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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고]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뿌리
MIR 8기 조현정



지난호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에 이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자료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중보기도와 선교정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슬람-인두 섞인 카슈미르 ‘통치권 싸움'
인-파, 양쪽 나뉜 카슈미르 싸고 3번 전면전

카슈미르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인도령(領)과 파키스탄령(領)으로 나누는 통제선(Line of Control) 양측에는 100만명의 인도·파키스탄 군인이 집결해 있고, 핵탄두를 실어나를 미사일과 전폭기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아온 카슈미르 땅의 비극은 어디에서 유래하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 카슈미르 분쟁의 뿌리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에 속했던 카슈미르 지역은 BC 3세기 마우리아 왕조를 거쳐, 서기 500년경에는 파키스탄 북부 탁실라를 중심으로 불교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다. 11세기부터 이슬람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다 16~18세기 무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세기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카슈미르도 영국의 간접 통치를 받았다.
당시 카슈미르에는 560여개 토후국(土侯國)들이 있었고, 이들 토후왕국은 소수 힌두교계(22%)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의 대부분(77%)인 이슬람교도들을 탄압하며 영국의 식민 지배에 협력했다. 2차대전 종전 후 1947년 8월 영국이 인도 대륙에서 철수하면서, 종교에 따라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했다. 이때 카슈미르는 주민의 절대 다수가 ‘파키스탄 편입’을 요구했으나, 토후왕인 마흐라자 하리 싱(Mahraja hari Singh)은 그해 10월 26일 ‘국민투표’를 전제로 ‘인도로의 편입’을 결정했다. 이때부터 카슈미르의 비극은 시작됐다.

▶사진설명 : 2일 ‘아시아 정상회의 ’에 참석하기 위해 카자스흐탄 남부의 알마티에 도착한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가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비행기에서 내려오고 있다.<연합뉴스>



◆ 이슬람 무장투쟁과 그들의 요구



1980년대 들어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인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외치는 ‘잠무 카슈미르 해방전선(JKLF)’이 결성되면서, 인도 정부군과의 무력충돌이 본격화됐다. 잠무 카슈미르는 이슬람교도의 비율이 64%에 달한다. 이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지원을 받으며 인도군에 대한 테러전을 벌였고, 인도군은 민간인 탄압과 무자비한 보복을 가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인도 국회의사당 폭탄테러와 지난 5월 인도병영 테러도 이 과정에서 발생, 양국 간 군사충돌 위기로 발전했다.
이슬람 무장세력은 ‘주민들의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잠무 카슈미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을 인도에 요구한다. 이에 대해 인도는 이들의 ‘분리 독립’ 대신 ‘자치’ 정도는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파키스탄은 이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지하지만 분리 독립 대신 파키스탄으로의 편입을 원한다.
55년에 걸친 카슈미르 분쟁은 종교갈등에서 출발, 지금은 인도·파키스탄의 영토분쟁, 인도·중국 간의 지역 패권 갈등, 테러와의 전쟁 등과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최근 인·파 분쟁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21세기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비극의 땅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등 강대국들이 방관의 자세를 버리고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 Webzine MIR 2002년 7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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