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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방문
해미읍성과 그 옆의 이름없는 생매장
박 의 진

해미읍성에 처음 다다랐을 때 유난히 커 보이는 하늘에 놀랐다. 해미읍성의 언덕과 성벽은 하늘과 그대로 닿아있는 것 같았다. 죽음을 앞두고 스데반이 하나님 보좌 옆의 예수님이 일어서서 맞아 주시는 것을 바라본 것처럼, 그곳에서 순교하신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을 가까이 바라보았기 때문일까….



천여명이 목이 매달려 죽임을 당했다는 몸통이 휘어져 서 있는 고목은 솔직히 을씨년스러웠다. 푸르고 아름다운 언덕에 선 나무들은 축 늘어져 울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4월의 봄볕아래 방문객들의 발소리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기 그지없는 해미읍성…..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유적지들에서는 공통적인 느낌이 있는 것 같다.

해미읍성을 거닐며, 2년 전 여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과거를 묵상하듯 아우슈비츠 역시 많은 방문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고요가 흘렀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역사의 현장을 품에 안고서 할말은 잃은 듯한 정적 말이다. 유대인들의 집단 수용소와 독가스 처형실, 화장터 등을 둘러볼 때 형언할 수 없는 무거움이 마음을 눌렀었다.

그러나, 해미읍성에서는 그러한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과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신앙을 선택하고 죽음을 피하지 않은 믿음의 조상들의 용기가 그곳을 찾은 나의 맘속에 조용하지만 굳건하게 신앙의 격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넓은 하늘아래 그 하늘과 잇닿아 있는 해미읍성은 그 넓은 품안에 그곳을 찾는 이들을 넉넉히 안아주며 세상에서 위축된 믿음을 굳건히 하라고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 사진설명 : 해미읍성 순교 기념비문


해미읍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생매장 유적지’란 곳이 있다. 사실 그곳은 전혀 방문할 계획이 없었고 그런 곳이 있는지 조차 몰랐었다. 1688년경에 1천 여명의 천주교 성도들이 신앙으로 인해 말 그대로 생매장을 당했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이런 순교 유적지가 이 땅에 얼마나 많을까…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땅에서 밀알 되어 죽어졌나….그리고 그 엄청난 핍박 속에 십자가를 생명 다해 진 믿음의 조상들을 가진 우리는 얼마나 축복을 받았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십자가를 지기 싫어 아둥바둥하는, 잠시 지었다가도 금새 내려놓으면서 살이 그 험한 십자가에 조금이라도 긁혔을까 봐 안절부절못했던 내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도록, 주여 저를 도와 주소서...

▶ 사진설명 : 생매장 순교 성지 '여숫골'


[ Webzine MIR 2002년 7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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