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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유럽
슬로바키아 공화국 (SLOVAKIA REPUBLIC)
MIR 조현정

슬로바키아 공화국 (SLOVAKIA REPUBLIC) 국기


  •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

  • 체코, 슬로바키아에 최초로 거주한 민족은 켈트족이었다. 1세기초에 이 민족은 두 방면으로 압박을 받게되었다. 하나는 다뉴브강 방면으로부터 로마인의 압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서쪽으로 밀려온 게르만인이었다. 게르만인들은 기원전 8-9세기경부터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겔트족을 압박하고 곧 로마제국과 전쟁을 계속하게 되었다. 로마군의 일부는 오늘날 서부 슬로바키아의 중앙에 있는 트렌친까지 진출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가 온 것은 4세기 훈족이 내습한 뒤부터이며 이것이 바로 4~6세기까지 계속된 민족대이동의 첫시작이 되었다.
    5세기 전반 아틸라의 원정은 게르만에 의한 이 지역의 지배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이 대이동의 결과 서로마제국이 붕괴되고 그 땅에 여러 게르만 국가가 생겨났으며 그 중의 하나가 이 나라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프랑크 왕국이다. 게르만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 점차 슬라브인들이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5,6세기에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서 가장 우세한 주민이 되었다. 서 슬라브에 의한 최초의 통일은 사모왕국이 이룩하였으며 623~658년까지의 35년 동안 지금의 체코슬로바키아 땅을 중심으로 삼았다.
    9세기에는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동 프랑크왕국의 압력이 강해지자 대 모라비아국의 대공로스티슬라프는 프랑크왕국이나 교황의 세력을 피하기위하여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에 사자를 보내 슬라브어로 전할 수 있는 선교사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비잔틴황제 미카엘3세는 모라비아에 키릴(콘스탄틴)과 슬라브인의 사도라 불리는 그의 동생 메토니우스를 보냈으며 이 문자(슬라브어)는 오늘날에도 러시아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계속되지 못 하였다. 메토디우스가 죽은 뒤 곧 라틴 전례가 부활하였으며 10세기초 헝가리인의 침입으로 대 모라비아 왕국도 멸망하였다. 그후 역사의 중심은 보헤미아로 옮겨지게 되었고 프레미슬 왕조가 형성되었으며, 보헤미아의 수호신으로 불리 우는 바츨라프왕이 나타났다. 14세기초 바츨라프 3세가 죽음으로써 프레미슬왕조의 지배가 끝나고 룩셈 부르그 왕조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2대왕 칼4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됨으로(1346)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1348년 체코 프라하대학이 창립되어 프라하는 유럽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15세기초 프라하대학의 총장이며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가 교회제도를 비판하며 개혁을 시도하다 화형에 처해지자 1419년 후스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후스전쟁은 종교 사회개혁과 함께 보헤미아의 독일화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운둥의 성격을 띤 전쟁이었다. 후스파는 교황이 파견한 지기스문트의 십자군을 5회에 거쳐 격파하고 1436년 평화조약을 성립시켰다. 이 조약에서 공인된 후스주의는 이 민족의 지주가 되었다.
    1526년 합스브르크가의 페르디난트1세가 체코와 헝가리의 왕이된 이후 독일인 제왕의 통치가 계속되어 1918년까지 300여년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속령이 되었다.
    1617년 카톨릭의 배경을 가진 페르난트2세가 보헤미아의왕이 되면서 수적으로 우세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탄압을 시작하였고 독일어를 전 보헤미아에 걸쳐 쓰게 하였으며 이것이 원인이 되어 다음해인 1618년에 30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후 보헤미아 사회가 독일화 되어 갔고 인구는 반이상이 줄고 농토는 황폐해졌다. 페르난디3세 재위기간인 1637년부터 카톨릭의 마리아교단, 제수이트교단은 대규모 강제적인 개종을 요구하였으며 여러 분야에서 쇠퇴를 거듭하였다. 이 시대가 보헤미아의 암흑시대이며 특히 1740~80년에 이르는 마리아 테레사의 통치시대는 중앙집권 절대주의 시대로 보헤미아지역의 억압정치는 극에 달하였다.
    요세프2세는 개몽 전제군주시대를 거친다음,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났으며 1805년에는 남모라비아의 슬라프코프에서 아우슈테를리치 전쟁이 일어났다. 뒤이어 메테르니히가 오스트리아의 재상으로 등장, 경찰정치를 전개. 군주체제를 옹호하였으나 자유주의 운동이 점차 강화되어 1848년에는 혁명운둥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끝내 실패하고 그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의 재상 바하에 의해 절대전제주의 암흑시대가 재현되었다. 오스트리아제국이 약해지면서 체코인들(보헤미아, 모라비아)은 점차 권리를 찾아갔고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권리를 회복해 갔다. 정치적인 부분에서 리케르가 지도하는 보수파의 노령체코당과 브리치를 중심한 청년체코당으로 분열되었다.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왕국의 역사 및 오스만 트르크(터키)의 진출과 연관되어 있다. 17세기에는 트르크가 이 지역에서 활약하면서 슬로바키아의 광산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였다. 투르크가 합스부르크왕국에 패한 1683년 이후부터 위기는 벗어났으나 여러 가지 원인들이 누적되어 폭동, 반란등 불안상태가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슬로바키아의 민족주의는 체코와는 별개였다. 그 역사도 매우 짧으며 중세시대에 소수민족들은 자민족의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지 못한채 점진적으로 농노화되어 갔다. 따라서 이들은 고립적인 지리적위치 때문에 문화적으로 낙후되었으며 독립적 역사를 가지지도 못하였다. 최초의 민족적 자각은 18세기 후반 슬로바키아인 안톤 베르노룩이 슬로바키아 방언을 교회에서 사용하려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후 19세기 중엽, 새로이 문화적, 언어적 독립을 위한 노력이 생겨났다. 루비스트 스틀은 루터파 교인으 로 모든 슬로바키아인의 각성을 외쳤고 체코화운동에 저항할 것을 호소하였으며 프라하에서 있었던 슬라 브회의에서 민족성을 인정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슬로바키아인들의 민족적 저항 열기는 체코인 의 체계적, 이기적인 인종정책 앞에서 수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슬로바키아의 모든 것들은 체코 인들의 질서속에 철저히 편입되었고 대다수 슬로바키아인들은 빈곤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슬로바키아의 발전이 둔화된 것에 비하여 체코의 경제는 눈부실 정도로 발전하여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걸쳐 공업이 두드러지게 진전되었다. 정치?사회?민족의 3가지 문제가 얽혀있는 정세속에서 청년체코당은 불평등하기는 하지만 보통선거를 실시하였고 1907년 평등한 보통선거가 실시되었다.
    1차 세계대전중 체코인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패전을 바라보면서 전쟁에 참가해야 하는 불운을 겪는 한편 오스트리아로 부터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해체되자 헝가리에서 분리된 슬로바키아는 더불어 단일국가를 형성하였다. 1918년 독립이 선언되고 1920년에는 헌법이 채택되었고 마사리크가 초대 대통령이 되어 1927, 1934년 재선이 되었다. 제1공화국 시대인 이 시기에 체코, 슬로바키아, 독일, 헝가리인을 포함한 다민족 국가로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고, 소수민족인 독일과의 문제가 상종하고 있었다.
    독일과의 문제는 수텐덴지방의 문제였다. 1938년 독일은 히틀러에 의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독일인 거주지역인 수텐덴지방의 할양을 위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수노들과 함께 뮌헨에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약소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희생, 수텐덴지방을 독일에 할양하기로 결정하였다.(1938.9.29) 이 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는 영토의 ⅓과 100만명의 체코인 그리고 40%의 공업설비를 상실하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1939년 독일은 슬로바키아를 선동하여 독립시켜 이를 보호국으로 두고 그해 보헤미아, 모라비아지역을 합병시킴으로서 제1공화국은 붕괴되었다. 체코는 계속하여 저항운동을 펼치게 되었고 1945년 5월 소련군이 프라하에 진주함으로써 독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동구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공산화되어 갔다. 1957년 노보트니가 당1서기와 대통령직을 겸함으로 1967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의 일인자가 되었고, 이 시기에 공산주의 체제가 완전히 갖추어졌다. 1968년 민주화의 요구로 인해 노보트니는 축출되고 알렉산더 두브체크가 공산당 1서기로 대통령이 되어 언론의 자유, 비밀경찰 축소, 슬로바키아 지방의 자주권 확대등을 꾀하며, 소련의 간섭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그해 8월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를 통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여 민주화 계획을 좌절시켰다. 1969년 두브체크가 밀려나고 후사크에 의해 친소련체제가 구축되었다. 1977년에 들어와 지식인 241명이 민주화, 자유화를 위한 투쟁을 다짐하는 지하선언문(77헌장)을 작성하였고, 인 권존중을 요구하였으나 철저한 탄압정책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1979년 77헌장에 서명한 저항주의 작가 하벨 등 10여명을 구속하여 반체제운동을 뿌리채 뽑아버리려 하였으나 끝내 1989년 신스탈린주의 정권인 공산당은 21년간의 어두운 장을 마감하였다.
    프라하의 봄부터 시작된 어두움은 계속해서 이어져 나왔던 바츠라브 하벨이 이끄는 인권운동에 의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민주주의화는 그후 민족주의를 통해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1918년 단일국가로 독립된 이후 75년만에 완전분리가 되었다.
    1918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갑작스러운 통합은 정치 및 사회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두 민족은 축복받은 세계속에 독립된 국가로 생존해 나가려고 하였으나 여기에는 인종적인면과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처음부터 한 국가는 아니었고 오랫동안 고통과 기쁨을 함께 맛보고 경험을 통하여 함께 결합된 형제국가인 것이다. 통합은 불평등 조건에서 이루어졌고 인구, 경제적인면 그리고 문화적인 수준이 모두 크게 차이가 났다. 1960년 제정된 신헌법은 슬로바키아의 자율성을 거의 없애는 쪽으로 만들어졌으며 보다 단합된 국가를 만든다는 의도는 슬로바키아인들의 불만을 일으키는 구실을 주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인종적 일체감과 언어구조, 문화적가치, 그리고 단일국가를 이룩하려는 열망은 같다하여도 천년동안의 분리되어 있던 역사는 서로 다른 사회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슬로바키아는 정치적 권리가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재개발 상태였으며 부적합한 교육제도, 미숙한 행정경험, 기술부족, 지식층의 부족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역경을 견뎌낸 것은 지식인과 정치가들의 끊임없는 접촉과 수세기 사이에 걸친 문화적, 종교적 결속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주의가 체코인들에게 쉽게 받아 들여진 것은 그들이 박해 받았던 형제에 대한 연민의 정이 깊었던 때문이었지만 슬로바키아인들에게는 자유와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준 반면, 자율성과 정체의식을 공고히 하는데 장애물이 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1945~1948년 까지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있어서 희망의 해이기도 했다. 체코에 있어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발전이 슬로바키아에 메아리쳐왔고 슬로바키아의 자유와 사화적진보를 향한 투쟁은 슬로바키아 내부에서 지속되었다. 2차대전이 일어나기전 보수세력은 6년간의 파시즘치하에서 타협하거나 부패해 버렸지만 대부분 농민인 슬로바키아인들은 계속하여 보수적이고 신앙심 깊은 카톨릭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였다. 따라서 모든 공산당은 슬로바키아 내에서 진보적인 요인의 대표가 될 수가 없었다.
    1948~1962년 까지의 수모의 스탈린시대를 거쳐 1968년까지 슬로바키아의 지성인들은 또한번 슬로바키아의 자율에 대해 투쟁을 버리기 시작했다. 체코인과 같은 동등한 권리를 찾자는 것이고 스탈린의 희생자 복건과 1944년 슬로바키아 폭동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자는 요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게 되었다. 슬로바키아인들은 통합이후 줄곳 체코인에 의하여 착취당하고 공격받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면으로 볼 때 체코의 민족주의는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반면, 슬로바키아의 민족주의는 다분히 제도적이라는 점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만일 슬로바키아가 제도적인 차원에서 모든 것이 성취되면 체코가 추구한 것과 같이 이념적인 요구를 할 것이라는 예측을 쉽게 해볼 수 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도 완전히 개선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의미에서 협력하고 상호보완하기 위해서 통합을 이루기는 하였으나 서로 다른 문화의 전통과 동등하지 못한 정치, 경제, 문화요소등이 결국 민족주의의 발흥과 함 께 각기 다른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었다.

    정리: 이 규 원 선교사


  • 슬로바키아 정보

  • 국     명 : 슬로바키아 공화국 (SLOVAKIA REPUBLIC)
    위     치 : 북위 48-51° 동경 12-28°중부유럽의 대륙국
    인     종 : 슬로바키아인 85.7 %, 헝가리인 10.7 %, 집시 1.5 %, 체코인 1.1 %, 러시아인, 우크리아인, 폴란드인 0.5 %, 기타 0.2 % (1996년 8월 13일 조사된 것)
    수     도 : 브라티슬라바 (BRATISLAVA-인구 452,053명/면적 368 ㎢)
    면     적 : 49,035 ㎢
    인     구 : 5,367,790 명 (1997년 조사된 것)
    언     어 : 공식언어는 슬로바키아어, 약 70% 체코어와 비슷. 체코어와 헝가리어등이 쓰이고 있다.
    종     교 : 카톨릭(로마, 그리스) 70 %, 루터교(자유주의교회) 10 %, 정교회 8 %, 개신교(자유복음주의교회) 6.2 %, 기타 5.8 %
    국가수반 : 대통령 버나드 도위요고(Bernard Dowiyogo)
    경     제 : 웨스트민스터 스타일의 민주주의
    정치체제 : 내각 책임제
    GDP : 1인당 소득 5,960$ (1997년 2/4분기까지, 6% GDP 성장기록)
    종교의 중심지 : 트르나바(TRNAVA 인구 70,191명)


  • 경제면

  • : 실업률 14%. 대체로 생활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음. 영세민(실업자)들에게 최저 생게비 지급. 직장인 여성 출산휴가(3년)와 월급지급(60%). 그러나 워낙 작은 나라, 소수민족이라 외국인의 투자가 매우 적고 경제가 호전되고는 있으나 극히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다.

  • 정치면

  • : 구 공간주의자들이 아직도 정치권을 잡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EC와 NATO가입을 원치않아 결국 탈락되고 마는 결과가 일어났다. 이유는 정치적으로 정당간의 알력이 심화되어 정치가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다뉴브강의 방대한 수력발전을 둘러싸고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처럼 헝가리와 충돌이 되고있고, 민족문화에 대한 탄압 등을 우려하고 있다. 대체로 체코에 대하여는 우호관계를, 헝가리에 대해서는 대립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종교면

  • : 기독교 나라라고 자부하지만 대부분 카톨릭신자이며 명목상의 신자들이 허다하다. 개신교인은 아주 소수이며 목회자 지망생들이 많지 않아 평신도 설교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젊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 건축과 목회자 양성을 위해 많은 기도와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 지형

  • : 슬로바키아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지형은 바다보다 높은 것이 특색. 중부와 동쪽 슬로바키아는 산지형으로 카타티안산맥이 통과하고 있다. 남쪽과 동쪽 슬로바키아는 낮은지형으로 이 나라의 중요한 농업지역이다. 슬로바키아의 도나우강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나인강은 헝가리, 유고슬라비아를 통과하여 흑해로 이어진다.

  • 특산물

  • : 안티모니광석, 철광석, 갈탄, 천연가스, 마그네슘, 도자기류, 수은, 소금광산, 구리, 납, 화강암, 아연 등이 있다.

  • 행정구역 구분

  • : 8도 79행정구역으로 이루어짐.
    1) 브라티슬라바 지역(BRATISLAVSK KRAJ): 8개의 행정구역, 616.871명
    2) 트르나바 지역(TRNAVSK KRAJ): 7개의 행정구역, 547.173명
    3) 니트라 지역(NITRIANSK KRAJ): 7개의 행정구역, 718.358명
    4) 트렌친 지역(TREN INSK KRAJ): 9개의 행정구역, 608.990명
    5) 질리나 지역( ILINSK KRAJ): 11개의 행정구역, 682.983명
    6) 반스카 비스트리차 지역(BANSKOBYSTRICK KRAJ): 13개의 행정구역, 664.072명
    7) 프레쇼브 지역(PRESOVSK KRAJ): 13개의 행정구역, 763.911명
    8) 코쉬체 지역(KOSICK KRAJ): 11개의 행정구역, 753.849명

  • 주요 10대 도시

  • 1)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인구 452.053명, 자립교회 10개, 미자립교회 2개
    2) 코쉬체(KO ICE): 인구 240.915명, 자립교회 3개, 미자립교회 1개
    3) 프레쇼브(PRE OV): 인구 92.687명, 자립교회 1개, 미자립교회 1개
    4) 니트라(NITRA): 인구 87.357명, 자립교회 1개
    5) 질리나( ILINA): 인구 86.685명, 자립교회 3개
    6) 반스카 비스트리차(BANSK BYSTRICA): 인구 84.919명, 자립교회 3개, 미자립교회 2개
    7) 트르나바(TRNAVA): 인구 70.191명, 미자립교회 2개
    8) 마르틴(MARTIN): 인구 60.772명, 자립교회2개
    9) 트렌친(TREN IN): 인구 58.872명, 미자립교회 2개
    10) 포프라드(POPRAD): 인구 55.872명, 자립교회 2개, 미자립교회 2개
    (이상 슬로바키아 종교회원교회 중심의 통계)

  • 슬로바키아내 교단들

  • 1) 회원교회: AC(사도교회): 약 5.000명(자립교회 16개, 미자립교회 19개)
    BJB(형제연합교회): 약 2.000명(자립교회 17개, 미자립교회 19개)
    CB(형제교회): 약 2.200명(자립교회 10개, 미자립교회 21개)
    ECM(연합감리교회): 약 400명(자립교회 5개, 미자립교회 7개)
    KZ(크리스챤모임교회): 약 1.500명(자립교회14개, 미자립교회 17개)
    2) 비회원교회: KS(크리스챤교제의교회): 약 500명, (자립교회 3개, 미자립교회 5개)
    SZ(말씀과 삶의교회): 약 200명, (자립교회 3개, 미자립교회 2개)
    ※ 회원교회란 국가로부터 인정된 교단. 반면, 비회원교회란 선교사가 만들었거나 기존 교단에서 탈
    퇴한 교단. 주로 토론토의 영향을 받은 교단.
    ※ 카톨릭과 루터교회는 각 도시와 마을마다 2:1비율로 성당이 있다.
    ※ 칼빈주의교회는 헝가리국경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교회가 200여개가 있다.

  • 만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중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곳

  • 1) 스타라 루보브냐(STAR L UBOV A): 인구 15.640명
    2) 즐라타 모라브체(ZLRAT MORAVCE): 인구 15.610명
    3) 스칼리차(SKALICA): 인구 14.999명
    4) 레보차(LEVO A): 인구 13.648명
    5) 사비노브(SABINOV): 인구 11.679명
    6) 필라코보(FIL AKOVO): 인구 10.268명

  • 교회용어

  • 1) 치르케브(CIRKEV, CHURCH)- 슬로바키아에서는 교단을 말할 때 쓴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2) 즈보르(ZBOR, BODY 지체, 단체)- 슬로바키아에서는 개 교회를 말한다. 자립교회
    예) ZBOR V AZSTVO: 승리교회,....목동교회, 사당동교회, 한마음교회...
    ZBOR POLICIA: 경찰서,...(지역단체)
    3) 스타니차(STANICA, STATION)- 평신도 설교자니 목회자를 중심으로 10명이상이 모이는 교회
    (ZBOR)아닌 교회. 저 개인적으로는 미자립교회라고 칭함.
    4) 스쿠핀카(SKUPINKA, GROUP)- 성경공부모임, 장년부, 청년부, 소년부...
    ※ 용어견해의 차이: 마16:18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의 말씀에서 슬로바키아의 교회용
    어로 보면 교단을 세우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가 주로 생각하는 것은 교회가 부흥하고 성정해
    야 교단이 커지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체코, 슬로바키아에서는 매우 교단을 중요시하며 교단이 튼
    튼히 서야 교회들이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슬로바키아 선교의 필요성

  • 기독교 국가라고 자부하는 민족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영덕으로 굉장히 교만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자
    신들은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이야말로 기독교를 말할 수 있지 불교국가로 알려져 있
    는 아시아권 사람들이 선교를 한다면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정도를 하다보
    면 '나는 카톨릭 신자다.'하는 말로 말을 막는데 자신은 기독교인이라 전도할 필요없다는 식이다. 이런
    사람들이 슬로바키아내에 거의 90%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태어나서 무조건 성당에 가서 유아세
    례를 받고 성당에서 결혼하고, 장례식도 성당에서 하기 때문이다. 자유복음주의 교인들은 제외하고.
    전체인구의 65~75%가 카톨릭 신자들이라고 자랑하지만 과연 참 신자들이 얼마인지는 의문이다.그러기
    때문에 이들이 아무리 기독교(카톨릭)나라라고 하나 이들에게도 참진리되는 복음이 필요한 선교의 대상
    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형식적인 기독교인, 명목상의 기독교인,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이
    들. 교회는 찾아 볼래야 볼 수 없는 이 곳. 이런 곳이 선교지가 아니겠는가!
    개신교 복음주의교회의 그 수는 카톨릭에 비해 너무나 적다. 그러기 때문에 카톨릭에 가리워 잘 보이지
    가 않는다. 일어서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워낙 그들의 힘이 막강하기에 일어날 힘이 없다. 노
    력해도 그 공로는 과히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교회들을 선교사가 돕고 있다. 그리고 교회들이 막강
    한 나라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써 이곳 교회들은 서가고 유지되어 가도 있다.
    이곳 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시대를 걸쳐 무신론자들 또한 꽤 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카톨릭
    신자들을 개종케 하는 것. 연약한 교회들을 돕는 것. 목회자들을 키워내는 것. 등 이런 사역이 슬로바키
    아에 필요하다. 반면, 카톨릭을 이단시하여 적대시하는 마음보다 그들도 전도의 대상이므로 긍휼히 여기
    는 마음이 필요하며, 이미 세워져 있는 교회(교단)들을 도움을 주되 새로운 교회(교단)을 세우는 것은 현
    재 상황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목회자들을 돕는 일에는 생활비며 학비를 지원하는 것인데 도
    울 목회자 선정을 위해서는 현지에서 활동하는 자국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분리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관계

  • 1)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1992년 6월 연방의회선거후 부상한 체코 정당들이 슬로바키아 정당들과 크게
    다른 정강을 채택, 별도노선을 지향함에 따라 1993년 1월1일 두 국가로 분리되었으나 분리후에도 양
    국은 계속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오고 있다.
    2) 지난 양국의 재통합 가능성은 체코(1996년) 및 슬로바키아(1994년 가을) 총선에서 어떠한 정당들이 집
    권하느냐에 따라 좌우되었었으나 체코 정치지도자들이 연방 분리후 체코의 위상에 만족함으로 재통합
    의 가능성은 희박하게 되었다.
    3) 1996년 까지만 해도 체코와 슬로바키아간에 국경을 주민등록증 하나만으로 통과할 수 있었으나 1997
    년부터 여권없이는 통과할 수 없게 되었다.
    4) 두 나라가 국제무대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정상적인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으나 조만간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인 여러 측면들이 전혀 별개의 것으로 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관계

  • 1)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1977년 9월 gabcikovo댐 건설을 위해 양자 조약을 체결하였으나 댐건설에 따
    라 예상되는 생산에머지의 경제적 가치는 댐건설 및 유지비용, 환경피해 만회비용, 농작물 감소로 인
    한 피해 비용을 보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헝가리가 1992년 5월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양
    국간 현안이 되어왔다. 그러나 슬로바키아는 댐건설을 강행하여 완성했다.
    2) 그러나 조약을 파기한 것은 합법적인 행위였으며, 이 사건은 환경문제가 국제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
    는 것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로, 최근 댐건설이 환경에 이로운 점이 많다는 양국 조사단의 평가에
    따라 댐수량 조절등 합리적 수단을 통하여 해결될 전망이 점증하고 있다.


  • [SLOVAK]

  • 주를 찬양하라 Chv l P na!
    주를 찬양하자 Chv l me P na!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Boh je l ska.
    예수님은 살아 계신다. Je i ije.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셨다. Je i ma spasil.
    그는 위대한 통치자, 주이시다. On je najvy Vl dca a Pan.
    그는 주 On je P n.
    예수는 주 Je i je P n.
    그는 주의 주 On je P nov P n.
    당신은 나의 하나님 Ty si m j Boh.
    당신은 나의 주 Ty si m j P n.
    주 예수는 왕의 왕 P n Je i je Kr l ov Kr l .
    예수는 왕 Je i je Kr l .
    당신은 나의 주 Ty si m j P n.
    당신은 나의 왕 Ty si m j Kr l .
    여호와여 Hospodine
    예수는 나를 자유케했다. Je i ma oslobodil.
    그는 나의 반석이시다 On je moja skala.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Nebudem sa b t .
    예수는 길이요 Je i je cesta.
    예수는 진리요 Je i je pravda.
    예수는 생명이요 Je i je ivot.
    예수는 빛이요 Je i je svetlo.
    예수는 구원자 Je i je Spasitel .
    살아계신 주 iv je P n.
    God is Good Boh je dobr .
    예수님(하나님)은 사랑이시다 Je i je l ska. (Boh je l ska.)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Je i t a ma r d. (Je i t a l ubi.)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Je i Bo Syn.
    죽음에서 살아나신 주 Ty si P n zm tvychvstal .
    거룩하신 주 Ty si sv t P n.
    복의 주 Ty si po ehnan P n.
    예수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ehn me v m pokojom Je i a.
    당신께 평화가 있으라 Pokoj v m.

    [ Webzine MIR 2002년 12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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