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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와서
김영희(MIR)




서대문 형무소에 탐방을 다녀 왔다. 다른 사람들은 형무소 하면 왠지 낯설고 긴장되기 마련이겠지만, 약 3년 동안 교도관으로서 근무했던 나에게는 큰 느낌으로 다가 오지 않았다. 형무소라는 말은 1960년대에 교도소라는 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서대문 형무소는 그 역사적인 가치 때문에 아직도 서대문 형무소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리라...

독립문 역에서 내려서 2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왼편에 공원이 있다. 그리고, 그 공원 너머에 높은 벽으로 둘러쳐진 - 현재는 정문 부분만 남겨 놓고 모두 헐어버렸지만- 서대문 형무소가 보인다.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왼편에 건물이 하나 있는데, 요즘은 관리사무소로 쓰이겠지만 예전에는 소장실과 서무과 들이 있었던 자리다. 교도관이라면 이런 건물 배치가 매우 낯익다. 지금도 이런 배치는 거의 모든 교도소에서 공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1,100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맨 처음에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다. 예전에는 - 1987년도에 서울구치소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전에는 보안과 건물로 사용이 되었다. 보안과는 교도소에 있는 여러 과중 가장 중요한 과이다. 재소자 전반에 대한 업무를 모두 관장한다. 그래서, 보안과장은 교도소장 다음으로 교도소내에서 파워가 있다.





그 뒤편으로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예전의 형무소 건물들이 보인다. 1980년 대까지도 사용하던 건물들일 것이다. 내가 서대문형무소를 탐방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빨간 벽돌이다. 그 유적지 내에는 빨간 벽돌로 모두 길을 깔았는데, 그 벽돌을 보면 가운데에 무슨 무늬가 있다. 이것은 바로 "경"이라는 글자이다. 이 벽돌들이 바로 당시 일제시대 때에 이곳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들이 만들던 벽돌이다. 그 벽돌이 이제는 우리들이 밟고 다니는 길에 깔려져 있는 것이다.

빛 바랜 건물 안에 들어가니 특유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낯설을 지라도, 나에게는 익숙한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가운데 난 길을 중심으로 양편에 재소자를 수용하기 위한 수용방이 나란히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독방인데, 독방은 요즘의 교도소에도 있다.

크기도 거의 비슷하다. 아마 아직도 그런 독방이 있다는 것을 알면 구경온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서대문 형무소에는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예전의 교도소들은 모두 그런 독방들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빛까지 못들어오게 하지는 않는다.

방의 구조도 별 차이가 없다. 현재의 교도소의 건물과 유사한 점들이 매우 많다. 하긴 15년전에만 해도 사용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또 흥미를 끌었던 것은 사형장이다. 사형장은 높은 벽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사람을 제압한다. 그 음침한 분위기는 다만 오래된 나무에서 느껴지는 느낌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형장 뒤편으로 긴 굴이 있는데, 이 굴은 사형당한 재소자들을 몰래 공동묘지에 갖다 묻기 위한 비밀통로라고 한다. 그 굴을 보고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빠져들어가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이 굴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을까?



교도관이었던 만큼 내 생각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이 서대문형무소에서는 많은 독립열사들이 투옥되어 왔고 또한 소리소문도 없이 죽어나가기도 했다. 그러면 그런 고문이나 사형 등을 행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일본사람 들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당시의 교도관들은 대부분 한국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교정적 공무원이다. 이들은 나라의 녹을 받으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일은 나라와 민족에 대한 배신적인 행위였다. 이들은 어디에서도 당시 자신이 서대문형무소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많은 갈등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

난 그들을 생각안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만약 당시의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난 사실 확실하게 그 직업을 뿌리칠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우리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관여하시게 되면 그 답은 명확해 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명확하고 분명하다. 여기에는 어떤 선택적인 고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선택에 놓여져 있을 때 내가 갈 길은 명확하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확한 길을 제시해 주신다.
이 명확한 길은 인간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불명확한 것들 사이에서 내가 과연 어느 길을 가야할지 망설일 때가 있다.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면서 조용조용히 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조용히 묵상해 보자. 그리고, 내 욕심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렇게 된다면 그 뒤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이다.


[ Webzine MIR 2002년 3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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