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선교여행(3-5)
바울이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복음을 전함(행 24:24-27)
친구 중에 아무나 수종드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바울에게 자유를 허락했기 때문에 사실상 바울의 안전을 위해서 가둔 것이지 벌을 주기 위해서 가두어둔 것은 아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가이사랴에 사는 빌립을 비롯해서 많은 형제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다.
24절 ○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와서'는 다른 도시에서 왔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그가 살고 있는 집에서 바울이 갇힌 헤롯궁으로 왔다는 뜻이다. 요세프스 기록에 의하면 드루실라는 야고보 사도를 죽인 직후에 비참하게 죽은(12:1, 2:20-23) 헤롯 아그립바의 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을 때 그녀는 여섯 살이었다. 그것은 44년의 일이고 이 이야기는 58년의 일이므로 그 때 드루실라는 20살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일찍이 에메사의 왕 아시스와 결혼했으나 벨릭스는 그녀를 한번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마술사 시몬의 책략으로 그녀를 꼬여 아시스를 버리고 자기에게 오도록 하여 결국은 같이 살고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부정한 일이었다. 벨릭스에 관해서는 로마인으로 현명하고 공정한 역사가 다기도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노예의 근성을 가지고 왕의 행세를 하려는 아주 악독하고 타락한 사람이라고 했다. 벨릭스와 그의 동생 발라는 사실 아그립바의 노예였다. 아그립바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어머니였는데 글라우디오 황제가 그를 이 지방에 총독으로 보낸 것이다.
바울은 이들이 영적으로 갈급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는 설교를 했다.
25절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이렇게 죄 많은 사람이 바울의 의로운 심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바라의 불같은 말을 인용하면 '죄로 얼룩진 과거를 돌아보니 그는 두려웠다. 그는 가장 비참한 시대에 가장 비참한 도시의 가장 비참한 위치인 노예이었다. 그는 조정이 가장 도덕적으로 부패한 때에 동생 빌라와 함께 조신이 되어 궁정으로 기어들어 오다시피 했다. 그는 가장 나쁜 외국 주둔 군대의 대장이 되어 총독이 되었다. 그 이전의 그의 생활이 얼마나 악독하고 타락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정에서 8년 간 즉 사마리아와 팔레스틴 총독으로 있으면서 그가 행한 일들, 탐욕이 가득하고 야만적이고 불공정하고 사적인 살인과 공적인 학살로 사람들의 피를 흘리기에 골몰했던 일에 대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제공하는 확실한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는 마치 이 세상이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두려워 한 것은 사람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첫 단계를 밟는 것이었다. 그러나 욕망이 일어나서 양심은 질식해 버리고 그는 구실을 찾아 변명하며 지나치게 충성스런 감독자인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뉘우치지 않았다. 이에게는 다음에 기회가 오지는 않았다. 드루실라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은 없다. 바울이 전한 복음 모두가 결실을 맺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부터 받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26-27절 다기도가 지적한 성벽을 벨릭스는 끝까지 버리지 못했다.
26-27절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우연히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교회들로부터 구제헌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고 또한 제자들이 돈을 아끼지 않고 서로의 어려움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고 벨릭스는 틀림없이 바울을 옥에서 구제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모았으리라고 믿고 약간의 암시만 주면 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바울 입장에서도 이렇게 나가려고 생각했다면 돈을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뇌물이라고 생각했으며 이것은 비열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벨릭스가 떠나게 된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에게 반기를 들고 치리를 잘못한다고 네로에게 고소했기 때문이다. 그는 네로에게 불려가 추궁을 받고 간신히 형벌은 면했으나 곧 지방으로 추방되어 결국 그곳에서 죽었다. 드루실라는 끝까지 그와 함께 있었으며 그녀가 낳은 아그립바라는 아들은 그녀의 오빠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베스비어스 화신이 폭발하여 뭄바이와 헤글라노시를 덮었을 때 죽었다.
이후 바울이 가이샤랴 감옥에 갇혀있던 2년 동안의 이야기가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바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활동이 적었던 때가 되었던 것 같다. 이 때는 아무 편지도 쓰지 않았으며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 그와 만났을 것인데 그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 오직 재판장들과 만나는 장면만이 가끔 나타나고 있다. 요즘 말로 한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이 기간이 안식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용한 상태는 바울이 무조건 놀았다고 보기보다는 다음 전도여행을 위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안식년이라는 말을 사용하긴 했으나 아직도 여전히 바울은 사실상 감금상태에 잇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활동은 할 수 없었다. 이로 보아 현재 바울의 안식은 보통 사람들의 안식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다음 편 => 미루어 오던 바울의 재판은 베스도 앞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