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선교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여러 개인과 단체가 있지만, 영국에 본부를 둔 WEC과 미국에 본부를 둔 C&MA가 벌인 활발한 선교활동이 큰 축을 이룬다 할 수 있겠다.
이번에는 C&MA 설립자 A.B.Simpson에 대해 나누어보고자 한다.
C&MA(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기독교인과 선교사의 연합)는 1897년 조직되었고, 5년이 안되어 15개 지역에 150명 가까운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1919년 설립자 심슨이 사망할 때에 C&MA 선교사가 사역하지 않고 있는 대륙은 한 곳도 없었으며, 현재는 천명 이상의 선교사가 약 50개국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한다.
A.B.Simpson(1943-1919)은 캐나다 태생으로 캐나다 최초의 남태평양 선교사였던 죤 게디에게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릴 적부터 선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온타리오 해밀턴에 있는 상류층이 주류를 이루는 큰 교회인 녹스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21세에 명망있는 교회가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설교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명성있는 목사였던 심슨은 이후 미국 켄터키의 루이빌에 있는 체스넛 스트릿 교회, 뉴욕에 있는 13번가 교회에서 목사로 섬겼다.
그러나, 계속해서 영혼 구혼, 복음 전파에 대한 부담감과 환상, 신유 등의 영적 체험을 통해 심슨은 선교로의 길로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있었다.
심슨이 선교사의 길을 가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아내였다. 심슨은 30대에 선교사로 나가고자 시도하였었는데, 심슨의 아내는 목사의 아내로 특별히 실력있는 부유한 목사의 아내로 만족하였고 선교를 위해서 어떤 희생도 치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뉴욕 13번가 교회를 사임하였고, 재정 후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심슨은 뉴욕을 거점으로 땅끝까지 이를 결심으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선교에 전적으로 헌신된 교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고, 선교저널을 창간하고, 북미 여러 도시들에서 선교협의회를 창설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하여 C&MA가 조직되게 되었고 뉴욕에 선교사 훈련학교도 설립하였다.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향한 부담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당기고자 하는 소망이 심슨을 사역하게 하였다. 그는 늘 마태복음 24장 14절 말씀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
심슨의 사역은 이후 많은 독립적인 선교회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세운 선교사훈련학교에서 훈련받고 그의 사역을 본 많은 이들이 자신의 부르심을 따라 선교지로 나가는 일로 선교회를 일으키고 섬기는 일로 헌신하였다. 지금도 선교사 훈련학교가 모체가 되어 이후 세워진 Nyack College는 기독교교육과 선교사교육의 좋은 본이 되고 있다.
비록 그는 현장 선교사의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선교의 열정을 이어받은 많은 C&MA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자신의 가정을, 자신의 명예를 희생하며 주의 복음을 위해 일하고 있다.
*** 참 고 ***
선교사 열전 루스 터커 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C&MA 홈페이지
http://www.cmallianc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