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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 선교의 이해
윤령자



힌두교, 불교, 유교, 회교를 중심으로...



◎ 들어가며 ◎

현대 기독교 세계 선교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이다. 우선, 타종교는 우상이요 마귀라는 식의 공격적인 정통 신학과 신앙은 현실적으로 매우 단언적이고 정죄하는 자세로서 이러한 태도로는 선교사의 입지가 없어지게 된다. 선교지에서 자신의 오랜 종교 전통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원주민 지도자들도 이러한 전투적 자세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 선교지의 실정이다.

선교지에서 당면하는 또 다른 가장 심각한 이슈는 이방종교와 문화이다. 이에 대하여 현대 종교 다원주의 신학은 기독교와 타종교의 평화적 공존을 역설하며, 타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하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하고, 나아가 교회의 교인이 되게 하는 회심의 전도는 오늘날 ‘종교적 제국주의’로 정죄 당하는 현실이 되어졌다. 전통적 선교는 너무 편협하여 타종교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한다는 것과 지나치게 배타적이어서 그리스도의 관대한 정신과는 상치되며, 오만하고, 회심의 선교는 식민주의 통치시대에나 통하는 종교적 제국주의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역사적으로도 반복되어온 것이다.

1. 기독교의 이방종교에 대한 선교의 역사

초대 교회는 처음부터 로마 황제의 신격화에 반대하여 크리스찬들은 많은 박해를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은 사실상 로마 황제의 신격화에 대한 묵시적인 도전이었다. 초대 교회는 기독교가 소수로서 이교와 비기독교 사상의 도전에서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는 수난의 시기였다. 반면,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지역이 기독교 왕국(Christendom)이 됨으로 인하여, 교회가 국가의 보호를 받아 타종교에 대하여 공격적인 포교를 시작하였다. 중세 로마 천주교는 타종교를 사랑으로 대하기보다는 힘으로 공격하였는데, 이것은 성지 탈환이라는 미명으로 회교와의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잘 나타났다. 중세 십자군 전쟁의 후유증은 현대 회교도들의 기독교에 대한 증오에서 잘 나타난다. 서구 기독교는 권력의 힘으로 집단 개종으로 통하여 온 국가를 기독교화 하였고, 또한 로마 천주교는 하나남의 나라와 천주교를 동일시하여 타종교에 대해서 비관용적이었다.

종교 개혁 이후 서구 기독교가 타종교를 보는 관점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종교 개혁과 르네상스 이후 서구에는 휴머니즘, 합리주의, 계몽주의가 등장하는데 이 사상들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성격을 띠어 성경의 계시보다 이성의 권위를 더 중시하며 특별 계시와 자연 계시를 동일시하는 사상도 나타났다. 특히 자연 계시를 부각시키면서 비기독교 세계의 문화와 종교에 나타나는 계시를 높이 평가함으로 자연히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평가가 비평 일변도에서 동정으로 전환되었다.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기독교에서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서구의 합리주의는 기독교의 종교 신학에 많은 영향을 준다. 합리주의는 이성이 계시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고 말하며 자연 종교에 도덕성과 가치를 부여한다.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시대에 서구의 많은 철학자들과 진보적 신학자들은 성경의 이적과 진리를 이성에 종속시키는 반면 자연종교를 기독교와 동일 선상에 둠으로 기독교와 자연 종교의 연속성을 인정하였다. 19세기에 와서 서구는 동양 종교와 접촉하면서 동양 종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또한 서구 교회와 신학은 기독교의 절대성을 의심하지 않은 점에서 배타주의가 지배하였다. 따라서 타종교의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타협적 종교관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오히려 투쟁하는 입장을 취하여 20세기초기 미국교회에서는 바야흐로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논쟁과 교회 분열로 반전하게 된다. 이러한 종교관 때문에 서구 기독교는 부흥 운동과 더불어 선교 운동이 전개된다.

19세기 중엽까지 서구 기독교는 아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할 때 힌두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무서운 우상과 미신의 종교로 보았다. 선교 이전의 한국도 선교사들의 눈에는 동일하게 비쳐졌다. 선교 이전의 한국의 종교적 상황을 미신과 우상과 부도덕과 부패로 묘사하였었다. “위대한 시기”인 19세기는 서구 기독교가 비서구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비기독교 종교와 접촉하고, 비기독교 종교가 선교에 미치는 심각한 도전과 영향을 의식하여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타종교에 대하여 어떻게 선교를 하느냐? ” 라는 목표의 전략 개발하는 대회가 많이 열렸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기독교 신학과 선교가 타종교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논의한 것은 1910 년 에딘버러 선교 대회를 들 수 있다.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종교사 학파와 종교적 실용주의인 타종교에 대하여 동정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배타적인 19세기의 입장과는 많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대회였다. 국제 선교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주최한 선교 대회인 1928년의 예루살렘 대회에서는 강조점이 기독교의 메시지에 주어졌는데, 그것은 곧 기독교의 본질을 재음미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대회에서는 아시아의 대표자들이 참석하여 타종교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도록 큰 도전을 주었다. 인도와 중국의 대표들은 중국과 인도의 경전이 구약으로 대치될 수도 있다고 함으로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과 종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대회는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는 진리와 거짓의 관계가 아니라 우월과 열등의 관계로 정립하며, 따라서 기독교는 타종교의 부족을 보완하고 완성하여 준다고 공식으로 결의했다.

1931년 록펠러의 지원으로 형성된 평신도 해외 선교 연구 평가회(The Commission ofAplpraisal of Foreign Mission Inquiry)는 인도, 중국, 일본등을 방문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개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타종교인으로 더 좋은 종교인이 되게 하는 것이 선교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반발로 크래머의 종교 신학이 마드라스 대회에서 발표되지만 이것 역시 모호한 신학적 견해로 인하여 복음주의에 큰 실망을 주고 말았다. 마드라스 대회이후 서구 기독교는 종교 신학을 위시한 실학 사상의 불일치로 결국 결별된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타종교와의 관계에 더욱 적극적이어서 61년 뉴델리 총회는 타종교를 다른 신앙으로 표현을 바꾸고 종교 연구소를 설립하고, 1970년대에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종교 대화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대화는 전도를 대화에서 인류의 평화와 복지라는 소위 세속적 대화로 발전하고 말았다. 특히 대화국의 책임자 사마르타 같은 이는 선교와 전도를 종교적 제국주의로 보는 과격한 견해를 노골적으로 피력하였다. 이러한 급진적인 대화관에 대하여 복음주의는 부정적인 견해지만 그러나 대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은 대화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전도와 선교를 위한 것이지, 결코 세속적 대화는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요컨대, 복음주의의 견해는 대화가 아닌 선포이며, 기독교의 절대성과 최후성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음주의가 선포를 선택하는 이유는 성경에 근거한다. 성경은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고 선포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바울 역시 대화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사랑으로 논증과 설득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성경의 선포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기독교를 절대 진리로 보는 것이다. 만약 예수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자기들만이 믿는 신앙이 절대 진리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순교까지 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기초로 전도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확장은 물론 생각조차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흡수하여 환함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절대성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2. 이방종교에 대한 선교 전략

1) 힌두교권

기독교 선교는 지금까지 공산주의나 회교권 및 불교권 선교에 치중하여 힌두교 선교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하였다. 지역적으로도 힌두교는 인도와 네팔과 발리 섬에 집중되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더 소외되었다. 그러나 지금 힌두교는 지역 종교를 탈피하여 세계적 종교로 부상하려고 노력하며 자기 방어를 더 강화하고 있다. 최근 극우익 힌두교도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테러를 자행하며, 기독교 선교에 자극을 받아 기독교 신자들을 재개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힌두교의 인간 희생의 의식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인도에 남아 있는 종교적 관습은 소위 종교적 자살 행위이다. 힌두교의 특정 절기에 많은 사람들은 간지스강이나 성지를 순례하는데 이때 간지스강에 투신하거나 신을 싣고 가는 마차나 차의 바퀴에 몸을 던져 자살하면 다음의 세상에서 유리한 상태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특히 바다에 투신하는 사람은 몸이 가라앉기 전에 악어에 물리면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두려워하여 돌이나 무거운 물체를 몸에 달아 강에 뛰어든다. 이렇게 힌두교는 비인도적 행위를 제물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였다.
인도의 신학자 로빈 보이드(Robin Boyd)는 현대 기독교는 제3의 충돌의 시대에 돌입하였다고 한다. 제1충돌(Confrontation)은 유대 문화이며, 제2의 충돌은 야만주의, 애니미즘, 회교인데,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중국 문화나 공산주의의 조우도 있지만 중국 문화는 힌두교의 파생을 극복하기 쉬운 것이며, 공산주의가 기독교와 대립되었지만 이것 역시 지금 붕괴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인도에서 복음 전파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세게 기독교 선교는 공산주의나 회교를 가장 무서운 도전세력으로 생각하여 왔으나 지금의 상황은 공산주의도 기독교 선교에 문을 열었고, 회교도 중동 전 이후 문이 더 넓어졌다. 그러나 힌두교의 네팔이나 인도는 기독교 선교에 더 저항적이고 도전적이다. 힌두교는 교리적으로 포용력이 너무 강하여 기독교가 힌두교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흡수당하는 위험이 있을 정도이다.
힌두교 선교는 인도의 사회적 환경과 문화와 경제적 요인등 복잡한 면이 있다. 힌두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면 공동체로부터 축출, 가족들의 명예 손상, 결혼의 어려움, 폭력과 박해이다. 네팔은 90년 혁명 이후 상황이 좀 개선되었으나 힌두교가 국교여서 “아버지의 종교”를 바꾸면 6개월 징역을 사는 법이 할 때 있었다.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아직도 선교사 입국이 전혀 거부되고, 기독교로 개종하면 사회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당한다. 인도도 공식적으로 선교사를 받지 않으며 기존 선교사를 감소화 하는 형편이다. 영국의 통치를 오랫동안 받았지만 기독교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가 아니고 개종하면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따른다. 천민인 하리잔(Harijan)학생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 정부의 보조가 중단되는 어려움이 있으며, 일반인들도 경제적 손해의 부담을 안고 있다. 또한 상위 신분의 사람들은 신자가 되면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상실한다.
인도 정부는 힌두교가 종교가 아닌, 국가의 생활 양식이요 문화라고 법적으로 정의를 내림으로 은연중에 인도와 힌두교를 동일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정책에 의하여 선교사 입국은 불가능한 상태이며 몇몇 주에는 선교가 불법으로 간주된다. 힌두교권에 대한 선교는 인도 선교를 논할 만큼 인도와 힌두교는 동일시된다. 그러나 인도 이외에도 네팔과 발리 섬 및 해외에 있는 인도인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도는 약 3,000개의 부족이 있는데 복음이 전파된 부족은 불과 80여 부족에 불과하다. 지금 인도 교회와 교 단체들은 인도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부족간의 갈등과 언어의 다양성으로 하여금 어려움이 많다. 현대 인도는 인구의 총75%가 약 600,000개의 부락에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의 선교는 농촌 선교가 더 시급한데, 여기에 소요되는 선교사는 적어도 수십만 명이 필요하다. 지금 외국 선교사는 1,000명도 안 되는 실정이므로 인도 교회가 스스로 선교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일부 교회가 개척 교회 운동에 참여하여 경제적으로 지워하며, 인도 학생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신학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인도 사회는 수많은 부족으로 구성된 사회이며, 부족과 가족의 유대감이 강한 사회이다. 이러한 문화 사회의 배경에서 개인을 상대로 전도하면 개종자는 마을을 떠나야 하며, 선교부나 교회는 그 사람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개혁주의 선교는 가족 단위의 전도를 성격적인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부족 사회는 전도에서 하류 계층을 먼저 상대하기보다는 지도자에게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2) 불교
불교는 기독교 선교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기독교와 회교와의 조우처럼 피나는 대립과 투쟁의 역사는 아니지만 불교도 기독교 선교에 크게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에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은 무려 2 천명의 서구 선교사들과 약 100여명의 우리 선교사들이 활동하지만 투자하는 만큼 열매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불교와 신도와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세속주의 사상 때문이다.
불교는 종교인들 생각할 때 친절을 베푸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선교사는 친절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야한다. 특히 불교는 세상 부정과 물질부정의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인이 사치하거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 도를 실천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절제와 검소한 생활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선교사는 불교의 용어와 개념을 잘 이해하고, 불교 용어와 교리를 접촉점으로 함에 있어서 고도의 지혜와 지식이 요구된다. 선교사는 전도할 때 불교의 교훈법을 활용하여 불교도들에게 전도해야한다. 석가모니는 그의 교훈이, 많은 비유와 예화로 일관하여 이해를 돕지만 또한 듣는 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하였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많은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진리를 전파하셨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불교 국가는 아직도 농촌 사회이기 때문에 바울의 로마서 같은 논리적이고 교리적인 것보다는 비유와 예화가 적절하다.
불교 문화권에서의 효과적 전도를 위하여는 불교 문화권의 사회적 구조의 이해가 요구된다. 불교 문화권은 유교와 간치 가족적 유대가 비교적 강하다. 또는 불교 전도는 샤머니즘의 전도와 같이 능력의 전도(power evangelism)가 요구된다. 불교 전도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능력을 행해야 하는 부담이 불가피한데, 여기서 이러한 이적의 은사와 신유에 비중을 두지 아니하는 개혁주의 교회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신학적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질병의 궁극적 치유자임을 전하고 모든 병든 자를 위하여 합심하여 기도 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음(약5:15-18)을 가르쳐야 한다.

3) 유교
유교는 중국, 한국, 일본, 싱가폴, 대만 등 동남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중요한 종교가 되거니와 오랫동안 생활 철학으로 정착하였다. 그러나 유교는 제사장도, 신도, 영감 받은 경전도 없는 윤리 체계이지.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늘과 주상을 숭배하는 예배로 인하여 종교로 규정한다.
유교문화권에서 기독교 선교는 조상 제사가 가장 걸림돌이 되는데, 특히 기독교 안에도 조상 제사에 대하여는 5계명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풍속과 문화로 보는 견해로 대립되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 조상 제사를 제외하고는, 유고는 선교에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서구의 선교학자들은 유교 선교에 대하여는 이제까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유교 선교 전략의 개발은 아직도 우리들의 중요한 과제로 부과된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문화와 종교가 성경과 배치될 때는 무조건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와 인정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조상 제사에 대하여 토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능적 대치(functional substitute)를 제안한다. 제사 대신에 추도예배를 드리고, 묘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깨끗하게 관리하며, 살아 있는 부모에 더 효도하며 친척과 이웃들에게 예의와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다. 크리스찬들은 조상제사를 거부한다는 명목으로 조상들의 묘까지도 소홀히 하여 불신 친척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은 비성경적이지만 조상 무덤을 중시하는 우리의 문화를 감안하여 묘를 깨끗하게 관리하며 비석을 세우는 것이 결코 우상적 행동은 아니다. 기독교는 제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다. 5계명을 잘 실천하는 것은 유교 문화권에서 가장 강력한 간접 전도의 방법이다. 중국 속담에도 죽은 조상에게 돼지머리를 드리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조상에게 콩을 드리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고르반을 핑계로 부모에게 드릴 것을 드리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관행을 책망하였다. 현대는 핵가족 사회이지만 신자들도 반드시 이것을 따르기보다는 소가족과 대가족 제도의 중간 모델을 채택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 점에서 여성 신자들이 시부모를 잘 모시는데 모범을 보이는 것은 사회적 공헌이며 전도의 방편이다.
그러나 조상 제사와 장례식에 대한 풍속과 의식은 중국, 한국, 일본이 각기 상이한 점이 있기 때문에 토착화의 방법을 획일화할 수 없다. 중국인들은 조상 제사 때 분향을 하며 종이 지폐를 태우는데, 이것도 종교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위패를 모시는 곳에 대신 예수님의 사진과 성경등을 비치하며 큰 성경에 조상들의 이름을 써서 빈소에 놓는 것도 무방하다는 이론도 제시하는데 이것은 좀 지나친 기능적 대치라는 인상을 면치 못한다.

4) 회교
지금 세계 기독교 선교가 회교에 대한 전략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회교 선교를 하였고, 전략을 논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70년대 후반부터 많은 저서와 세미나가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논의된 내용들은 거의 유사한 내용들이다. 이것은 회교 선교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테픈 니일은 회교 선교에 대하여 말하기를 “회교 선교는 엄청난 장벽이 길을 가로막고 있지만 절망하여서는 안되며, 우호적이고 적절한 접근을 교회가 사용한다면 회교도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였다.
회교권에서 선교한 크래머 역시 회교 선교는 교리나 신학보다는 사랑의 접속이라고 하였다. 마호멧은 이미 기독교의 교리 논쟁에 싫증을 느꼈기 때문에 교리적 접근을 피하고 “성경적 실재론”으로 산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즉, 선교사들은 서로 경쟁을 지양하고 선교회들이 서로 협력하고 회교도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봉사를 하면 선교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크래머는 30년대와 40년대에 회교권에서 일하였지만 지금도 이 전략을 유효한 것이다.
회교 선교는 도전과 기회가 공존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회교권의 많은 지역에서는 기독교 선교가 거부를 당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환영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90년 걸프 전쟁은 회교로 하여금 서방세계와 기독교에 더 반감을 가지게 하였지만 군인들을 통하여 전도지가 사막과 아라비아 등의 일부 국가에 직접 전하여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독교 예배가 전혀 금지되었던 중동 국가에서 기독교 예배가 드려져 일부 회교도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아직도 미국과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는 긴장이 계속되지만 미국의 한 회교 선교회 선교사가 이라크를 방문하면서 쿠르드 난민들에게 예수 영화를 상영하며 전도지를 배포하였고, 물론 필요한 봉사 활동도 하였다. 쿠르드 난민들은 회교도들이지만 후세인에 대한 반감으로 기독교에 관심과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회교권 세계의 고난과 갈등은 선교의 기회가 되고 있다.
회교 선교는 인간적인 접촉과 사랑의 봉사가 병행되어야한다. 회교는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 점에서 회교를 능가하여야한다. 회교 선교는 불가피하게 의료, 구제, 개발, 교육 등을 통한 간접 선교로 길을 연 후에 직접 전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유, 회교 국가이지만 교육을 통한 선교의 기회는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작금에 암봉섬에서 기독교인들과 회교도인들과의 피비린내나는 분쟁은 내전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의 선교와 토착화가 요구된다. 회교는 문화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대단히 강하며, 아직도 가족 유대가 강한 사회이다. 회교는 기독교를 개인을 회심시켜 가족과 공동체에서 분리시키는 문화적 침략자로 간주한다. 따라서 선교사는 뒤에 있고, 원주민 신자나 지도자를 앞세우는 선교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기독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모험이며 무리이다. 일단 알라 신으로 접근한 후에 점진적으로 그리스도로 나가야 한다. 무슬림권에서 오랫동안 선교한 경험 있는 선교사들은 무엇이 회교도들을 회심시켰는지 물으면 주저 없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회교 선교는 대화도 무시 할 수 없다. 복음주의 선교는 타종교와의 대화에는 부정적인 태도이지만 회교의 경유는 공적인 대화보다는 비공식적인 대화를 통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비공식적인 대화란 개인적 차원에서 이웃으로서의 인간적인 만남을 의미한다.
회교 선교를 위하여 한국 교회는 먼저 서구 선교에서 배우고 또한 회교 선교를 위한 연구소를 설치하여야 한다. 한국 교회는 밖의 회교 선교 중요하고 시급하지만 안의 회교, 특히 학문적으로 기독교를 공격하는 회교 학회에 기독교 변증과 선교가 절실한 상황이다.

3. 컴퓨터 세계선교의 역할과 전망

현대 사회가 근대화되어 물질의 풍요는 느끼더라도 사람들의 영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며 가치관과 윤리의 부재현상, 핵의 위기, 사회적 불안에서 오히려 인류는 종교에서 해답을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종교 현황을 보면 무신론자는 약 10억(20%), 회교는 90개 국가에 9억(18.4%), 힌두교는 14개 국가에 6억 5천만(13.1%), 불교는 10개 국가에 2억 5천만(5.3%), 유교는 1억 6천만(3.3%)정도이다. 인터넷 이용자가 세계적으로 1억명을 돌파한 디지털 문명시대에 발맞추어, 우리는 컴퓨터를 이용한 선교전략을 구축해나갈 필요가 절실하다.
그동안 한국컴퓨터 선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세계선교정보연구원(MIR)이라는 모임을 세우고 선교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베트남, 파키스탄, 러시아, 볼리비아 등의 지회를 설립했으며 MIR연구원을 단기선교사로 파송하고 있다. 또한 홈페이지(http://kcm.co.kr)를 통한 사역이외에도 선교의 도구를 마련하기 위해 세계선교지도를 제작했으며 미국 베다니선교회의 미전도종족관련 정보를 번역, 소개하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 선교회의 사역을 해나감에 있어서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첫째, 평신도 헌신자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우리는 특정 교단에 소속된 선교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헌신자들과긴밀한 유대감이 없는게 사실이다. 이는 새로운 사역을 개척해나가는 입장에서 장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력부족, 물질 등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훈련받고 헌신된 사역자들이 함께 이 사역을 감당해 가길 소망한다. 둘째, 강력한 기도의 후원이 필요하다. 소속 선교사의 파송은 계속 늘고 있으나 후원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성도, 교회들이 동참해 기도해주길 바란다. 셋째, 우리사역의 수단이요,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 관련 소모품, 하드웨어 등의 헌물이 필요하다.

◎ 나오며 ◎

앞으로의 세계선교는 타종교와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개혁주의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믿고 전도하지만 타종교의 사람들과는 십자군식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온유로 대화를 통한 전도를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인 설득자는 오직 성령이시며 선교의 일꾼들은 성령의 도구로서 사용될 뿐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전도의 원리로서 죄를 책망하고 깨닫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원리를 준수한다면 전도와 메시지는 선교지의 우상 문화가 비성경적으로 제2계명에 위반된다는 것을 겸손과 사랑으로 경고해야 한다. 또한, 죄는 무지가 아니라 도덕적임을 가르쳐야 하며, 하나님에 대한 불복종과 배신임을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구원은 죄에서의 해방이지, 존재에서의 해방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격이 되며, 나아가 사후에는 영과 육체가 결합하는 부활임을 가르쳐야 한다.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선교도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하에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영적인 능력과 겸손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전세계의 정치, 종교, 지역을 초월한 선교수단으로서 정보선교라는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고 있으며 KCM-MIR은 시행착오를 반복할지언정 이미 한발 앞서 이 길을 가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정확히 이해하고 영혼을 뜨거운 마음으로 품는다면 정보선교라는 수단은 세계선교사(史)에서 가장 전략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속될 것이다.


참고문헌
Boettner Loraine. The 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 Ground Rapids : Wm. B. Ermans Pub.,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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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종교 다원주의」한국복음주의 신학회 논문 제11권 1992
「종교다원화와 그리스도의 유일성」목회와 신학 1991년 8월호
금강태 : 「한국유교의 이해」서울 민족문화사., 1990
전재옥 : 「이슬람권 선교방법」
「한국교회 선교의 비젼과 협력」한국 세계선교협의회 편., 도서출판 횃불 1992



[ Webzine MIR 2002년 5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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