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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OMAN)
MIR 11기 박정은

오만(OMAN) 국기



  • 국가개요

  • 국     명 : 오만 (OMAN)
    수     도 : 머스켓(Muscat, 60만명)
    면     적 : 309.500㎢(한반도의 약1.4배)
    인     구 : 약225만명
    종     교 : 이슬람교(이바디 파가 다수를 이룸)
    주 요 도 시 : 살라라(Salalah), 수르(Sur), 니즈와(Nizwa), 소하르(Sohar)
    주 요 민 족 : 아랍족(Arab)
    주 요 언 어 : 아랍어(영어도 통용)



  • 오만의 역사

  • 오만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비교적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기원전 2세기부터이다. 이때부터 오만 영토로 서쪽의 예멘 지방과 북쪽의 아라비아반도 북부에서 아랍인이 이동해 정착하였다.
    그러나 이 땅은 7세기에 이슬람교로 개종될 때까지 페르시아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있었고,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파라지'라고 하는 지하수로에 의한 관개(灌漑) 시스템(이란에서 카나트라고 하는 것과 같다)은 이 시대에 페르시아인이 만든 것이다. 사실 BC 9세기부터 아랍인들이 오만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남서 아라비아에서 온 가흐탄족과 북서 아라비아에서 온 니자르족 등 뚜렷이 구별되는 두 종족이 있었는데, 이 두종족집단 사이의 대립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만 역사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7세기까지 오만은 종족간의 전쟁과 페르시아인의 침입에 시달렸다. 오만은 예언자 모하메드가 살아있을 때 이슬람으로 개종하고(630년) 페르시아인을 추방했다. 무하메드 사후에는 혼란을 틈타, 혈통으로 계승되는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교의 알파가 오만에서 세력을 넓혔다. 이 알파는 후에 이바드파로 불리었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만의 주요 종파로 자리잡아 왔다.
    751년 이슬람교의 카리지트 교파를 받아들인 오만인들은 성직자인 이바드들을 중심으로 다시 모여, 즐린다 이븐 마수드를 이슬람교의 정신적 최고 지도자인 이맘(Immam)으로 뽑았다. 그뒤 1154년 비누 나반이 왕조를 세울 때까지 이맘의 통치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1428년 이후 이맘들은 자신의 권력을 다시 선포하고 왕에게 도전했다. 11세기경까지가 이바드파 오만의 제1차 번성기로 당시 아라비아 만의 제1의 항이라고 하는 소하르 항을 거점으로 인도 서해안과 아프리카 동해안 사이에서 활발히 교역을 펼쳐 각지(특히 아프리카 동해안)에 오만인의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10세기까지 소하르가 번성했고, 9세기에는 중국 광동까지 항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1세기 경부터 소하르를 중심으로 한 오만의 해안지대는 자주 외국(주로 페르시아)의 침략을 받아 14세기부터는 호르무즈 국왕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8세기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선거를 통해 이맘을 선출하였는데, 이 이맘은 내륙부에서 세력을 지키는데 지나지 않았다. 이 시기에도 동아프리카에 있던 오만의 식민도시는 인도양 무역으로 계속 번영하였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항로를 발견한 포르투칼인들은 1507년 동서무역의 거점으로 머스켓을 점령했다. 포르투칼의 지배는 그 후 약150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1624년 이맘으로 선출된 나소르 이본 무르시드는 그때까지 족단위로 산발적으로 포르투칼에 대항해오던 오만을 통일하는데 성공하여 머스켓 반환전쟁을 개시하였다. 그는 1649년 사망했지만 그의 후계자가 그의 의지를 이어 받아 다음해에 포르투칼 세력을 추방하였다. 무스카트의 슐탄은 그 후 한동안 그 세력을 신장시켜 1730년에는 모가디슈, 몸바사, 마피아섬의 잔지바르 등과 동아프리카의 포르투칼 식민지등을 정복하였다.
    한때는 이란인이 침입하여 왔지만(1741-43) 현 왕조 알 아부 사이드(家)가 발흥하여 이들을 축출하였다. 1856년 슐탄의 사후에 영토계승분쟁이 일어났으며, 영국의 조정으로 잔지바르가 무스카트의 슐탄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세기 초 무스카트는 동아프리카의 무스카트오만領에서 수입한 흑인노예의 유력한 시장이었지만, 1922년에 이르러 영국은 그의 해외속령(海外屬領)과 그리스도국교간의 노예매매를 금지하는 조약을 맺고 다시 1951년부터 1951까지의 수호통상조약(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하여 오만은 영국의 사실상의 보호국으로 간주되었다.
    20세기 초에 무스카트의 슐탄이 중앙집권적 지배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니즈와의 이맘과 분쟁을 일으켰으나 분쟁 결과 20년 슐탄은 이맘에 대하여 그의 신도(信徒)에 대한 전통적 지배권을 인정하게 되어 한동안 양자의 조화공존(彫花共存)이 계속되었다.
    1937년 슐탄으로부터 오만 영토의 석유이권(石油利權)을 얻은 오만석유회사가 제2차 세계대전 후 탐사(探査)를 개시하였을 때 이맘은 자기의 통치지역에 대한 슐탄의 주권 주장을 거부하고 탐사에 항의하였다. 1954년 이맘 칼리브가 무력투쟁을 전개하여 동생 타리부는 카이로로 망명하여 오만 이맘청(廳)을 설치하고 분리운동(分離運動)을 시작하였다.
    1960년 아랍 10개국은 오만 문제를 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연합의 의제로 채택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오만문제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그 보고서에 근거하여 1965년 12월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오만국민의 민족자결권(民族自決權)과 독립을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1970년 7월 족장단(族長團)이 슐탄 사이드의 퇴위를 강요하여 그의 아들 카부스 빈사이드를 계승시켰다.
    새로운 슐탄은 선더스트 영국사관학교 출신의 계몽군주(啓蒙君主)로, 모든 왕족을 통합하여 지배층의 지지를 받았으며 망명정치가의 귀국을 호소하였다. 또 정치범을 석방하였으며 동시에 국정(國政)의 근대화와 민주화를 도모하였다. 중세기적 쇄국체제(鎖國體制)로부터 탈피한 신체제하의 오만에 대해서 근대적 신뢰가 높아져 1972년 초에 이르러 UN에 정식 가입했으며, 1981년 페르시아만 협력회의에 창립회원으로도 참여했다.


  • 지리적 위치

  • 아라비아 반도의 동남단 북위 16∼26도, 동경 51∼59도에 위치하고 있는 오만의 면적은 271.949㎢(국경선이 확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아님)로, 한반도의 약1.4배에 해당한다. 오만과 페르시아 만 사이의 무산담 반도 북단에 자리잡은 루우스알 지방('산꼭대기'라는 뜻)은 본토와 떨어져 아랍에미리트와 맞닿아 있지만 오만 영토에 포함된다. 오만 본토는 남서쪽으로 예멘, 서쪽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북서쪽으로 아랍에미리트, 북쪽으로 오만 만, 남쪽과 동쪽으로 아라비아 해와 각각 이웃한다.


  • 자연환경

  • 오만은 북부 수하르에서 무스카트까지는 약 16Km의 너비로 이루어진 평탄한 해안평야가 이어지고 있으며 해안평야의 내륙부에는 북서부로부터 남동에 걸쳐 아흐다르산맥이 오만만과 나란히 달린다. 최고봉은 샴산(3.019m)이고, 이들 산지는 거의 불모(不毛)의 암석지대로 지하수가 풍부한 지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내륙부의 고원은 평균해발고도 350m이며 암석질의 토양으로 구성된 이 고원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룹알할리 대사막과 연결되어 있다. 남서부의 도피르지방의 해안 부근은 볼모의 황무지로서 거주에 부적합하지만 남예멘에 가까운 살살라 부근은 비교적 비옥한 토양의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 민족

  • 일반적으로 오만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인종적, 역사적, 지리적 배경으로 크게 구별하면
    ① 고대부터 해안지대에 살며 농경, 어업에 종사하고또한 대형선박을 타고 인도양을 무대로 활약했던 해양민족형 아랍인.
    ② 사막의 베드윈
    ③ 예전의 오만령(領) 잔지바르(현 탄자니아의 일부)에서 이주해온 아프리카 흑인
    ④ 오만령(領) 발루치스탄(편 파키스탄의 일부)에서 이주해온 발루치인으로 나뉘어진다. 인구의 대부분인 ①,②는 아랍인이고 비아랍의 오만인 ③,④는 소수이지만 대개 교육수준이 높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도시의 중앙기관과 상사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도시부를 중심으로 인도,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주재자 약 25만명 가운데는 인도인이 15만명, 파키스탄인이 4만명 정도이다. 영국인은 4,000명 정도 된다.


  • 기후

  • 연중 고온건조하며, 해안지방은 습도가 높다. 특히 해안지방의 여름기온은 5∼10월까지 37℃이상이 되며, 겨울기온은 17℃ 정도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이며, 도파르지방에서는 몬순의 영향으로 6∼10월까지 약630㎜의 강수량을 보인다. 아라비아 반도의 다른 나라들처럼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지대로 저수지나 강이 없으며, 간간이 오아시스와 와디가 나타나 바티나평야를 중심으로 관개에 의한 대추야자 농업이 이루어진다.


  • 정치

  • 오만의 정치는 이슬람 군주 국가로 절대권력의 군주가 직접 선출한 내각과 자문기구를 두고 있으며, 입법부나 정당은 없다. 자문평의회가 의회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법체계는 엄격한 율법의 코란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반정부 집단인 해방인민전선(PFLO)이 남부 도파르지방 산악지대에서 활동하여 정치적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1944년 영국에서 독립한 후 1970년 쿠데타에 의한 현체제가 확립되면서 쇄국정책에서 개방정책으로 전환하였으며, 친서방 외교노선을 유지함과 동시에 페르시아만 국가와의 관계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군사제도는 지원제로 1999년 현재 총병력 4만 3,500명으로 육군 2만 5,000명, 공군 4,100명, 해군 4,200명, 왕실 경비대 1만 200명, 외국고용병력 3,700명이다. 국방예산은 18억달러(1997)이다.


  • 경제

  • 오만의 산업은 석유와 소량의 농산물 및 목축업 등으로 아주 미약하다. 기후와 지형의 제약으로 경지면적은 약 10만㏊로 반수 이상이 북부 바티나 해안지역에 집중 되어 있고, 농업인구는 19만명이다. 오아시스 농업이 주종을 이루며 산록(山麓), 와디 연안, 해안 부근 등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이 나라 최대의 산물인 대추야자가 재배된다. 그 외에 곡류, 채소, 오렌지, 포도 등도 생산하고 있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목(遊牧)에는 낙타가 중요하며 그 품종도 우수하여 아라비아 각지로 수출된다.
    1960년대부터 석유의 시추(試錐)가 성행하여, 석유수출에 의한 수입이 1997년 현재 국가예산세입의 75%를 차지하고, GDP의 40%를 차지하지만 비(非)OPEC 회원국이다. 제조업은 GNP의 4%에 불과하여 저조한 편이나 유가 하락으로 인한 불황에 대비하기 위하여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과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1990년 관광산업 육성을 위한 출입국 제한을 완화하였다.
    1992년 4차 5개년 개발계획으로 사회간접자본 확충, 산업공단 조성 및 제조업 육성, 농수산업개발 등을 골자로 한 , 석유의존에서 탈피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무역상대국은 수입면에서 아라비아안 연안의 국가와 일본, 미국, 영국 순서로 되어 있다. 주요 도시로서는 정치의 중심지 무스카트, 상업의 중심지로서 무역항인 마트리호, 남부에 있는 도파르 지방의 중심도시 살랄라 등이 있다.
    ▶통화: 오만의 통화단위는 오만 리알(RIAL)로, 1리알은 1,000 바이자(BAIZA)이다.


  • 종교

  • 이슬람교의 예언자 모하메드가 생존할 때부터 오만은 이미 이슬람교 국가였고, 현재도 변함없지만 종파는 오만 독자의 아비드파가 인구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만은 630년 예언자의 사자를 받아들여 이슬람을 수용했다. 그 후 이슬람 공동체를 목표로 바스라에 이주해 이란 이슬람화의 전선(前線)집단으로 활약했다.
    오만의 이주자들은 제4대 카리프 아리와 당시 시리아 지시로 나중에 우마이야조를 창시하는 무아웨어 사이에서 펼쳐진 권력투쟁에서 아리가 주창했던 재정(裁定)에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 지도자(이맘)를 뽑았다. 그 후에도 오만 사람들은 바스라에서 활약을 하기는 했으나 8세기가 되면서 이단으로 탄압을 받은 후 고향 오만에 돌아와 751년에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아비드'라고 하는 것은 독자의 이맘을 소유한 집단에 붙여지는 것으로 이름의 유래는 집단의 지도적 인물 중 한명이었던 압둘라 알 아바드에서 연유한 것이다. 오만의 초대 이맘은 751년에 선출된 제란드 핀 마스드였으며, 이후 1959년까지 이맘은 계속적으로 니즈와를 근거로 오만을 통치해왔다. 그리하여 니즈와는 이바무파의 근거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바드>는 아라비어로 '하얗다'라는 의미로 이바드파의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들은 순백의 터번을 착용한다.


  • 사회

  • 오만은 아랍인이 전체 인구의 3/4를 차지하여 압도적으로 많으며, 이들은 엄격한 수니파의 교리로 결속되어 있다.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이 15세 미만으로 인구증가비율이 높고, 도시화율은 비교적 낮아 대다수의 주민이 시골에 거주한다. 보건, 위생 실태는 아직도 열악한 편으로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이 자주 발생하여, 평슌수명도 약 55세로 낮다. 최근 교육에 대한 관심을 보여 초급학교가 300여 개로 늘어났으며, 고등교육기관은 1985년에 설립된 술탄카부스대학이 있다.
    ▶우편: 머스켓에는 크고 작은 우체국이 있다. 루이, 시부 등의 큰 우체국은 목, 금요일만을 제외하고 10:00∼18:00까지 무을 열고 금요일에는 큰 우체국만 문을 연다. 오만은 우편물을 집까지 배달해 주는 택배제도를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 실시되고 있지는 않으며, 우체국 사서함(P.O.Box)에만 배달되고 있다. 따라서 우편물을 수취하려면 자신이 사서함을 개설하거나 근무처 또는 그 외의 사서함을 이용해 수취해야 한다.
    ▶전화: 오만에서 전신, 전화에 관한 업무 모두
    GTO(General Telecomunication Organization)에서 맡고 있다. 머스켓 시내와 주요 도시간에는 전화가 꽤 보급되어 있다. 국내외 모두 다이얼방식의 즉시통화가 가능하다. 전화의 종류로는 머스켓 시내전용, 오만 국내전용, 그리고 해외통화용의 3종류가 있다. 전화 설치는 GTO에 신청하면 2∼3주 내에 가능하다.
    (국내전화)- 통신회선 그 자체는 많지만 오만이는 남녀를 불문하고 전화하기를 좋하한다. 업무중에도 사적인 전화가 많다. 또 잘못 걸린 전화와 장난전화도 많다. 공중전화는 수도 적고 고장난 것도 많다. 무스카트 시내 통화요금은 1분간 25Baiza(1 RO=1,000Baiza)이다.
    (국제전화)- 다이얼 즉시통화가 가능하다. 휴일과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아침6시까지는 25% 싼 1분당 1.35OR이다.
    ▶전신: 텔렉스의 회선은 양호하고 대부분의 사무실에 설치되어 있다. 루이와 크롬의GTO 사무국과 호텔에서 발신할 수 있다. 팩시밀리는 사무실에는 꽤 보급되어 있으며, 호텔에서도 발신할 수 있다. 전보는 루이와 크롬의 GTO사무국에서 타전할 수 있다.
    ▶공휴일: 오만에서의 축제일은 이슬람교와 건국에 관련된 날들이다. 이슬람교에 관련된 날은 이슬람 달력(太陰曆)에 따르기 때문에 매년 10일 정도씩 빨라진다. 이 축제일의 결정은 달을 육안으로 관찰하여 결정한다. 때로는 전날의 저녁이 없기도 하고 밤이 오지 않는다고 결정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TV와 라디오의 뉴스에 따르는 것 외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수일에 걸친 축제일의 경우도 몇 일동안 휴일인지 확실히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해마다 다르다. 따라서 축제일을 이용해 여행을 간다는 등의 장기계획은 세울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1. 예언자 승천일(1일간): Ascension of the holi Prophet
    2. 라마단 종료후제(4일간): Edi Al Fitr
    3. 성지순례 희생축제(3∼5일): Eid Al Adba
    4. 이슬람력 정초(1일간): New year(Hijra)
    5. 예언자 탄신일(1일간): Hoil Prophet's Birth Day
    6. 국경일(2일간): National Day
    (Sultan's Official Bithday. Annivesary of Succession)
    =국경일을 제외한 나머지 공휴일 일자는 매년 변경되고 있다.
    ▶현지교통사정
    - 도로: 국내 교통수단으로는 버스, 택시, 렌트카 등을 이용할 수 있으나 시내에서는 택시가 가장 편리하다. 버스도 지방의 주요 지역에는 운행하고 있으나 편수(便數)가 많지 않는 등 불편한 점이 많다. 택시요금은 일정하지 않아 승차 전에 요금을 흥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는 약 5리알이다.
    렌트카 회사도 여러회사(Avis, Budyet, 토요타 등)가 있고, 오만의 면허증이나 국제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운전도 할 수 있다. 요금은 소형차가 1일 약 15리알, 운전기사를 동행하면 약30리알 정도이다.
    도로교통 사정은 최근에 많이 정비되었지만,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수도권의 간선로에서도 신호기가 없고 라운드 어바웃 방식인 곳도 많다. 또한 오만에서는 여성의 운전이 금지되어 있지 않다. 운전면허 발급은 1∼2주의 시간이 걸리는데 특별한 시험은 없고 유효한 외국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된다.
    택시는 기본요금이 1리알에다 ㎞당 0.200Baiza이다. 미터택시가 아니기 때문에 운전사의 측정거리에 따라 임의 택시요금을 요구하는 실정이나 일반적으로 무리한 금액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버스의 기본요금은 5㎞거리내에서는 0.100Bazia이나 실제로 요구되는 버스요금은 지역별로 구분하여 책정하고 있다.
    -선편: 선편은 편수가 적다. 또 유일한 항구인 남 카부스(마도라)는 규모가 뱃짐을 부리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도착지에 이르기까지 약1개월 반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무스카트 시내에는 대기업의 통관 대리점이 있으므로 수속 일체를 위탁하는 것이 편리하다.
    ▶치안: 치안은 경찰에서 관장하며 경찰이 세관업무도 겸한다. 경찰은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원리원칙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반적인 치안사정은 매우 좋으며, 테러나 범죄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만에서는 보도를 통제하기 때문에 실정이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또 최근의 경기후퇴로 인한 불법체류 노동자 증가, 정부의 관광화 추진에 따른 출입국 관리의 완
    화는 오만 치안의 악화요인이 되고 있다.


  • 문화

  • 오만은 현대적인 모습이 많지만, 전통이 남아 있다. 해안과 촌락에서는 일상생활이 거의 변화가 없다 오만의 전통적인 미술, 음악, 춤(박물관이나 공연장에서가 아닌 길거리 공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조각품으로 유명한 것은 은 세공품들이다. 은칼집과 은 세공 보석 등이 뛰어나다.
    ▶관습: 사회의 모든 근거는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이며 코란과 순나(모하멧의 언행)을 기초로한 이슬람법(샤리아)이 모든 오만 국민들의 생활규범이 되고 있다. 1970년에 개혁이 시작된 이래 현저하게 근대화된 오만에서는 다른 아랍국가들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술과 돼지고기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교도인 오만인은 이슬람교의 율법을 엄하게 지키고 있다.
    사교상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람과 만났을 때는 인사말과 함께 악수를 한다. 통상적인 방문에는 선물은 필요없다. 또 매우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어린이를 동반한 방문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시골집을 방문할 때에는 신발을 벗지만 도시에서는 벗지 않는다. 바닥에 앉을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발바닥을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보통 남성과 여성의 사교장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또한 리셉션, 파티 등에는 남성만을 초대한다. 부부동반으로 오만인 집을 방문해도 남녀는 각각의 별도의 방에 안내된다. 그러나 초대격이 주인 가족과 친한 경우는 다르다.
    ▶예절: 인사할 때는 악수를 하며 일반 평민보다 지위가 있는 고위층간에는 포옹을 하며 서로 양빰을 맞대는 인사를 한다. 단 남녀간에는 포옹이나 빰을 맞대는 인사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인사할 때는 고개를 숙이지 않으며 악수나 인사말로 대신한다. 특히 여자에 대한 희롱은 절대 삼가야 하며 정중한 태도를 갖는 것이 좋다.
    ▶금기사항: 회교되에는 술이 금지되어 있어 공항을 통한 승객의 주류반입이 금지되고 있다. 회교군주국으로서 종교가 사회적, 경제적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Qabos왕의 근검성실한 통치자세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오만으로 가는 법

  • 국제항공편으로는 걸프에어(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바레인의 공동출자회사)가 걸프만의 모든 국가를 비롯해 유럽, 동남아시아를 운행,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외에 영국항공,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에어 인디아, 파키스탄 국제항공 등이 머스케(시브공항)에 취항한다. 국내에서는 머스켓-살라라 국제공항간 매일 1∼2편 운행된다.


    [ Webzine MIR 2002년 5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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