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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이야기

태권도 선교 이야기 2
최용규 루마니아 선교사



태권도 선교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수가 없을 것이다. 태권도 사범도 아닌 내가 교회에서 어린이 30 명,청년40 명,유치원 80 명을 가르치고 여기다가 유단자 10 명정도가 배우러 찾아오니 이거야 말로 어떻게 설명할수가 없었다.

뚱뚱한 몸으로 또 밤마다 달밤의 체조를 통하여 몸은 연단시킨 다음에 3 일간 고된 시간을 루마니아 사람들과 함께 보내야 했다.

1994년 여름... 선교사님들이 사역하는 2 개교회와 연합으로 여름수련회를 갖었다. 장소는 아름다운 별장지역인 뽀이아나 짜뿔루이에서 말입니다.

등산도하고 , 캠프파이어도하고, 레크레이선 과 성경공부, 그리고 집회를 통해서 많은 은혜들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부라쇼브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이 저의 태권도 선교 이야기를 들으시고 브라쇼브 당신의 교회에서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젊은피가 또다시 작동하여 약속하고보니 이미 기차는 떠나갔고 나는 어쩌란 말인가...
사진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태권도 선교를 했던 초창기의 모습니다. 처음에는 도복도 없이 시작하였기 때문에 각자가 준비해온 옷을 입고서 태권도를 배웠습니다.뒷편 왼쪽에는 초창기 선교사역을 기도와 봉사로 도우신 강 구남 권사님의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사역은 그만두고 태권도 선교만 하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중 3 일은 부카레스트에서 2일은 브라쇼브에서 태권도 선교를 하기로하고 나머지 2 일은 교회사역이 되었다. 즉 1 주일중에 쉬는날이 하나도 없게되었다.

브라쇼브 선교사님이 태권도 선교를 시작하기전에 먼져 교인들에게 시범을 보인후 시작하자고 제의가 들어와서 교회청년들을 중심으로 시범단을 조직하고 1 개월간 매일 2-3 시간씩 맹훈련에 들어갔다.

약 8 명으로 구성된 시범단이 브라쇼브 선교사님 교회로 출발하였다.전부다 들뜬 기분이었고 목에다 기브스를 한것같이 무게들을 잡고 있었다.

드리어 브라쇼브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교회에 도착하여 도복으로 갈아입고 교회안으로 들어가서 기도를 한후 몸을 풀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교회청년들이 연습한것 같이 잘해야 되는데 생각을 하면 불안한 감도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교인들이 이리 많은가?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않아서 물어보니 지역신문과 벽에 광고를 했으며 교인들만 아니라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찾아온것이다.

여기다가 브라쇼브 일본의 가라데 사범들도 태권도가 알고 싶어서 제자들을 데리고 왔고 또 신문기자까지 카메라를 들고 서있으니 이거야 말로 어떻게 해야되는지 앞이 캄캄하였다.

시작을 해달라는 선교사님의 신호와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중문제는 나중이고 일단 시작을 하였다. 각가지 시범 프로그램대로 청년 시범단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청년들은 고맙게도 공중을 잘날아 다녔다.

계속이어지는 박수소리에 흐믓해하고 있는데 '가라데' 사범들이 나에게 사범으로서 시범을 보여달라며 요청이 들어왔다. 이런일이 없기를 바랬는데 드디어 또 고난의 시간이 온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피할길을 언제든지 주시는것 같았다.

나는 마이크로 말하기를' 죄송합니다! 태권도 사범은 아무데서나 시범을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원하셨다면 시범단이 오기전에 요청하셔야 하는데 다음기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누가 알았다면 아마도 나를 가만히 나두지 않았을것이다. 생각을 해보면 내가 나가서 시범을 보이다가 넘어지거나...큰 실수를 하면 한국의 태권도에 먹칠을 하는것이 아닌가... 순간 순간마다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이후 나는 매주 2 일간 브라쇼브로 태권도를 가르치러 다녔다. 약 100 명정도가 기다리다가 내가 도장에 나타나면 큰소리와 함께 인사를 받는데 누가 이 모습을 보고 표현하기를 꼭 군대에서 장군이 사병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길거리를 다녀도 수시로 태권도를 배우는 청년들이 창피하게 사람들이 많은데도 '태권'하며 인사를 하고 브라쇼브를 가더라도 길에서도 이런일이 자주있었다.

내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사작하는것 같았다. 루마니아 태권도 사범들이 나의집에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들과 점점 좋은관계를 갖기 사작하고 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태권도 사범이나 청년들이 보디가드를 해주었고 어느 누구도 나의 옆에 근접할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태권도 도장도 교회가 아니라 큰 스포츠 강당을 빌려서 약 200-300 명을 수용할수 있는 공간으로 빌렸고 마음대로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더이상 내힘으로 부족하여 태권도 전문 선교사를 불러오기를 원해서 한국으로 찾기 시작했고 그중에 신학교때 알고 지내던 지금의 강성민 선교사님을 한달간 현지답사겸 초청하여 회원들의 심사는 물론 현지 사범과 멀리 클루주 나포까 태권도 도장까지 초청받아서 루마니아에 정식으로 한국태권도를 보급하게 되었다.

그 이후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대사관의 협조를 얻어서 당시 불가리아에서 공식 파견된 태권도 사범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루마니아까지 담당하는 공식 태권도 사범을 모시게 되었다.

이쯤되면은 내 위치는 엄청난 자리에 서게되었다. 유럽의 모든길은 로마를 통해야된다고 했나..루마니아 태권도는 갑자기 나를 통해서만 해야되는 기분이 들었고 그당시 루마니아를 담당한 태권도 사범님은 누구든지 태권도를 배울려면 모든회원들은 주일에 최용규 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에 출석하는것이 의무가되어서 한때 교인이 100 명을 넘어서는 일가지도 있었다.

교만을 가지면 계속 교만해지기 때문인가! 하나님의 손길은 여기서 멈추게하셨고 지금은 결국 태권도와는 이별을 하게되었다.


[ Webzine MIR 2003년 5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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