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희(MIR)"; $content=" ■ 비행청소년이었던 어린시절 죠지뮐러는 1805년 독일 프로이센에서 한 세무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교회에는 출석했지만 평탄하지 않은 가정환경과 술꾼인 아버지로 인해 교도소까지 자주 들락 거리는 비행 청소년으로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교소소를 왔다갔다 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그에겐 그 안에 내재된 생각은 '나는 도대체 기독교인이면서도 왜 이런 못된일만 저질러대고 있을까?' 하며 남몰래 괴로워하였다고 한다. 이때 한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열심히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키려는 노략과 함께 새벽4시에 일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틈만나면 조용한 시간에 자기의 신앙생활과 앞날의 일을 깊이 생각할수 있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자신과의 싸움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변화되었고, 결국 비행청소년이었던 죠지 뮐러는 1824년 19살 되던해 할례대학교에 입학하였다. ■ 선교사로서의 삶의 전환 할례대학교는 경건주의 운동이 시작된 곳이며, 많은 젊은이들이 학생복음운동을 통해 은혜받고 세계로 나가는 뜨거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런 할례대학교에 그것도 신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죠지는 그리스도를 머리로만 알고 가슴은 늘 텅 비어 있는 듯 하였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진실하게 말씀을 읽고메시지를 듣고 기도하는 경건주의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 비로서 자신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회개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눈물로 기도할 때 그에게도 구원의 기쁨이 임하게 되었다. 그는 이때 '나는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푸른하늘을 넘실넘실 거리며 날아다는 것 같아'고 고백하였다. 그 구원의 감격으로 그는 자신의 삶을 선교사로써 하나님역사에 드리고자하는 영적 소원이간절했다. 그러나 선교사의 길을 가로막는 두 개의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의 애인이 함께 선교사의 선교사의 삶은 포기하고 자기와 결혼하여 아기자기한 가정을 이루길 원했고, 둘째는 장남으로서 선교사가 된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반대로 인한 것이었다.아버지의 말씀에 거역을 하게 된다면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전혀 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유혹을 뿌리치고 죠지뮐러는 선교사로서의 삶을 결심하고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죠지뮐러의 위대한 기도의 삶이 시작케 되었다. 실제적인 생활비와 학비문제를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선교사로써 주님역사에 헌신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저의 아버지는 선교사가되는 것을 반대하여 모든 물질지원을 끊었습니다. 제가 선교사로써 헌신하기 원하시는 주님 제게 필요한 물질을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선교사로 헌신코자 하는 그의 절박한 물질문제를 즉시 응답해 주셨다. 다음날로 아르바이트자리를 얻어 어려움없이 대학을 졸업케 도와주셨다. ■ 기도로 설립한 고아원 졸업후 죠지뮐러는 영국으로 건너가 선교협회로부터 목사안수를 받고 데번항구에서 잠시 목회를 하다 1834년 봄 하님의 뜻을 따라 브리스톨로 이주케 되었다. 그런데 그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콜레라가 도시 전역을 휩쓸고 지나가게 되었다. 콜레라가 지나간 브리스톨은 가난과 무지로 허덕였다. 무엇보다 먹지못하는 육체의 고통과 배우지 못하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신음하는 브리스톨을 위해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케 되었다. 처음 그는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차음 그의 관심이 학교에서 고아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 고아들을 수용하고있는 구빈원의 실상은 아이들이 먹지못하여 해골처럼 말라있거나 병이 들어 퉁퉁 부어있는 현실이었다. 죠지뮐러는 이번에는 고아원을 설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영접했으나 반대는 거세게 일어났고 그는 이제 겨우 브리스톨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입장이였으므로 그에게 고아원을 세워 고아들을 돌볼 많은 물질이 없었다. 학교를 세우면 공부만 가르치면 되지만 고아원은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공부도 가르쳐야 하므로 많은 물질이 필요한데 어디서 물질을 얻느냐는 주변의 많은 충고와 비난을 받은 곳이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면 뭐든지 다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도를 하면서도 죠지뮐러는 내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두렵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시편 81편 10절[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말씀을 묵상하다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는 말씀의 힘을 덧입어 혼자 조용히 부르짖는 기도를 계속해서 드릴수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고아원을 싶어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제 마음 가운데 불러 일으켜 주신 소원임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갔다. 저는 오직 당신의 종으로만 일할뿐이라며 외쳐 기도하였다.그리고 그 기도의 단을 쌓아 나갔다. 사람들은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고아원설립을 위해 바자화나 모금운동을 하자고 제안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이 맞는 일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원하는 사람들의 성금과 성물로만 이일을 하고자 거절했다. 그리고 분명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기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었다. 드디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시작했고. 10파운드를 가져온 부인을 필두로 일생을 벌어 모은 100파운드의 돈을 가져온 부인도 있었다. 물질뿐 아니라 고아원에 필요한 작은 물품들까지 지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고아원이 이렇게 세워진 후에도 어려움은 찾아왔고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려 기도하였고 그 시련들은 오직 하나님을 위한 일이기에 기꺼이 견뎌내며 앞으로 나아갈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끊임없는 기도로 죠지뮐러는 단순하게 고아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간구하여 받았다. 결국 그는 기도로 고아원을 계속해서 성장시켜 애쉴리 다운가에 2000명의 고아들을 수용하는 고아원을 설립하여 섬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처음 그를 가리켜 미친자라고 부르기를 서슴치 않았지만 죠지뮐러는 이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 확신이 들었을 때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꿋꿋이 혼자라도 기도의 단을 쌓을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직 기도만으로 누구도 상상치 못할일들을 해 내었다. 그는 일생동안 무려 5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은 기도의 큰 믿음의 용사였다. 오직 기도로서 수천명의 고아들을 한번도 굶기지 않고 먹일수가 있었다. 그리고 세계각지를 돌며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도선교사로 살다가 88세에 그렇게 부르짖어 찾던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 $content=str_replac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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