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희(MIR)"; $content=" 1.열정적인 믿음으로 따돌림 받던 어린시절 허드슨 테일러는 1832년 5월 21일에 영국 요크셔주 반슬레에서 태어났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어린시절부터 복음적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5살때부터 어린동생들을 앉혀놓고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다른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되면 중국으로 가겠습니다.' 그런한 그를 보며 그의 부모는 그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더욱 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허드슨은 11살이 되어 학교에 다니면서 믿음을 잃고 마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학교생활속에서도 평상시 자신의 믿음대로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가 학교에서 책상에 엎드려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친구들이 비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고 15살의 나이에 한 은행에 취직하였습니다. 그는 선배 동료들의 나쁜 영향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 하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징계로 시력이 나빠져 실직하게 되어 무의미와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 고통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허드슨의 부모와 누나의 기도로 마침내 다 이루었다 한 말씀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구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모셔들이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17살이었습니다. 2.선교에 대한 헌신과 중국선교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모아서 남부럽지 않게 사느냐 하는데 온 관심을 쏟았던 그가 이제는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 주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살던 청소년 시기를 지나고 다시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선교사로 부르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기본적인 훈련에 착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올바른 정신자세와 생활태도 그리고 건강한 몸을 위해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잠과 음식을 절제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교회생활과 전도생활을 충실히 하였습니다. 중국어를 배우고 의술을 익혔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고자 빈민촌으로 거처를 정하는 장막훈련을 하였습니다. 선교에 너무 열정적인 그를 보며 사랑하는 여인은 그의 청혼이 부답스럽다며 거절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중국선교냐 결혼이냐 하는 문제 앞에서 그를 구원해주신 하나님, 삶의 방향을 정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시험을 이겼습니다. 허드슨은 물질이 전혀 없는 형편에서 중국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기도만이 이 문제의 해결책임을 믿고 기도로써 물질을 공급받고자 하였습니다. 한번은 허드슨 테일러가 커다란 병원에 실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중국선교협회로부터 생활비를 부담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을 수락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가 게을러지고 그만큼 중국선교에 대한 훈련도 안일해질까 두려워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마침내 허드슨이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약 다섯달간의 위험한 항해를 마치고 중국 상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가 상해에서 자리잡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와 방불한 곳에서 불안감을 느꼈고 물가가 폭등하여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는 별수없이 누더기만 걸치고 거치처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서는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심한 먼지 때문에 눈병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땅에서 사는 가련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복음밖에는 희망적인 소식이 없다고 생각한 허드슨은 한차례의 전도여행이 끝나면 미처 쉴 사이도 없이 다음 차례의 전도여행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렇게 강행된 전도여행은 15개월동안 무려 10차례 이상이나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중국어 신약성경 1천 8백권과 2천권이 넘는 전도 책자들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중국인들은 문맹자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만큼의 책자를 나누어 주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26살이 되자 허드슨은 영적으로 스승이나 다름없는 윌리암 번즈 목사와 동역하여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내륙지방으로 진출하였습니다. 이때 노예 매매가 성행하는 광동성 산두지방에 위험을 무릎쓰고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 지방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온종일 복음을 전하고 저녁 때 거처로 돌아올 때는 몸이피곤에 지쳐 다리를 겨우 끌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댓시간 후면 다음날의 전도를 위해서 다시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이후 내륙선교의 Power Station이 된 영파지방에 옮겨온 허드슨은 파커박사를 동역자로 얻어 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때 외국인 학살 계획이 세워져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 영파에서 동역자 다이어양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생긴 난민들을 돕고자 무료 급식소를 열었으며 교회를 맡아 시무하였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는 주와 복음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한 결과 현지인 동역자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으로 일한 결과 결핵을 앓게되어 영국에 귀국하였고 여기에서 '중국의영적 수요와 요구'라는 논문으로 중국선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중국내륙선교회'를 조직하여 선교역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허드슨이 34살의 나이로 중국에 2차 전도여행을 갈때는 지망선교사 16명이 동행하였습니다. 이들의 헌신으로 1년만에 항주에 세운 교회당에 모이는 신자들의 숫자가 무려 1천 5백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개척지 양주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에서 맏딸, 막내아들 그리고 헌신적인 동역자를 차례로 잃었으며 이 와중에 천진대학살 사건을겪었습니다. 그는 성경 여백에다 다음을 같은 기도문을 적어 두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앞으로 1백 명의 선교사들을 추가로 더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저로 하여금 주님의 큰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소서.' 그가 기록한 이 기도문이 기독교 신문에 기사화됨으로 영국인들 안에 중국 선교에 대한 관심의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가까스로 건강이 회복되자 45살의 나이로 다시 중국을 향해떠났습니다. 그는 중국선교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자였습니다. 허드슨은 여러선교지역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놀라운 진리를 깊이 터득하게 되었는데 이는 선교사역을 추진시키는 원동력은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헌신으로 북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호주, 뉴질랜드에 중국선교회 지부가 설립되고 이렇게 하여 한때 중국에 모여든 선교사는1천명을 넘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선교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한 지방에 이르자 성문 위에서 금빛으로 '내륙 은인'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고있었습니다. 그는 호남성에서 73살의 나이로 열정적인 전도자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 $content=str_replace("\n","
","$content"); echo "
"; include "../top.html"; echo "
"; include "../left.html"; echo "

$ziptitle
$zip
$reporter


$content
"; include "toindex.htm"; include "../copyright.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