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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난 사람들

바울의 선교여행(2-1)
이영제 목사







한국컴퓨터선교회 회장 이영제 목사


바울의 선교여행(2-1)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교회는 이방선교의 기초를 놓은 교회이다. 이 교회는 예수 당시에는 로마 제3도시였고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 성도가 4방으로 흩어져 이성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교회를 안디옥 교회를 설립하였으니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 이후에 최초의 교회요 특히 이방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바울은 이 교회에서 1차 선교여행을 떠났었고 2차선교여행의 시작지점이 예루살렘으로 말하기도 하나, 예루살렘은 1차 선교여행 때의 보고와 의논을(행 15:4-29)하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선교여행을 떠난 시작점은 바울의 1,2,3차 여행이 이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안디옥 교회야말로 선교를 지원하고 기도한 최초의 교회였던 것이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도중에 돌아온 마가의 문제 때문이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이 문제를 솔직히 기록하고 있다. 행39절에 사용된 파록수스모스(격한 불화)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 6:14에 오직 한번 더 나오는 '하늘이 떠나갔다'고 기록된 것과 같은 단어이다. A.V.에서 '심히'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은 바른 해석이라고 본다. 바로 이 마가를 또 동행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바나바와 동행하지 않고 바울이 주동이 되어 떠나는 여행이 되었다.

2차여행의 길은 먼저 육로로 시리아와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에까지 들어가는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2차 여행을 유럽여행으로 말하기도 한다.
안디옥을 출발한 바울과 실라는 아마누스(Amanus)협곡과 시리아의 관문을 지나 길리기아로 들어갔다. 이 지역은 소아시아와 중동에서 너무나 강했던 헬라문화의 번창 하에 서서히 들어갔던 도시였다. 페니키아인들의 영향이 컸고 그래서 선박 조종술의 전통이 사라졌다. 이 해안 지방은 1세기 전 지중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해적함대의 소굴이었다. 이렇게 무법천지였던 이 지방에 로마의 강력한 통치에서 제재를 받았지만 당시의 화폐가 보여주듯 동방 이교주의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은 역류는 남아있었다. 바울의 고향이 있는 이 다소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두고 정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바울은 자신의 고향에 특별한 일이 없이 지나가는 정도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게 누가가 기록한 사실을 보아 오랫동안 머물렀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면 이렇게 짧게 기록할 수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갈라디아 지방으로 여행을 계속한다. 이 지역은 1차 선교여행 때 들린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의 도시들은 더베와 루스드라, 이고니온이 있는데 더베와 루스드라는 단일 행정 구역이었고 루스드라는 디모데가 태어난 고향이었다.
바울과 실라가 처음 기착지인 더베와 루스드라지방에 이르니 거기에서 다시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으나 아버지는 헬라사람으로 그 근방 교회에서 디모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칭찬받는 착실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할례 받지 않은 유대인, 다시 말해 전통적인 유대인의 눈으로 보면 순수하지 못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믿음의 성장이 무척이나 빨라 다른 어떤 이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소화해 내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어머니 유니게와 할머니 로이스의 도움으로 구약성경과 이방문화에 물들지 않게 키워진 믿음의 환경 때문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디모데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즉 자신은 커서 유대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헬라인이 될 것인가? 하는 - 그것은 곧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좌우하는 - 심각한 고민 끝에 그는 결국 율법에 젖어 사는 유대인이기보다는 자유로운 헬라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3년 전 그는 바울을 만남으로 다시금 그의 삶의 중요한 전환을 맞는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의 복음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헬라인으로서의 자유도 이제 더 이상 복음 앞에 서게 된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자유, 그는 진리의 자유를 보았던 것이었다. 이 후 그는 그의 어머니 유니게와 함께 루스드라 지방을 중심으로 주의 교회를 열심히 섬겨왔던 것이다.

바울과 디모데의 만남은 2차 선교여행의 시작점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이며 바울과 디모데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아시아의 평온 지역을 가로질러 드로아에 도착한다.
렉함(Rackham)이라는 학자는 사도행전 16:6-10구절들을 사도행전의 새로운 부분이 시작되는 구분되는 구절로 말한다. 이러한 이유는 아시아에 속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의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브루기아는 역사와 전설에서 고대 소아시아 지방의 두드러진 지방이었다. 이 지방은 내륙지방과의 고대 무역 통로이었고 고대 고고학에서 일찍이 문명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였다. 로마 시대에 이 지역은 아시아와 갈라디아 지방들 안에 포함되었다. 고대 부족 이동으로 소아시아 지방에 침입하여 갈라디아라는 이름이 주어진 북쪽은 비문명적인 부족 민들이 산재해 있던 곳이며 남쪽은 교양 있고 학식 있는 문명화된 지방이었는데 안디옥과 이고니온 도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 지역을 통과하면서 로마지방을 가로질러 갔지만 여기서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다. 어떤 형태의 저지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필자의 생각으론 1차 선교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었는데 이것이 이곳까지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어쨌든 바울은 이러한 문제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생각했다. 바울 일행은 무시아를 지나서 비두니아 북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방해가 일어나 바울은 알렉산드리아 드로아의 서방으로 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았다. 당시에 이 지역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비두니아에는 플리니(Pliny)의 유명한 편지의 증거가 있다. 이 로마 집정관은 60년 후에 편지를 썼는데 그의 다스리는 지방에서 기독교가 정착되었고 그의 치하에서 제지를 당했다는 것을 기록했다.(기독교인들의 생활 등에 대해서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것이다.) 이로 본다면 바울은 이 지역에 복음이 전달되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지만 방해하는 사람들을 크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순순히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이 지역을 통과했는지 모른다.

바울은 이렇게 하여 드로아(행 16:9-11)에 도착한다.
로마 제국의 중심이 되는 간선 도로를 따라 선교하려던 바울의 편에서는 계시의 빛을 받아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9절) 모든 것이 명백해 질 때까지는 어둡고 답답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바울이 드로아에 도착하여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는 역사를 이루게 한 것이다.

2차 선교여행의 바울의 목표 공략지역은 아시아의 주요 거점도시였던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울은 제대로 복음을 전달도 못해보고 다양한 방해의 공작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러나 이 바울의 계획을 변경하시며 더 좋은 길을 안내하신다. 그것은 유럽으로 바로 들어가 수 있는 드로아로 향하게 하셨던 것이다. 어떤 계획이나 일에 집착할 때 우리는 그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고 나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금방은 알 수 없지만 그 길을 방해받게 되고 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나 그의 결국은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지 못한 더 좋은 길로 안내하신 다는 것이다.

* 다음 편
2차 선교여행 중에 최초의 유럽여행을 다루게 된다. 유럽의 첫 기착지점은 빌립보였다. 이곳은 의학의 본거지요 누가의 고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 Webzine MIR 2002년 5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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