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 연구물
패권다툼속의 이라크
한국컴퓨터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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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이라크와 후세인의 미래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
오늘날 2200만명의 이라크 국민을 움직이고, 초 강대국 미국에 대항하는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사담’은 아랍어로 ‘맞서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이 이름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아랍의 자존심’ 또는 ‘미국의 공적’ ‘학살자’ 등 서로 상반된 의미가 함께 붙는다. 그의 힘을 바로 칭속과 욕설 속에 파묻힌 객관적 사실에 있다.
1. 사담후세인과 전쟁
무기 사찰 결과가 발표되지도 않았는데 사담 후세인을 잡기 위해 이라크인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평을 들어가면서까지 미국이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라크는 1991년부터 시작한 국제사회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복지 국가에서 최악의 국가로 전락했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경제 봉쇄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의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이라크 국민은 여전히 반미를 외치며 후세인을 서방 세계에 대항해 자존심을 지켜주는 아랍의 지도자로 환호한다. 이라크 인들은 후세인만이 미국 등 세계 열강에 맞서 아랍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 도취돼 그의 실정과 억압적인 폭력정치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에 의해
1) 경제 봉쇄에 따른 식량과 의약품의 배급은 이라크 국민을 더욱 더 국가 권력을 의존하게 만들었고
2) 이라크 국민은 봉쇄정책을 그들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려는 서방 세계의 전통적인 책략으로 인식한다.
후세인으로 인한 이라크인들의 고통, 국민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 그.
지난 집권시기동안 후세인은 150개 씨족으로 흩어졌던 이라크인들을 ‘하나의 국민’의식을 갖도록 키워갔다. 때문에 미국에 의한 인위적인 정권 교체는 자칫 후세인이 이뤄놓은 국가적 통합성을 무너뜨리고, 인종과 종파적 토대에 근거한 이라크 사회의 분열을 가속화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2. 후세인의 과거-유복자에서 대통령까지
1937년 바그다드의 북쪽에 있는 도시 티크리트에 인접한 알아우자라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양부의 매질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해오느라 읽는 것도 배우지 못했다. 9세 때 가출해서 찾아간 바그다드의 외삼촌은 그에게“조물주의 실수는 파리와 유대인을 만든 것”이라며 반 유대주의와 아랍 단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영향력을 끼쳤으며, 청년 후세인은 당시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의 범 아랍주의에 깊이 ?졌고 친 나세르 주의를 표방한 이라크 바트당에서 기량을 키워나갔다.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이집트의 패배와 1970년 나세르의 사망은 후세인에게 아랍 세계의 지도록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냉전 시절 미국, 서구와 소련, 동구권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국익을 챙기는 후세인의 외교는 적어도 아랍 민초들에게 자존심을 지켜주는 희망이었다. 1968년 바트당의 쿠데타가 성공하자 부통령으로 ‘제2인자’ 자리에 올른 그는 강력한 근대화 시책과 정치적 소수파인 시아파와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으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간다. 1979년 바크르 대통령이 사임하자 그 뒤를 이은 그는 1980년 9월 호메이니 치하의 이란을 공격하여 8년 동안 전쟁을 벌였고 다시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하여 점령했지만 1991년 1월 미국을 중심으로한 다국적 군의 반격으로 철수했다.
3. 이라크 전쟁과 미국 경제
“배부른 자는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 1970년대 사담 후세인이 자신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단이자 자신이 꿈꾸는 ‘낙원’의 젖줄과 생명수로 삼은 것은 바로 석유였다. 이라크의 원유 매장량은 1120억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2618억배럴)에 이어 전 세계 2위. ‘아랍의 모델국가’를 세우겠다는 후세인에게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대형 석유 회사들로부터 이라크 석유산업을 빼내 국유화하는 작업은 ‘필수코스’였고, 1972년 6월 그는 이를 이뤄내 열광적인 국민 지지를 끌어냈다. 그러나 후세인의 이라크가 이 ‘젖줄’을 토대로 합류하고 싶어했던 세계 ‘열강’들은 이 젖줄에 대한 유혹을 포기할 수 없었다. 미국의 ‘후세인 제거’목적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아니라 이라크 석유에 있다는 지직은 계속 설득력을 읽고 있다. 한편 미국은 무기 사찰이 목적이 아니라 무장해제가 목적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렇다고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아랍사람은 아무도 없다. 1월 29일 나일뉴스 (이집트 위성 방송 텔레비전)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라는 특집을 통해 미국의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관심은 ‘석유’에 있었다고 말한다.
역사를 보면, 극히 일부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전시에는 대통령이 세금을 올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경제 성장과 전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고 있다. 9.11 사태 이후 부시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경고를 강하게 하면서 동시에 미국인들에게는 정상적으로 쇼핑을 하라고 주문하였다. 미국 경제에 자신을 가지라고 말한 것이다. 이라크와 전쟁에서 국가가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세금을 삭감한다는 말이 상식적으로 들리는가라고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지는 묻고 있다.
4. 이라크 사태와 중동질서의 관계
미국은 이라크가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 등 대량 살장 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후세인이 독재적인 방법으로 장기 집권하고 있다는 것을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상황을 검토해 보면, 미국에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또는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 싶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고 이라크에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고 한다. 그러면 미국은 이라크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활용하여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중동 지배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과거 친미 국가와 반미 국가로 양분도니 구조를 뛰어넘어 더 포괄적인 중동질서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향후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시리아, 이집트 등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변화를 통해 미국은 더욱 효과적으로 중동 정책을 수립하게 되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입지를 한층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에 맞서 후세인이 무모해 보이는 게임을 하는 목적은 미국을 반대하는 범 아랍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미국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을 아랍의 영웅으로 부각시키고자 함이며 이로인해 아랍 패권의 맹주로 군림하여 아랍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후세인은 아랍세계에서 자신이 ‘제2의 나세르(Nasser)'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당시 이집트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는 패배했지만 세계 여론을 바탕으로 그들을 굴복시킨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5. 결 론
앞으로 이라크 사태는 일단 미국이 결정하는 대로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정권교체를 통해 중동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미국의 의도가 순조롭게 달성될지는 미지수이다. 후세인은 이번 전쟁을 통해 자신의 우상인 나세르처럼 아랍의 영웅이자 영원한 지도자로 인식되기를 꿈꾸고 있다. 후세인의 의도처럼 미국을 반대하는 범아랍 연랍전선이 결성되고 전세계적으로 반미, 반전 열풍이 확산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후세인에게도 이번 전쟁은 또다른 시험대를 의미한다.
부시와 후세인, 양자의 이권 대립은 아직 시민의식이 약하고 조직화되지 못한 이라크 국민을 볼모로 하고 있다. 쿠르드족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잔악함이나 독재 행태, 대량학살 무기생산등은 이라크 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러나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 피해를 자처하며 그를 제거하는 것이 국제 평화를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세계가 의문을 품고 있다.
석유에 대한 이권 다툼, 후세인으로 인한 이라크인들의 고통을 하나님께 하감 하시도록, 부시와 후세인이 세계 평화와 국민의 고통을 고려하는 양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라크와 관련된 국제 정세에 개입하시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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