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밭으로 갑시다

배밭에서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데가 있데요. 지난 주간에 거길 갔었어요.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아저씨 한분이 열심히 배를 따고 있더군요. 6월에 따는 배니 익은 배는 아니겠지요. 곁에 가서 보았습니다. 배 나무에 참 배가 많이 열렸더군요. 그런데 그배들을 사정없이 가위로 짤라내는거예요.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하나만 남겨놓고는 다 짤라내는 거예요. 남아 있는 것 보다 짤려나가는 수가 휠씬 많더군요. 그 분께 물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상품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나오질 않는답니다. 좋은 품질의 배를 얻으려면 잘라내야한답니다. 그분은 미련없이 잘라내더군요. 이걸 보면서 나는 어쩌면 이게 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나도 하고 싶은게 많았거든요. 한 때 사진을 배워 거기 흠뻑 빠졌던 적도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아니 시간을 내서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시절이 있습니다. 바둑도 좋아합니다. 한 때는 기원에 가서 바둑 두는 것을 여가생활로 삼았던 때도 있습니다. 문화생활에도 참 관심이 많습니다. 영화나 연극을 보는 일, 음악을 감상하는 일. 다 좋아합니다. 한 때 명동에 있었던 르네상스라는 음악감상실에 자주 갔던 적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직 정식으로 문학지에 발표한 것은 없지만 습작을 해 놓은 것들은 지금도 찾아보면 어딘가 있을 거예요. 친구들을 만나는 것 참 좋아합니다. 친구와 만나 지난 날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겨울밤도 짧기만 하지요. 취미를 물으면 '여행'이라고 써넣기도 했습니다. 완행열차를 타고 가다 낮선 역에서 내려 흙먼지를 터벅이며 신작로를 따라 걷다 그 눈군가를 만나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 코트 깃을 세우고 걷는 겨울바닷가. 가끔씩 뒤돌아 모래위로 난 발자욱을 바라보다 또 걷는 해초내음 가슴까지 밀려오는 그 바닷가. 그 바닷가에 가고싶습니다. 낭만 있지 않습니까? 나도 분위기를 만들고 그 분위기에 빠져들 줄도압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목회를 하면서도 이 모든 것들을 함께 추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촬영한다고 카메라 가방메고 이리 저리 뛰는 목사, 기원에서 바둑두다 달려나오는 목사, 심심하면 훌쩍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버리는 목사, 극장에서 자주 만나는 목사, 소설 쓴다고 밤을 새우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새벽 강단에 서는 목사... 영양분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하나만 남겨놓고 잘라내야 한다는 배밭 주인의 말에서 진리를 다시 깨닫습니다. '현삼아, 너도 하나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잘라버려라. 그래야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단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이 진리를 배우러 배밭에 같이 갈 사람 없습니까?
조현삼목사 (서울광염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