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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해의 아이
지은이 돈 리챠드슨
출판사 생명의 말씀사

조봉재(MIR 9기)

소제 : 구속 유비의 원리(the principle of redemptive analogy)
- 영적인 진리를 특정 지역의 풍습에 적용하는 원리


세계에는 타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독특한 삶의 방식을 지닌 여러 나라와 민족들이 있다. 그 중 네덜란드령 뉴기니아 서반부 -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 관할의 이리얀 자야 - 의 사위 부족은 우정으로 친구를 키운 후 배반하여 죽이고 그 살을 먹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위 부족을 대상으로 흔들리지 않는 신앙과 자기 부인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1962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진행된 선교사역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방식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 이후에 저자가 주목한 말씀은 "저희가 핑계치 못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을만한 것을 주셨다."는 말씀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저자는 사탄에 의해 전략적으로 닫혀진 사망의 문화를 열어 생명의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열쇠인 "구속 유비(類比)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한다. 그가 발견한 유비 중 대표적인 것이 '화해의 아이(타로프 팀)'이다.

사위 부족은 카무르, 해남, 요휘의 대표적인 세 마을로 분류된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지리적 경계를 두고있지만 주변의 키야가르, 아토화엠족과의 긴장관계로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보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를 영웅시 할 정도로 진정한 우호 관계란 있을 수 없고 오직 배반과 살인만이 그들이 따라야 할 길이라고 믿어왔다.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통해 정해진 대상자를 배반할 주체를 강제로 지목하는 '와네스'라는 풍습을 따를 정도로 배반을 그들의 사회적 의무처럼 여기고 있었다. 다만 서로의 아이를 상대 마을에 '화해의 아이'로 주는 것을 통해서만 평화가 지켜질 수 있지만 그것도 열악한 기후와 비위생적 생활환경 속에서 그 유약한 아이의 생명이 존재하는 동안만 가능한 것이다. 저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원한 '화해의 아이'로 소개하고 마침내는 식인을 비롯한 다양한 죽음의 구습('게팜아손'- 최대의 슬픔에 도달할 때 영원히 살 수 있는 능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하에 죽은 사람을 둘러싼 스스로도 혐오스러워 할 정도의 절망을 표출하는 장례의식 등)을 가진 사위 부족 내에 자립교회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로 시각을 돌려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 · 불교적 풍습과 샤머니즘적 무속신앙 등의 민족적 종교정서 속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었다. 기독교가 한국의 종교 정서를 극복하고 개조하기에는 아마 110여년의 세월이 너무나 짧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고유의 종교적 정서가 분명히 한국 기독교 교회 안에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서구 유럽의 경우에는 헬라철학을 극복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정착시키는데 300여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장창수 선교사-러시아침례교회 담임목사 역임, '기독교와 민족적 종교정서' 중)

사위족은 이제 막 복음을 받아들인 '어린아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사위인과 그 문화에 대한 존중심과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충성심을 잘 연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부단한 노력을 하였고 구속의 유비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나라와 서구 유럽의 경우처럼 그들의 문화 속에 내재하고 있는 고유의 정서적 영향을 상당기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사역에 동참하며 순응했던 사위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외의 수많은 사위인들은 아직도 그들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잔인한 전통속에서 새로운 영웅이 되기 위해 또 다른 '전설의 창조'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단지 복음을 전하고 현지에 자립교회를 세운 것으로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자부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고 무책임한 생각이다. 이에 더 나아가 사도 바울처럼 방문과 서신을 통해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철저히 양육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몇년전 발표된 선교보고에 의하면 이 지역에 자립교회들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교회는 그들의 멸망의 문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인식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위험스런 혼합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이러한 체계적 훈련을 통해 기독교적 가치관이 그들 고유의 것보다 탁월하다는 사실을 삶을 통해 증명하고 영원한 하늘의 문화를 창조하고 전염시킬 수 있는 '누룩'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새롭게 드리워진 '와네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에 문화선교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 대상은 문명화된 서구의 영향권에 속한 현대 복지국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위족과 같이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오지의 원주민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먼저는 충격적 · 야만적 · 하류라고 비난 할만 할지라도 우리가 문명의 이기를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당연히 따를 수 밖에 없는 그들만의 고유한 생활양식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헌신 된 자들을 보내시는 일뿐 아니라 그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미리 기반을 준비시키는 일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러나 그러한 구속의 유비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저급한 문화를 진보 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능력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빚진 자로서 그 문화를 그리스도의 눈으로 기초까지 파헤쳐 보고 그들 가운데 들어가 말씀으로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은 누군가가 그냥 내버려질 수 있을 정도로 큰 곳은 못되기 때문이다."


[ Webzine MIR 2001년 7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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