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와 크리스챤의 역활


1. 정보화 사회의 의식

우리는 기독교의 전례와 그 사회적 환경을 주의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대 기독교는 예수 를 믿는다는 결심은 예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로마 군인들을 피하여 카타콤과 같은 지하 동굴로 피해야 했으며 삶의 여러측면에서 어려움이 뒤따랐다. 유럽 의 초기 기독교는 산업혁명과 함께 부흥했으며 미국의 기독교는 청교도적 개척정신이 있을때 부흥했다. 한국의 기독교는 일제통치와 6.25를 거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되는 과정에 부흥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새로운 사회속에서의 부흥이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도 정보화 사 회속에서의 기독교 부흥은 없었다. 이제 막 정보화 사회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라는 단 어에 화를 붙인것은 지금 진행중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가 절대적으로 기독교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미래 사회학자인 엘빈 토풀러는 미 래사회의 예측을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미래쇼크"라는 책의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책의 제목으로도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금문교가 건설되고 일본에서는 기차가 다니기 시작하던 때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조정에서 두 명의 관리가 근대화(공업화)되고있는 일본의 물정으로 보고 귀국하여 왕 앞에서 출장복명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시커먼 쇠덩어리가 수백명 이상의 사람을 태우고 말보다 빨리 달리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기차라고 하옵니다]라고 김찬판이 보고를 하였다. 이에 놀란 왕은 [그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그 무거운 쇠덩어리가 스스로 달릴 수 있으 며 그것도 수백명씩이나 되는 사람을 태우고 말보다 빨리 달릴수 있단 말인가?]라고 김찬판의 말 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김찬판은 [전하 황공하옵니다만 사실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 소서!]라고 계속 주장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어전회의 참석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영의정이 나섰다. [전하께서 아니라면 아닌 것이지 불충하게도 고집스럽게 우기는가? 세상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지 어떻게 쇠뭉치가 스스로 움직인단 말인가?]라고 질타를 하고 이어서 [상감마마 김찬판은 지금 허무맹랑한 말을 하여 어의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는 불충스럽기 그지없는 일로서 김찬판을 당장 내쳐야 합니다. 통촉하시옵소서!] 라는 영의정의 주장 에 모든 신하들이 [상감마마 그리하셔야 합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들고 일어나 왕 은 그리 했다고 한다.
위의 예와는 반대로 한국은 세계 최고(最古)의 동판 활자를 독일의 구텐베르그(1398-1468)보다 50년 앞서 발명하였지만 그 사실이 그 [데이터]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못해서 구텐베르그가 발명자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차알즈(P.Charles)는 한 번 교회가 설립되면 선교는 끝나고 그 후에는 교회가 성장해야만 한 다. 선교는 이와 같이 교회의 당면한 하나의 기능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지금 검토 해야 할 명료한 개념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선진화된 문화의식을 전해준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그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러한 시기는 지나갔다. 이제 우리 스스로 개척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 개 척은 오늘에 있어서 정보화 사회속에서의 효과적 대응 능력과 복음전파일 것이다.
교회의 과제(task)는 하나님 나라의 표적이 무엇인지를 선포하는 것이며, 그것을 나타내 보이 는 것이다. 교회의 성도들은 과거로부터가 아닌 저 미래에서 역사속으로 타개하는 실재의 전초부 대(harbingers)인 것이다.
교회는 이제 컴퓨터 한대 사놓고 “ 우리 교회는 전산화가 되었으니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 어! 그리고 교회가 이만하면 됐지?” 하고 자위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큰 잘못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시스템화 되어가는 사회의 거대한 물결을 읽을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발 앞선 인식 과 대책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전산화]란 말은 일본에서도 사용을 그만 두기 시작했으며 그들도 [정보시스템화] [정보화]란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EDPS나 DPsystem 대신 IS(Infomation System)란 말을 쓰고 있으며, [EDP]란 잡지 이름도[I/S]로 바뀌었다. 이제는 [전산화]와 [전산망]을 해서는 안되고 [정보화]나 [정보시스템화]를 해야 한다.
개인이나 교회, 선교기관 에서도 개인적인 사무활용은 전산화 이지만 전체적인 교류와 교통은 정보화이다. 기독교 전체적인 발전을 생각한다면 전산화가 아닌 정보화로 빨리 전향해야 하며 이를 조기에 구축하는 것은 정보화 사회속에서 기독교의 영향과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다.


2. 누구에게나 위임된 선교적 사명

하나님의 나라는 그 모든 다양한 축복 및 표적과 더불어 이미 복음전도위임에 의해 마음의 감 동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 진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말하였다. 복음전도 위임이 없으면 빛도 없다. 복음전도 위임이 없으면 소금도 없다. 문화 위임의 이행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고 기독교 선교 자체이 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 할때 특별한 계시, 특별한 사명을 모두 요구한다. 그것은 남에게 보일수 있는 어떠한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요구하고 특별히 나만을 하나님이 사랑해 달라는 어린 아이와 같은 요구를 계속한다. 또 그러한 증거가 없으면 은혜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하나 님 앞에서 선교적 사명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 할 때 오직 두 사람이 기록되어 있다. 한분은 노아요, 한분 은 에녹이었다(창 6:9). 에녹은 노아와 더불어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그 육신이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도 오직 두 사람뿐, 한분은 엘리야와 다른 한분은 에녹이었다. 그 러나 3백년이라는 긴 일생을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는 증거를 받 은 자는 오직 에녹 뿐이었다.
성경에서 우리는 이렇듯 의롭게, 경건하게, 온전하게 산 사람은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 면 에녹은 어떻게 그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을까? 이상하게도 성경에는 그의 행적을 밝힌 곳이 별로 없다. 유다서 1:14에 잠깐 그가 심판을 예언하였다는 말이 있기는 하나 성경에 그에 대 한 기록은 간단하다. 이로 보건대 3백년 동안 그의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 나 그는 하나님의 위임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문명화된 환경, 문화속에서도 하나님의 충실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이 시대를 바로 분별하여 사명을 감당해 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한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행해야 할 것이다.

3. 정보화 시대의 문제점과 대응

초음속으로 달리고 있는 F-16전투기의 조종사가 5분간 졸면 어떻게 될까? 아마 깊은 산속이나 저멀리 태평양의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달구지를 몰고 가는 농부는 졸 다가 굴러 떨어져도 기껏해야 논두렁에 떨어져 찰과상 정도를 입을 것이다. 이처럼 과학의 발전 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반면 고충격의 리스크도 함께 가져다 주고 있다. 컴퓨터는 알라딘의 램프는 아니다. 컴퓨터는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며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 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격언처럼 컴퓨터는 조작하기에 따라서는 범죄 도구로 약 용될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
정보화 시대의 문제점에 대해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 각종 컴퓨터 범죄이다. 컴퓨터 를 이용한 범죄의 유형은 컴퓨터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 빈 번히 발생되고 있으며 기존의 범죄들에 비하여 피해가 훨씬 크다. 컴퓨터 범죄는 컴퓨터의 부정 사용(거짓 자료입력, 프로그램 조작, 거짓 결과 출력)이다.
둘째, 컴퓨터 시대의 인본주의 현상이다. 과학주의가 뒷받침하는 현대사회의 시대 정신은 인본 주의이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절대권 보다도 인간의 우월을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과학이 발 달하고 발전하게 된다고 해서 인본주의에 빠지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며 과학 바벧 탑을 쌓게 되는 것이다. 정보 기술에 도취한 사람들은 컴퓨토피아(Computopia)또는 테크노피아 (Technopia)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컴퓨터 회사들과 과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신비화시켜 서 컴퓨터에 대한 일반인들의 과도한 기대는 상당한 위험수위에 와 있다. 컴퓨터 광신자들은 끊 임없는 우상화로 정보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오도하고 있다.
세째, 정보시대의 잘못된 문화 형성 이라고 하겠다.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 컴퓨터 바이러스의 확산, 음란 소프트웨어 등이 문제이다. 92년 6월 음란 소프트웨어 배포로 인한 대학생 구속사건이 있었다. 이 음란 소프트 웨어는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전달되었다. 컴퓨터 통신은 이 외에도 92년 6월 14일 이초희 양(여 중생) 자살 사건이 대표적인데 통신 서비스에 가입해 채팅을 하던 중 다 른 회원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성적 희롱을 당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저 주었다.

컴퓨터의 효시가 불란서 철학자 파스칼이 어린시절 세무소의 많은 업무량을 손으로 계산하는 아버지의 고달픈 모습을 보며 느낀 사랑의 마음이 결국은 계산기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않된다.
위에서 지적한 정보화 시대의 문제점들에 대해 크리스천들의 사명이 있다 할 수 있다. 컴퓨터 의 사용과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컴퓨터라는 특수 성이 있지만 사회의 어느 분야든 어느 곳이든 크리스천의 역활이 필요없어도 된 다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많은 부작용들에 대하여 대처할 능력과 준비가 기독교적 크리스천들 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늘을 사는 젊은 크리스천들이 맡아야 할 영역인 것이다.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문맹을 탈피해야 하며 선교적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사용으 로 선도적 역활을 감당해야 한다.


4. 결 론

신앙은 보수(성경 자체)적 이어야 하며, 선교를 위하여는 개혁과 개척을 해야한다. 우리는 간혹 이 둘의 문제를 혼합하여 생각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신학, 신앙관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내려온 관습이 보수인 것 처럼 생각하는가 하면 성경을 잘 해석한다는 미명아래 시한부 종말론의 주장처 럼 말씀을 왜곡되게 해석하여 월권을 행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선교를 위하여는 보수적인 신 앙을 기본으로 하여 개혁과 개척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결코 효과적인 전도를 이룰 수 없게 되며 특히 새로운 문화속에서의 선교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파송받은 모두가 이 시대의 선교사인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에게 위임된 사명을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완수해야 할 것이 다.

글 이영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