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 노아 이후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향을 떠난 한 사람 아브라함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란을 75세에 떠났다(창12:4). 아브라함의 고향 땅의 이름 우르는 그 명칭 자체가 본래 '빛' 혹은 '불'이란 말로서 그것은 불을 숭배하는 우상종교의 의식에서 생겨진 말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러한 고향을 떠나기로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에 생각했던 것 같다. 창세기 11:31에 "아브라함은 그 아버지 데라와 그 아내 사래가 조카 롯과 더불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가고자 하더니 도중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라고 했다.
마침내 그 믿음은 이루어져서 아브라함은 드디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그러나 가나안 땅이 그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사도행전 7:5에 보면, "그러나 거기에서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그에게 주지 아니하시고..." 라고 했다. 낯 설은 그곳에 무서운 기근이 들고 살길이 막연했던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닥친 큰 시험이었다. 그는 이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창12:10에 보면 "애굽으로 떠나갔다"고 했다. 애굽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아니었으면(창12:17 참고) 그는 거기에서 아내를 잃어버렸던가 또는 자기의 생명을 잃었을 뻔했었다.(창12:12-20 참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겨서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소유까지도 풍성케 했다.(창13:16) .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돌보심이 이러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금 애굽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다시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탈출(여행)을 명령하신다. 인도자 모세를 세우시고 애굽(세상)을 탈출하게 하신다. 그리고 본래의 땅 이스라엘로 향한다. 수 없는 고행의 길이었음을 말할 나위 없다. 모래 바람과 더위에서 싸워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없었다면 사막가운데서 굶어죽거나 더위에 지쳐 모두 죽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여정을 지키셨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객지생활을 3년여 동안이나 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전승에 의하면 12제자 모두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드로는 로마의 감옥에서 바울과 같이 순교했으며 신빙성은 약하지만 도마는 인도가 땅 끝이라고 생각하여 그곳까지 가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고향을 등지고 타지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는 것이다.
또 역사는 한참을 지내왔지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되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자유롭게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건 모험의 여행을 감행했다.
1620년 8월 15일 사우샘프턴을 출항했으나, 같이 출항했던 스피드웰호가 누수(漏水) 고장을 일으켜 다시 돌아와, 같은 해 9월 16일 포도주를 나르던 선박 메이플라워호(Mayflower)단독으로 영국의 플리머스항(港)을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첫해 추수한 곡식은 턱없이 부족하여 겨울이 되면 얼어죽고,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때 어린아이 하나가 나서서 이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불평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되다고 말하여 그 날을 기념하여 '추수 감사절'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은 결국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았던 아메리칸 대륙을 일구어 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나라 미국을 건설했다.
1866년 병인교난 중 일어난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에서 그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안수 받고 온 최초의 목사였다. 큐츠라프 목사가 아산만에 온지 33년 만에 온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는 스코틀랜드 사람 토마스이다. 토마스 목사는 런던 선교회에서 1863년 중국 상해 선교사로 파송되어 왔는데 1865년 중국 지프로 옮겼다. 이때 한국 선교를 자청했다. 1866년 제너럴 셔먼호가 한국을 간다는 소리를 듣고 통역관으로 자청해 왔다.
토마스 목사는 배에서 끌어내 한강 근처에서 목을 처 죽였다. 목을 친 사람은 박춘곤인데 나중에 회계하여 1899년 세례 받아 평양 초대 교인이 되었다. 그 후 평양은 한국 개신교의 예루살렘이라 일컬어지는 부흥이 일어났다.
헨리 게하트 아펜젤러(H. G. Appenzeller)는 1858년 2월6일 펜실베니아의 서더톤(souderton)이란 마을에서 태어난 이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동양의 한 작은 나라를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함께 찾는다. 성서번역위원회 참석차 목포로 가던 중 1902년 6월 11일 선박충돌사고로 하나님의 부름 받아 군산 앞 바다에서 순교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여행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선교사는 현재 대략 10,0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숫자는 해외 선교사 수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믿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또 함께 믿고 하나님의 형제 자매를 얻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또 떠난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 해도...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이사야 52장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