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긴 여행을 시작한 것일까?
그리고 그는 로마의 여행지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을 맞이한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것이다. 아마도 그의 여행은 돌아올 것을 크게 염려하지 않고 길을 떠난 사람 같이 보인다.
신약시대의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외의 지명은 소아시아 지방 이름뿐이다. 이 지명들은 모두가 바울이 여행하며 당도한 곳들의 지명들이다. 바울이 이곳에 들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성경에는 이곳 지명들의 이름이 언급될리 없다. 특히 7곱 교회가 세워졌던 곳들의 이름은 요한계시록에까지 등장하여 이후에 나타날 여러 교회의 모습들을 설명하며 바른 신앙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1, 2, 3차 선교여행과 마지막 로마 여행을 마지막으로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접는다. 한마디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이방인의 사도(롬 3:29, 11:13, 16:4)가 되기로 작정하고 길을 떠나 평생을 여행지에서 보낸 샘이다.
오늘날과 같이 발전된 교통수단으로 이동한 것도 아니다. 당신의 교통 수단이란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당나귀나 아니면 그냥 걸어가야 했다. 아니면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지형 상 여행하기 편리한 배를 많이 탔다.
1차 여행 때는 바나바와 마가와 함께 실루기아 안쪽의 시리아의 안디옥(1차여행지의 안디옥 동명이 두 곳이 나온다. 출발한 곳 시리아안디옥과 도착한 곳 비시디아안디옥)에서 살라미가 있는 구브로(키프러스) 섬에 배로 도착했다(이곳은 바나바의 고향이며 전설에 의하면 바나바는 이곳에서 전도하다 유대인의 폭동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첫 번째 여행의 길이 배를 이용한 향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섬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바보까지 육로를 이용해 여행하였다. 당시에 이 섬에는 유대인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바울은 이곳에서 바예수를 꾸짖고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전도하여 신자를 만든다(행13:6, 11). 이제 여행의 불이 붙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배로 버가에 도착한다.
바울은 이곳에 도착하자 엄청난 로마의 위용에 맞닥치게 된다. 이곳에는 로마가 세운 성채와 성벽, 경기장이 있는 거대한 도시를 만나게 된다. 소아시아의 7곱 교회중 하나인 버가모 교회가 이곳에 세워진다. 교회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의 전도가 그 시작이 되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바울은 구브로(키프러스) 섬을 통해 이제 막 도착한 버가에서 교회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행이라면 우리도 한번 떠나 보고 싶지 않은가?
바울은 버가(바닷가 근교)에서 더 내륙지방인 북쪽의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한다.(행 13:14-50)
이 도시는 남부 갈라디아 지방의 도시로 로마 영토의 중요한 도시였다. A.D. 46년 늦여름이나 혹은 가을에 도착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읽은 글은 아마도 신명기 1장과 이사야 1장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은 후에 관례대로 회당장들이 보내어 그들로(Visitors) 하여금 백성들에게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청했던 것이다.
누가는 이 방문이 바울에게 있어서 전도방향을 돌리는 큰 기점이 되었음을 명백히 알았으므로 회당에서 바울이 연설한 것을 자세히 기록하였던 것이다.
바울이 전한 것은 율법으로는 구원을 줄 수 없고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세례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해 주셨음에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분을 거절하였다(행 13:27-29).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대인의 거절이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복음으로 서게 된 것이다(행 13:30-41).
이렇게 전한 바울의 설교는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주의에 젖어있는 유대인들의 반감을 크게 일으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유대로 부터는 외딴 곳이었고 당시의 역사적인 다양한 이유때문에 정통 유대주의에 편견이 없는 곳이었다. 이웃 지방인 루스드라(행 16:1)에서 온 디모데가 혼혈아였다는 사실은 남부 갈라디아 지방의 회당이 자유주의적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적대 감정을 보인것은 단순히 바울의 말을 들으려고 많이 모여든 이방인들 때문이었다(행 13:45). 팔레스타인에서처럼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했다.
이 유대인들은 단순히 복음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선교에 대해서 방해하기 시작했다. 소아시아에서 여인들은 많은 권력과 지위를 누리고 있었는데 그러한 여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을 자주 핍박한 사실은 사회의 핵심층들이 싶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암시해 준다.
이 결과 90마일이나 물러가게 되었는데 거기서(이고니온)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곳에서 전도하여 많은 성도를 얻고 오래 동안 있어 이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니 완악한 유대인들이 관원과 이방인을 선동하여 능욕하고 돌로 치려하여 루가오니아 지방으로 피하였다(행14:1-6). 바울은 2차 여행 때 이곳에 다시 들려 청년 동역자 디모데를 얻었다(행16:1-2).
바울은 이어 더베까지 갔는데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이들은 루가우니아의 방언을 쓰고 있었다(행14:11, 16:1). 아마도 오늘날 우리들도 언어문제로 복음을 전하는데 때로는 한계에 부딪히는 문제를 바울도 역시 경험했던 것이다.
바울은 다시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을 경유해서 앗달리아 항구를 통해서 처음 출발지인 안디옥에 도착한다(행14:25).
바울은 여행 때 선교활동 중 이방인 회심자와 유대인의 율법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가 야기되어 유대교의 전통을 고집하는 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회의 때 이방인 선교에 관한 문제를 협정을 지었다(행 13:4-14:28).
바울은 1차 여행은 처음이며 제일 짧은 여행이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얻고 그는 이제 목숨이 살아있는 한 주님을 위해 선교여행만을 하다가 죽겠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루살렘 돌아온 그는 여러 가지 일을 정리하며 다시 2차 여행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바울은 이번 여행에서 복음이 쉽게 전달되지만은 않는다는 여러 사건과 유대인들이 곳곳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방해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씨는 뿌려지기 시작했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 경로
안디옥, 실루기아 -> 구브로섬(살라미, 바보) -> 버가 -> 비시디아 안디옥 -> 이고니온 -> 더베 -> 이고니온 -> 비시디아 안디옥 -> 버가 -> 앗달리아 -> 지중해 -> 안디옥, 실루기아
참고자료
http://kcm.co.kr/ency/p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