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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소식

파키스탄 PIC 수류탄 테러 희생자 및 재건에 관한 소식
이만








PIC 테러의 희생자와 재건에 관한 소식

제가 이번에 하나님의 은혜로 아주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한국 온누리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조사 차 방문하는 팀을 안내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글은 이분 들과 함께 지낸 며칠 간의 이야기 입니다. 이 분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기 위하여 잠시 들려 가는 것인데 전해 받은 일정이 상당히 빡빡해 보였습니다. 월요일 밤에 이슬라마바드 도착, 화요일에 아프가니스탄 비자 신청, 수요일에 카불행 UN기 탑승, 목-토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정을 보내고 주일에 파키스탄으로 귀국, 당일 밤에 한국으로 출국. 일정상 제가 해야 할 일은 화요일에 비자 신청하고서 남는 시간에 시내 구경을 시켜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끽해야 반나절의 코스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팀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는 수요일 비행기를 탈 수 없었기 때문에 목요일에 출발하는 것으로 일정이 연기되었고 덕분에 저는 수요일의 일정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 일정이 연기된 것이 저희에게는 더욱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 일정동안의 저의 개인적인 은혜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일주전부터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의 장인수 목사님으로 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님 일행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시는 여정에 파키스탄을 들르신다고... 교인들이 이분들을 잘 맞이하고 또 이분들의 여정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말입니다. 예배가 끝난 후 이 일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 일에 협조해 달라고 연락받은 집사님이 이 분들 안내를 누가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습니다. 하루 시간을 내주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저는 순순히 제가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직장에 얽매여 있지 않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월요일 밤에 공항에 나가기로 되어있어쓴데 잠시 착오가 생겨서 저는 그냥 예정 숙소 매리엇 호텔로 갔습니다. 도착예정시각 한 시간 쯤 후에 한국인 일행이 로비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하용조 목사님도 유승준씨도 직접 본 적이 없기때문에 그저 비슷한 일본인, 중국인들이 들어오면 혹시 아닐까 하고 기웃거렸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하목사님과 일행을 보니 상당한 짐을 가지고 있었고 키 큰 카메라맨과 머리를 빡빡 깎은 귀여운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진짜 유승준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행은 교회 부목사님, 심방병 전문의, 기독교케이블TV 방송 본부장, iMBC 대표이사 등 모두가 내노라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하루 밤을 쉬고 화요일 아침

렌트카를 빌려서 함께 타고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으로 갔습니다. Embassy Road의 골목 안쪽에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대사관에 사람들이 이미 많이 와 있었습니다. 대개 비자는 3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도움이 김집사님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3일이 걸리면 모든 일정이 어려워지므로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마자 비자를 바로 내 준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는 비행기 예약을 하는 동안 시내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모든 팀들이 와서 땅밟기를 할 때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이슬라마바드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다마네코(Daman-e-Koh).

이슬라마바드의 시내를 품에 안듯이 초생달모양으로 북편에 자리잡은 작은 마르갈라 산. 그 중턱에 다마네코라고 불리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는데.... 와 몇년 동안 여러번 올라와 봤지만 이 날 처럼 멀리까지 잘 보이는 날이 없었습니다. 동편 Rawal Lake에서 부터 서편 Rawal pindi (옆 도시) 까지 쫙 펼쳐져 있는 것이 장관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이 나라 최대 규모의 모스크 Faisal mosque를 방문하였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부터 좋은 장면을 놓지지 않으려는 카메라맨의 부탁에 차를 세우고....

모스크 안에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금지하면 할 수록 촬영을 해야만 한다는 근성이 강해지는 카메라맨 아저씨는 그저 들고 있는 척 하면서도 여러장면을 촬영하였습니다. 기도하면서, 그리고 걸으면서 하나님을 재적하는 영들이 무너지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이슬람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는 초생달, 파이살 모스크의 주기도실 꼭대기와 네개의 기둥 꼭대기에 얹혀있는 초생달이 십자가로 바뀔 것을 환상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하였습니다.

PIC 방문

우리 일행은 화요일 오후 점심 식사 후에 장인수 목사님과 함께 PIC(Protestant International Church, 3월 17일에 수류탄 테러가 있었던 국제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사건 이후 철통같이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하였던 곳을 이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안쪽으로 모두 청소는 되었지만 바닥에 패인 수류탄 자국, 기둥에, 벽에 난 파편의 흔적들, 깨진 유리창, 뚫어진 천장과 핏자국들, 벽과 문들의 갈라진 틈새들이 그 날의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보면서 스가랴의 성전 건축에 대한 열망을,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는 느헤미야의 심정을 품게 하셨습니다.
PIC의 전면 모습. 교회는 외교단지내 미국대사관과 중국대사관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PIC 교회의 수리는 단순한 건물 수리 이상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뭇 이방인들이 생각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된 것으로 오해 할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성전을 새롭게 고치고 보수하는 일은 성전을 재건한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무슬림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이 곳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예배드리는 곳은 두려움, 초라함을 떨쳐 버리고 강하고 아름답고 또 평화로운 곳이어야만 합니다.

상처난 곳을 오래 방치하면 아주 썩어서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교회도 빨리 힘을 모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그 곳에서 이전보다 뜨겁게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회복 이상의 성장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희들이 많이 기도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었는데 이 번 팀들이 방문하면서 구체적으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팀들은 교회를 보면서 기도하고 찬양을 올렸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 드립니다
주의 나라 찬양 속에 임하시니 능력의 주께 찬송하네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언제나 동일하신 주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영원히 다스리네

Dr. Christy Munir 방문

다음날 아침, 오전 10시 30분에 PIMS(Pakistan Institute of Medical Sciences,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국립병원)에 Dr. Christy Munir를 만나러 갔습니다. 장인수 목사님의 인도로 찾아간 입원실. 그곳에는 크리스티의 부인이 간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이 위협받을 정도로 사경을 헤메다가 살아난 크리스티. 그는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부러져서 쇠를 박아서 연결해 좋았고 허벅지 안쪽으로는 크게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부분에 상처를 입었고 오른쪽 팔의 신경이 끊어져서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온전히 회복되었고 숨을 쉬는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말을 하는 것도 지장이 없었고 기대서 앉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사고 당시에는 시설이 덜 된 가까운 병원 (Poly Clinic)에 급하게 응급실로 들어 왔기 때문에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팔의 신경을 연결하는 수술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드레싱만을 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PIMS로 병원을 옮겨 왔습니다. 여기 의사들의 견해로 신경을 연결하는 미세한 수술은 이 나라에서는 기대하기 힘들고 외국에서 치료를 해야하는데 이 비용이 US$134,000 들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팀의 사역 일정 내내 팀원들의 건강을 돌아 봐 준 안박사님은 신경이 끊어진지 한달이 넘은 상태에서는 다시 연결하기가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다음 날 부러진 다리를 다시 제대로 맞추기 위한 수술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크리스티 박사의 팔을 잡고 이야기하는 안신기박사

우리는 사건당시를 회고 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도중 굉음이 들렸는데 사람들이 엎드리고 소리치고 뒷쪽의 문으로 몰려 들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앞에 앉아있던 크리스티 박사도 놀라서 뒷쪽 문으로 뛰어 가는 중에 하나의 수류탄이 또 터졌습니다. 그 때 쓰러졌는데 다시 일어나서 가려고 하니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다리가 부러진 것을 알았고 기어 가려고 하는데 팔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피가 흘러 넘쳤습니다. 절망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소리치다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당시 부인과 아들은 무슨 일로 교회 바깥에 있었는데 폭발음에 이어 사람들이 뛰어 나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찾았는데 교회로 들어가 보니 어버지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고 교회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몇 분 후에 앰뷸런스와 경찰들이 와서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부인과 아들도 의사인 이들은 크리스챤 중에서는 아주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입니다. Quide-e-Azam University(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의 호칭을 따서 만든 유명한 대학교)의 화학교수였던 크리스티 무니르는 PIC의 운영위원이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 기독교의 지도자급인 사람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분은 벌써 그 테러리스트들을 용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시 생명을 주신 것은 이제 바로 할 일을 주신다는 뜻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부인과 아들과 함께 인터뷰를 한 후 저희는 이 가정을 위해 저희의 손을 얹고 통성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 분의 생명을 살려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 분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분이 이 나라 크리스챤들의 지도자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큰 일꾼으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주님을 위하여 받은 고난의 흔적이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 되게 하시고 이 가정의 앞으로의 삶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 분이 회복되어 성도들 앞에서 간증을 할 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모든 힘없고 약한 크리스챤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게 하시 옵소서. 이런 일로 크리스챤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강한 팔로 보호 하시 옵소서.

이 후 시간에는 장인수 목사님이 운영하는 라왈핀디 크리스챤 스쿨을 방문하였고 PIC 운영위원회 사람들을 만나 교회 수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Mr. Edward Good 방문

조금 휴식을 취한 후 Mr. Edward를 만나러 다시 호텔을 나왔습니다. 에드워드 굿 씨는 라왈핀디의 무슬림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집 마당에서 나와 앉아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에드워드 씨는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였습니다.
테러를 받아 오른쪽 다리가 잘리고 온쪽 다리에는 쇠를 박아서 고정한 Mr.Edward. 그는 외국인 선교사에게 우르두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이 분은 교회에서 그 사건으로 세째 딸을 잃었습니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으나 이제 한 딸을 천국에 먼저 보내었고 아들은 다리를 다쳤습니다. 당신은 오른쪽 다리를 잃었고 왼쪽 다리에는 쇠를 박아서 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복부에 파편을 맞아 빼낸 수술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가정은 아버지가 이제 일을 할 수 없으니 생계 수단이 없는 셈입니다. 수술, 치료비도 시집간 둘째 딸이 다니는 직장에서 Rs.800,000(한국 돈으로 1,600만원 정도)을 빚을 내어서 댄 것으로 갚을 방법이 막막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분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씀하기를 자신이 꼭 욥과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시험받으며 자녀까지 잃으며 고난을 당하는 욥....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 보다는 오히려 파키스탄의 크리스챤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더라고 두려워서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하지 말고 더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어려울 때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이 분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고 합니다. PIC 교회에 그 몇달 전부터 파키스탄 현지인들과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많이 참석하였고 개종의 의심을 받아 위협을 받았다고 합니다. 교회의 특성상 외국인이든 현지인이든 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던 터라 보안의 문제는 허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과 딸도 자신들의 신앙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겼다고 말했습니다. 이전에는 그냥 덤덤히 믿던 것이 이제 목숨을 걸고 믿겠다는 각오가 생겼고 하나님을 위해 두번째 삶을 살아야 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로 부터도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눈물을 보며 저희는 기도했습니다. 이제 이생에서는 사진속에서만 볼 수 있는 딸. 이제 천국에 가서 만나 볼 때 까지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하는 이 들을 보며 저희는 입을 것 먹을 것 풍부하며, 신앙의 핍박이 없이 편히 믿는 한국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가정도 교육을 잘 받은 크리스챤 가정에 속합니다. 이 분을 다시 회복되어 일을 하게되면 못 배우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크리스챤들에게 교육을 시켜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평일에는 학교로 주일에는 교회로 쓸 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들의 신앙을 보며,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도전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손을 잡고 이 가족을 위하여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이들의 상처를 회복하시고 이들의 눈물을 받으시옵소서. 이들이 흘린 눈물이 이 나라의 복음의 씨앗으로 뿌려져 자라나게 하옵소서. 이 나라 크리스챤들이 신실하게 자라나게 하옵소서. 이 분의 당부의 말처럼, 이 분의 희망처럼 이 나라에 주님의 영광이 널리 퍼지고 주님의 정의가 편만하게 될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희생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이 더 드러나게 하옵소서. 이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까지도 책임져 주시옵소서.

멀쩡한 저희가 다친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도전을 받고 돌아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와서...

이 팀들이 아주 적극적이었던 것은 마음을 정하자 마자 한국에서 건축 관련 장로님을 급히 불러 오셔서 주일에 있을 미팅에 함께 참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쁜 와중에 아프가니스탄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PIC운영위원회와 다시 미팅을 가졌습니다. 구체적으로 교회 재건에 대하여 토의를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곳은 이렇게, 저곳은 저렇게, 너무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시간만 지나면 하나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재건되어 그쁨의 찬송을 드릴 그 날이 곧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Mr.Doug Snyder, Mr.Mark Anderson 과 함께 교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하용조목사님과 조정민 집사님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주님의 일을 위하여 애쓰시는 모든 분들의 삶에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고난 받는 자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성도님들 모두 함께 순교자, 희생자들을 위해서, PIC의 재건을 위해서 기도로 동역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이 팀들의 아프가니스탄 사역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더 부탁을 드린다면... 최근 인도와의 전쟁 위기가 보도되고 있는데 이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만 정 드림, 200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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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네코전망대 및 파이살 모스크
PIC내부


Dr.Christy Munir

라왈핀디크리스챤스쿨
Mr.Edward Good

사건당시의 보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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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bzine MIR 2002년 6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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