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독재정권과 보조를 함께 맞추던 한국 교회로서는 4.19 혁명을 커다란 충격과 자기 반성의 계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4.19는 민중을 외면하고 권력지향적이었던 기성 교회에 대한 공격이요 심판으로 받아들여졌다.
"60년대 기독교 운동의 개척자적 역할을 했던 김재준 목사는 4.19 1년 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4.19는 암운을 뚫고 터진 눈부신 전광이었다. 그 윤리적 높은 행위가 일반의 양심의 자화상을 소출시켰다. 교회도 이 섬광에서 갑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하여 구정권의 악행에 교회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몸부림치는 교회인들까지 생겨났다. 교회 기관으로서 스스로의 과오를 사회에 성명한 문서가 한 두 종이 아니었다. 8.15이후 교회 자체가 급변하는 사상의 와중에서 스스로를 정돈하지 못하고 분쟁과 아울러 혼미에 빠졌었다는 것은 사실이며 따라서 대사회적 책임에 두드러진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은 자괴하기에 족한 일이었다.'"1)
이는 1960년대의 기독교 운동의 중요한 동인이었고 이러한 자각의 흐름이 최초로 행동화한 것이 1964년의 한일회담 반대운동이었다. 기독교 연합회 등 연합기관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교회에까지 파급된 기도회와 성명서와 시위의 물결은 한국 교회가 다시금 예언자적 사명을 회복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어 1960년대 후반의 주요한 정치적 쟁점이었던 1967년의 6.8부정선거와 1969년의 3선 개헌에 대해서도 한국 교회의 직접,간접적인 참여와 발언은 계속되었다.2)
이같은 정치적 참여의 진전과 함께 크리스챤 아카데미,기독자교수협의허ㅣ 등이 마련한 토론의 광장을 중심으로 기독교 지식인권이 형성되었다. 주로 신학,정치신학 및 세속사회에서의 "기독자의 현존""기독교의 사회적,정치적 책임"등과 같은 신학적 주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논의들은 사회의식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기독교 개념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고 있던 기독교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다. 전통적인 신학의 개념으로서는 변동하는 사회현실과 그 속에서의 기독자의 존재와 행동양식을 정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회의 제반문제에 대한 기독자적 참여와 실천을 모색하고 있던 기독교인들은 이들 새로운 신학적 조류에서 그들의 행동의 근거를 찾을 수 있었으며 이런 신학적 조류를 기반으로 하여 기독교 운동을 보다 활기차게 확신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이때 중심개념이 된 것이 "하나님의 선교"였다. 이 하나님의 선교는 전통적인 선교의 개념인 "교회의 선교"를 극복하는 개념으로 대두된 것이었다. 종래의 교회 선교가 개인구원을 중심으로 했떤 것임에 반해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회 전체를 선교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사회적인 도전과 역사적인 여건에서 유리된 구원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선교를 교회의 도구로 이해해 온 전통적 순교개념에 대해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가 선교의 도구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교회-세상이라는 종래의 교회중심적 질서관에서 하나님-세상-교회라는 세상중심적 질서관으로 변화된 것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개념은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계 속으로 선교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서 한국교회의 사회운동 발전에 커다란 신학적 지임이 되었다.3)
이렇게 196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태동하기 시작한 기독교의 사회,정치적 참여의 움직임은 1970년대의 격동하는 제반 정세 속에서 극적으로 고조되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한 민주수호운동과 부정부패 추방 운동 등 정치운동의 활설화,전태일 사건,광주 대단지사건 등을 계기로 한 민중문제에의 관심과 참여의 본격화,긷고교 장로회의 교단적 참여를 위한 자세확립을 필두로 하여,4) 1972년의 10월 유신에서 1975년 5월의 긴급조치 9호에 이르기까지의 유신체제 반대운동,예를 들어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사건,서울 문리대 10.2시위, 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또한 긴급조치 9호하에서의 3.1민주구국선언사건,노동자,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인한 기독교 인권운동의 질적 심화,산업선교와 유신체제와의 갈등 등에서 기독교인들의 사회참여가 고조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5)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학생,지식인,성직자들이 구속, 투옥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편,아들,딸들을 감옥에 보낸 아내들, 어머니들은 이들을 석방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74년 구속자 가족협의회를 결성하여 치열한 인권운동을 벌였다. 그 당시 구속자 가족협의회에서 나온 성명서,결의문들을 보면, 남편과 자식의 어려움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뜻을 이해하고 동참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둘째번 결의문
"어두운 조국의 현실을 밝히려고 횃불을 들었던 아들과 딸이 감방으로 끌려 간 지도 세 계절이 완전히 지난 지금 우리의 마음도 또한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불씨는 다시 여기저기서 타고 있지만 독재의 검은 손은 사슬을 놓을 줄 모르고 국제정치적인 흥정을 하며 영구집권을 꾀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맘을 모르는 채 남편을 잃은 아내들의 몸부림을 외면한 채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뭇매를 맞는 어린 것의 울음을 못들은 채 정의의 투사를 잃은 국민의 아픔을 짓누른 채 정권은 지금도 학원교문을 막아서고 언론의 목을 조르며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유엔에 호소도 했고 정의를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감사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속자 가족들은 우리들의 투쟁이 없이 자식과 남편을 구할 수 없고 우리들의 투쟁이 없이 얻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탄압자의 정치 도구로 자식을 빼앗긴 우리들의 호소를 탄압자의 포승에 묶여 교수대로 가야 하는 남편을 찾는 우리들의 외침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식이 외치다가 들어간 부정부패 일소를 외쳐야 하며 우리는 이제 자식이 외치다가 들어간 유신독재 철폐를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아들이 그토록 사랑하던,남편이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을 위하는 길이고 자식을 구하는 지름길임을 알았습니다. 철창에 기대오 우리들의 함성을 기다리는 수감자들을 생각합시다. 담요장에 몸을 싸고 감방에서 딩구는 수감자들을 생각해 봅시다. 자연의 조화는 무심하게도 북풍을 몰고 와 감방 구석구석에 스미고 있습니다. 우리의 뜨거운 가슴과 열띤 외침을 우리 남편, 우리 아들, 딸에게 들려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또한 조국을 생각하는 그 정신이 조금도 굽힘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 줍시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빼앗긴 우리들은 이제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무엇을 바라고 난로를 찾으며 무엇을 바라고 수저를 들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내 아들 딸, 그리고 남편이 독재의 철창을 깨뜨리고 나오는 날 우리 함께 얼싸안고 정의와 자유의 만세를 소리높이 불러봅시다.
1.정치 제물화된 구속인사를 즉각 석방하라.
2.부정부패를 뿌리째 일소하라.
3.유신헌법 철폐하라.
4.학원의 문을 닫고 정치음모 웬말이냐?
5.언론의 목을 졸라 국민숨통 막지 말라.
1974년 11월 21일
구속자 가족 일동.6)
구속자 가족협의회는 1976년부터는 양심법 가족협의회로 개칭하여 고난받는 형제들의 포괄적인 모임으로 발전했다. 그 당시 양심법 가족협의회는 자신들의 모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양심법과 그 가족들의 모임 선언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하여 분명히 선언한다. 인간의 양심이 범죄시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인간의 존엄함을 밝히는 우리들의 횃불은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그 주위에 집결시켜 이 시대를 뒤덮은 온갖 어두운 슬픔과 원한과 고통을 몰아내고 인간의 양심을 탄압하는 압제의 검은 손길을 모두 태워 없앨 때까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과 우리 자신이 겪고 있으며 또 앞으로 겪게 될 온갖 종류의 정치적 박해를 낱낱이 고발할 것이다.
내 아들,딸, 내 남편에게 자유를!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모든 박해를 중지하라!
양심의 자유만세!
민주주의 만세!
1977년 3월
"양심범과 그 가족들의 모임" 일동 7)
1977년을 중심으로 해서 양심법 가족협의회 활동내용을 보면,
1.구속자 석방운동 1.각종 성명서 발표 3.양심법 가족관리 4.재판 방청 및 재판소식 보도 5.지방에 있는 구속자에 대한 영치물,영치금 차입,면회 등 옥바라지 6.양심수 처우개선 요구 7.어려운 가족돕기 8.국내외 인권단체와 협력하여 인권운동을 펴나감 들이었다.8) 이 협의회의 활동은 많은 방해를 받고 고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4.19 아침 8:30경 4.19묘지 앞(기념탑 분향대 앞)에서 함석헌 선생을 위시한 재야인사,구속자 가족,학생 등 약 300여명이 모여서 헌화,분향하고 곧이어 9:10경 이해동 목사(한빛교회 기장)의 사회로 4.19 추념회를 개최하였다. 문익환 목사님이 개회사를 하였고 추념사는 함석헌 선생이 하였는데 추념사를 하는 도중에 박용길 장로(문익환 부인)가 가지고 있는 프랑카드 1개가 기관원에 의해 탈취되었고 이를 항의하는 참석자와 옥신각신하다가 계속 식을 하게되어 오! 자유 노래를 합창하고 문동환 박사(전 한신대 교수,3.1사건관계자)의 만세 삼창을 끝으로 추념식은 끝을 맺었는데 이때 김영자 여사(이해학 전도사 부인,현재 긴급 9호로 수감중)가 갖고 있는 프랑카드를 빼앗느라고 밀치고 해서 김여사는 세멘바닥 게단에 넘어져서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고 이로 인해 기절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어 잠시 어떤 학생이 갖고 있던 가방을 머리에 받치고 있다가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김여사가 넘어질 때 어떤 기관원은 발로 김여사의 다리 뒷 정갱이 부분을 걷어 찼는데 여러 사람이 항의하자 그 기관원은 도망을 갔으며 이때 강명순씨(정명기 전도사 부인,현재 긴급 9호로 수감중)가 프랑카드를 내걸고 구호를 외치자 역시 수십명의 기관원이 달려들어 폭행과 아울러 무자비하게 프랑카드를 빼앗아 갔다... (중략) 프랑카드의 내용은 '구속인사 석방하라'등이며 이에 많은 가족들이 눈물을 흐릴며 묵묵히 걸어나왔고 주위에는 몇몇 시민들이 지켜보았고 그외에는 기관원과 4.19 단체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9)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던 가족들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민족의 문제, 역사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으 ㄹ위해서 노력하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동시에 수동적이었던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변화시켜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점차로 기르게 되었다. 이 당시 이 모임 속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조정하 씨(박형규 목사의 부인)는 평생을 한결같이 남편과 시집의 뜻에 따라서 말없이 살았는데,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점차 주체적으로 사태를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박형규 목사는 그러한 아내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동등한 한 인격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구속자의 가족들을 하나로 묶게 했던 사건들이 형식저으로나마 해결되어 투옥된 인사들이 석방되면 그 가족들은 이 모임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상례였다. 즉 여성들이 아무리 자식들,남편들의 뜻을 이해하고 석방운동을 통해서 고난에 동참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이 석방된 이후에는 그 문제들은 자신들의 일차적인 과제가 아닌 것으로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파악하고 인식했던 구조적인 사회악이나 부정의를 추방하는 일은 그들의 남편과 딸, 아들들의 일이라고 그들에게 되돌려 주고 자기들은 원래의 장이었던 가정으로 되돌아가서 가사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과는 달리 그들은 이제 남편이나 자식들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고 필요할 때는 협조를 아끼지 않는 자세로 바뀌어졌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더러는 계속해서 인권운동,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더러는 남편이나 자녀들을 더 제지하여 그런 일을 못하게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치적,사회적 모순에 대한 저항이 이외에도 교회는 이 사회의 구조적 악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받고 신음하는 소위 계층인 노동자,농민,빈민 등 민중의 문제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경제개발계획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켰다. 근대화의 기치 아래서 한국사회는 정치,사회,문화 그리고 국민생활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GNP중에서 농림,어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62년의 40.3%에서 1969년에는 30.5%로 격감한 반면,같은 기간 중 광공업부문은 13.2%에서 20.8%로,사회 간접자본 부문은 46.4%에서 48.7%로 각각 증대된 것에서도 나타났듯이 전통적인 농업국가의 모습을 점차 탈피하여 수많은 공장과 신흥공업지대,고속도로,도시에 가득 들어찬 고층빌딩과 고급호텔 등 외형적으로는 급격하게 가히 기적적인 고도 성장과 공업화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고도성장의 이면에서는 고동성장 정책의 자체 모슨으로 인한 농촌의 피폐와 이농,도시빈민의 증가, 노동조건의 열악화에 따른 계층간 양극화의 심화,그리고 엄청난 외채의 누적과 이에 따른 해외 의존도의 심화 등 숱한 문제들이 누적되었다. 15,9%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달성함으로써 고도성장기의 절정을 장식한 1969년을 고비로 한국 경제는 상대적 침체기에 들어섰고 그 동안 개발경기 속에 파묻혀 있던 이들 문제들이 사회의 표면으로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60년대부터 추진된 경제개발의 기본전략은 대외지향적인 불균형 성장방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으며 낮은 국내 저축율과 경제적 이중 구조 속에서 제약된 협소한 국내시장이라는 조건하에서 외자도입을 주축으로한 관주도 수출산업 중심의 공업화를 추진함으로써 이를 선도사업으로 하여 성장을 도모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논리적 기반 위에서 전개된 경제개발은 개발이 진행됨에 비례하여 외채의 누적 등 해외의존도가 심화되고 산업간 초래하게 되었다. 경제개발이 기본적 재원을 외자도입에 의존했으므로 경제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더 많은 외자 도입이 필요해졌고 저임금과 저곡가 정책에 의한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한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에 주력함으로써 농촌의 상대적 낙후,이농현상,도시빈민의 증가,노동조건의 열악화 등 농공간의 불균형과 계층간의 소득격차는 "선건설 후분배"라는 슬로건이 정착됨에 따라 더욱 확대될 수 밖에 없었다.10)
1960,1970년대의 이러한 고도성장은 기본적으로 농민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수출확대의 유일한 발판으로 요구되는 저임금 정책은 결국 저곡가 정책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해외시장을 지향하는 수출제일주의 아래서의 적극적인 수입의존 정책은 국내공업 원료의 공급원으로서의 농업의 성장을 억압하였다. 그리하여 농촌에 주어진 거의 유일한 역할은 저임금 노동을 뒷받침하는 싼 농산물,특히 싼 곡물의 공급원으로서 또한 동시에 저임금 노동시장을 풍부하게 만드는 잉여노동력 배출원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11)
이러한 농가경제의 고통은 결국 농촌 여성들의 희생과 고난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그녀들은 사회적인 모순의 문제와 함께 가부장제의 억압도 또한 견뎌야 한다.농촌 여성들은 생산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가사노동도 해야 한다. 그녀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들에 나가 일하면서도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해요.다치지나 않나, 위험한 데 손대지나 않나 해서요. 네살짜리 두고 나가거든요. 애들도 고생이예요.대여섯살 밖에 안된 것들이 제손으로 점심 챙겨먹고 어떤 때는 저녁밥도 지어 놓아야 해요.동생이 있으면 물론 동생도 봐야지요."12)
농촌여성들의 노동량이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고통스럽기만 하다. 1981년도의 조사에 의하면 농가의 약 70% 정도가 빚을 지고 있는데 이들의 호당 평균 부채액은 약 85만원이나 된다고 하며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1982년도 7월에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호당 평균 부채액이 약 138만원으로 추계되고 있다.13)
열심히 일해도 그 대가는 빚과 부채에 시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농촌여성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들을 교육시키고자 하지만 이도 또한 여의치 않다. 이때 대부분의 경우 딸을 희생시켜서 그 대가로 그저 아들 하나만이라도 교육시키려고 한다. 이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딸들을 희생해서라도 아들들을 교육시켜,먹고 살 길을 마련해 두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농촌의 딸들도 경제제도와,가부장제의 희생물이 되어갔다.
농촌 여성들은 자신들의 가난하고 따라서 질병에도 약한 구질구질한 삶에서 자식들을 벗어나기를 바란다. 이리하여 대도시로 무조건 몰리는 이농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도시로 올라오는 이농민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TV에서 보는 화려한 삶이 아니라 저임금의 공장지대,날품팔이로 매일을 죽지 못해 살아가는 빈민지대에서의 삶이다.
이렇게 해서 도시로 밀려들어온 여성 노동자들은 그녀들이 원하듯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수출 주도형 고도경제성장정책은 저임금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을 기초로 하여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한국형 수출제일주의이며,여기서 분배의 문제는 거의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자들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0.46달러로(1975년)미국의 10분의 1,서독의 8분의 1,일본의 7분의 1에 지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남성노동자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노동청의 "월간 노동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977년 6월 현재 여성의 전산업 급여총액은 월 49,081원이었다. 이 액수는 남성 노동자의 118,174원에 비해서 41%에 지나지 않는 임금이었다.14) 이러한 임금조건은 오늘날까지도 그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1983년 9월 1일에서 1984년 3월 31일까지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실시한 영세봉제,전자업체를 중심으로 생산직 근로 여성의 근로조건에 관한 조사 연구에는 8시간을 기준으로 한 일당이 봉제업은 약 2,592원,전자업은 약 2,872원이므로 8시간에 대한 월평균 임금은 봉제업은 약 77,760원이고 전자업은 약 86,160원으로 나와 있다.15) 이러한 저임금 속에서 허덕이는 한 여공은 자신의 고달픈 삶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생활비가 완전히 바닥나버린 이 며칠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결근 한번 하지 않고 일하여 받은 월급이 68,650원.이것을 가지고 한 달 살아갈 일이 꿈만 같다. 가끔씩 잔업이나 철야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얇은 월급봉투를 생각하면 꾹 참는다. 어쩌다 몸이라도 아파 일찍 퇴근하려 하면 반장이나 주임이 도끼눈을 뜨고는 회사가 바빠도 도와줄 생각을 않고 저하나만 생각한다는 둥,다른 애들은 다 힘들어도 견디는데 너만 어떻게 엄살을 피우는지 모르겠다고 야단하는 바람에 아무말 못하고 그냥 주저앉아 일을 할 수박에 없다. 잔업이 없는 날,집으로 돌아오는 그 햇빛이 환한 길,일년 365일 중 몇번이나 걸어볼까. 입사하여 석달동안은 수습기간이라 하여 여러가지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다. 우선 한달 정도되면 일이 익숙해져 오래된 언니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 데도 석달동안은 일당이 500원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그 기간동안 일하면서도 행여 남들보다 불량품을 많이 낼까봐서 가슴을 얼마나 조이는지 모른다. 거기다 반장,주님,과장은,누가 불평불만을 많이 하는가 하고 우리들의 얘끼를 엿듣기 일쑤다. 입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동안 우리들은 나롤 웃음을 잃어,시든 꽃들마냥 딱딱히 굳은 채로 하루종일 기계에 매달려서 움직이고 있다. 어제는 과장님에게 부식을 개선해 다랄고 건의를 하였다. 모래알 같은 정부미 밥에 매일 김치,나물,된장국 꼭같은 반찬이다. 우리들은 풀만 먹고 사는 염생이인가? 일은 힘들기만 하고 먹는 것은 부실하니 날로 몸무게가 줄기만 한다. 이런 우리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과장님은 회사 예산을 들먹인다. 동생이나 딸이 우리들과 같이 일한다면,이런 밥 이런 반찬을 먹게 할 수 있을까? 6월로 접어들자 한낮은 무덥기 그지없다. 수백도의 히터에서 나오는 열기 땜에 작업장은 푹푹 찌고 작업복은 땀으로 흠뻑 젖는데도 선풍기마저 틀어줄 생각은 않고, 마냥 생산량 늘리라는 말뿐이다. 화단의 꽃이 내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볼펜을 굴리는 사무실에는 초여름부터 에어콘이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들은 더위도 타지 않는 기계처럼 보이나 보다. 하루종일 일하고 후줄근히 늘어져 돌아오면 쓰러져 자기 바쁘다. 정말 언제쯤 우리도 졸립지 않는 눈으로 보고 싶은 책이라도 한권 읽고,여름이 오면 시원한 바닷가에 친구들이랑 놀러도 가고,걱정없이 집에 동생 학비도 넉넉히 부쳐줄수 있고, 저녁에 실컷 잘수 있을까?내일이 월급날이지만 기쁘기보다 어느 새 걱정만 되는구나."16)
여성노동자들의 작업환경 또한 열악하기가 그지없다.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취업하고 있는,섬유업체의 열악한 작업호나경에 대해서 전태일이 1970년 10얼 16일,"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 진성서"라는 제목으로 노동청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시장구조가 현대식 3층 건물이면서도 환기장치가 하나도 없으며 휴식시간인 오후1시부터 2시까지에도 햇볕을 받을 장소가 없다. 우리나라의 어떤 작업장보다도 힘과 정신을 가장 빨리 피로하게 하는 최하의 노동조건이다. 공임은 우리나라에서 여기보다 싼 데가 없다. 가령 하루에 8시간 작업하고도 1개월 급료가 1만원인 사람과 하루에 15시간 작업하고도 같은 1만원을 받는 사람이 공존하고 있다."17)
이와같은 상황은 전태일이 자살한 후 노동청의 조사(1971.1.11-19)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 조사에 의하면 공장의 먼지는 평화시장이 2.5밀리그램,동화시장이 2.3밀리그램으로 허용기준량 1입방센티미터 당평균 1밀리그램을 훨씬 초과하고 있었다. 조명도는 평화시장이 75룩스,동화시장이 80룩스,통일시장이 160룩스로 기준 조명도 150룩스에 대체로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환풍기는 평화시장이 38개,동화시장이 38개,통일시장이 7개였다. 이곳의 노동자에 대한 종합진단의 결과는 결핵환자 1660명,시력장애자 185명,난청자 36명,피부질환자 23명,이질환자 29명,이비질환자 51명이었다. 18)
전자업체 여성 노동자의 작업환경 또한 그리 나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콘트롤 데이타 코리아 주식회사는 1천1백여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95%가 여성이다. 이 회사는 1969년 창립된 이래 1977년 9월까지 수츨 실적을 7배로 늘였다. 그런데도 임금인상의 내역을 보면 실질임금 지수는 이 기간 36% 상승한 것에 불과하다.
이 회사의 종업원 1인당 평균 수출실적은 1970년에 8,883달러이었다가 1977년 9월에는 16,599달러로 즉 187%나 증가한 것이다. 노동 강도의 증가를 실질임금 지수로 나누어 퍼센트로 표시하면 73%가 된다. 요컨대 노동자의 명목임금은 425% 상승되었지만 거기서 물가 상승분을 빼면 36%오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을 노동생산성과 비교하면 오히려 27%쯤 임금이 떨어진 셈이 된다. 이와 같은 현실은 대체로 외자 기업이 운영하는 전자업체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19)
이와같이 끊임없는 노동강도의 강화와 저임금은 조합원들의 상당수를 병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전 조합원의 34%가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으면 23%가 시력감퇴,9%가 피부병에 걸려있다는 것이다(620명 조사). 먼저 위장변 환자들의 대부분이 신경성에 의한 만성 소화불량과 위궤양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회사측의 노동강도의 강화정책 때문이고 둘째로는 아침 출근시간이 7시 10분으로 너무 이르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거르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들고 있다.
시력감퇴의 경우 작업강도의 강화로 말미암아 많은 조합원들이 눈물이 나고 충혈이 되며 시렵고 따가와 결국은 결막염까지 되어 가고 있다. 즉 시력과 관계되는 작업 즉 현미경과 현미경+솔더 작업의 조합원 354명 중 시력 감퇴자는 무려 70%에 해당하는 271명이나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납땜작업 즉 Soldering작업의 48%가 납연기에 의한 혈색의 감퇴,가려움 등 피부질환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 작업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므로 작업자뿐 아니라 다른 작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구역질이 난다든지 기관지염 등등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20)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 이를테면 전태일 사건 이래 청계천변 피복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반도상사를 비롯하여 태광산업,민선사,삼성재벌산하,방림방적,남영나이론,동일방직 등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의 현장에는 언제나 나타나서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노동자들의 어머니"가 있었다. 즉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70년대를 역사적으로 특기할 만한 시대로 보는 것은 이 운동에 있어서 가장 치열한 투쟁을 한 사람들이 노동자들이었고,그 노동자들 중에서도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밑바닥의 또 밑바닥에서 신음하던 여성들이 이렇게 의식화되어가고, 자기들의 권리를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에 항상 나타나는 신화 같은 존재는 "노동자들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이소선씨였다. "이소선씨는 약한 몸이었지만 매우 명석한 두뇌와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친아버지는 그녀가 세 살이었을 때 농촌에서 항일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로 일제 경찰의 손에 끌려가 동네 뒷산에서 학살되었다. 그뒤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의붓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그녀는 온갖 설움을 겪고 농사일에 혹사당하였다. 처녀시절에 이른바 "데이신따이로 일본땅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하기도 하였다. 8.15후 고향에 돌아와 전상수씨와 결혼하고부터는 남편과 자식들을 먹여살리기 위하여 문전걸식으로부터 광주리 행상에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온갖 종류의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21고 한다.
살길을 찾아 서울로 이사를 온 이소선 씨 일가는 어렵게 모은 돈으로 남대문 시장 안에 있던 대도백화점 2층에다가 가게를 장만했으나 4.19가 나기 직전 사기꾼에 걸려 완전히 털리고 채권자들의 독촉에 시달리던 이소선씨는 충격을 받아 정신 이상자가 되다시피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시력을 잃어 앞을 못보게 되었다. 이때 그의 딸 순옥과 동네 할머니의 권유를 받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후 이소선 씨는 깊은 신앙의 경지에 이르렀고 그 신앙의 영향이 그의 아들 전태일의 사상의 밑받침이 되었다. 그녀는 항상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양심을 속이지 말고,남을 해치지 말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라"고 자녀들에게 타일렀다고 한다.22)
그녀는 지금도 "자식을 키울 때 사치스럽게 키우지 말라.사람다운 양심을 키워 주어라. 사치한 옷을 입은 마네킹처럼 자녀를 기르면, 마음을 망가뜨린다"23)고 주장한다. 그는 과거 15년 동안 청계 노동자들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고 그들이 일에 지치고 배고파 찾아오면 아무리 밤이 늦어도 밥을 해 먹였다고 한다. 쌀독에 쌀이 있는데도 몸이 괴롭고 귀찮다고 안해주면 계속 양심이 괴로워 견디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하나님의 질책이라고 한다. "전태일이 다른 모든 인간을 지칭하여 '나의 전체의 일부'또는 '나의 또 다른 나'라고 부르고 있고.... 자기비하에서부터 자존으로, 비굴에서 긍지로, 공포와 위축에서부터 분노와 용기로, 의존과 자학으로부터 자주와 해방으로,체념과 침묵으로부터 비판과 투쟁으로 전환하여 가는 사상 - 비인간에서 부터 인간으로 거듭나는 민중의 사상"240은 곧 어머니 이소신씨의 사상적인 영향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 온것이라고 한다. 백예순여덟 번(1985년2월4일 현재)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받고, 징역도 살고,매도 맞ㅈ고,어용단체 노동자들이 도끼를 들고 와서 뜨거운 물이 끓는 주전자를 던지고(빗나가서 오히려 자기들이 다침)하는행패 등,가지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도 오늘날까지 불사조처럼 노동운동의 중심 인물이 되어 치열한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저력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신앙 때문이라고 고백한다.25)
전태일이 노동자의 권익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사건이 70년대 노동운동의 계기가 되었다면, 그의 유언을 가슴에 새기고 그 운동을 계속해서 확산시켜 나가 마침내 전국적인 운동이 되게 한 것은 이소선씨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15년 동안 청계피복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한국의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 무서운 탄압을 받아도 좌절하지 않고,줄기차게 노동자들의권익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인간의 존엄을 위해 싸워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소선씨의 신앙과 신념 때문이다.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민중이 고난받는 곳이면 어디나 나타나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나누고,모든 사람을 나의 일부로 보는 이소선씨의 삶은 자기의 영달과 안일을 위해 동족을 배신한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의 삶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1970년대의 한국노동 운동사에 하나의 신화를 남겼다. 그들은 기동경찰의 탄압에 알몸으로 저항하면서 노동조합 사무소를 지켰고 회사의 앞잡이들에 의해 똥물을 뒤집어 쓰면서도 노동ㅈ보합 대의원 선거용 투표함을 지키려 했으며 회사로부터 1126명이 해고된 후에도 단식투쟁이나 시위 동 강경 투쟁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1978년 7월 현재 8명이 구속되는 등 위대한 투쟁을 이끌었다.26)
1978년 2월 21일 노동조합의 대의원 선거일에 일어난 일을 석정남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왜? 왜 그래 언니? 무슨 일이야'나도 급하게 물었다.'똥...똥,밖에 똥... ''뭐? 뭐라구? 똥이 어쨌다는 거야?' '빨리 노조... 사무실에 가봐.문명순과 남자새끼들이...똥을 뿌리고 난리가 났어.'이 말만을 겨우 마치고 순이 언니는 급히 뛰어 나갔다. 사건은 이렇게 터지고 마는구나.나의 온몸은 어느새 덜덜 떨리고 있었다. 우선 직기 사이를 뛰어다니며 사철나무 회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나 역시도 자세한 내ㅁ가을 모르는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며 '똥','똥'소리만 연발했다...(중략) 고약한 똥냄새만 진동하고 있었다.노주 사무실의 전선조차 끊어버렸는지 불빛도 보이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수근거림이 들려오는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였고 무법천지였다. 그때 누군가가 후다닥 날쌔게 기숙사를 향하여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고 뒤따르는 사람의 발소리도 들렸다. '이 쌍년아,네깢게 도망가면 어디까지 갈테냐? 내가 옛날에 육상선수였던 걸 모르느냐'얼마 못가서 도망치던 사람은 무지막지한 사내의 손에 잡히고 말았는지 '아악,욱'하는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눈과 귀,콧구멍,부라쟈 속까지 마구 쑤셔놓는 광경이 비명소리를 통하여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저쪽에서 '어느 년이야, 어느 년,똥먹고 싶은 년은 입을 벌려라. 아가리가 찢어지게 쑤셔놓을 테니까' 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경찰관 아저씨,살려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급박한 절규로 보아 소맷부리를 잡고 애원하는 모양인데,뒤이어 '저리 비켜,이따가 말릴꺼야'하는 소리와 함께 '아악'하며 고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27)
1970년대를 마감하면서 노동운동이 그 절정에 이르러 마침내 박정권을 붕괴시키는 계기를 만든 Y.H 노동조합 사건은 한국노동 운동사에서 또 하나의 기념탑이라 하겠다. 이 사건의 중심인물 중의 하나요,끝내 그 목숨까지 바친 김경숙은 이소선씨와 더불어 한국 여성노동 운동사에 길이 빛날 인물이다.
Y.H.무역회사는 수출실적이 뛰어나서 대통령까지 받았으나 장용호회장이 막대한 돈을 외국으로 도피시키는 등 기업 윤리를 망각하고 사리사욕에 치우친 회사 운영을 함으로써 마침내 막대한 은행부채(정부에서 수출업자에게 주는 특혜(등 부채만 남겨놓고 폐사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에 여직공들은 그들의 직장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각계에 호소하면서 농성을 하게되었다. 그들의 호소가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한채 회사가 폐쇄를 강행하려 하자.이들은 50여 명만 회사에서 농성을 계속하도록 하고 1979년 8월 9일 오즌 9시 30분 200명이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사로 농성장소를 옮겼다.
이렇게 되자 Y.H. 사건은 신문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정부와 부실기업,기업인의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 등이 고발되고 사회적으로 투입해서,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101호 작전"을 치밀하게 짜고 8월 11일 새벽 2시경 신민당사를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신민당 국회의원,신문기자 등도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것은 물론이고 Y.H 여직공들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폭행을 당했다. 경찰들은 들고 온 벽돌과 쇠파이프 등을 마구 휘둘러 닥치는대로 깨고 치고 하여 농성장은 삽시간에 유혈이 낭자하고 집기들이 깨어지는 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101호 작전"은 정확히 23분 만에 끝났고 Y.H 노동조합원들은 다 끌려나갔다. 이 사건으로 신민당 국회의원 및 당원 30여명,취재기자 12명, 그리고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부상을 당했으며 Y.H 노동조합 상집위원 김경숙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순교한 것이다.그녀의 짧지만 고귀한 삶을 그녀의 동료들은 아래와 같이 회상한다.28)
"김경숙은 광주 남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다. 그녀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그해 1971년부터 무허가 장갑공장 공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서울에 올라온 김경숙은 양동의 제품공장과 한풍섬유,태신산업,이천물산 등의 공장을 전전하다 1976년 8월 Y.H.무역에 입사했다. 그녀는 1975년부터 3개월마다 5-6만원을 모아 동생의 학비로 보내면서 행상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 실질적인 가장노릇을 해왔다. 아버지 김동원 씨는 그녀가 8살때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민당사에 들어가기 직전 기숙사에서 농성을 하던 중에 고향의 어머니와 남동생(전남기계공고)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옮겨 본다.
"(전략)...내가 거주하고 있는 이곳은 굉장히 큰 회사랍니다. 그런데 몇년 전 장용호 회장이 미국으로 돈을 외화도피시켜서 저희 근로자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어요. 저희 회사는 외국 수출품으로 인하여 대통령상까지 받게 됐는데 돈 많은 회장이나 사장들은 자기만 잘 살겠다고 저희 근로자들을 버리고 도망갔어요.... 그렇지만 저희 힘이 약한 근로자들은 힘을 합하여 단결하여 투쟁하고 있습니다....저희들의 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위로하며 웃으면서 기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저희의 힘이 강화여 회사의 사장은 수단과 방법을 다 활용하여 여러가지 일을 꾸밀지 모르니 너무 염려하시지 말고 내 편지 아니면 믿지 마시고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여도 절대 믿지 마십시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우리의 문제는 곧 해결됩니다.... 또한 이곳에 일하는 나이 어린 여러 근로자들을 위하여 끝가지 단결하여 저희들은 꼭 승리하고 말 것입니다...준곤이는 끝까지 누나의 힘을 버리지 않고 도와 주겠습니다.... 사장이나 미국에 있는 장용호처럼 돈많은 사람들은 자기만 잘살면 돈 없는 자들을 마음대로 하나 보지요. 그렇지만 돈 없는 자들은 착한 마음을 지니고서 우리들의 처지를 기억하여 성실하고 정의롭게 사는 일입니다. 어머님, 만수무강하시고 어머님의 하고자 하는 일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30)
김경숙 자신이 쓴 글에 의하면 "내가 배우지 못한 공부를 동생에게 가르쳐서 동생만은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청공장에서의 그의 일은 너무나 고달파 끊임없이 코피가 났다. 저임금이나마 제대로 받지 못하여 헐벗고 굶주리며 풀빵 5원짜리 30원어치로 추위에 허덕이며 생계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고, 이때 그녀는 자살이라도 해버리려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면서도 작업이 바쁘면 어쩔 수 없이 십계명에 있는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지키라"는 말씀을 실행하지 못해 괴로웠다. 8년 동안의 공장 생활을 결산하고 나니 자기자신에게 "남는 것은 병밖에 없다. 몸은 비록 병들었지만 마음은 상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고 한다. 또 그녀는 말하기를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열심히 살도록 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련다. 현실은 어려워도 주님의 자녀로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며 태양과 같은 밝은 등불이 되리라"31)고 다짐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도 이소선 씨처럼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분신으로 보는 마음바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록 국민학교 졸업의 학력 밖에 없지만 기업윤리를 망각한 기업인들의 비행, 사회적 부조리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회적 부조리의 희생물로 몸은 병들어도 마음만은 건전하게 가지겠다고 다짐하는 건실성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단결하여 힘을 합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살기로 다짐한다. 이런 아름다운 민중들이 이 나라의 주체가 될 때 인간이 존엄한 대우를 받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지리라는 신앙의 단면도 엿볼 수 있다.32)
이러한 투쟁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많은 고난을 당하였고 특히 이 사회의 여성에게는 치명적이라고 여겨지는 성적인 학대를 당하기도 하였다. 노동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어느 섬유회사의 여성노동자는 장려로서 나이많은 부모를 부양하고, 동생들의 학비를 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1973년 4월 비밀경찰에 의하여 체포당하여 000로 연행당하였다. 이 여성노동자는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야 쌍년아, 너 빨갱이지? 노조활동을 빙자하여 빨갱이와 만났지? 바른대로 자백하지 않으면 죽여버린다!'이것이 공포에 질려있는 나에게 던져진 첫마디였습니다. 나는 '절대로 빨갱이가 아닙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레슬링 선수처럼 덩치가 큰 수사관들은 '이 쌍년아 거짓말하지 마!'라고 윽박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들은 이내 주먹과 곤봉으로 나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러 차례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3일 동안 잠도 자지 못하게 했습니다. 드디어 000의 한 간부는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일단 밖으로 내보내준다. 부르면 다시 와야 해'하고 말하면서 나를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나는 그 무서운 000의 건물을 다시 돌아볼 생각도 없이 쓰러질듯이 휘청거리며 걸어나왔습니다. 그때 뒤에서 '이봐,좀더 조사할게 있어 따라와'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부하들로부터 '과장님'이라고 불리웠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000부근의 여관으로 끌고가 또 잠시동안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가 나를 넘어뜨리고 옷을 벗기려고 했습니다. 내가 반항하자 그는 '너같이 말로 해서 통하지 않는 새끼는 다시 끌고 가서 지하실에 쳐넣어 버려야 해'라고 협박했습니다. 나는 떨면서 악마같은 그에게 처녀성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캄캄해지는 듯한 자포자기 상태의 마음이 되어 나는 세상을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한달 이상을 고민하다가 죽기로 결심하고 자살을 기도했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2개월 후 나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다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이 더러운 씨를 낳을 수는 없다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고 있는 종교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부모님께 도저히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000의 그 사람을 만나려고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치밀어로는 분노를 간신히 억눌러 참았습니다. 그리고 임신한 사실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뭐라고 하는 거야? 나완 상관없어.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나에게 덮어 씌우려 하는 거야?'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야비한 태도에 부르르 떨었습니다.'병원에 가더라도 낙태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보호자를 동반해야 합니다. 함께 가야 해요'라는 나의 말에 그는 질겁하여 '그것은 안된다'고 화를 벌컥 냈습니다. 나는 그와 더 이상 이야기해 본대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얼마후 낙태수술을 받았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꿈은 산산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 악몽을 죽는 순간까지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 어찌해서 인간이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까? 하느님,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소서."33)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기독교는 민중의 삶을 외면할 수 없었고, 함께 아파하면서 함께 해결해 나가려는 길을 택했다. 이 시대의 가장 소외된 사람들인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선교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즉 예장 통합측의 경우는 1957년 미국장로교 동남아시아 기독교협의회 산업전도부 총무인 헨리 존스 목사가 내한하여 산업전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1957년 4월 12일 총회전도부 안에 예장 산업전도위원회를 조직함으로써 산업선교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57년 8월에는 당시 전도부장이던 황금찬 목사와 어라복 선교사가 일본과 대만의 산업선교를 시찰시키는 한편 영등포와 안양에 3명의 교역자를 파송햇으며 1958년에는 9월 총회에서 위원회 규칙을 인중받고 돈년 11월 실무 전임강사에 오철호 전도사를 임용하고 인천,대전,부산 등 12개 도시에 각 지방 산업전도위원회를 조직했다.
기독교 대한감리회와 대한성공회는 1961년부터 산업선교를 시작했다. 감리교의 경우에는 1961년 봄 당시 인천서 지방 감리사이며 인천 내리교회의 윤창덕 목사가 동일방직공업주식회사 기숙사 안에 있는 여성근로자들을 위한 예배를 시작했고 인청동지방 감리사이며 주안교회의 조용구목사가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 식당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을 위한 예배와 상담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차에 미국 시카고에서 교회중심지의 도시 선교활동을 한 경험이 있고 신학교에서 산업선교 훈련을 받은 오명걸(George E.Ogle)목사가 감리교의 요청으로 내한, 인천에서 선교활동을 펴게 되자 1961년 10월에는 윤창덕 목사와 조용구 목사가 중심이 되어 인천 산업전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962년 3월에는 인천 동.서지방 지방회의 결의를 받아 지방 선교사업으로 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대한성공회의 경우 영국에서 산업선교 활동을 한 바 있던 김요한 주교(Bis-hop Daily)가 1961년 강원도 황지 탄광지대에서 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전도활동을 개척하였는데 이때 황지성당의 주임 신부였던 하성근(하누가)신부는 1주일 중 3일간은 광산에서 직접 노동을 하였다.
한국기독교 장로회의 경우에는 1963년 6월 인천의 이국선 목사가 당시 대성목재 공업주식회사의 부사장이던 전택완 장로의 후원으로 동 회사에서 산업전도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는데 기장 총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캐나다 연합장로교 선교사인 배창민 목사(Rev.Beecham)로 하여금 산업전도에 대한 전임 선교사로 일하게 하여 고재식,이규상,정태기,김광집 등의 전도사들을 전임 실무자로 훈련시켜 인천,안양,동서울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게 하였다.34)
그런데 기독교의 초기의 산업선교 활동은 "산업선교"라는 용어가 아닌 "산업전도"라는 용어를 채택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산업사회 속으로의 기독교의 전파가 그 주된 목표였다. 즉 기독교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신자들을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날로 늘어가는 산업인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기독교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초창기에 있어서의 산업선교는 복음전도의 대상인 산업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설명,예배와 성경공부,교회가 왜 산업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가를 이해시키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고 그에 곁들여 전국 각지의 공장순회방문, 친선체육대회,진료봉사 등의 전도활동을 벌였으며, 교회 내부에 대해서는 산업전도가 왜필요한가를 이해시키는데 중점을 두는 한편 산업전도 실무자 양성에 힘썼다.
이와같이 초창기의 산업선교는 그 일차적 관심이 신자를 획득하는데 있었지만 교회가 도시화, 산업화 현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 전도는 교회 목회자만이 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고 평신도 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된 점 등으로 하여 이후의 산업선교의 디딤돌이 되었다.35)
그런데 1968년경을 경계로 하여 '산업전도'가 '산업선교'로 탈바꿈하기 시작하면서 노동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관심과 참여가 보다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60년대 말 제반 노동문제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심각화하는 상황의 변화에 조응하여 문제인식도 보다 구조적인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깨닫게 되고 노동자들의 문제와 사건들에 구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노동문제의 구조적 해결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명칭이 산업전도에서 산업선교로 바뀐 것도 이러한 배경과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36)
이렇게 교회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자 노동자들의 주체적 노동운동이어야 할 조직운동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부분,즉 미조직 노동자들의 소외현상을 해소하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70년대 초반의 산업선교는 주로 미조직 노동자들의 의식화 및 조직화에 주력하였고, 그들이 조직화되면 조직노동운동에 넘겨주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같은 활동은 조직운동과의 다소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JOC(가톨릭 노동운동가)나 산업선교가 조직노동운동의 현실적 취약성을 보완해준 활동이었다. 그러나 유신체제가 성립되고 조직 노동운동의 상층부가 이 유신체제와 밀착하게 되자 이같은 보완관계는 깨어지고 조직 노동운동의 상층부와 교회와 연대한 노동운동은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말았다.
유신체제에 안주한 조직 노동운동의 상층부는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행사하는 대신에 노사협조주의로 전환한 반면, 이들 교회와 연대한 노동운동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교회"라는 성서적 입장에 바탕하여 노동자들이 부당한 핍박을 받을 때는 실정법을 무시하면서까지 과감하게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려는 용기를 보이고 조직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자세 전환을 촉구함으로써 기층 노동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37) 이 산업선교에 가입하여 활동한 한 여성 노동자는 그간의 과정을 다음과같이 쓰고 있다.
"영숙이는 어떤 교회에서 야학을 한다고 그곳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해 가을이 되자 산업선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몇몇 사람들이 꽃을 만들었는데 완성을 했느냐고 서로 물어보고 대답을 하는 것을 나는 그저 보고 어디에서 가르쳐 주나 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황순애라는 친구가 나한테 찾아와 산업선교회라는 데가 있는데 그곳은 교회와 같다면 함께 배우자고 나한테 권했다. 그애가 처음에 산업선교회를 안 것은 어떤 대학생들이 소개를 해서였는데 찾아가보니 아주 친절하게 이야기도 해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어서 자기 친구들 몇몇이 그룹을 만들어 활동을 해오다가 몇몇만 다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곳이라 함께 가서 배우자는 것이었다. 대신에 회사에서 알면 싫어하니까 비밀리에 다닌다고 했다. 이 애들이 처음에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거절했었다. 그랬더니 지금 가기 싫으면 다음에 가고 싶을 땐 언제든지 이야기하면 데려다 주겠다면서 산업선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시간있을 때마다 해주었다.
산업선교회에는 그룹별로 활동을 하는데 우리 회사에도 두 그룹이 있으며 하나는 '차돌이'라는 모임이고 하나는 '비비'라는 모임이라고 알려줬다. 그곳에가면 여성생리문제나 뜨개질,노동조합법 등 여러가지를 배우고 신용협동조합이라는 데가 있는데 그곳은 자기 성의껏 저금을 하고 필요한 만큼의 대부도 받을 수있다는 것이었다. 몇번을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였지만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교회에서 운영을 하면 예배나 드리면 됐지 왜 노동법을 가르쳐 주는지 이상하기도 하고 노동법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던 터에 자꾸 회사가 우리에게 너무나 부당하게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돈을 없고 저금도 하고 싶기도 한데 은행에 갈 처지가 되지도 못하였던 때였다. 공부를 하려면 시골에 돈을 보내고 조금씩 아껴서 저금을 해둬야 되는데 저금할 곳을 알지 못했다. 산업선교회에서는 조금씩의 돈도 받아준다고 하여 그곳의 그룹활동엔 나가지 않고 저금만 해본다는 얌체같은 생각을 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데라도 나한데 도움이 된다면 쫓아다니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76년초에 '비비'그룹에 가입을 하여 활동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으로는 산업선교에 대한 경계심을 계속 갖고 있었다. 그런데 활동을 하면서 보니 이곳 사람들은 너무나 좋은 말만 하였다.
조목사님이나 인0진 목사님의 말씀은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모든 걸 운명으로만 받아들이고 살고 있던 우리를 깨우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없었다. 노동조합법이 얼마나 우리한테 지켜지고 있는지,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우리들의 육체가 얼마나 해롭게 되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이상할 만큼 좋은 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38)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인식하게 된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부당하게 당하는 여러 부조리에 대항해서 과감하게 맞서서 싸웠다.
이러한 산업선교회의 활동은 비성서적이고 비정통적이라는 비난을 정부와 교계에서 함께 받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해석에 따르면 반드시 주일을 지켜야 하고 헌금을 내야 하며,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이 참 신앙의 기준이라는 것이 고정관념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여 이러한 활동은 비기독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지키는 것이 참된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 주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것, 즉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인간화된 인간을 온전한 인간으로 회복시켜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이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산업선교 실무자들은 주일예배에 반드시 참석함으로써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자신들의 동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쓰고 투쟁하는 것이 참다운 기독자의 삶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의식화된 한 노동자의 기도는 다른 어떤 기독교인들의 기도보다도 참된 기독교인의 기도임을 보여준다.
즉 1978년 3월 26일 새벽 여의도에서 있은 부활절 연합예배때 6명의 동료근로자들과 함께 당산에 뛰어 올라가 노동자의 억울한 호소를 하다가 구속되어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중에 있던 장남수 양(당시 20세 원풍모방주식회사 노동자)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다.
"눌린자,병든자, 억압받는 자를 위해 독생자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하나님!
오늘도 저희 가난한 무리들 이곳에 모여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저희 기도 들어주시고 이 어두움 가운데서 살아나갈 빛을 주시옵소서.. 지금 이렇게 저희들 모여있는 시간에도 여러 곳곳에서 산업발전을 위해, 또 다시 100억불의 수출을 위해 고생하는 우리 동료들을 주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기도회를 알면서도 오지 못하고 기계앞에서 서 있을 우리 동료들을 또한 기억하여 주시옵시며,전국 곳곳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고난받는 당신의 정의로운 자녀들을 지켜주시고 외롭지 않게 항상 같이하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
우리들의 피와 땀의 결실로 100억불 수출을 달성했고 거리는 들떠 있는데 저희들은 왜 이렇게 외로워져야만 합니까? 다들 잘 살게 되었다는데 모두들 경제가 성장했다고 하는데, 저희는 왜 이렇게 배가 고픕니까? 풍년이 들어 쌀막걸리가 나왔어도 농사를 짓는 저희들의 아버지 어머니는 왜 거치른 보리밥도 힘겨베 연명해야 하고 호주머니는 항상 비어만 있습니까?....
하나님!
하지만 저희는 압니다. 당신만은 이 가난한 무리를 사랑하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압니다. 방림방적 근로자도, 평화시장의 근로자도,구로공단의 근로자도,당신은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보다 더 사랑하심을 저희가 압니다.
하나님!
이 사랑만 믿고 이 믿음가지고 굳건히 서게 하옵소서. 당신이 십자가를 지셨던 골고다를 향하여 저희도 따라가게 하소서. 세상의 온갖 핍박이 저희를 둘러싸고 있어도 이기고 나갈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제는 방림방적 체불임금도 받게 하시고 평화시장 근로자들도 매인 것에서 풀려나게 하옵소서. 저희를 묶어 놓고 있는 이 쇠사슬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당신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저희가 압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를 있게 하신 하나님!
갈급하게 당신을 기다리는 가난한 이 무리들에게 오셔서 참 자유를 주시옵소서...이 모든 것을 세상 죄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39)
노동자들이 이렇게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기들의 권익을 위해서 싸우는 것은 물론이요,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평등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도록 의식화시켜 가는 산업선교를 이끌어 나간 실무자들 가운데에는 여성 실무자들도 있었다. 감리교의 조화순 목사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그는 오글 목사의 설득으로 1966년도에 처음으로 산업선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실무자가 거쳐야 할 6개월간의 현장경험을 동일방직에서 했는데 그때 비로소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이유를 알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목회자로서 섬김만을 받아오다가 정말로 사회적으로 인격자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는 노동자로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노동자들의 문제를 알게 되고 이제까지의 자신이 깨어지고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즉 노동자들이 당하는 서러움을 같이 당할 때, 그래서 생기는 분노를 같이 맛볼 때 비로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함께 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같이 생활을 한 이후에 그녀는 노동자들에 대한 기독교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즉 그녀는 선교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여들여 교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동자의 생활을 알게 되니 그 생각에 혼란이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방직의 경우 3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재수가 좋으면 한 달에 세번 그렇지 않으면 두 번빡에 교회에 갈수가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교회생활을 하는 한 여성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고민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즉,
"시골에서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교회에 다녔는데 공장에 다니다 보니 한달에 한두번 주일을 지키기에도 벅차다. 두번이라도 힘들여서 가면 목사님께선느 주일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주일을 다 지키려면 공장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그러면 먹고 살 길이 막연하다.그러니나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들 교회에 다니는 근로자들이 결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겠지만,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많이 그렇게 하지만, 결국 그것은 동료들을 괴롭히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10명이 해야 할 그날의 일감을 3명이 결근을 하면 7명이 다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근한 사람들은 결근한 사람들에게 마구 욕을 퍼붓게 된다. 책임진 반장은 "예수가 어떤 놈이야? 그놈이 대체 뭐야! 시집가서 애를 낳으면 그애는 교회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게 할테다"하며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노동자들에게 교회에 나올 것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선교란 주일날 꼬박꼬박 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느 현장에 있3든지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사는 것,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잊혀진 존귀함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것,그리고 그 결과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웃고 투쟁하면서 70년대를 보낸 조화순 목사는 민중이 주체가 된 운동만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민중 저변으로부터의 빈틈없는 조직과 투쟁역량이 있을 때, 비로소 정치적인 투쟁도 불꽃처럼 살아서 거대한 변혁의 힘을 이루는 것이다"40)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운동에 참여한 교회 여성은 몇몇 의식화된 여성들 뿐이었고 대다수 교회 여성들의 단합된 힘과 그 힘을 바탕으로 한 조직의 싸움은 아니었다. 즉 이들 개개 여성 산업선교회 실무자들은 그들이 속한 교단의 여전도회의 중요한 사업으로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겨우 약간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을 뿐이었다.41)
물론 운동과정에서 노동문제와 여성문제를 엄격히 구별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생리휴가 등 여성문제로 취급된 것이 노동운동에 보탬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회여성 대다수가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고 그 해결을 위해서 전국 여전도회라는 큰 조직을 통해 단합된 힘으로 여성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며, 모진 고난을 당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어린 근로여성들을 외면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70.80년대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독교 여성들은 이제까지의 활동보다도 더 질적으로 심화된 차원의 활동을 벌여야 했다. 즉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 지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요청에 직면하여 이를 소화하기 이해서 애쓰고 또 그렇게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단체로 우리는 YWCA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주로 YWCA의 활동과 그 성격을 고찰해 보려 한다.
YWCA(이하 Y라 한다)는 해방 후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주로 대내적으로 조직정비와 지도력 개발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구호사업과 전쟁 미망인들을 위한 봉사사업을 주로 하였으나 1960년대를 맞이하여 이런 차원의 활동만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정치적으로 Y는 이승만 정권때에도 비교적 중립의 입장을 지켰고 이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한일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사회의 각계각층의 운동이 활발할 때도 Y는 이에 동조하지 않고,Y가 국제적 기독교 단체이기 때문에 기독교 정신을 살려 일본에 대한 원한에 집착하는 민족주의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42)
정치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가 Y에 기대하는 역할은 기독교적이념을 가지고 여성 및 기타 소외된 계층을 위해 봉사사업을 하는 일과 사회악을 제거하는 데 집단적 힘을 행사해 주는 두 가지 기능을 균형있게 발휘해 주는 것이다.43)
Y가 이 균형을 잘 유지시켜 나간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1960,70년대에 들어와서 불가피하게 직면한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서울 Y는 1964년부터 대동모방 공장의 여직공들을 방문하여 소창 프로그램으로 위로했고 1966년경에는 서울여객,동영직물,대동모방 등의 책임자 10명을 초청하여 근로여성문제에 대한 좌담회를 가졌다는 것이었다.44)
또한 서울Y와 몇몇 지방 Y에서는 버스 안내원으로 종사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54) 이들 근로 여성들 이외에도 일반 저소득층 여성과 소외당한 여성들을 위한 직업기술 및 생활기술 교육의 사업과 프로그램들이 각 지방 Y를 통하여 다양하게 실실되었다.46)
그러나 Y의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이 땅의 소외된 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Y는 중산층 시민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또한 효과도 거두고 있다. 즉 196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파트지역과 주택지역의 주부들을 위한 지역적 클럽운동은 그 좋은 예이다. Y는 지역활동부를 독립시켜 전담간사를 두고 마포아파트의 어머니 교실,남가좌동 주부클럼 등을 조직하여 지역적 성질과 요구에 맞는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47)
이러한 활동 중에서 발견한 클럽들의 공통된 요청은 가정경제의 합리화를 위한 소비자 보호 운동이었다. 즉 1964년 사회문제부 속에 소비자 보호위원회를 구성하여 소비자 계몽 활동을 펴는 한편 부정 불량 상품의 개선을 위한 고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활동의 일부로 Y는 1970년대 10월에 불량상품 제조업자에 대한 항의를 하는 한편 행정처에 건의문을 냈다. 소비자보호센타에 접수된 상품 고발은 행정처분및 교환 보상을 비롯하여 품질개선과 사과 및 보상을 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Y는 이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을 서민아파트 및 빈민지역에까지 확산시켜,이 지역의 주부들을 위한 무료 또는 실비 유치원 및 탁아소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특히 서울 Y의 봉천동사업관은 야간 공민학교,부녀자들을 상대로 한 직업보도의 기술훈련도 하였다.49)
이렇듯 Y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국민을 근본적으로 억압하는 체제나 정책에는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데 동조하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나 그 나름대로 시민원동을 펴나감으로써 주부들의 고발 정신을 함양하는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까지도 교회 여성들의 지위는 그리 나아진 것이 못된다. 교회내에서조차도 여성들의 지위는 이러한 문제들을 감당해 내기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제약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여자신학자협의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감리교, 기독교장로회,구세군 외에 여목사,여장로를 허락하는 교단이 없다. 이는 평신도의 남,녀 신도수의 비율에 비추어 볼때 모순되는 일이다. 1979년 12월 1일 문공부 한국종교편람에 의하면 평신도 중에서 남자의 수가 1,778,848명으로 전체 평신도 수가 4,867,657명 중의 37%이며 여자의 수가 3,088,809명으로 63%이다.
그런데 남녀 교역자의 비율은 목사의 경우 남자가 11,312명,여자가 270명으로 98:2로 전도사의 경우는 남자가 9,386명,여자가 3,067명으로 3:1로 남성 교역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서 대부분의 교단들은 여성이 성직에 참여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고 또 그것을 위한 운동을 별로 전개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교장로회통합측의 경우는 전국여전도회연합회에서 1933년 여성의 안수문제를 총회에 헌의한 이래 계속적으로 이를 위한 운동을 전국 연합회 차원에서 벌이고 있으나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허락된 감리교,기장,구세군의 경우에도 가부장제의 사회문화적 관습때문에 여성이 성직자로서 일하는 데 많은 제한을 받고 있어,참다운 의미의 남녀 성직의 평등을 구현하기에는 요원하다고 하겠다. 감리교의 경우 독신 미혼 여목사만이 교회를 담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아직도 남아있고, 구세군의 경우에도 낮은 계급의 여사관이 높은 계급의 여사관이 높은 계급의 남사관과 결혼하면 능력과 무관하게 진급되고 낮은 계급의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 높은 계급의 여사관은 무조건 남성의 계급으로 강등되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남존여비의 뿌리깊은 의식은 기왕이면 남성교역자를 선호한다. 따라서 여전도사가 개척 교회를 열심히 해서 자리를 잡아 놓은 후에는 남성교역자를 초빙해야 한다는 교이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결국 여전도사도 그곳을 떠나야 한다.50)
한국캘럽조사연구소에서 1983년 8월 25일에서 9월 5일까지 전국의 만18세 이상의 남,여를 모집단으로 하여 무작위 표출법에 따라 19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나타난 바에 의하면 "여자성직자"에 대한 태도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여자 성직자의 수가 많아지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매우 찬성" 15,6%,"약간 찬성" 34.9% 로 "찬성"이 50.5%이고 "어느 쪽도 아님" 20.2% ,"약간반대"12.7%,"아주 반대"5.2%로 "반대"의 비율이 17.9%이고 "모름,무응답"은 11.4%로 나타난다.
종교별로 보면 찬성율에서 개신교인 69.9%,천주교인 69.6%,불교인 47.4% 비종교인 44.2%으로서 개신교,천주교의 비율이 높다. 중립적 태도는 비종교인 24.1%,불교인 20.4%,개신교인 10.7% 천주교인 12.2%으로서 비종교인과 불교가 높다. 반대율에서는 큰 차이를 볼 수 없다.
성별로 보면 여자(56.3%)가 남자(44.0%)보다 찬성율이 높고 반대율은 남자(22.8%) 가 여자(13.4%)보다 높다. 연령별로 보면 연령이 많아질 수록 찬성률은 약간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51) 이 조사에 의하면 여자성직자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 성직자를 찬성한다. 하더라도 교인들이 여자 성직자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교회 내에서의 어머니의 역할과 유사할 것이다. 즉 가정에서의 역할의 연장을 기대한다. 특히 여전도사의 경우, 남자 목사의 보조자로서 남자 목사를 돕고 교인가정을 심방해서 문제를 알아내고 결석한 교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경조간의 뒷심부름,유고 심방이나 대심방시 목사의 길안내자로서의 봉사활동에만 머물게 하고 독자적인 목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
또 이 모든 일을 앞에 나서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한다. 따라서 여전도사의 연령은 젊은 미혼여성보다는 늙수레한 아줌마들이 좋다.52)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여전도사들이 교회의 상황을 아무리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교회의 주요 정책기구인 당회에 참석할 수 있는 회원군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교인들의 형편을 제일 잘 아는 이들이 교회 행정을 결정하는데서 제외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여교역자들의 지위는 여교역자들에 대한 이미지 조사 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고 각 지방에서 무작위로 선정하여 조사한 수는 665명으로서 기독교 신자가 428명이고 비신자가 237명이었다.
그 조사 결과 분석된 여교역자들에 대한 이미지는 "늙수레하여 사고나 옷차림은 시대에 뒤져 있고 사회,경제,문화적 관심은 별로 높지 않으며 겸손과 희생을 미덕으로 삼고 그렇게 사는 여성이다. 그들의 신앙은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영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여성들보다 생에 대한 자신감이 서 있는 여성들이라는"것이다.
구체적으로 여목사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가정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여자, 투철한 믿음, 강한 신념의 소유자, 독신이나 과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한 남성 신학생들은 여자가 목사로서 목회를 한다는 것을 비성서적이고 생각하며 여성교역자 자신들도 많은 비율이 여성 목사의 목회활동에 어렵다고 생각하고 특수목회에 한정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따는 결과가 나왔다.
여전도사들에 대해서는 검은 치마와 흰 저고리의 옷차림, 큰 가방과 큰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며 늙은 모습으로 둔탁ㄷ하고 작은 키, 그리고 항상 목사의 보조자로 심방을 다니는 상으로 나타났다. 평신도의 눈에는 희생과 봉사를 미덕으로 실천하여 나이많은 어머니같이 자상하고 인자하며 혼자 사는 여자며 큰 성경을 담은 가방을 쥐고 다니는 모습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이 조사연구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특히 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여교역자가 교회의 정책결정이나 사업이나 지도적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개인적으로 보살피는 봉사자를 바란다는 것이다. 여교역자의 자질도 겸손,성실,희생,인내,순종 등으로 나와 있다.53)
개교회의 여전도회 역시 여전히 일방적인 희생과 봉사,가사노동의 연장선상의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몇몇 교회의 여전도회 사업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러한 성격이 뚜렷이 나타난다.
"개척교회에 힘을 기울이며 매월 1회씩 헌신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여전도회 활동은 워례회비와 성미를 모아서 목사님과 사찰의 양식을 보조했고 주로 구제사업에 주력했으며 성가대 식사와 부활절 어린이 간식보조를 계속 담당해 왔으며 신학생을 전적으로 뒷바라지해서 교역자 양성에 힘쓰며 개척교회에 많은 보조를 감당하였다."54)
"봉사부에서는 매주 교회내의 미화(꽃꽃이 등)와 교회학교 교사 및 성가대원의 식사는 물론이거니와 교회건축이나 교육관 건축 때는 인부들의 식사,농촌 전도대가 파송될 때에는 그 장소에 함께 가서 식사를 전담해 주어 청년들의 커다란 보탬이 되고 있다. 이러한 봉사 이외에도 행사때마다 교회학교,성가대 청년회에 지원금을 보내 학생들과 청년들의 활동을 도왔으며 어린이 주일에는 직접 교회학교에 출석하여 어린이들을 축하하기도 했으며 신학생과 대학생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교우간의 친목을 위하여 매월 한번씩 예배후에 본회원을 6명씩 나누어 문밖에서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70년 교회 건축시에는 자체의 신앙향상에 힘써 매우 금요일마다 철야기도를 시작했으며...71년 교회 신축시에는 100만원짜리 적금을 들어 교회의자를 만들기도 했으며,당회실의 냉장고 비치,교회 성찬기 구입,목사님 두루마기를 지어드리는 등 교회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였다. 또 하나 본회의 중심사업은 전도,특히 문서 전도이다... 군선교 또한 전도부의 커다란 역할 중의 하나이다. 70년대 이전까지는 성탄절에나 양로원,고아원,전방을 위문하고, 매월 용사의 집을 위문하던 것에 그쳤으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그 활동은 괄목할 만큼 두드러졌다.55)
말하자면 개교회 내의 여신도회는 교역자를 섬기고 여타 다른 교회기관을 경제적으로나,또는 직접 육체적인 노동으로써 보조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있다. 이는 해방 이전에 비해서 여신도회의 사업의 내용,성격이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각 교단의 전국 연합회의 사업도 지회의 사업과 유사한 선상에서 하면서, 동시에 사업내용을 보다 다원화하고 심화시키고 있다. 예를들어 예수교 장로회의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는 국제 선교사업과 전도사업을 중점적으로 펼쳐나갔다.즉 대만,일본,인도네시아 등의 선교사업을 하였다. 이 선교사업 역시 해방 이전과 같이 외국인들 대상이 아니라 해외 교포들이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선교사업의 결과 해외에 나가는 한국인들은 거의 대부분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고 친목을 하여 서로가 돕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피선교국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인도네시아에게만 선교의 본래의 사명대로 선교지 본토인에게 선교를 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전국연합회가 국제선교의 장기계획을 세워야 할 곳은 인도네시아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는 회교권 안에서 대다수의 국민이 회회교 신앙고백을 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독교 가정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 나라에서는 16세가 되면 무슨 종교라든지 선택할 기회를 갖게 되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기독교를 접하고 신앙을 고백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고등학교를 설립해야 할 것이라 56)고 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는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신중한 고려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처럼 회교문화권 내에 들어있는 나라의 국민들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한 종교는 타 종교에 대해서 어떤 방법으로 어느 정도의 강제를 할 수 있는가,타종교의 존재에 대해서 기독교는 어느 정도 관용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 오늘날 문제로 되어 있다. 중세의 기독교 왕국을 지나서 근대에 들어오면서, 기독교는 타종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점차로 그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다 성숙한 기독교는 자기 신앙에 충실하고, 확신을 가지면서도 타 종교의 진리를 존중해 주는 개방성과 겸허함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전국연합회의 전도사업은 해방 이전에 비해서 보다 전문화,세분화되었다. 장로교 통합측의 경우 군인,병원환자,교도소 죄수들, 윤락여성,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전도의 폭을 넓혀 나가기 시작하였다. 57) 즉 어떤 의미에서든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버림받은 이웃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윤리적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해야할 일은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철저한 구조적 인식이다. 예를 들어 왜 교도소에는 죄수들이 있어야하고 그들은 왜 죄를 짓는가,그들이 악해서인가 아니면 사회제도에 문제가 있는가 등으로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 없이 그들의 상황과 원인은 그대로 둔 채,상처만 싸매주는, 일시적인 방편식으로 하는 전도는 결국 몇몇 개개인의 영혼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사회적인 구조악에서 산출되는 대다수의 신음하는 민중들에 대한 진정한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이렇게 될 때 사회구조는 그대로 존속시키고,그 사회구조 속에서 잘 참고 견디도록 진정시키는 역할을 기독교는 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전도사업은 교회 안에 사람들을 모으는, 오로지 교회만을 위한 사업은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 전체에 대한 관리의 책임은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흐름은 감리교 여선교회의 사업에서도 볼 수 있다. 해방 이전의 감리교 여선교회의 사업은 사회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기는 하다.
예를들어 감리교 여선교회 전국연합회 제27회 연차대회 회의록(1958.54.23-25)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기존의 해외선교, 전도사업뿐만 아니라 농촌부,사회사업부,교육부,청소년지도부 등을 두어 사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회의록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농촌부에서는 주로 양돈,양계를 하여 십일조를 선교사업에 바칠 것, 선교회 자금을 얻기 위하여 엿기름을 기를 것, 회원들에게 꽃을 심도록 장려하여 동리를 아름답게 할 것. 가급적 소비조합을 둘 것, 교회미화에 힘쓸 것, 해바라기와 아주가리를 많이 심어서 판매할 것 등을 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회사업부에서는 국산품애용 장려,여죄수방문,양로회원 모집,불량아동 구락부를 조직하여 도의 교육을 실천할 것을,교육부에서는 독서 구락부를 둘 것, 새가정 구독을 장려할 것,성경통신과를 장려할 것, 문맹퇴치 구락부를 둘 것 등을,청소년 지도부에서는 식목일을 이용하여 청소년에게 식목을 장려하여 봉사 정신을 양성할 것등을 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다.58)
이러한 사업은 그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여선교히의 사업은 기본적으로 사회변혁에 대한 관심보다는 교회를 위한 교회적인 관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농촌부의 사업은 가난한 농촌사회에 대한 분석이나 그 개선을 목표로 해서 교회가 농촌사회를 섬긴다기보다는 농민들이 어떻게 교회를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하나 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기본방향 위에서 그래도 1964년에 보고된 농번기의 탁아소 설치 등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여선교회가 함께 짋어지는 징후를 보여준다.59) 1965년의 사업은 물론 아직도 철저하지는 않지만 지역사회 봉사운동, 지역내의 구제사업, 지역사회를 아름답게 등의 내용으로써 초기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또한 이와함께 사회정세에 대한 견해를 넓히는 방법도 제안되어 있다.60)
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는 다른 교단들과 마찬가지로 외지전도(주로 일본),전도사업 및 청소년 교육사업,봉사 및 구제사업을 한다. 그러나 그 이외에 인권옹호 차원에서의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권옹호운동의 일환으로 식모의 호칭을 현상모집해서 "돕는 이"로,버스안내양의 인권옹호 캠페인을 벌인 일(1972.11)또는 1970년대의 반정부운동을 하다 투옥된 성직자들,학생들 등의 석방 운동 및 구속자 가족 돕기 등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서 산업선교지원,평화시장 근로자 야간학교로 사무실 개방,동일방직 근로자 해고사건에 대한 진정서 제출,중량천 철거민 대책 건의문 제출 등 이 사회의 가장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또한 이와 아울러 교회 밖의 여성문제에도 관심을 보여 범여성가족법개정 촉진회에 가입하여 가족법 개정 운동을 함께 하였고 매춘관광 문제 등 여성을 상품화하는 현상에 대해서 고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항의와 고발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성서 이해, 올바른 신학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취지에서 1978년 9월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남녀평등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교단 신학교인 한국신학대학에 여성신학 교과과정을 신설해 달라는 청원을 내고 여성신학을 소개하는 전단을 배포하였다.61)
특히 여신도회의 사업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1977년 2월부터 1977년 9월까지,지회실내 조사를 하였다. 사회위원회의 이 실태조사에 의하면 여신도회의 임무를 재래적인 의미에서 파악하는 보수성을 아직도 농후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즉 지회의 부서는 봉사부(89%),선교부 (75%),성미부(76%)가 제일 많고 인권옹호부는 1%(2지회)뿐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즉 인권옹호부 등 인간회복,사회정의 실현 등 사회참여에는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62)
또한 구체적으로 사업내용을 보면 각 지회의 선교부가 하고 있는 일은 주로 교인 심방(85.3%)이고 다음이 축호전도(65.6%) 그리고 개척교회를 위한 옥합통운동이며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이 뒤를 따른다. 지역사회를 위해 탁아소 운영 또는 놀이터로 마당을 제공하는 교회들은 극소수이다. 선교의 개념이 전도와 교회 내 활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실정이다.63) 또한 봉사활동 내용은 교회의 비품마련,교역자를 위한 봉사, 성가대 및 주일학교 교사 접대 등 교회 내를 향한 봉사활동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교회역할에 공헌할 수 있는 봉사내용으로는 지역사회봉사 및 불우이웃돕기 등 대외봉사 쪽이 비중이 크게 나타나 있다.64) 말하자면 현재 두드러진 현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교회 여성들은 점점 시야를 개교회의 차원을 넘어서서 이웃과 사회의 문제로 관심을 기울여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전환의 예로 1978년부터 시작한 "생명문화 창조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운동의 동기는 "현대문명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다섯가지 죽음의 문화"에 대해서 생리적으로 남성보다 더 새영에 가까운 여성이 생명의 문화를 창조하여 전 인류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데 있다. 그런데 그 다섯 가지 죽음의 문화란 첫째, 힘이 제일이라는 힘의 문화로서 권위주의적 가치 체계,둘째,돈이 제일이라는 물질 만능의 가치관, 세째, 명에를 중요시하는 파벌주의적 가치관, 네째, 성적 쾌락이 인간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성적 문화,다섯째, 사람을 종교의 계율로 씌워 계율시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종교의 노예가 되게 하는 "종교의 문화"라는 것이다.
이 운동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키우고 가꾸며 살아가는 일,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이룩하기 위함이다"라는 취지를 내걸고 그들이 설정한 행동강령은 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즉,사람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에서 나온 공해문제,선전문화 공해문제(상업광고방송 등), 편중된 물질주의의 예로 딸 가진부모를 울리는 과중한 혼수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식품공해,물오염,공기오염 등 환경오염에 대해서는 자료 수집이나 강연회, 세미나 등을 통해서 회원들을 계몽하고 혼수문제로 신부측보다는 신랑측에서 솔선해서 혼수 안받기 운동을 펴고 있다.65)
이러한 운동의 하나의 예로 성과를 올린 금성 백조 세탁기에 대한 상업광고방송을 중지시킨 것을 들 수 있다. 즉 1979년말 경부터 텔레비젼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방영된 광고의 내용은 "댁의 남편의 애처지수를 알아볼까요? 청소해 주는 남편은 30점,설겆이 해주는 남편은 50점,빨래해 주는 남편은 90점,백조세탁기 사 주는 남편은 100점"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애정이나 진실,성실성보다는 물질만능의 한 표현이며 돈이 없는 남편은 인간 대우를 못받는다는 단적인 표현이었다. 이에 대하여 여신도회는 이 광고를 중지하지 않으면 전국적으로 회원을 동원하여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을 금성홍보실에 통고하였는데 끝내 이 광고를 중단시켰다.66)
그러나 이 운동은 대체로 가진 사람들이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을 권유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즉 "내가 아껴 쓰고 이웃 도와주는 생활하기","재산은 자녀에게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혼수품 간소화로 예단 거절,일용할 양식으로 만족...","철저한 회개는 나로부터","권위의식의 지도자보다는 섬기는 지도자되기","안쓰는 것 나눠 쓰고 에너지 절약하기'," 물가지수 줄이고 보석 안갖기, 식단 가지수 줄이고 외식 안하기""집평수를 적절하게 가지기","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교육을 지양하고 공동체 형성을 위한 교육으로 "등의 행동 강령은 가진 자의 선한 양심에 대한 호소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교회가 이미 중산층화하며 그들이 주체가 되어 하는 운동은 가진자의 선한 양심에 호소하는 것밖에 없다는 데서 나오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사회참여는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가진 것은 그대로 가지고 약간 나눠 주자는 식의 자선사업적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계속해서 비판을 받아왔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체질이 이미 중산층화하여 사회 변혁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교회여성 운동도 이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가진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따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또 몇 사람이 그렇게 한다고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풍족하게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의 아픔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요, 모든 것을 다 잃을 때,비로소 가지지 못한 자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고, 머리로서가 아니라,느낌으로 하나 될 수 있으며, 이들과 하나 되어 구조악과 싸울 때 사회변혁은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앞에서 말한 교회여성들의 운동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 나름대로 사회에 공헌하는 바도 크다. 예를 들어,남.녀 차별 없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노력, 교회예산의 30%를 사회복지 선교비로 세우기, 교회개방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하기, 생태계 보존하기,인류의 평화를 위해 핵반대 운동하기 등의 쟁점들은 운됴 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이 사회, 인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67) 특히 깨끗한 물을 보존하기,공기 살리기,농토보존하기 등 공해추방 운동은 오늘날 전세계 인류가 직면한 생태계 파괴의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노력이며,특히 한국에서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시급한 문제들로서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의식하고 여성의 조직된 힘으로 보다 차원 높게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한국 내지 국제적인 경제구조와 경제정책을 떠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전국민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어 정부의 경제정책이 바뀌어진다 해도 현재 한국의 종속적인 경제구조가 쉽게 바뀌어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나 전략에 있어서는 미숙하다 할지라도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해결해 보려 노력한 것은 종래의 교회여성운동 방향의 전환이라 볼 수 있다.
해방이후 여러 이유로 분열되어 이웃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가 싸움과 분열만을 일삼는다는 비난을 받아온 이래,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이 세상 속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께 하자는 주장이 점점 확산되어 갔다.
그리하여 그러한 주장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 구체적으로 초교파 모임인 한국교회 여성연합회나 한국 여교역자 여신학자협의회 등의 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1) 교회여성연합회
우선 교회여성 연합회는 1966년 아세아교회 여성연합회 총회에 참석했던 한국 대표들이 돌아와서 한국에도 교회여성연합회를 조직하기로 합의하고 그들이 준비위원이 되어 이를 추진하였다.
1967뇬 4월 15일 창립총회를 영락교회 기념관에서 개최하였는데 그당시 가입교단은 예장 여전도회(통합),감리교 여선교회,기장 여신도회였다. 그후 구세군 가정단,성공회 어머니회,루터교 여신도회가 가입하여 총 6개 교단이 회원 단체로 되어 있다.
조직은 기획위원회,세계기도일위원회,적은 돈위원회,섭외위원회,교육위원회,교회와 사회위원회,인권위원회,재정위원회들의 여덟개 위원회와 실행위원회로 되어 있다. 이 위원회의 위원들은 각 교단의 전국 연합회에서 파송한 대표들로 이루어진다. 이 회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구현하는 교회 여성들이 연합하여 사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성령의 도움을 받아 이웃과 사랑하며,화해의 도구가 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하여
첫째, 교회여성들로 하여금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공동관심사에 대해 함께 발언하고 행동하도록 한다.
둘째, 교회여성들로 하여금 사회에 공헌하게 하고 신앙에 적합한 삶을 개발하도록 하며 새로운 형태의 복음증거와 봉사를 하도록 한다.
셋째,교회여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여성들의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지위를 향상시키도록 노력한다.
네째,타 단체 및 세계의 교회여성들과 협력하여 전인류의 공동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고취한다는 것들을 취지로 삼고 있다.
교회여성연합회는 교회,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여성문제를 제시하고 홍보하여 각 교단의 여성들이 이런 문제들을 의식하고,구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간의 사업내용은 대체로 비인간화된 여성의 인간회복과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위하여 여성신학 연구 및 성서연구에 역점을 두고, 이런 바탕 위에서 갖가지 사업을 했다. 우선 여성문제에 있어서 교회 내의 남녀평등을 위해서 1974년 국제여성의 해를 기하여 NCC총회에 40% 여성대표를 참석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 건의문을 보냈고 1977년에는 NCC에 여성분과를 개설하고 NCC 실행위원에 여성대표를 넣어 달라는 청원을 NCC실행위원회에 보냈으며 1980년에는 NCC 모든 위원회에 여성대표를 참석시켜 달라는 건의문을 NCC 실행위원회에 냈다.
1980년 2월 25일 제29차 NCC총회에 드리는 건의문을 보면 "1...교회의 민주화를 위해서 적어도 총대수의 사분의 일을 청년 및 여성대표로 할 수 있기를, 2.NCC실행위원회가.... 사분지 일은 청년 및 여성대표로... 되기를 3.....상임위원회 역시 구성원의 반수가 전문가 및 여성 청년 대표로.."하기를 원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여목사,여장로 안수문제에 대한 호소문을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 계속적으로 보냈다. 교회여성연합회는 교회여성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독자적 과점에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즉 다른 여성단체들과 함께 1980년 7월 9일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한 미스코리아와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 반대하는 운동을 폈다. 이유는 여성을 존귀한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듯 감상하는 상품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주로 건의문을 내고 근로자들을 돕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즉 동일방직여공 돕기, 남영나이론 여공 14명의 해고및 구타사건의 가해자인 남자직원들을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하는 건의문, 방림방적 노동자들의 사내시설, 임금, 노동시간 등에 대한 14개 조항의 시정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여성 근로자들에게서 받고 건의문을 사장 앞으로 보내고 직접 상무와 면담,삼고사 해고 노동자돕기,해태제과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건의문,Y.H 무역회사 근로자 돕기 등을 하였다.
또한 농촌여성의 문제에도 관심을 보여서 농림부장관에게 추수수매가의 현실화를 위한 진정서를 보냈다. 이 진성서에서는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우리나라 농업을 파멸시킬 뿐 아니라 식량문제의 대외적 의존을 국가안보와도 연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1973년 6월에는 매춘관광 실태조사를 하고 매춘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농촌여성 문제 해결과 동시에 식품공해추방을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무공해식품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주는 농산물 직거래 사업도 하였다. 그 외에도 자본주의 사회제도와 가부장제 사회의 이중적인 희생자인 윤락여성,매춘,기생관광의 문제를 중점적인 사업으로 하고,탈선관광사업에 대해서 한일교회협의회와 교통부장관,보건사회부장관에게 건의문을 내고 "관광객과 윤락여성 문제" 세미라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73년 12월 3일에 발표된 성명서에는 "경제 제일주의의 개발정칙이 우리나라를 일본의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 진흥이라는 명목하에 우리나라의 여성들을 상품화하고 있다.이와같이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한국을 일본남성의 유곽지대화하는 매춘관광사업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매춘관광에 대한 입장은 윤락여성의 문제를 개인적인 성적 타락의 차원에서가 아니가 잘못된 사회제도의 차원에서 보았다는 점에서 교회여성들의 의식의 향상을 볼 수 있고 이는 일제하에서 기독교 여성지도자들이 힘없는 여성들을 정신대로 보내 숱한 고난을 겪게 한 과거의 죄를 정말로 소외된 여성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업은 계속되어 1980년 2월에는 기생관광 조사를 제주도,부산,경주,서울지방에서 하였고 그 작업의 결과는 1983년 7월 한국 교회 여성연합회 자료 제1집,기생관광 전국 4개 지역실내 조사 보고서로 출판되어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 소책자에서는 "관광사업이 국가의 3차산업으로 정해진 이후 우리 정부는 이의 육성을 위해 전략사업의 차원에서 온갖 행정적인 지원과 특혜를 아끼지 않아 관광산업은 날로 부상하였다"고 하면서 "여성국민의 정조를 상품으로 하여서까지 외화를 벌어 들인다면 5억불이 아니라 50억불을 벌어 들인다 하여도 그 시비는 마땅히 역사와 민족의 얼 앞에서 가려져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68)
또한 일제 식민지 지배의 직접적 피해자인 재일교포문제와 피폭자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피폭자들의 문제를 사회에 환기시키기 위하여 실태조사를 하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치료비,학비 등의 재정적 지원을 하기도 한다. 그외 수재민,철거민 등을 위한 사업을 하였으며, 모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한 70년대의 기독교 인권 운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69)
앞에서 열거한 사업들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교회여성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초교파적으로 힘을 모아 해결하려 노력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특히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약한 자들이 당하는 문제들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사회구조적인 산물로 보고, 평등한 정의로운 사회로 변혁시키려고 초교파적,전교회적으로 집약된 힘을 사용하려 한 시도는 앞으로 교회여성들의 활동에 귀한 경험으로 축적되어 갈 것이며, 이는 사회변혁의 저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여성연합회의 조직 자체가 창립 시기부터 볼 수 있듯이 밑으로부터 올라온 교회여성의 힘의 축적이 아니라 전국연합회라는 상부조직과 관련된 위원중심인 단체이기 때문에 많은 제한이 있다. 즉 교회여성연합회의 사업은 각 교단의 사업내용에 반영될 때 실효를 거두는 것인데 그간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교회여성 전체의 의식수준이 높아질 때 교회여성연합회의 사업도 활발해질 것인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교회여성연합회의 사업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행동 프로그램보다는 홍보와 의식화 교육에 치중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여성연합회는 앞으로 조직 기반을 형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972년부터 3회에 걸친 강습회,세미나를 통해서 준비작업을 한 후 1974년 한국여교역자회는 창립되었다. 이 회에는 창립총회시 감리교,예수교장로회,기독교 장로회 3교단 65명이 참석하였고 해마다 교단별로 돌아가면서 수련회를 개최하였다. 이 수련회를 통하여 여교역자들은 교단은 다르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풀어나가려는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교역자들은 너무나 바빠서 시간을 따로 내기가 어려워 회는 활성화되지 못하였다.70)
그러다가 1980년에 탄생된 여신학자협의회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 두회의 임원 내지는 다수의 회원들이 동일한 사람들임을 감안하여 또 회의 자체의 성격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1981년 제8회 총회시 여신학자협의회와 병합하기로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따라서 8년의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3) 한국 여신학자협의회
1980년 4월 21일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조직되었다. 아세아교회여성연합회의 지원에 의하여 "교회의 민주화"라는 주제로 1박2일의 세미나가 있었는데 세미나 참가자들은 여신학자의 현장, 세계교회 여성운동,성서에 근거한 여성신학,여신학자의 역할,여러 분야의 현장보고를 듣고 한국교회에서의 여성의 지위,교회의 제도 등을 살피고 문제점과 해결점을 모색해 보는 열띤 토의 끝에 정식으로 한국여자신학자 협의회를 발족시키기로 합의하였다.72)
1.여신학자들의 자질향상(의식화)을 위한 계속교육에 힘쓴다.
2.교회의 여성신학수립을 위한 적극적인 연구와 보급에 힘쓴다.
3.여신학자들이 선교를 통하여 교회및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한다는 것들을 목적으로 하였다.
말하자면 여신학자협의회는 지금까지의 교회와 신학이 남성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이것을 극복하고 남녀평등의 새로운 교회질서를 창조해야 한다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과제를 안고 출범한 여신학자협의회는 여성신학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즉 여신학자협의회 회보를 일년에 두 차례 발행하는 일 이외에 여성신학을 홍보하기 위한 책자들,"교회 공동체","신학과 여성"들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두 차레의 아시아 여성신학 정립회를 가졌는데 "한국여성신학의 과제"라는 주제로 모인 제1차 협의회에서는 그 결과로 "우리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 발표에서는 "지금가지의 인류역사는 가부장제의 문화 아래 지배와 정복, 착취와 억압의 역사로 점철되었고 이런 현상은 인종차별,계급차별로 전개되었으며 특히 남성과 여성의 인간성의 왜곡을 초래하였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같은 현상은 한국역사,사회 및 교회현실에서도 발견된다"따라서 "여성신학의 정립은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에 대한 신앙적 응답이며 그 궁극적 목적은 새 인간성의 창조와 새인류 공동체의 건설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여성신학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담당하여야 한다고 한다.
"-.여성신학 측면에서의 성서해석과 여성의 인간성 회복
-.교회공동체의 민주화의 과제
-.한국문화의 여성신학적 재해석.
-.민족분단의 문제와 통일의 과제.
-.아시아 교회여성과의 협동."73)
그 다음의 1984년의 제2차 협의회에서는 "한국여성신학의 현장"이라는 주제하에서 농촌여성,근로여성,빈민여성의 사례발표를 듣고 그에 대한 사회적 분석과 신학화 작업을 하였다.
이들은 여성신학은 특권층 또는 중산층 여성의 권익 향상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저변계층 그 중에서도 특히 소외된 여성들의 문제를 다루어 이들의 인간성이 회복되고,주체적이고 평등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74)
그러나 여성신학자협의회는 아직까지는 그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우선은 여성신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가지고 모인 여성들이 그 모임을 이끌어 나가는 과정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의 초기 단계에서는 그 조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회원들이 주체가 되어서 일을 전개시켜 나가지 않는 한 그 조직은 이름뿐인 조직으로 끝나버릴 수가 있다.
여성신학자협의회의 총무를 지낸 정숙자 목사가 "본회 사무실이 갈 곳이 없어서 우리집으로 옮겨졌을 때 누가 본회 사무실을 위해 염려하였는가?고,'본회 위원 여러분께서는 이 회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시는 것인지"75)를 물을 정도로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의 부족함이 문제되고 있다. 물론 회원들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느냐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회원들의 관심,참여는 조직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다.
(4) 장로교 여성협의회
1980년대에 들어와서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자매들이라는 고백하에서 여성들은 여성들끼리라도 우선 일치와 연합을 하자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는 특히 분열의 역사를 거듭해 온 교단인 장로교 여성들에게서 시작되어, "장로교 여성협의회"의 발족을 보게 되었다.
장로교 여성협의회는 그 모임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즉 "우리 여성단체들 또한 교단의 분신으로서 남성들만으로 이끌어져 온 교회의 분열된 지난 세기를 회개하여 교단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가져오다가 마침내 장로교 여성협의회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76)
이 협의회의 목적은 한국교회 여성운동에 있어서 장로교회의 전통을 계승 선양하며 회원 교단간의 친교를 도모하고 교회일치를 위해 상호교류하며 필요한 경우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1984년 9월 26일 새문안교회당에서 창립총회를 연 이 협의회는 회원을 갈라졌던 장로교파 중 대신측,통합측,합동측,호헌측,기장측의 교단 여성으로 하고 있으며 장로교 부인전도회 창립기념일 행사를 공동으로 한다는 결의에 따라 부인전도회 창립 56주년 기념예배를 함께 드렸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는 가부장제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여성을 인간답게 살지못하도록 하는 문제들이 사회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독교 여성들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이 문제들은 비단 기독교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 다른 여성들도 이런 문제들을 문제로 인식하고 그 시정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의식을 가진 여성들이 종교나 이념을 초월해서 하나로 뭉쳐 조직적인 힘을 형성해서 공동으로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1920년대 기독교 여성들은 비록 사회주의 진영이 여성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이 땅의 같은 민족이요,일제하에서 함께 고난당하는 여성들로서,이 민족과 고난 당하는 여성들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일을 하였다. 물로 함께 일한 기간이 짧았고 결국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우리들은 많은 교훈을 얻었지만 그 기본 동기는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 여성들 역시 비기독교 여성들과의 연대를 가지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해방 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문제들을 놓고 이러한 연대투쟁을 해왔다. 즉 가족법 개정운동 및 여성유권자 선언, 여대생 추행사건의 대책협의회,'85 한국 여성대회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1) 가족법 개정운동
우리나라에서는 근대화가 우리의 손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이룩된것이 아니라 일제에서의 해방과 더불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온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서양에서 많은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의 결과 얻어진 남녀평등 사상도 큰 물의 없이 받아들여졌다. 헌법에는 남녀평등의 선언되었고 이에 따라 당연히 여성에게도 선거권,피선거권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유독 가족관계에서만은 매우 소부적인 법률이 제정되었다.77)
신민법 제정 당시 YWCA와 여성문제 연구원,대한부인회,대한여자 청년단, 대한여학사협회,대한천주교부인회,대하눌교부인회,대한여자기독교 절제회 등 8개 단체가 연합으로 "여성단의 민법(특히 친족 상속법)제정에 관한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그후 국회에서 신민법이 통과되기까지 Y와 여성문제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90여회의 강연 및 10여회의 좌담회를 가졌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하여 여권옹호위원회가 발족되었는데 정부와 여당인 자유당이 유림들의 동성동본 불혼제의 철폐를 완강히 반대하자 친족상속법을 급격하게 민주화시키는데 소극적 태도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1957년 통과된 신민법은 호주제도 폐지 대신 실현성이 희박한 입부혼을 제정한 한편 동성동본 불혼을 위시한 여러 가지 관습법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말았다.78)
이에 불만을 품은 여성단체들은 신민법의 실시 직후부터 가정법률 상담소와 YWCA연합회를 중심으로 꾸준히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연구를 하였으며 차차 이 운동은 다른 여성단체에 확산되어 나갔다. 1973년 6월 28일 62개의 여성단체들이 연합하여 "범여성 가족법 개정 촉진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개정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촉진회에서는 민법 중 친족상속법 조항을 검토하고 10개 항목에 걸치는 개정 요강을 발표하였다. 1974년 촉진회는 "민법 제4편 친족,제5편 상속 개정법안 및 이유서"를 작성하여 여성국회의원을 통해 국회에 상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회제안자인 이숙종 의원(당시 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법안 작성자인 촉진회의 동의도 없이 단독으로 개정안에 대한 수정을 가하여 그것을 1974년 9월 28일에 국회에 제출하여 소위 "단독수정 법안사건"파동을 일으켜 범여성운동의 분열의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마침내 이숙종 의원의 수정안 철회로 간신이 위기를 모면하고 1975년 4월 9일 다시 개정법안을 촉진회의 원안대로 국회에 제출하여 국회법사위원회에서 찬반 격론이 일자 국회법사위원회는 개정안 수정작업에 착수하여 1977년 12월 17일 정기국회에서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 촉진회의 가족법 개정안(원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2년 반이 넘도록 미루어 오다가 그 원안에서 핵심부분이 모두 삭제된 국회법사위원회의 대안인 부분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79) 이 개정안은 찬방양론의 초점이었던 호주제도와 동성동본 불혼제도를 그대로 남겨둔 채 재산상속 등에서 남녀의 성차별을 약간 완화하는 선에서 그쳐 버렸다.
1984년 7월 18일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를 발족하고 서명운동과 건의 및 청원, 뱃지판매, 계몽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법안제출을 위해서 필요한 국회의원 20명의 서명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국회의 제출도 못한 채 실패로 끝나 버렸다.
이 국회위원 20명의 서명을 받아내려는 여성들은 여성국회의원들조차도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는 기막힌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여성들의 문제는 몇몇 운좋은 여성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조직화된 힘. 아래로부터 뭉쳐서 올라오는 힘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따라서 여성들은 이 실패에서 좌절하지 않고 계속적인 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하였다.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에서는 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국민의 기본권리이자 의무인 투표권 행사를 앞두고 전 유권자의 반수가 넘는 여성 유권자는 국가운명을 좌우할 우리의 귀중한 한 표를 올바르게 행사하기 위하여 유권자로서의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고 우리가 할 일을 찾기 위한 여성대표자 간담회를" 마련하였다.
1985년 1월 25일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올바른 투표권 행사를 위한 여성대표자 간담회"를 열고 "여성 유권자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 선언에서 여성들은 인간평등을 위한 가족법 개정에 반대한 후보자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현장, 모든 계층에서의 여성 차별을 거부하며 이의 해결을 위해 싸운다. 우리는 여성 유권자의 의식화를 위한 정치교육을 실시한다는 등의 결의를 밝혔다.80)
그리하여 의식화된 여성 유권자들이 다시는 무시할 수 없는 압력단체로 등장하였을 때 가족법 개정운동은 성공할 것이다.
(2) 여대생 추생사건 대책협의회
1984년 9월 학원가에서는 학원 자율화와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연행된 여학생들이 관할 경찰서에 끌려가 성적인 추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여학생들은 이 사건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수치스러운 일로 덮어두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사건을 공개하였다.이에 당황한 경찰은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갖는 억압과 회유를 하였지만 이들은 끝내 굴하지 않고 양심선언을 하고 고소를 하는 등 용감하게 대처하였다. 이 사건에 접한 여성들은 분개하여 이를 여론화시키고 경찰측에 항의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84년 11월 21일 10개 단체가 연합하여 여대생 추행사건 대책협의회를 구성하였다. 그후 11월 27일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여교역자 협의회가 새로 가입해서 11개 단체가 되었는데 이 중에서 기독교계 여성단체는 7개 단체,비기독교계 여성단체는 4 단체였다. 기독교계 여성 단체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한국교회여성연합회,인권위원회,한국여자신학자협의회, 한국 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인권위원회,한국 기독교장로회 여교역자협의회,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한국 기독청년협의회 여성선교위원회들이었고 한국 기독학생회 총연맹,한국 기독청년협의회 여성선교위원회들이었고 비기독교 여성단체로는 여성 평우회,여성의 전화,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여성부,인천지역 사회운동 연합 여성부들이었다.
이 협의회는 11월 23일 12개사 내외신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 회견에서 성명서를 통해 경찰에 의한 여대상 추행사건은 일반 파렴치범보다 더욱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하며 경찰은 추행 및 폭행사실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할 것과 폭행 관계자를 법에 의해 처벌하고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기자회견 내용은 당국의 보도통제에 의해 단 한 줄도 기사화되지 못했고 이에 12월 5일 협의회와 천주교 사회운동협의회 등 사회 단체는 여대생 추행사건과 관련하여 주영복 내무부장관,최남수 서대문경찰서장, 동영선 청량리 경찰서장, 청량리 경찰서 전경으로 연재구를 검찰에 고발하였다.
12월 6일에는 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각 단체회원 300여명이 참석하여 진상고발 및 결의대회를 열고 협의회 활동을 강화하여 전국 각 지역에서 규탄대회 및 범국민적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81) 이 사건은 결국 당국의 공식사과를 받아내지는 못하였지만 여성들의 단결된 힘으로 인해 경찰이 시위에서 연행된 여학생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풍조를 야기시켰다.
이 여대생 추행사건 대책협의회는 기왕의 연대를 통하여 '85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하는 기반이 되었다.
(3) 세계 여성의 날 기념 '85한국여성대회'
1985년 3월 8일,"민족,민주,민중과 함께 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서울 YWCA회관에서 열린 '85 한국 여성대회는 빈민,농촌,노동여성들이 참가하여 그들의 문제를 그들의 소리로 고발하는 장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깊은 모임이었다.
이 대회가 열리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즉 1984년 9월 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CCA 주최로 migration woman에 대한 회의가 있었는데 이 회의에서 각국의 여성문제가 심각함을 자각하고 이 여성문제를 사회화하기 위하여 지금 현재 제정되어진(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각국에서 이를 준비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도 교회여성연합회와 NCC여성위원회에서 발의해서 그 동안 여대생 추행 사건에 연대해서 싸우던 단체들이 여대생 추행사건 대책위원회에서 결의하였다.
기존의 여대생 추행사건 대책위원회에다 카톨릭 여성 농민회,노동자 복지협의회 여성부, 또 하나의 문호, 주부아카데미협의회,기장 여교역자협의회들의 단체가 연대하기로 하였다. 당일 대회에서는 한국여성운동의 방향이라는 주제강연 하에서, 여대생 추행사건,도시주민,기생관광,여성농민,노동여성의 사례발표가 있었다.
이 대회는 기층 여성과 여성운동을 연대시키려 한 점, 기존 여성단체가 중산층,기성세대 중심이었던 것을 극복하고, 연령이나 빈부,계급을 총망라한 운동으로 전환시키려고 노력한 점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이제 문제는 이 연대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82)
물론 기존의 여성단체들이 다 연대한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태동한 여성단체들과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여성단체들이 비록 수는 적다 하더라도 미래의 한국의 여성운동을 이끌어 갈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 대회에서 발표된 '85 여성 운동선언은 중요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족,민주,민중운동과 함께 하는 '85여성운동선언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우리는 세계여성운동과의 대화를 확인하며, 동시에 한국 여성들이 처해있는 특수한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고 한국여성운동의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민족분단의 비극 아래 계속적인 남북한 군비경쟁의 위협에 살고 있다. 과다한 생존을 위협하며 사회전체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60년 이래 외자에 의존한 수출주도적 경제정책은 약 500억달러의 외채를 부담하게 하고 막대한 국내 경제 잉여를 미국,일본 등으로 유출시키고 있다. 특히 정부는 대다수의 서민층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소수 자본가의 이익을 옹호하는 반민중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서민대중의 불만을 비민주적 법륙과 공권력으로 억눌러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여성들은 노총이 발표한 월 최저생계비 16만원에 훨씬 못미치는 월 10만원 이하의 저임금에 시달리며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건강한 모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하에 있다. 저농산물 가격경책과 무차별한 외국 농축산물 도입으로 농촌경제가 파탄이된 상황하에서 여성 농민들은 이농에 따른 농업노동력 결핍으로 농사일과 함께 가사노동까지 고스란히 떠맡은 현실과 아울러 적자영농으로 200만원 이상의 농가부채까지 짊어진 채 농약중독에 쓰러져 가고 있다. 농촌경제의 파괴로 인한 농민의 집단 이주로 형성된 도시판자촌의 빈민여성들은 노점상,행상,가내하청,등에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대책 없는 철거정책에 의해 생존이 위협당하는 극히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계속 심화되는 대외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하여 기생관광을 정책산업화하여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성을 외화획득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가세하여 대중소비문화의 조장,왜설,오락영화의 범람은 여성들을 소비 노예화시키고 성적 노리개화하여 국민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하고 외국자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제주도 관광단지 개발계획은 외국자본의 직접적 지배와 향락문화의 조장,한국여성의 성적 수탈이 복합적으로 표출된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 아울러 성차별을 제도화시키고 있는 가족법의 모순및 사회문화적 차별의식은 이제 민주화를 요구하는 여대생들에 대한 경찰의 추행,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폭력 등 정의와 진실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여성의 현실을 볼 때, 한국의 여성운동은 단순한 여성지위 향상이나 여가활동의 수준을 벗어나야 한다. 또한 대다수 여성들의 생존권 투쟁을 외면한 채 특권층 여성의 점유물이나 출세를 위한 발판이 되어서는 안된다. 올바른 여성운동은 분단을 고정화시켜 이익을 꾀하는 외세를 물리치는 민족운동으로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사회의 민주화와 남녀평등이 민주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민주화 운동으로 그리고 생존권 획득을 위해 투쟁하는 대중적 조직기반을 갖춘 민중운동으로의 성격을 띠고 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민족,민주,민중과 함께 하는 여성운동을 지향하며,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의 주장
@ 외세에 의해 강요되는 민족분단의 고착화와 한반도의 핵전략 기자화를 반대하며,민중적 차원에서 통일 논의를 전개하고,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대외종속적 정치,경제,군사정책을 시정해야 한다.
@ 사회전반의 민주화와 남녀평등의 민주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여성들의 정치의식이 고양되고 여성들의 힘이 민주세력으로 결집되어 군부통치의 장기화를 종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 및 언론기본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 여성에게 불리하게 제정되어 있는 가족법이 개정되고 취업,승진,정년의 불평등이 시정되며 이러한 불평등을 정당화시키는 가부장적 차별의식이 종식되어야 한다.
@ 여성 노동자의 모성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8시간 노동제와 최저 16만원의 생계비가 보장되고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불법화하고 잇는 현행 노동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 여성농민의 모성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저농산물가격 정책,외국농축산물 도입이 중지되고 농가부채가 탕감되어야 하며 농협의 민주화가 이룩되어야 한다.
@ 빈민여성의 모성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생계대책 없는 철거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
@ 대일무역적자를 메꾸려고 여성을 희생시키는 관광기생정책이 철폐하고 새로운 매춘여성과 향락산업을 유발시키는 제주도 관광단지 개발정책은 중지되어야 한다. 민족,민주,민중과 함께 하는 여성 운동 만세!
1985. 3. 8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기독교학생총연맹 여성부
VIII,민족,민주,민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길을 향하여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 여성선교위원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기독교장로회 여교역자협의회
여성평우회
여성의 전화
또 하나의 문화
주부아카데미협의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여성부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여성부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여성부
카톨릭 여성농민회.
미흡한 대로 기독교 여성들의 100년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수백년에 걸친 조선조의 문화는 이땅의 여성들의 의견을 봉쇄했을 뿐만 아니라 듣지도,보지도,느끼지도 못하게 하고 오직 순종만을 강요해 온 문화였다고 할 수있다. 이렇게 세뇌되어 짙은 어둠에 짓눌려 있던 여성들에게 천주교와 동학은 이들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100년 전에 기독교가 복음을 이 땅에 전파할 수 있는 길은 이미 닦아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100년 전의 우리 선배여성들은 과감하게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여 자기들을 속박하고 있던 문화에서 해방받으려 몸부림쳤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게 하는 모든 요인을 제거해 버리고, 존엄한 인간답게,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기들을 감추려는 쓰개치마를 훨훨 벗어 던지고 자기를 노출시켜,자기의 주체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 누구의 아내,누구의 딸,누구의 어머니라고 불려지는 대신, 자기 자신의이름을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살려고 집을 뛰쳐나오기도 하고,교회로,성경반,사경회,미션계 학교로 찾아다니며 자기성장에 힘썼다. 이렇게 해서 그들에게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해방의 첫 단계였을 뿐, 그 사회 전체가, 또는 민족과 국가가 잘못된 문화에서 해방받지 못하는 한 그들 개인의 해방도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가정뿐만 아니라,민족문제,사회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고 강대국의 횡포에 저항하며,고난받는 동족,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문제에 대처해서 투쟁하는데 기독교적인 한계점을 느낀다. 기독교 자체가 서양의 가부장제 문화에 둘러싸여져 왔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따라서 만인이 평등하다고 가르치면서도,"여자는 잠잠하라,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교훈을 강조하고, 여전히 주인과 노예를 인정하며,권세가진 자에게 순종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복음의 본질과는 다른)을 강조하는 데사 과감한 혁명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여성운동은 개인주의적이요, 계몽주의적인 차원,혹은 개량주의적인 차원에 머물수 밖에 없었다.
세월이 감에 따라 밖의 세상은 변화하는데 교회울타리 안에 안주하는 교회 여성들은 초기 기독여성들의 과감한 개혁정신은 잃어버리고,보수적인 체계 안주형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물론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식민지신학을 강조한 영향도 있겠지만,일제 말기를 거쳐 해방을 맞이했을 때는, 혼란한 전환기의 지도자로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했다. 위선적이고,보수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정권과 밀착하여 개인의 영달이나 안일을 도모한 몇몇 기독교 여성지도자들이 민족과 민중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60년대 4월 19일 정의를 부르짖는 학생들의 의거로 한국의 기독교는 크게 반성하게 되었고,여성지도자들도 조용히 과거를 돌이켜보고 잘잘못을 가려서 이 땅의 여성들과 함께 새로운 방향모색을 하게 되었다. 유신헌법으로 국민의 기본권마저 봉쇄당한채 인권이 유린된 1970년대를 거치면서,이 땅의 기독교 여성들은 민주,민족,민중의 문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독여성 운동이 몇몇 여성지도자들의 운동이거나 그들의 출세의 발판 구실을 하는 정도여서는 안되겠다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그래서 기독여성 운동이 몇몇 여성지도자들의 운동이거나 그들의 출세의 발판 구실을 하는 정도여서는 안되겠다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독교인,비기독교인,소외된 기층계급의 여성들 모두가 하나로 연합전선을 펴야 한다고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시작한 단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숙하고,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은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케 하시며,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이룩하시려는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결정으로 우리의 힘으로만 이룩할 수 있는 과업이라고 허세를 부릴 수는 없다. 우리는 소외된 이웃들, 특히 여성들과 함께 고난을 나누시고,그들의 인간회복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일을 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의 제자로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무리들이다. 이런 신앙고백을 가지고 지내온 백년 동안 우리의 선배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오늘에 이르게 해준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발자취에서 긍정적인 교훈,부정적인 교훈을 빼놓지 말고 찾아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 하지 않는 단체나 민족이나,또는 어떤 운동도 발전하거나,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막 민주,민족,민중을 위해 광범위한 연대운동을 시작하려는 기독교 여성운동에 해방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이 일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우리 모두가 동참할 수 있기를 바라마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