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과 싸우며 사역하는 김정인 선교사
아프리카의 훌륭한 선교사였던 리빙스턴은 [사명이 있는 자는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결코 죽지않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실감하면서 지난 1년을 되돌아봅니다.
몇 년간 지병인 간 경화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난 11월에 검진 결과 간암으로 판명되어 현재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더욱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은혜 속에 주어진 사역들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와 가정 그리고 라오스 선교를 위해 기도해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 L.M.C. 6가정 12명의 선교사들은 각자의 은사대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곳 라오스의 날씨는 여전히 낮에는 덥고 저녁에는 시원한 편입니다.
지난 10월 20일 주일에는 주님의 은혜로 한인교회와 L.M.C.(Lao Mission Center) 사무실을 새롭게 건축하여 봉헌하였습니다. 또한 11월 26일부터 30일까지 제3차 인도차이나 5개국(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선교사 대회도 주님의 은혜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나큰 은총이며 친히 함께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새로운 2003년에는 N.G.O. 사역을 마무리짓고 L.M.C. 학교를 허가받았습니다. 새롭게 허락하신 일을 통해 더 많은 복음 사역을 이루어 나가려 합니다. 더 많은 기도와 후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저 혼자 감당할 수 없기에 팀을 만들어 주셨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부족한 종과 사역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좀더 자세한 것은
http://laos.kcm.co.kr/
제 사역에 대한 내용이 지난 2003년 1월 5일 국민일보에 소개된 것입니다.
[한국선교사의 시대⑼] 간암투병속 라오스서 신앙전파 혼신 김정인선교사
60여개의 교회의 폐쇄,성도들의 신앙 포기각서,이를 거부했던 90여명 성도들의 기약없는 수감생활. 지난해 8월 신종교법에 따라 교회내에서는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지만 훈련받고 경험있는 목회자 및 평신도 지도자가 거의 없는 복음의 척박한 땅. 그리고 320개 교회에 정식 목사는 단지 6명에 불과한 것이 라오스의 영적 지수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도 심장의 고동이 멎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겠다고 나선 한 한인 선교사를 지난해 12월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의 국제공항에서 만났다.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전천후 팀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인 선교사(47)가 바로 그다. 최근 간암 판정을 받은 그는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었지만 라오스의 미래를 얘기할 때는 남다른 열정이 풍겨났다.
“복음의 황무지라는 이 땅도 옥토로 변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확신해요. 그때까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건강을 허락하실 거예요”
간암 판정을 받은 뒤인 지난해 11월말,주변에서 말렸지만 그는 인도차이나 한인선교사협의회장 신분으로 선교사대회 진행을 손수 진두지휘했다. 대회기간 중에는 부족한 재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자신의 간암 수술비용까지 믿음으로 바쳤다. “사람의 의술 끝이 하나님의 능력의 시작”이라는 불퇴전의 신념에서였다.
법무사로 세칭 잘나가던 그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개혁신학대학원에 진학한 뒤 이탈리아 카타콤을 방문,신앙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뛰어넘은 신앙의 선배들을 보며 선교사로 평생을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1991년 졸업과 동시에 선교지로 선택한 일본 오사카에서 3년여를 사역한 뒤 김선교사는 환상 가운데 본 지역인 라오스를 제2의 선교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라오스에서 사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회주의국가인 라오스가 선교사에게 비자를 줄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의 뇌리에 스쳐간 것이 바로 NGO의 설립이었다. 그는 1996년 7월부터 라오스정부 관계자들을 232회에 걸쳐 만나 설득했다.
“처음엔 냉대를 받았죠. 특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할 목적이라는 조직철학을 갖고 있는 NGO가 설립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그러나 하나님은 완악한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셨죠”
그는 NGO의 이름에 ‘미션’이라는 것을 유난히 강조했다. 복음전파를 위해 세워진 것이기에 미션이라는 용어를 양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났다. 지난 97년 2월 극적으로 ‘라오미션센터(LMC)’라는 이름으로 정부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라오스 선교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라오스한인교회도 세워지게 됐다. 그때까지 라오스 정부는 현지 거주 외국인들에게조차 예배를 허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교회가 설립된 후에도 핍박이 적지 않았다. 현지인들의 고발로 인해 김선교사는 외무부에 두 번이나 소환됐으며 교회 밖에 설치됐던 십자가는 결국 철거됐다. 주일 저녁예배와 수요기도회는 중단됐다. 그러나 이것이 김선교사의 열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김선교사가 1차로 심혈을 기울인 사역이 의료선교다. 비엔티안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수도권만 벗어나면 어디에도 의약품과 의료장비가 부족해 수많은 환자들이 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죽어가기 일쑤다. 김선교사는 부산의료선교훈련원,갈릴리세계선교회,한국대학생선교회 소속 의료단과 함께 선교에 나서 연 평균 4000∼5000명의 진료를 담당해 복음의 건전성을 라오스에 심었다.
한편 김선교사는 교회개척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일명 ‘62㎞교회(폰응언교회)’의 설립은 잊을 수 없는 간증이다.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되면서 기독교인들은 비엔티안으로부터 50㎞ 밖으로 모두 추방됐죠. 이들은 62㎞ 떨어진 곳에서 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렸죠”
하지만 62㎞교회는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빗물이 들이쳐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김선교사는 후원 교회의 도움을 받아 건축자재들을 구입,현지 성도들과 함께 교회를 세웠다. 어느날 나무와 짚으로 지은 인근 집에서 어린아이가 밥을 짓다가 불이 나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그때 시멘트로 지은 62㎞교회만 횬徨杉? 하루 아침에 오갈 데 없어진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교회로 몰려들어왔고 이를 계기로 주민 전체가 복음화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교회개척은 탄력을 받게 됐다. 한국 및 호주의 교회들의 후원으로 폰콩교회,폰싸왁교회,콘깬교회,폰싸완교회 등 7개 교회가 세워졌으며 현재 폰상교회 52㎞카무족냠린?증축 또는 건축중에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선교사들의 힘으로 유일하게 4만7000단어가 수록된 라한사전과 각각 2만3000단어가 수록된 실용 라한,한라사전을 편찬하는 기염을 터뜨렸다. LMC소속 선교사 5명이 3년 이상 매달린 끝에 완성해낸 작품이었다.
김선교사는 무엇보다도 팀선교를 강조한다. 문서,컴퓨터,태권도,피아노 사역으로 열심히 현지인들을 섬기고 있는 LMC소속 선교사 6가정이 일궈가는 멋진 하모니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6∼7년 공동사역을 하면서 한 사람도 나간 적이 없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기를 항상 기도하죠”
김선교사의 사역지를 2박3일이라는 짧은 일정 속에서 살펴보면서 예수를 올바로 영접한 이의 아름다운 전면을 음미해볼 수 있었다.
비엔티안=함태경기자 hrefmailto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