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바(Medeba)


뜻:고요하게 흐르는 물
헤스본에서 남쪽으로 9km, 사해로 들어가는 요단강 입구에서 남동쪽 약 24km 지점
현재 이곳은 마다바(Madaba)=메드바 도시가 있다.

(1) 요단 동쪽 고지대에 있는 중요한 성읍(민21:30).

(2) 르우벤 지파가 차지함(스13:9).

(3) 요압이 이곳에서 암몬인과 그 연합군을 격파 하였다(대상19:7-15).

* 비잔틴 시대에 매우 번창한 도시였다.

성경에 메드바로 일컬어지는 도시로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이 정복한 도시였다. (민 21:30, 대하 19:7, 사 15:2) 다윗 왕이 암몬을 정벌할 때에 메드바에서의 전쟁 기록이 성경에 나타나 있으며, (대상 19:7) 모압왕 메사의 비문에도 9세기 후반에 이 도시가 모압에 속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후기 성경 자료에서도 메드바는 모압의 도시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기원전 167년 마카비 전쟁 당시 '잠브리의 아들들' 이 성에서 나와 유다 마카비의 형제 요하난과 더불어 전투를 벌여 요하난을 전사케한 사실이 있으며, 후에 이곳은 요한 힐카누스에 의해 오랫동안 포위당한 끝에 정복되었다. 이후 알렉산더 야나이의 치세 기간에는 그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그 후 힐카누스 2세는 자기의 형 아리스토불러스와의 전쟁 때 이 도시를 나바테안 왕국의 수도 페트라의 아레타스왕으로 하여금 다시 되찾아 주도록 요청하기도 하였다.

기원 후 106년 마다바는 아라비아 지방의 도시로 편입되면서 기독교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의 박해 때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 당하기도 하였고, 기원 후 451년의 칼케톤 회의록에 근거하여 마다바는 보스트라의 대주교 밑에 주교를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기원 후 614년에 있었던 페르시아의 침공에 의해 마다바의 비잔틴 도시는 파괴되었고, 8세기 중반에 이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1880년 초에 이르러, '키락'(Kerak)에서 그 곳에 사는 기독교인들과 회교도이 종교 문제로 충돌하게 되자, 수적으로 열세였던 크리스천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이 상황에서 카락의 크리스천들은 황급히 당시 통치자 오토만 터키 당국에 그들이 이주해서 살 수 있는 땅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러한 청원에 따라, 오토만 제국은 카락에서 북쪽으로 약 85㎞떨어진 곳에 있는 마다바의 땅을 지정해 주었다. 오토만 제국이 오갈 데 없는 카락의 크리스천들에게 과거 크리스천 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마다바 지역을 배정해 줌으로서 이곳은 다시 기독교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메드바의 성 조오지교회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 지도 중 예루살렘 부분(6세기경) 그러나 터어키 당국은 이주자들로 하여금 집은 자유롭게 짓되, 교회만은 과거 비잔틴 시대 교회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만 지을 수 있도록 제한하였다. 마다바로 이주한 2천여 크리스천들은 무너진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 위에 새 교회를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1887년 마다바에 머물던 라틴 선교사 슈마허(G.Schumacher)가 처음으로 도시의 주요 흔적을 찾아냈으며, 1897년에 마다바 지도가 클레오파스 키킬리디스(Cleopas Kikilidis) 신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지도는 지금까지 발견된 로마-비잔틴 시대의 가장 오래된 지도로써 기원 후 542년 11월 20일에 봉헌된 예루살렘의 네아 교회가 지도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유스틴 황제(기원 후 527-565)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모자이크 지도는 고대 근동지역의 지도로서, 북쪽의 레바논의 시돈과 두로(티르), 남쪽으로는 이집트의 북부 델타 지역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 지도상에는 많은 고대 유적지들과 교회 등이 나타나 있으며, 예루살렘 지역의 지도는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다. 마을과 성의 이름들이 희랍어로 기록된 이 모자이크 지도는 현대의 지도 그리기 기법에 기준 하면 사실적 균형미가 많이 떨어지나, 성서지리학의 연구결과 이 지도의 정확성은 더욱 확증되고 있어, 이 지도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지도가 가지고 있는 지리학적 - 지형학적 가치는 의심할 필요 없이 매우 높다.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자이크 예술에 관해서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자이크(mosaic)는 여러 가지 색깔의 자연석을 깎아 주사위 모양으로 만들고, 각석들을 정교하게 배치하여 작품을 만든 것이다. 작품의 주제는 동물, 식물, 조류, 어류, 자연풍경을 비롯해서 현란한 기하학적 문양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다. 각석의 크기도 0.5㎝ 정도로 작고 세밀한 것부터 3∼4㎝ 이르는 큰 것까지, 모자이크 장인의 솜씨와 작품의 주제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각석의 크기가 작을수록 고급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모자이크 예술의 전성기는 로마시대와 비잔틴시대였다. 이때 지은 저택이나 교회 건물의 바닥은 거의 예외 없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 모자이크 작품은 자연석을 소재로 삼아 만들었기 때문에 견고할뿐더러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색깔이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적 고대 문화 유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모자이크 지도가 발견된 마다바는 350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비잔틴 시대 마다바는 요단강 동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번성하는 기독교 도시가 되었고 이때 이 곳은 모자이크 예술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당시 이름을 날리던 모자이크 장인들이 모여들면서 이 곳은 모자이크 도시로 비잔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기독교 도시였던 마다바에는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고, 교회의 바닥에는 모자이크 거장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 남겨졌다. 그들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 이다.

19세기 말 이 모자이크 지도를 바닥으로 해서 희랍 정교회에 속하는 성 조지 교회가 세워졌다. 원래 이 지도는 가로 5.6m, 세로 15.7m의 대형으로 약 30평의 바닥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그간 3분의 2가량이 훼손, 지금은 10평정도 분량만 남아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나마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예루살렘 부분은 동편 끝의 약간만 제외하면 잘 보존되어 비잔틴 시대의 예루살렘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민 21:30, 수 13:9, 수 13:16, 대상 19:7, 사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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