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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

이은무 선교사





선교사의 자녀 교육

필자는 인도네시아를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1976년 총각 선교사로 인도네시아 도착하여 인도네시아에서 단기 선교사로 온 아내를 만났고 인도네시아에서 4명의 자녀들을 탄생시켰다. 자녀 교육이라고 하면 저도 할 말이 있으련만 한번도 어떤 포럼에서도 자녀교육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라는 곳이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자녀교육을 할 만한 자상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거나 아니면 다른 토픽으로 해야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녀교육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간증이 많이 있다. 이러한 글을 통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녀를 둔 부모 선교사들이나 자녀 교육 때문에 선교사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라고 말한다면 부모로서 너무 무책임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 결론은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가정의 자녀교육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분이라면 다른 선교사들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이리 저리 선교지를 옮겨야하고 학교를 바꾸어야 할 가정도 많지 않을 것이고 국제학교를 고집하는 선교사들에게 부모의 교육관만 분명하면 로칼스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선교사들 중에는 자신들이 가야할 선교지가 분명히 대 도시가 아닌데 자녀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 도시에 머문 다든지, 어떤 곳은 선교사가 필요한 곳이 아닌데도 자녀교육 때문에 그곳에서 선교사역을 자신을 위해서 개발해야 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상당한 인적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 훈련원인 바울의 집은 경기도 발안이라는 시골에 위치하고 있다. 발안 새마을 유치원은 화장실도 ?뒷간?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1983년 아빠가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머무는 곳이 시골이니 아이들도 그곳에 있는 유치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골의 유치원생이 된 연주는 학교를 간다고 하는 것으로 기쁘기만 하다. 선생님께 유희를 배우고 한글을 배운다하니 기쁘기만 하다.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됐었지만 그래도 영어를 한다고 선생님에게는 대접을 받으며 1년을 지냈다. 정들었던 시골의 새마을 유치원을 떠나야 했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정글을 선교지로 정한 후 우리는 먼저 학교를 찾았다. 그러나 학교는 있었지만 선생님이 없었다. 가정에 학교를 만들 결심을 하고 엄마는 가정학교의 선생님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누가 엄마한테 배워??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않는가, 학교가 없으니.... 안 배우려는 자녀를 앉혀놓고 2년간 초등학교 교육을 시키기란 쉽지 않다. 엄마가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도서실을 관장하고 할 때, 공부하는 날 보다 공휴일이 더 많았다. 그래도 엄마의 매서운 눈에는 아이들이 꼼짝도 못하고... 그렇게 두 자녀를 2년 동안 가르쳤다.

학교에 좀 보냈으면...? 결국은 선교사 자녀들을 가르치는 기숙시설이 있는 정글 속의 수루깜 선교사 자녀학교를 보냈다. 학생은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도합 14명, 한 선생님이 두 학년씩 가르치고 한 반에 학생이 고작 3명 정도이다. 교사들은 훌륭한 가정교사였고 기숙사에는 성실한 사감이 있어 영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그것도 1년으로 그만 문을 닫고 만다. 연주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 과정을 마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와이에서 왜 할머니가 오셔서 그곳에 데리고 가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동생 동주(당시 초등 1학년)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1년 동안은 그곳에서 배운다. 연주는 하와이 초등학교의 5학년이 되었다. 우리는 안식년을 맞아 엘에이의 파사데나에 살게 되었는데 홀놀룰루의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엘에이로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부모가 필요한 것이지 할머니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안식년은 1년, 결국 연주는 파사데나에서 5학년 과정을 마치고 6학년은 싱가폴로 옮겨야 했다. 부모가 싱가폴 선교사로 발령을 내렸기에 싱가폴의 어려운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매년 옮겨 다녀 나라마다 교과과정이 다르니 아이들이 따라갈리 만무하다. 싱가폴에는 인터네셔날 스쿨로 많지만 경제 사정이 허락치를 않는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엄마가 다시 자녀교육에 본격적으로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학업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RGS 중 고등 학교는 싱가폴에서 최고의 일류학교이다. 이 학교를 나오면 취직은 그냥 보장되는 학교이다. 이 학교를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깝고 이 학교에서 Prefect 라고 하면 클라스의 리더를 말하는데 연주는 3년간을 Prefect로서 늘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기특하기도 하고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을 하고 감사하곤 하였다. 클라리넷을 배워 늘 국립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싱가폴 대통령 생일 시 대통령궁에서의 연주는 그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을 것이다. 지금 연주는 미국 명문 주립대학 UCI 최고의 장학금이 Regent 장학금으로 4년 동안을 학비, 기숙사비, 용돈까지 지급 받고있다.
어려운 환경들이었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었던 것은 가정의 자녀교육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선교사역을 위해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면 자녀교육 때문에 사역을 포기 할 수 없다. 자녀교육에 맞는 곳을 선택하고 사역을 개발한다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사역이 우선되고 그 다음에 자녀교육을 고려해야 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자녀교육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다. 그럴 때 하나님은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이 있다. 선교사는 자녀교육 문제를 포함해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가정은 자녀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별히 선교사들의 가정은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선교사들이 거하고 있는 지역들이 자녀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선교사들이 자녀 교육에 많은 경비를 드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녀교육을 교사들에게 맡길 일도 아니고 학교에만 의존 할 일이 아니라면 가정에서의 교육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들의 시간을 가정에서만 쓸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열악한 환경가운데 교육을 시켜야 할 상황이라면 부모가 여유 있는 시간을 자녀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역의 특성상 자주 해외 여행을 하게 되었다. 싱가폴은 동남 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기에 주변국가를 자주 들락거려야 했다. 이때 자녀교육에 대하여 나 자신이 많은 시간을 투자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자녀 교육에 관한 한은 자연히 아내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아내는 가정목회를 하듯 자녀들의 신앙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일을 하게 되는데 싱가폴의 로칼 스쿨의 과제가 만만치 않았지만 학교에 줄 수 없는 영성교육, 정서교육 등을 위해 시간을 투자했다. 우리 가정의 교육방침을 영성, 지성, 정서교육 그리고 사회성 교육 등 네 분야로 나누어 가는 곳마다 부족한 곳이 무엇인가를 확인한 후 가정에서 보충하는 형식으로 자녀교육의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였다. 이를테면 인도네시아 정글에서는 지성교육부터 사회교육까지 시켜야 했다면 미국에서의 교육은 지성교육과 정서교육이 부족했었고 싱가폴에서의 교육에서는 영성교육과 사회성 교육이 부족하여 추가 교육을 가정에서 또는 교회에서 해 내므로서 균형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지금 미국에서 2명은 대학에 한 명은 고교 1년에 그리고 막내는 초교 6년에 있지만 소위 MK라 불리는 선교사 자녀들의 특수 교육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저들이 미국에서의 적응이나 교육의 자세는 타 학생들의 부럼을 살 정도로 정상적이다. 거기에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정체성 문제도 한인교회를 다니게 하므로서 모든 것 위에 국제적이며 다양한 문화에 접했던 자녀들이라 한 수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많이 있다.
지성만을 강조하는 한국인 교육의 문제점이 선교지에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교지는 지적으로 수준 있는 학교를 찾기란 그리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육의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균형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부모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고 부모가 얼마만큼 자녀들에 교육을 위해 시간을 투자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사역이 아무리 바쁘더라고 자녀들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은 본인들의 자세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특히 선교지의 MK들은 부모들은 자녀들과의 시간이 필요로 한다.

우리는 모든 환경은 자녀들의 교육장소라고 믿어왔다. 그곳이 정글이 되었든 도시가 되었든, 인도네시아 든 미국이든 우리 자녀가 있는 환경은 교육환경이라 보고 적극적인 자세로 배우게 하였다. 각 나라에서 자녀들이 경험하는 것이 저들의 눈에 긍정적으로 보이든 부정적으로 보이든 모든 것이 교육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인다. 자녀들에게 옳고 그른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만 길러준다면 저들이 취사 선택하여 배우게 되는데 부정적인 것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저렇게 하면 안되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독교인의 가치관에서 판단 능력만 길러준다면 저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경험을 통해 ?보이지 않는 커리큘럼?(Hidden Curriculum)속에서 많은 것을 터득하고 배우게 되므로서 나중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 속에서 넓은 안목으로 대처해 나가므로서 좁은 안목을 가진 자녀들 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저희 가정은 미국과 싱가폴 두 곳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대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와 사춘기에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미국에서 살림을, 그리고 막내와 부모는 싱가폴에서 사역을 하게 된다. 분명히 믿기는 지금까지 뿌려놓은 씨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즉, 비록 자녀들은 누구의 특별한 보호 없이 저들만의 가정이 이루어지지만 그 동안 부모의 그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저들 스스로가 신앙으로 헤쳐 나아가야 할 일들이 많다. 이러한 환경도 저들에게는 큰 교육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기쁨으로 저들을 떠 날 수 있다.

우리 가정이 미국 시민이고 영어를 한다고 일이 잘 풀린다고 믿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먼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들의 자녀교육을 책임져 주신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하나님과 가정, 그리고 학교의 합 작품이 되어야 한다. 특히, 부모는 자녀들의 가장 위대한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 본 일이 없다. 자녀교육을 학교에서 맡겨야 한다고 생각할 때부터 교육의 방향을 잘 못되게 된다고 우리는 믿어왔다.

[ Webzine MIR 2003년 3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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