을 때 그는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적어도 지금부터 27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다시스로 가는 배들이 그렇게 자주 있지 않았습니다.
아까 보았던 왕상 10:22 말씀을 보면 솔로몬은 3년에 한번씩 그 곳에서 여러 가지 보화들을 실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다시스로 가는 배가 그렇게 자주 있지는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또 혹 정기적으로 운항하던 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옛날에 그렇게 제 때에 맞추어 운항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욥바항에 도착하니 때 마침 다시스로 출발하려는 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잠5:3에 보면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 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럽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반대편으로 가는 죄의 길은 처음에는 그저 달콤하게만 느껴지고 만사가 형통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서를 계속해서 보면 꿀이 떨어지는 것 같고, 기름보다 미끄러운 것 같지만,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요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로 가는 길이 마치 기계에 윤활유가 잘 쳐진 것처럼 순조롭게 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불순종의 항구에서 '마침' 만나게 되는 배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잠20:21 말씀에 보면 '처음에 속히 잡은 재물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속히 잡은 재물이란 정당한 노력에 의해서 얻은 재산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과 남을 속여서 얻은 재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잠13:11에서는 망령되이 얻은 재물이라고 했습니다. 결국에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탐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 재물은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근심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그랬습니다. 웬일로 일이 이렇게 척척 잘 되어가나 하고 좋아했을지 모릅니다. 사탄이 운행하는 배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다 탈때가지는 아주 공손합니다. 그러나 일단 내릴 수 없이 육지를 떠나 출항하고 나면 반드시 본색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요10:10에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히키려는 것 뿐'라고 하셨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의 선가를 주고 그 배를 탓다고 했습니다만 요나가 치른 선가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떠나기 전에는 적당히 받습니다. 그러나 그 불순종의 값이 얼마나 큰지는 그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 갔을 때에야 뼈가 저리게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 하나님께 반대해 가는 길에는 함께 가는 사람도 많아 보여서 처음에는 안심도 심어 줍니다.

혹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길을 가고 있는데도 이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다 가는데 뭘 두려워 하느냐고 여러분을 유혹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산다는 것 때문에 판단이 흐려져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 범죄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에덴 동편에 이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간 가인이 자기가 새로이 정착해 살곳의 이름을 놋이라고 지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성경에 설명을 해 준대로 '놋'이라는 말의 뜻은 유리방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것에 불만을 품은 가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가 살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벌 나비처럼 마음껏, 자유롭게 한번 멋있게 살겠노라고 한 가인의 인생철학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은 멋있게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과 그 후손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참으로 불행하게만 되어져 갔습니다.
요나도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다시스에 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한 번 멋있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또 모든 것이 풍부한 곳이니까 그곳에서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모으면 한 밑천을 크게 잡아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꿈에 마음이 들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비싼 뱃삯만 낭비했습니다. 사66:19등을 참조해 보면 다시스는 당시로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모르긴 몰라도 뱃삯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뱃삯만 낭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로 가는 길은 아무리 순조로운 듯이 보여도 그 길은 결국에는 재물이 낭비되는 길이며, 시간이 낭비되는 길이며, 무엇보다도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이 귀중한 인생이 낭비되는 길이다 하는 것을 꼭 명심하셔야만 합니다.

3. 내려가는 길(3하-)

불순종의 심리가 작용할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낯을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3절에 보면 한 절에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하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싫어서 가라고 하신 니느웨와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기 위해
욥바로 내려 갔습니다. 여기 내려 갔다는 말은 지리적이거나 위치적인 표현만이 아니라 영적인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도들은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올라가야 하는데 내려 갔습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기 위해 욥바로 내려가서 배로 내려 갔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고, 올랐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만 원문에는 욥바로 내려 갔다고할 때 쓴 말과 똑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 )

영어로도 Went down to Joppa, Went down into ship라고 똑같이 Went down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 말씀을 보면 요나는 다시 그 배 밑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2:6에 보면 결국은 바다 및 산의 뿌리가지 내려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길은 혹 처음에는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내려가는 길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양정중앙교회/손병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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