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M webzine MIR | KCM | MIR home | 세계선교정보 | Webzine-MIR |
















아프가니스탄 기행문
김 열 방

2월 17일(주일)

예정보다 이틀이나 늦게 아프가니스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마침 주일인지라 우리 식구와 이길상 선생님의 가족이 모두 모여 주일예배를 드렸다. 차마 말은 못하지만 걱정하는 눈초리가 사뭇 마음을 긴장되게 한다.
특별히 안쓰러워하는 아내를 뒤에 두고 우리 일행 11명은 오후3시 30분에 토요다 승합버스와 짚차인 무쏘를 타고 타쉬켄트를 빠져 나갔다.
3시간쯤 걸려서 도달한 곳은 '지작', 눈이 많이 내려서 길은 좀 미끄러웠지만 백설의 전경이 아름다웠다. 저녁 7시가 되어서 우리 일행은 사마르칸트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김선중 선생님의 안내를 받았다.
우즈벡 요리인 샤슬릭 꼬치와 전통 사마르칸트 빵으로 저녁을 푸짐하게 대접받고 '시냐'라는 사마르칸트 외국어 대학 처녀 영어교수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되었다.
내일의 기나긴 여행을 위해서 일찍 잠을 자두는 것이 좋을 것이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2월 18일(월)

일행 모두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시냐가 제공해 주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아침 일찍 국경을 접하고 있는 테르미즈를 향해 달렸다.
아직 어두컴컴한 대로를 달리면서 느껴지는 맑고 깔끔한 새벽 공기는 들판에 덮인 하얀 눈과 어울어져 한층 더 분위기를 돋우어 주며 마음을 산뜻하게 해 주었다.
미끄러지는 눈길을 달리면서 위험스런 산을 넘었다.
2시간을 달려왔고 이후 5시간이 지나서야 테르미즈와 아프가니스탄을 잇는 국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 전 까지만 했어도 굳게 닫혀 있었던 국경이지만 지금은 한산해졌고 평화롭게까지 보인다.
2시간쯤 지났을까. 우리가 신청한 아프간 비자의 인포메이션이 아직 UN에서 넘어오지 않았다기에 오늘은 국경을 넘는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형편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우즈벡 테르미즈 시내에 있는 UN사무실에 가서 비자를 재확인하여 국경통과를 허가받을 수 있었다. 그 때 시각이 오후4시 30분. 국경 세관 문을 닫는 시간까지 아직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국경세관 및 패스포드를 검사하는 시간 2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우리 일행은 정말로 빠듯하게 아프가니스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우즈벡 국경에서의 통과 절차와는 달리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의 세관 및 출입허가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약 30여분이 지난 후 우리일행은 목적지인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마자리샤리프-얼마 전까지만 해도 탈레반(알카이다:알라의 특수부대)들의 점령지였던 곳-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국경통과 후 1시간 30분이 지난 후였다.
도시에 들어섰을 때의 첫 느낌은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인상이라고나 할까. 어느 시골의 읍내 정도 되보이는 크기로, 한국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본 듯한 낯익은 거리들과 비슷했다.
물론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곳곳에 자가발전기로 불을 밝힌 여러 곳을 볼 수 있었고 저녁 식사를 위해 찾아간 식당 역시 자가발전기로 전기를 밝혀 일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일하는 손놀림이라든지 행동에는 생명 있는 움직임이 있었고 생기가 있었다. 눈동자들은 살아 있었고 전쟁의 오랜 시달림 속에서 뛰쳐나오려는 듯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은 긍정적이었다.
우리의 안내를 맡은 현지인 '아지렐라'라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매우 발 빠르며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안내를 받아 식당에 들어갔을 때 우리 일행 중에 자매3 명이 동행했었는데 아프간의 법에 여자는 식당 출입을 전혀 할 수 없다고 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프간에서의 멋진 저녁 식사를 우리 일행들은 멋모르고 즐겼던 것이다.
아지렐라의 집에서 우리 일행들은 조그마한 방에 남자8명이, 그리고 마당 앞쪽에 위치한 또 다른 방에서는 자매들이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을 하나님과 함께 나누며 많은 것을 이야기했던 하루였다.


2월 19일(화)

아침 식사를 아지렐라로부터 대접받을 때 참으로 어설픈 식탁을 대할 수 있었다.
둥그런 두 손을 펴서 합친 것 만큼의 크기인 빵과 차 이것이 아침 식사였다.
물론 식탁은 별도로 준비되지 않았다. 그저 장판을 길게 늘어뜨린 곳에 빵을 손님들 앞에 턱턱 던져 주었다. 우린 그것을 받아서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해야만 좋아한다고...?
아프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런 장판용 식탁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시내를 구경하면서 팀들이 이미 들어와 일하고 있는 이곳 마자리샤리프에서 약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샤베르간으로 가기 위해서 아침에 길을 떠났다.
시내라고 해야 고작 한국 시골의 한 면소재지 정도로 시골 장터를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는 몇몇 가구들이 모여 있는 그 정도 크기일 것 같아 보인다.
여자들은 차도라고 하는 머리를 가린 긴 옷으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체를 가리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앞을 보기 위하여 망사 같은 것으로 눈언저리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을 제외하고는 누가 누구인지를 전혀 식별하기 어렵게 여자들은 철저히 가려져서 생활하고 있다. 차도라고 하는 여인들의 옷은 일하러 갈 때, 집에 있을 때, 외출할 때 등과 같이 상황에 따른 모든 옷의 색깔과 복장들이 따로 구분되어 종류대로 있다고 한다. 탈레반 정권이 엄한 규제의 법률로 아프간의 모든 여자들을 묶어 두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구약에서 사람의 수를 셀 때 여자들은 그 숫자의 대열에서 제외되었듯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자들은 그들의 주권과 인권이 박탈당한 채로 살아왔다.
1970년대 이 후 한때는 이곳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닐 정도로 여성들의 복장이 자유로울 때가 있었다 한다.

시장은 중앙 통로로서 큰길로 연결된 도로가 있고 그 길에는 여러 종류의 색깔로 복장을 하고 총을 메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땔감 나무인 듯한 나무들을 나귀가 끌도록 하여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 여인들의 제각기 다른 복장에 눈만 내놓고 다니는 복잡한 거리. 시내버스 대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열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작은 차에 복잡하게 매달려 있고... 차를 산다 해도 별도로 관계 당국에 등록할 곳이 없어서 그런지 모든 차종의 10대 중 5대 정도는 차에 넘버가 달려있지 않았다.
시장 통에는 전쟁 직후 의례히 있어야 할 구걸하는 사람을 의외로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지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모습에서 밝은 비전을 보게 된다.

시내를 빠져 나와 외곽도로를 통해 샤베르간으로 가는 길...
양 옆길로 보이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온통 빨간 흙집으로 지어져 있었다. 벽돌집이라든지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 같은 것은 단 한 채도 보지 못했다. 그나마 전쟁 중 폭격을 맞아서 그런지 많은 집들은 허물어져 있었으며 대나무에 빨간 띠를 매달아 놓은 길옆의 많은 무덤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었고 전사자들을 기리는 특별한 의미로 아프간의 많은 후세들에게 교훈이 될만한 징표이기도 했다.
여기저기 들판에 버려진 채 이미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린 탱크들도 눈에 띄었다.

1시간 30분 동안을 달리면서 많은 초소를 거쳐 달렸건만 초소를 지키는 군인들은 의외로 검문검색을 하지 않았고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요구 또한 단 한번도 받지 않았다.
초소를 지날 때마다 웃음으로 반갑게 일행을 통과시켜 주었으며 우리가 거수경례를 부치자 그들 역시 그렇게 답하며 호의적으로 우리 일행들을 맞아 주었다.
샤베르간 입구에 들어서자 탈레반을 대항하여 북부동맹군을 이끌었던 도스틈 장군이 이끄는 탱크부대와 그들의 막사가 들판에 보였다. 무슨 옛 고대 도시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넓은 들판에 정렬되어 있는 도스틈 장군의 군인들과 전차와 탱크들이 꽤 인상적이었다.
시내에 들어서자 군인들이 치안을 유지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이곳 역시 군인들의 복장은 통일되지 않았고 천차만별이었다.

우리 팀들이 이곳에 한 달 전부터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역시 흙집으로 되어있는 구조이지만은 방안에 연통을 낸 가스난로가 한 대 있었고 방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었다. 한달에 300불씩을 주고 임대하여 쓰고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을 뿐더러 물가 또한 우즈벡보다 2-3배정도 더 비싸다고 한다.
먼저 들어온 팀들은 영어교육, 컴퓨터, 의료진료 및 약품제공 등으로 이곳 도스틈 장군의 역량 하에 일하고 있었다. 영어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대단할 뿐 아니라 영어를 이해하며 깨우치는 수준 또한 대단하다고 했다.

간단히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이 지역 보건부 장관이면서 하나밖에 없는 병원의 원장을 만나러 갔다.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병원은 흙집이 아닌 벽돌로 되어 있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갔을 때는 물건을 쌓아놓는 무슨 창고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곳에도 환자들은 입원해 있었고... 진료도 하고 있었다.
병원장은 주민들의 건강과 보건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약이 없다. 그리고 의사도 없다. 병원장은 온통 그런 문제들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샤베르간 시장통에 들렸다. 거리엔 온통 북적되는 사람들. 특별히 목발을 짚고 다니며 한쪽 팔이 잘려진 사람들, 한쪽 눈이 없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필사 전쟁 중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려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물론 전쟁 중에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탈레반 정권 시절에 도둑질, 강간 등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로 이런 사람들을 잡아다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실제로 그들의 팔과 다리, 그리고 음부를 잘라버린 것이라고 누군가가 설명해 주었다. 그런 엄청난 일이 실제로 존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었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척이나 호의적이었으며 사진을 찍자고 그러면 굉장히 좋아들 했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밀면서 사진과 비디오를 찍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과도기 시대이고 거의 무정부시대이다 싶을 정도로 혼란하며 무법인 이곳. 각 개인의 가정마다 기본적으로 자동 소총 한 자루씩은 갖고 있으며 바주카포 역시 20불 정도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세워진 법이 통용되어지고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어질 때 아프간이 가지고 있는 지하자원-특히 도시 가스와 같은-과 이들의 열심, 긍정적인 삶의 태도, 실크로도 상인들의 저인을 이어받은 상술 등 모든 것들이 어울어져 이들의 경제적 성장을 일으키는데 커다란 힘이 되어줄 것이다.
UN에서 추진하고 있는 아프간의 복구사업만큼이나 중요한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원수 되었던 관계의 회복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회복되어지고 치유되어질 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월 20일(수)

카불까지 가기로 했던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와 윤민석 선생님은 우즈벡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야만 했다.
마자리샤리프를 지나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당초 계획은 타슈켄트에서 테르미즈까지 비행기로, 그리고 국경을 넘는 것은 차로 가기로 했지만 차에 실은 짐들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17시간 정도를 달려야지만 타슈켄트에 도착할 수 있다.
아프간의 국경통과는 간단하게 여권을 검사하는 것으로 통과할 수 있었지만 역시 까다롭고 합리적이지 못한 우즈벡 세관 통관 절차와 입국 절차는 매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70퍼센트의 마약 생산을 그 동안 아프간에서 하지 않았던가...

짧은 아프간의 여행이고 차만 타고 돌아다닌 그런 여행이었지만 돌아오는 차안에서의 생각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너무나 큰 것이었고 벅찬 감격이었다.

2001년 9월11일 미국에서 있었던 이른바 9.11비행기 테러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고질적이던 아프가니스탄의 문을 여는 계기를 마련하셨던 것이다.
5.000여명의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아프간을 여신 하나님의 섭리에는 너무나 큰 희생이 치러졌다.
너무나 큰 아픔, 그리고 슬픔을 남기면서 하나님께서는 근본주의 모슬렘의 악한 영을 깨기 위해서 그리고 그 땅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고 살아야 될 사람들이 있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그 땅을 여셔야 했던 것이다. 희생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값비싼 대가로 아프간을 여셨던 것이다.
아프간의 남쪽으로는 파키스탄의 무슬림들이 있고, 서쪽으로는 또 다른 골수분자인 회교국 이란이 버티고 서 있다. 하나님의 뜻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서쪽으로 깊게 그리고 길게 자리잡고 있는 모슬렘의 핵들이 다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예언대로 세상 모든 민족이 그리고 복음의 마지막 때가 되면 이스라엘에도 구원의 숫자가 차야 되기에 이제 그분께서 서서히 모슬렘들의 핵인 나라들을 하나 둘씩 여시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이 모슬렘의 핵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계획하고 계신 일들이 있다. 그 계획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앞으로 이란도 여실 것이고 이라크, 터키 등 차례대로 무슬림들의 핵인 중동을 여실 것이다. 이때를 준비하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시기를 놓치지 않는 지혜로 순종하고 따라야 될 것이란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러나 앞으로 9.11 사태와 같은 그렇게 너무나 큰 대가를 치루지 않고서라도 모슬렘 핵들의 나라를 여실 수 있도록 우리는 부지런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들 나라를 위해 중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2월 21일(목)

총 34시간의 장거리 여행을 차량으로 이동하기는 처음인 듯 하다. 타슈켄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이번 여행에 하나님께서 함께 주셨음을 감사드리고, 특별히 한국에서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늘 마음 쓰며 진심으로 함께 기도해주고 계실 동역자님들과 각 교회에게 감사드린다.
아무 사고 없이 그리고 보호하심 가운데 무사히 귀가할 수 있도록 하시고...
은혜 가운데 보고 돌아오게 하심을...

모든 영광을 존귀하신 하나님께...


[ Webzine MIR 2002년 5월호 Index ]

Copyright KCM. All right reserved. 2001 ~ 2003.
위에 게재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KCM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복사/인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