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에 정착하기까지
이곳 카메룬에 도착한지 만 4년을 넘긴 지금, 이곳에 적응이 되면 될수록 점점 더 선교사역의 어려움과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군대에서는 만 2년이 지나면 고참병이 되어서 적어도 자기 부대에서 되어가는 일에 대해서는 훤히 알게 되는데, 선교지에서 저의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로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의사 소통이 어려울 때는 한두마디 말하고 서로 웃으면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었는데, 현지인 교우들의 생활과 사고를 알아갈수록 설교나 상담, 개인전도가 점점 더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아마 적어도 20년은 지나야 선교 베테랑이 될 수 있으려나 봅니다. 미숙한 선교사가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을 작은 지면에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주거문제
1997년 5월 17일에 집수리가 끝나서 거처를 옮긴 며칠 후에 배로 도착한 짐을 찾았습니다. 한국에서 이미 운송료와 두알라 항만 부대비용까지 지불했는데, 이곳에서 다시 약 90만원정도의 돈을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단순한 이삿짐인데도 절차가 복잡하고 세관 직원들이 까다롭게 해서 어떤 사람들은 짐이 부두에 도착한 후 두,세달 걸려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짐을 정리하고 집을 보수하면서 여기가 아프리카구나! 하는 실감을 합니다. 집에 들끓는 개미떼를 없애기 위해 구석구석 지어놓은 개미집을 부수는 일부터 해야했고, 폭우가 쏟아질 때면 벽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빗물을 쓰레받기로 열심히 퍼내야 했습니다. 지금은 양변기를 사용하고 수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처음 도착해선 고장난 변기를 몇 일 거쳐서 고치는 일, 5일 동안 물이 나오지 않고, 이틀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거세게 항의를 했던 시절이 아득한 추억으로 느껴집니다.
말라리아 신고식
카메룬 도착 몇 달 후 아내 백미영 선교사와 둘재 딸 수현이도 말라리아에 걸리는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말라리아 증세가 워낙 다양하다고 하는데 아내는 몸살처럼 온몸이 쑤시고, 관절이 결리며 열이 나는 증상을 보여 집에서 링겔을 맞았습니다. 수현이는 4일 동안 열이 41도까지 오르다 내리는 증세를 보여 약을 먹였는데, 당시 3살 짜리가 독한 약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약을 줄이고 기도하며 나머지 이틀을 이겨냈습니다. 이곳에선 흔히 있는 질병이만 자칫 소홀히 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질병이기 때문에 평소의 건강관리와 최대한의 예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의 말라리아 신고식은 도착 첫 해 성탄절을 마치고 찾아왔습니다. 수도인 야운데에서 성탄절 행사를 마치고 차로 3시간을 달려 두알라에 도착한 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걷기 힘들 정도로 온몸의 기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밤새 열과 구토, 설사가 일어나는 말라리아 증세로 식은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습니다. 군대에서 새벽 보초를 설 때 보다 더 지겹도록 시간이 안가는 밤을 보내고 아침에 주일 예배 설교를 하려니 힘이 없어 강대상을 붙들고 서야할 지경이 되었고, ?설교하다 죽으면 얼마나 영광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며 겨우 설교를 마쳤습니다. 오후에 교회의 집사 한 분이 현지인 의사를 불러와서 그가 주사를 놓아주고 갔는데 저녁 무렵 몸이 많이 회복되어 음식도 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평생 처음 겪어본 그 때의 고통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등줄기가 서늘해 집니다.
카메룬 풍경과 문화
쓰레기통을 뒤지는 소떼들
제가 있는 곳은 6월부터 8월까지가 본격적인 우기인데 이때에는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며 내립니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열대지방답게 낮은 하늘에서 번개가 번뜩이며 무섭게 퍼붓고, 그로 인해 커다란 나무가 꺾이고, 길이 순시간에 물에 잠기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비가 계속 내리는 덕분에 그다지 덥지 않아서 날씨 때문에 느끼는 고충은 건기 때보다 오히려 적습니다. 문화적응의 단계에 있을 때 카메룬의 거리풍경을 보면 흥미 있고 관심을 끄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한가지가 거리에서는 방치된 소들입니다. 소 떼가 차도에 버티고 서서 차들이 피해 다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여기저기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모습이 마치 인도의 거리를 연상케 합니다. 이곳 소들은 뿔이 거의 70-80 센티에 가깝게 길며, 등에는 커다란 혹 주머니가 달려있고, 마치 개들처럼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먹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밖에도 원숭이와 악어요리를 파는 식당, 유전적인 질병으로 인해 피부색이 마치 백인처럼 희게 태어난 흑인들, 길에 엎드려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회교도들이 특색 있게 눈에 들어옵니다
꺄도(Cadeau) 문화
카메룬에 와서 가장 먼저 느낀 문화충격은 바로 ?꺄도 문화였습니다. 이것은 서양의 팁 문화가 카메룬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다소 변질된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팁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잠깐 물건을 들어주었다던 지, 고장난 차를 밀어 주었다던 지하면 의례 동전 몇백 원이라도 받는 것은 당연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카메룬에 깊숙이 파고들은 이 까도 문화가 경찰과 세무공무원, 각종 관공서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리의 교통경찰은 검문을 빌미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행정관서에서는 싸인을 하는 책임자마다 얼마씩의 돈을 요구는 일은 이곳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선교사 이전에 크리스챤으로서 고민스러울 때가 많은데, 복음으로 이러한 사회병폐가 조금씩 개선되어 나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문제
테리 안드레와 깡패 경찰
테리 안드레는 주변나라 말리 사람인데, 발리교회에 나온지 2년이 넘는 형제입니다. 키가 작고, 똥똥한 체격에 신앙에 별 기복이 없어서 좋아하던 형제인데, 경찰서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일하는 고물상에 누가 훔친 물건인줄 모르고 구입해서 보관하고 있던 전화케이블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경찰이 조사를 나왔을 때 그 고물상의 주인은 없었고 불행히도 테리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가 몇 마디 설명을 하자 그를 잡아간 것입니다. 경찰은 도망간 주인이 올 때까지 볼모로 잡겠다고 그를 데려갔다는데 세상에 이런 억욱한 일이 있나 분개해서 경찰서에 쫓아갔습니다. 첫날은 담당 경찰이 없고, 경찰서장도 없어서 돌아오려는데 한경찰이 자기가 도와줄테니 돈을 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나는 목사인데 이런일을 돈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혐의없이 외국인을 저렇게 감금해도 됩니까??라고 따지다가 지쳐서 돌아왔고, 다음날 서장을 만났는데 본체만체하고 누가 이 사람을 내방에 보냈느냐고 부하직원에게 호통이나 치고 하길래 화가나서 ?당신들 법은 증거도 없이 사람을 감금할 수 있는겁니까??하고 따졌더니 비웃으며 ?목사님은 교회로 돌아가시죠??라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그 순간에 ?너희 경찰 놈들이 돈이나 좋아하는 도둑이 아니냐? 선량한 시민을 감금한일이 잘한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서장도 몹시 화가난 듯 억지로 흥분을 감추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함께간 시몽이 겁이났던지 저를 진정시키며 우선 돌아가자고 거듭 강권하였습니다. 돌아 나오면서 ?너희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다? 한마디 더 던지고 나왔습니다. 후진국일수록 군인, 경찰의 권한이 막강하다더니 정말 부패할대로 부패한 이 나라의 정치와 사회는 바닥에까지 이른것만 같았습니다. 큰 절망을 느끼며 교회에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이일을 해결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테리 안드레는 아직도 냄새나고 구타가 심한 구치소에 갇혀있습니다.
전화국과 마피아
지난달 중순에 일주간 전화가 불통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흔히 있는 일인데, 특별히 외국사람들의 집 전화가 자주 불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화 고장 후에 전화국에 몇 차례 고장 신고를 했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3일만에 직원 한 명이 보러 나왔다가 돌아갔고, 다시 이틀 후에 두사람이 찾아와서 집으로 들어가는 전화선이 낡았으니 교체를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내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하는 수 없이 전화선 값을 주었는데, 이틀이 지나도 사람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히 전화국 직원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고, 고장신고를 접수시킬 때 그려낸 약도까지 들고 와서 별로 의심을 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전화국 직원도 아니고 이런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도둑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전화국에서 확인한 사실은 마피아 조직에서 전화국 직원들과 내통해서 고장 신고된 전화번화와 약도를 주기도 하고 또 전화 통화를 많이 하는 집이나 외국인 집에 일부러 전화선을 끊어서 위와 유사한 수법으로 돈을 받아간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통신서비스? 개념은 전혀 찾을 길 없고, 오히려 며칠씩 전기가 안 들어오거나 물이 안 나와도 아쉬운 사람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행정 서비스는 이곳이 아직까지 후진국임을 여실히 나타내 주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일을 당한 후에 발리교회 청년 몇 명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소 위로를 받았는데, 결국 복음으로 사람들이 마음이 새롭게 창조되어야 이 땅에 소망이 있음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속신앙과 영적인 문제들
시장에서 만난 정신이상의 여인
청년회 수련회를 가는 길에 한 시골 장터에서 생긴 일입니다. 청년들에게 사다줄 옥수수와 빵을 구하기 위해 최목사님과 함께 현지인 시장(장터)에 들어갔는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정신이 이상한 여인이 수녀 옷과 비슷한 것을 입고 저희를 쫓아다니며 팔짱을 끼고 끌어안고 야단이었습니다. 시장의 모든 상인이 장사하는 일을 잊고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웃고 있었고 저희는 희롱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마 이 여인은 돈이라도 몇 푼 얻고자 그러는 것 같았지만 마침 주머니에 가진 동전이 없어서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로 가서 동전하나를 얻어주었습니다. 간신히 이 여인을 떼어놓고 다시 시장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자동차 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충돌음이 들려왔습니다. 그 여인이 빗길에 빠르게 달려오던 차에 치여 공중에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땅에 떨어졌고,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급히 태우고 갔지만 살 가망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서둘러서 아수라장이된 시장을 빠져나오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스쳐갔습니다. 그 중에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서 만난 귀신들린 점치는 여인에 관한 기록과 대머리 엘리사를 놀리다가 암콤에게 물려죽은 젊은 아이들에 관한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그 여인이 차에 치는 순간 시장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놀림의 웃음이 지워졌고, 아마도 이 일은 하나님의 종에 대한 권위를 보장해주시고,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계시는 돌보심의 은혜를 확인시켜주신 사건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원시종교, 악몽, 무당(Marabout)
제르멘 이라는 23살된 고등학생이 울먹거리며 상담을 하고싶다고 찾아왔습니다. 우리교회에 나온 지는 몇 달되지 않아서 눈여겨보고만 있었는데 제법 심각한 얼굴로 이틀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꿈인지 실제인지 정확히 분간하지 못하겠는데, 악마처럼 생긴 남자가 자신을 끼어안고 놔주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참동안 발버둥치다가 아침이 되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허벅지로부터 종아리까지 새빨갛게 멍이 들어있었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허벅지에 손자국이 남아있다고 보여주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자세히 보았는데 사람의 손크기보다 훨씬 큰 손자국이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어릴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고 그럴 때마다 그녀의 가족들은 악마가 다녀간 것이라고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교인 몇 명과 함께 한참동안 찬송을 부르고 예수그리스도가 사탄을 이기고 승리한 분임을 선포하며 안수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아프리카는 대부분 정령신앙이 사람들 깊숙이 파고들어 있고. 아직도 마을마다 점장이와 무당, 마술사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류의 영적인 대결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렌 이라는 대학생 자매는 자기 집에서 잠을 잘 때면 악몽에 시달려서 밤새 잠을 못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기독교인들도 질병, 악재등의 문제에 부딪히면 무당의 집에 찾아가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문화 몰이해와 헤프닝
빨간 네온 십자가
교회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두알라에서 첫 번째 네온 십자가를 만들어 교회 지붕 위에 달았습니다. 말이 네온이지 나무로 틀을 짜고 속에 형광등을 집어넣은 후 빨간 페인트를 칠한 유리로 앞면을 덮어 만든 것입니다. 카메룬은 회교와 천주교의 전통이 있어서 사원이나 교회의 건물을 중요시하는 의식이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처럼 개인 주택을 임대하여 사용하는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단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지붕 위에 십자가를 크게 만들어 올리고 그것도 형광등을 집어넣어 밤에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최대한으로 교회 건물다운 모습을 나타내 보고자 해서 시도해 본 것입니다. 지붕 위의 십자가로부터 지상으로 전구를 여러 개 연결하여 내려뜨리는 장식을 해서 크리스마스 절기 내내 지나는 사람이 한참동안 바라보고 가는 재미있는 일도 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지에서 맞이하는 첫번째 성탄절을 아름다운 장식으로 스스로 만족을 하며 보냈지만 시간이 얼마간 지난후 이곳에서는 빨간 네온 십자가를 사용하는 이단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결국 빨간색 페인트를 벗겨버리고 흰색으로 다시 칠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부활절 계란
부활절 계란에 계란을 돌리며 예수님을 부활을 알리는 전도행사는 몸에 익은 것이라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시도했었는데, 이 일로 도파시 교회의 레이몽 형제가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계란을 받은 한 자매의 부모가 레이몽을 경찰에 고발한 것입니다. 이곳 두알라 부족들은 누구에게 재앙이 임하게 할 때 계란을 사용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때로는 계란을 원수의 침대 밑에 두어 그 침대에서 잠을 자는 사람에게 악령이 역사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 아이의 부모가 ?만일 내 딸이 죽거나 아프면 당신이 책임진다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 해왔습니다. 이것도 정령신앙에서 오는 영적 무지와 두려움 에 근거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결국 제가 경찰서에 가서 계란을 전도를 위한 선물로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난 후에도 레이몽 형제가 몇번 더 경찰서에 불려가는 고충이 있었습니다. 문화 인류학적인 이해와 종족연구가 제게 부족했던 것이지요.
감사와 찬양을
미숙하기만 한 저의 사역에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셔서 3년 사역동안 네 곳의 교회와 한곳의 대학 전도 사무실을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중 현재 두알라 중앙교회를 2층으로 짓고 있고, 목재 건물인 보나베리교회는 완공했으며, 대학생 전도와 훈련의 센타로 또 기도원으로 쓰여질 보야 교회가 건축 중에 있습니다. 또 한 감사한 것은 언어가 잘 되지 않을 때에도 기도로 중병에 있던 마망 아니아스와 리디아가 기적같이 회복된 신유의 역사가 있었고, 제자 훈련교재를 번역해 가며 어렵게 시작한 훈련이 이제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또 보야의 대학 전도 사무실을 통해 그 동안, OM 로고스선 선교사와의 협력, 카메룬에 갓들어온 대학생 선교회 (C.C.C), 예수전도단, 씨.와이,제이(Cameroon Youth for Jesus)와 협력하여 수 차례 노방전도를 한 일도 큰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카메룬은 아프리카를 잠식하는 회교와 정면으로 대치하고있는 전장터의 최전방입니다. 아직 회교에 완전히 항복한 나라가 아니기에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이미 들어와 있는 천주교는 정치종교와 미신의 종교로 변했고, 개신교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영적인 리더쉽을 상실해 버린 상황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선교에 불이 붙어있는 한국교회를 사용하셔서 이곳에 복음의 재건을 이루시는 모습을 볼 때 그 분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검은 흙, 검은 바다 그러나 마음은 여리고 순박한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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