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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3천개의 우상앞에 엎드린 이 나라를 살린다.
네팔(NEPAL)
KCM제공

네팔 국기
★ 네팔의 일반현황 ★
1. 국명 - 네팔(Kingdom of Nepal)
2. 면적 - 14만7천18㎢(남한의 1.5배)
3. 수도 - 카트만두(Katmandu)
4. 정체 - 입헌군주국
5. 인구 - 천756만7천명(1987년)
     - 2천4백만명. 27개 부족(1997년)
6. 도시화 - 8%(1985년)
7. 종교상황 - 불교(7%), 모슬렘(3.5%),
     흰두교(89%), 개신교(0.3%)
8. 시차 - 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

네팔의 선교역사
1) 선교 역사의 시작
오랜 역사를 가진 네팔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닫혀진 나라였다. 1602년 티벳으로 향하던 로마 카톨릭 신부들에 의해 기독교를 접촉 한 흔적이 있지만 실제로 선교역사는 1715년부터 시작된다. 1704년 프란치스코와 카프친 수도사 6명은 로마에서 출발하여 4명은 기근, 질병으로 죽고 2명은 카투만두에 도착하여 4년반 동안 선교지를 개 척하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로 인하여 인도로 후진한다. 인도에 서 선교본부를 설치 정립한 뒤 한 팀이 1714년 카투만두 계곡에 도 착하게 된다. 처음의 사역은 왕의 허락하에서 시작되었고, 그후 박타 플 왕국으로 자리를 옮겨 의료사업, 사회사업, 복음전파사업을 한다. 1731년 후에 이들은 다시 인도로 후진하게 되며 1737년에는 두왕국 의 초청을 받아 입국하게 되며, 1744년에는 파탄 왕국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1737년부터는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서화된 서약 서를 받았다.
티벳의 사역은 더욱 어려운 내륙의 상황에서도 계속되다가 결국 라마교의 심한 박해와 반대로 문을 닫고 1745년 네팔 사역과 연합하 게 된다. 외국의 지식과 기술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왕들은 선교사 들의 종교적인 활동에 대해 무관한 자세로 복음번파와 사회봉사의 자유를 허락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힌구교의 신들을 모욕했다는 이유 로 미움을 받고 감옥에 가야 했다. 힌두교의 신들은 선교사들이 싫어 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재앙이 온다고 생각하여 승려계급인 브라만 에 의해 거부되고 결국은 스파이 누명을 쓰게 된다. 1768년가지 3개 의 왕국에서 29명의 카프친 선교사들이 1-16년까지의 다양한 형태로 54년간 머물면서 생활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결국은 추방을 당한다. 선교사들의 생활은 가난과 독신 속에서 헌신하고 복종해야 하는 힘 든 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친구로, 교사로, 사회사업가와 의사로 일하면서 어느 곳에서나 누구 에게나 복음을 전했고 악습으로부터 구하였다. 1769년 소왕국을 통일 한 고르카 왕국은 선교사들에게 스파이 누명을 씌워 신자 60명과 함 께 네팔을 떠나게 한다.

2) 선교의 암흑기
통일된 고르카 왕국은 국력 강화에 전력했으며, 1814년에는 인도에 주둔하였던 영국군과의 전쟁에서 네팔 땅 1/3을 떼어주고 영국군과 협상을 맺으며, 외국인을 모두 추장하며,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쇄국 정책을 해나갔다. 1923년까지는 국빈, 상인들까지도 삼엄한 경 계속 에서 하루를 제대로 머물 수가 없었는데 이는 부라만 계급에 의하 여 더욱 강화되었다.

1870년 네팔의 국경 부근 다질링에서는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이 교 육사업을 시작하여 2,000명의 신자를 배출하였다. 네팔의 최초 개신 교 개종자는 강가 프라사드 프라단(Ganga Prasade Pradha)이다. 수 크만(Sukhman)은 다질링 칼리퐁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1892년 콜레 라로 세상을 떠났으며, 강가는 인도 여러 곳에서 가르치며 기독교 문 학을 번역한다. 네팔 국경 부근에서 기독교인이 된 네팔 사람들은 첫 세대의 그리스도인들로서 조국으로 돌아가지를 열망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1892년에는 다질랑에서 고르타 선교부를 세우고 헌금을 모아 네팔에서 선교를 파송하였다. 1920년대 초 히말라야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다 싱(Sundah Singh)은 1914년 다질링을 통해 네팔에 들어 와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고 결국은 잉도로 추방을 당한다. 그 외에도 인도 국경에서 많은 선교부들이 네팔의 목음을 위 하여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네팔과 티벳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 다. 1900년부터 1950년까지 네팔 국경에 존재했던 선교부 수는 무려 25개나 되며, 이들을 통해 네팔인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자국 복음화에 힘쓰며, 밀알이 되었던 것이다.

3) 문호 개방시대
1950년 그 당시 왕이었던 트리브반 샤(Tribhuban Shah)왕이 인도 로 망명하여 인도, 영국, 미국 등의 도움을 받고, 1951년 2월 국민의 대단한 환영 속에서 입국한다. 그는 입국한 후 문호를 개방하고 왕구 건을 바로 잡으며, 인도의 도움으로 영국형태의 왕국 민주주의를 이 루어 나가는 것이다. 문호개방과 동시에 네팔 국경에 존재했던 많은 선교부들은 정부의 허락을 받아 또는 허락없이 네팔에 입국하여 의 료, 교육, 경제개발을 기본으로 한 선교전략을 세워 사역을 시작한다. 1950년 남인도의 성 도마교회에서 순례를 시작한 2명의 청년에 의 해 카투만두와 포카라 등에서 아쉬람 형식의 성격공부가 시작되고 신자들이 양육된다. 이것이 네팔교회의 초석이 되며, 1952년 포카라 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다.
1966년 위클리프 번역 선교회가 10개 부족어로 성경번역을 시작하 였다. 1963년 신약과 시편이 성공회에 의해 개역되고 1977년에는 신 구약 모두가 현대어로 개역되어 현재 사용하는 성경이 되었다. 1970 면 네와리 언오로 요한복음이 번역되었으며, 현재는 4개의 단체가 성 경을 번역 출판하고 있다.


현재의 선교현황
1. 신앙의 자유
네팔의 고아원 조이하우스의 기도회모습1963년 국법에 의해 개종하는 것은 불법으로 되어 있다. 조상 대대 로 계승되는 종교를 따를 시에만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종교를 남에게 전할 수도 없고, 자기의 종교로부터 다른 종교 로 개종할 수도 없다. 공산국가도 이슬람 국가도 아니면서 전도와 종 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로 선교사들이나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남 의 종교에 대하여 무관심히다. 국법에 의하면 기독교로 개종할시 1년 의 형을 받으며, 기독교를 전파하거나 기독교로 인해 그들의 전통의 식, 종교행사 등을 거부할시는 3년, 다른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 시는 6년의 옥살이가 구형된다. 출옥 후에도 자신은 기독교인으로 존재할 수 있으나, 남에게 전도할 수도 없고, 직장과 카스트 속에서 축출당 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정부의 허락하에 존재하는 선교기관들은 정부와의 계약과 협의된 관계 속에서 활동해야 하고 전도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또 개인자격으로나 정부의 허락없이 활동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으며, 활동을 하다가 발각되면 감옥에 가거가 추방을 당하는 것이다.

2. 토착교회의 활동 상황
네팔의 기독교와 교회는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개종이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선교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지 않으며, 기독교를 공개 하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 전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식 적인 집계를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O.M. 선교단체에 의하면 6만 명이 기독교인이요, 네팔기독교협회는 약 3만명으로 계산하는데 네팔 정부는 3,891명(남 2,113명, 여 1,778명)으로 집계함을 기독교 선교를 공식화 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의도인 것으로 생각된다. 수도 카투만 두에는 현재 23개의 교회가 있고, 그중 4-5개는 400여명 이상 모이는 교회이다. 전국적으로 교회수가 200-300개로 집계 되고 있다.

3. 외국 선교 단체들의 상황
1) 카톨릭 선교부
카톨릭 선교부의 사역은 이미 1714년부터 시작되어 있다. 이들은 480여개의 교육기관을 인도에 세웠다. 그 외에도 네팔의 문화 연구조 사, 문서발행, 사회사업 등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한 사역을 하고 있다. 카톨릭 선교부는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며, 토착화된 교구나 사제, 수녀회도 없다. 외국 출신 예수회 신부들 13명과 외국 출신의 마리아회 수녀 15명이 주로 카투만두에서 사역하고 있다.

2) 개신교 선교부
약 55개의 선교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정부의 허락을 받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입국하여 의료, 교육, 경제발전 등에 투자하 면서 정부의 감사 속에서 사역하는 팀과 개인자격으로 허락없이 입 국하여 사역하는데 발각되면 감옥에 가거나 추방을 당하게 된다. 인정된 선교단체는 8개로 2개는 인도 선교부들이다. 비인정된 선교 단체들은 O.M, Y.W.A.M, NEW LIFE 등 40여 개가 존재하고 여기 에는 이단 종파인 신의 자녀들, 여로와의 증인, 몰몬교 등도 속해 있 다.

3) 성결교단의 선교
네팔의 고아원 조이하우스의 기도회모습-호산나재단성결교단의 네팔선교는 1991년 6월에 백종윤, 이숙 선교사를 파송 함으로 시작되었다. 백 선교사 가족의 주된 목적은 네팔의 카투만두 에 있는 한 중고등학교를 인수하여 교육사업을 전개함으로 복음선교 의 접촉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백 선교사는 1991년 12월에 이 학교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인수하여 1992년 2월 23일부터 5가지 학과목을 더 신설하고 제2외국어 중에 영어, 네팔어, 한국어 과목을 포함시킨 가운데 개강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 학교는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 는 것을 목표로 수준있는 미션계통의 학교로 성장시킬 방침을 가지 고 있다.

이처럼 교육사업을 전개해 나감과 동시에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가 능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도 추진하여 1991년에는 백두산 높 이의 두배 정도되는 고산지대의 한 마을에 "고운리"교회를 개척하기 로 했다. "고운리"교회에서 동역하는 현지인 전도사는 사무엘과 미니 구말라이이다. 이처럼 교회를 시작할 수 있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 는 일은 계속 추진할 생각이다. 1992년 3월에도 카투만두 근교에 한 교회를 시작할 예정으로 있다.


미래의 선교 전망
1990년 4월 폭동(민주화 바람) 후 감옥에 있던 기독교인들이 모두 풀려났다. 그리고 5월에는 선거도 실시되었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허락한 것은 아니나 빠른 속도로 개방화되어 가는 것 을 볼 수 있다. 왕이 약간의 권한을 내각에 넘겨줬고 각료들은 외국 에서 신학문을 한 사람들이다. 앞으로 정치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수 도 카투만두에는 이른바 현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으며, 지식층에 서는 맹목적인 힌두교 신앙이나 숙명적인 카스트 제도에 대해 회의 를 갖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서 기독교 선교도 매우 낙관적으로 전망된다. 작년 이후 선교사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볼 수 있다. 얼마 안가면 정식 신 학교도 생길 것 같고, 십자가를 부착한 예배당 건축도 허락될 것이 다. 현재도 학생 비자를 받아 입국해 선교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이 많고, 사회사업이나 의료, 교육사업을 외국인도 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다.
또한 이 나라가 인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데 인도가 점차 기독교가 왕성해져 가고 있고, 신학교가 각처에 생기고 있는 형편 이므로 그 영향이 미치게 될 것으로 본다. 현재 네팔에서 인도에 있 는 신학교에 유학하고 있는 자가 상당수에 이르고 싱가폴이나 한국 에도 신학공부를 위해 나가 있는 자가 있다. 만일 이 마라가 기독교 복음으로 정복되면 8억에 가까운 힌구교인 들에게 상징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힌두교의 5대 성지가 모두 다 네팔 땅에 있고, 힌두교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힌두교 왕국인 이 나라도 멀지 않아 한국교회와 같은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

[ Webzine MIR 2001년 3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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