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MIR 8기)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이 책은 새로운 지식전달 보다는 도전의 의욕을 북돋우는 책이다.
빚진 자로서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이와 비슷한 많은 책들을 접해본 경험이
한 두 번은 있었겠지만 이 책은 세계 선교의 큰 밑그림을 보게 했고 또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 감동을 본 서평을 통해 전해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선교는 어떤 방향을 타고 흘러왔을까?
첫째 흐름은 1세기 사도들에 의한 초대교회의 부흥이라고 한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했을 때 그 물결은 로마제국의 유대사회와 이방지역을 휩쓸며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여
지중해 지역과 남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까지 퍼졌다.
둘째 물결은 18세기 윌리암 캐리를 선두로 하여 19, 20세기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를
대상으로 전한 것을 또 하나의 축으로 본다. 이는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종말을 고했지만
아직도 북미의 많은 사람들은 선교라면 식민주의 선교를 연상한다.
셋째 물결은 자국인 선교운동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자국인들은 문이 닫힌 나라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들을 수 없는
수백만의 영혼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구 선교사와 자국인 선교사의 두 개념을 우리는 먼저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서구 선교사란 외국에서 들어온 선교사를 말한다. 근현대의 시기에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비율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 사회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본서에서는 서구 선교사로
쉽게 이해한데로 명명하고 있다.
이에 반하는 자국인 선교사는 자기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로 민족적인
개념이 강하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굳이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그 효율적인 면에서는 외국인 선교사보다도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우리는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처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역할은 외부 선교사가 해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본인도
놀란 것은 아랍권이나 수천만의 신을 모시고 있는 인도 문화권에서는 이미 외부선교사 보다는
자국인 선교사가 더 유리하게 일할 수 있다고 후원해 달라고 요청할 만큼 헌신된 크리스챤들이, 주의 종들이 그 지역 곳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 뜻하신 바대로 이미 상당한 작업을 해 놓으셨다는 것이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10/40 의 창 지역에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전도 종족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으시고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에 다시 아멘 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중반부에는 저자의 소명을 찾기까지의 과정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놀라움, 결국 아시아에서 사역하는 자국인 선교사들에게 후원할 자를 찾아 나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필요를 깨닫고 그 일을 하기까지와 하면서의 어려움, 갈등 상황들을 그리고 있다. 실로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현재도 가족의 허기와 배고픔을 뒤로하고 복음 전하는 것에 즐거워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람이 있다. 참으로 있다. 그들을 위한 물질의 헌신을 유도하는 것이 저자의 큰 목적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면 사단을 좇는 세상의 법칙이다. 인도(참고로 저자는 인도 출신이시다)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사회개혁 정책을 나름대로 열심히 실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아와 인구와 가난의 문제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 문제의 원인은 사람도 아니고 자원의 부족도 아니며 정치체제의 잘못도 아니다. 영적인 암흑이 원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내세에서 그들은 비참한 자리에 처할 수밖에 없다.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얼굴에 스며 있는 고뇌는 그릇된 종교에 매달리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배고픔과 가난과 영혼의 빈핍함 속에서 허덕이는 민족들, 그들이 결국 가는 곳도 지옥이라면 그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있을까.
한편 저자는 미서구의 크리스챤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한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현재 우리나라의 크리스챤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우리 교회들에 내려진 축복을 보자. 얼마나 많은 전임 사역자가 있으며 기독교 서점과 기독교 방송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각종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는가? 그것을 비판하려는 것이 저자의 의도가 아닌 것을 알수가 있다. 우리가 가진 것들에 둘러싸여 우리는 가장 중요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무척 교만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내 안에 회복되어져야 할 일이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열광하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를 원하신 주님. 우리가 지옥불의 고통을 1분이라도 경험한다면 우리는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그릇된 복음이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없는 삶의 비참함에 대해서 바울은 롬 10:9-15절에서 부르짖으며 선교의 긴박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교회건축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교회 안에 탁구대나 농구장을 건립하기 위해 쏟는 열정들. 과연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한편'배고픈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하는 거짓말 때문에 백년 동안 많은 선교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보다는 사회 사업에 사용되어졌다고 한다. 빵을 주는 일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은 나로서도 많이 혼동되었다. 우선 배를 채워야 들을 귀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저자는 이것이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배를 채우면 다시 금방 배고파지기에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그러나 그 영혼의 굶주림이 선행되지 않으면 그들은 곧 강팍한 심령으로 돌아가서 빵으로 인해 믿었던 믿음은 곧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중요한 지적이라고 여겨진다. 배고픈자에게도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서구의 풍요로운 물질이 자국인 선교사들에게 지원되기를 요청하면서 책을 마친다.
" 일할 수 없는 밤이 오기 전에 (요 9:4)"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우리의 최소한의 필요만을 충족하며 절약하여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성경을 묵상하면 늘 들었던 그 마음, 한마리의 잃은 양을 향한 그 마음을 잃을까 행여 조심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