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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의 땅 한국을 선교지로
마 포 삼 열 (馬布三悅, Samuel A. Moffett)




■ 마 포 삼 열 (馬布三悅, Samuel A. Moffett)


마포삼열은 1864년 미국 인디애나주 매디슨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포목상을 경영하였으며 청교도적인 엄격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좀 자유 분방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건한 신앙을 배웠으며 11세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마포 삼열은 하노버 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대학원에서는 화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사과정을 마친 뒤 그의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데 투자하기가 아까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 보수주의 신학의 요람이자 많은 해외 선교사를 길러낸 매코믹 대학에 1885년 입학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 선교사로 일했던 베어드(W, M. Baird)와 함께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외국에선 한국을 표현하길... 중국에 소속된 하나의 작은 왕국이며 깊은 산 숲속에는 호랑이, 곰 등이 득실대고 사람들은 미개한 야만인들이며 도전적인데다 해적과 같고 일부다처제가 일반화되어있다.
또한 부패한 불교가 왕성한 종교적 나라
이다.
외국인의 출입은 허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않다.
또한 최초의 선교사였던 의사 알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거리거리에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파리, 모기, 날파리들이 떼를 지어 득실거리고 있었으며, 더러운 개천에는 온갖 병균이 들끓고있다. 또한 집집마다 파리, 빈대, 벼룩이 없는 집이 없다. 천연두, 매독, 회충 등은 흔해빠진 병이었고 종기나 무좀 같은 피부병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걸려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포삼열은 이러한 한국의 실정을 알고도 기도 중에 한국을 선교지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땅으로서 한국백성과 한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1889년 4월 15일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었고, 1890년 1월 인천 제물포를 거쳐서 서울 마포강변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었습니다.
처음 6개월간은 한국어를 공부하였고, 언더우드로부터 경신학교의 전신인「예수교학당」을 인수하여 교육사업에 몰두하였습니다.
1893년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남북도, 황해도 일대를 순회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곳곳에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1901년 평양에서 신학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1904년에 정식으로 평양신학교 교장(1904~1924)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인을 각별히 사랑하여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격려하기도 하며 독립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끝까지 믿음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1919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제8대 총회장으로 선임되어 혼란기에 처한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는 수완을 발휘하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위기였던 일제 말기에 있어서 한결같은 자세로 신앙의 지조와 신학의 정통성을 지키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마포삼열은 한국의 북서지역 개척자로서, 특히 평양을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변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한 한국 장로교회의 초석을 놓았고 우리나라의 기독교 교육과 문화발전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의 독립과 발전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3.1운동 당시 마포 삼열이 지닌 한국인에 대한 공감과 한국인에 대한 사랑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마포삼열은 한국인들을 자기민족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는 한국인들과 가까워지고자 한국 고유의 예법을 익히고 한국음식을 즐겨먹었습니다. 그는 어디가든지 한국인처럼 침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런 그를 한국사람들은 [마포 목사님]이라고 부르기며 아버지처럼 섬겼습니다. 그는 이렇듯 어느 한국인보다도 한국사람들과 한국을 위해서 많은 공헌을 했기 때문에 196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과 문화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마포삼열은 병을 얻고 요양을 위해 귀국하였다가 1939년 10월 24일 캘리포니아 몬로비아에서 별세하였습니다.

[ Webzine MIR 2002년 9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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