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석(10기)
2003년 8월 3일(일) - 출국, 경유, 그리고 도착.

오전 10시 15분. 우리가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시간이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나는 공항조차도 신기했다. 8시에 단원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새벽부터 내린 비가 공항으로 가는 길을 함께 하였다. 해외에 간다는 마음과 새로운 경험에 대해 흥분된 마음이 날 사로잡았지만, 한국을 떠난다는 마음에 서울의 모든 것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공항은 정말로 만원이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공항에 오면 다 거짓말 같다. 왜 이렇게 해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우리는 Thai Airlines을 타고 Bangkok으로 향하였다. Pakistan으로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경유를 하기 위해서 이다. Bangkok까지 약 5시간의 비행이었지만, 한국과 시차가 2시간이 있기 때문에 Bangkok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쯤에 도착했다.
한국시간으로 하면 오후 3시쯤.
우리는 Bangkok 시간으로 저녁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다. 공항 내 면세점을 둘러보았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똑같은 제품들뿐이었다. 물론 Bangkok은 관광도시답게 면세점이 크고 화려했다. 남자인 나는 시계와 전자제품을 구경하기 원했고, 자매들은 화장품과 보석류를 보기 원했다. 약간의 분쟁(?)끝에 우리는 약 2시간정도 구경하고 다시 모이기로 했다. 다시 모이는 장소는 Transfer Desk 1. 구경을 다하고 다시 모인 시간은 오후 6시쯤이었다.
우리 팀은 또 다른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저녁을 먹어야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참고 있다가 기내식을 먹을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저녁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이지만, 기내식이 나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언제 다시 Bangkok에 오겠냐는 생각에 Bangkok음식을 먹기로 했다. 마침 우리에겐 약간의 바트(Thai land의 화폐단위 Baht)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겉보기보다 싼 가격에 긴장한 마음을 풀며 음식을 시켰다. 독특한 음식과 특유의 향신료를 즐기며(?)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계산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 가격보다 더 많이 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종업원을 불러서 하나하나 계산했는데, 우리의 실수는 Tax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모든 가격이 Tax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Tax계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Baht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뜻하지 않게 Dollar를 사용하게 되었다.
지루한 Bangkok의 대기를 마치고, 드디어 Lahore, Pakistan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은 대부분 파키스탄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와는 다르게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 가득 찬 파키스탄 사람들과 파키스탄 언어들. 그 속에서 우리는 외국어를 하는 외국인이었다. Bangkok에서 Lahore까지는 비행기로 약 5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차가 2시간이 있기 때문에, Lahore에 도착한 우리는 밤 11시쯤이었다. 한국시간으로는 4일 새벽 3시. 우리는 이틀을 하루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몸은 점점 피곤해졌지만, 시간은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고 가르쳐 주고 있었다.

짐을 찾고 Lahore공항 밖으로 나온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드디어 파키스탄 땅을 밟으러 공항을 나가는 길은 참으로 길고 흥분되었다. 너무 많은 파키스탄 사람들. 그들은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우리는 그 사이를 열심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끝없을 듯한 인파 속에서,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한국인이었다. “최아브라함“ 선교사님. 첨 뵙는 선교사님이지만, 어찌나 반갑고 다행이던지 나도 모르는 웃음과 감사가 나왔다. 우리는 파키스탄 Porter들을 뿌리치고(?) 선교사님 차를 타고 우리의 첫 목적지인 David villa(Faisalabad)로 향했다. 차로 약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고, 힘들게 도착한 우리는 새벽 4시쯤이 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2003년 8월 4일(월) - Orientation

오전 7시. 우리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체,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아직 짐도 풀지 못한 상태였고 우리는 간단하게 빵으로 아침을 먹고, 9시에 있을 Orientation을 준비하였다. 오전 Meeting을 통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였다. 8시부터 학생들이 조금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8시 30분쯤 되었을 때에는 아직 열지 않은 교실 앞에 학생들이 몰려있었다. 우리는 교실 문을 열고 학생들을 맞이하고, 준비한 현수막을 걸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서 우리의 모습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고, 하나둘씩 모이는 그들을 보는 우리도 묘한 흥분과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것은 예상외로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출발하고, 아침에 깰 때까지도, 아니 학생들이 모이는 것을 보는 순간에도 초기 최대 50명 정도라고 예상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고, 이 교육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집계를 해 보니, 약 100명이 모인 것이었다. 우리가 준비해 간 이곳의 교육 내용은 [Class A - Windows기초], [Class B - Microsoft Word], [Class C - Adobe Photoshop 7]이였다. 그런데, Class A에 학생들이 약 60명이 모인 것이다. 모두가 컴퓨터가 처음이라며 기초를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컴퓨터를 처음보거나 만져보는 빈민층인 것이었다. 수업이 불가능했다. 교육장도 그들은 한번에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긴급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풀어야 했다. 우리는 Orientation을 하다가 말고, 긴급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결론은, [Class D - Windows 기초]를 만들어서 오후반으로 한 번 더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짜 놓은 3주간의 파키스탄에서의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돌려보낼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왜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가르쳐 줄 것이며 어떻게 진행하게 되는지에 대해 모두 말했다. 학생들은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고, Note에 적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이렇게 간단하게 첫 만남을 갖고, 마당에 나가 기념촬영을 하기로 했다. 다 모여서 찍고 나기 정말로 기분이 좋고, 앞으로의 교육이 기대되었다.
Orientation이 끝난 뒤, 우리를 점심을 먹고 컴퓨터를 사기로 하였다. 그리고 자매들은 현지 여성 옷을 구입하기로 하고, 사모님과 함께 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이슬람 문화권이라 여성의 복장과 행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우리는 외국인이지만, 그들과 가까워지고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현지 옷을 구입하여 입기로 하였다. 형제들은 최선교사님과 함께 한국의 용산 전자 상가와 같은 곳으로 가서, 중고 컴퓨터를 사기로 하였다.
아래 사진은 컴퓨터 상가이다.


아래 사진은 Faisalabad시장의 모습이다.




2003년 8월 5일(화) ~ 9일(토) - Faisalabad Education

교육장의 컴퓨터는 모두 5대이다. 한 사람이 한 대의 컴퓨터를 사용하며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 하였다. 할 수 없이 한 컴퓨터에 4~6명씩 앉아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넉넉하지 못한 여건이었지만, 학생들의 열기와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했다. 그들은 그러한 환경을 한번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아쉬워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였다. 짧은 기간 안에 최고의 효과를 위한 단원들의 Idea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작은 Group이였다. 교육효과를 높이고, 모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을 위해 우리는 각 Class마다 5개의 작은 Group을 만들었다. 이 작은 Group을 통하여 공동작업과 실습을 하는 교육이 진행되었다.

컴퓨터의 기초를 다루는 Class A와 Class D는 컴퓨터를 처음 다루는 사람과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하였다. 전원 연결 및 컴퓨터 Cable 연결에 대해서 교육하고, 각 부품의 명칭과 그 기능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약 1주일간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Mouse의 사용법에 대해 열심히 가르쳤지만, 그들에겐 이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Mouse를 잡는 손이 너무나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워서 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답답하게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손놀림을 보면서 교육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다음은 Keyboard를 이용한 Typing을 가르쳤다. 한국도 그렇지만, 초보자들에겐 양손으로 Typing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기간 내에 Typing을 잘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게 올바른 방법과 바른 교육을 하겠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하나하나 교육을 하였다. 각 Key의 기능과 작동법(예를 들면, 특수키나 기능키)을 설명하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Typing의 방법인지 설명하였다.

Typing을 연습할 때에는 Windows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Notepad와 Wordpad를 가지고 작업을 하면서, Application program의 사용법에 대해 같이 교육하였다. Mouse를 이용할 수 있는 Program으로 Paint program을 사용하였는데,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는지, 수업시간 내내 다들 즐거운 웃음과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Mouse라서 그런지, 자신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 안타까운 얼굴들을 하면서 열심히 했었죠. 마지막 Final Test때에는 Wordpad와 Paint를 이용한 작품(?)을 하나씩 만들면서 그동안의 교육을 점검했다.

Class B는 Microsoft WORD를 교육했다.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교육이 바로 Word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자리를 찾게 될 때,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로 한 능력이 Document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은 그들에게 매우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교육 대상자들은 컴퓨터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으면서, 기초적인 부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잘 다룰 수 있으며 문서작성 요령과 Word program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이 Class B의 교육대상자였다. 그들은 글자모양과 문단모양을 배우고 실습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익혀갔다. 또한 그림삽입과 표를 배우면서 깔끔하고 정돈된 형태의 문서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표를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조작할 수 없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지만, 그들은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도전하고 새롭게 시도하면서 배워갔다. 실수도 공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날, 미리 찍어둔 개인 증명사진을 이용하여 “Group(자기) 소개서“를 만들어 보았다. Word를 배우고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면, 이들은 이것을 통해 직업을 갖기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자기소개서를 만들어 보게 함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하였고, Word를 이용하여 어떠한 문서를 만드는 실습을 통해서 활용을 알게 했다.
Class C는 Adobe Photoshop 7을 교육했다. 기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컴퓨터 조작 및 Application program 사용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육 대상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래도 파키스탄에서 컴퓨터를 조금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Photoshop에 대해 얘기는 듣고 그 놀라운 기능들에 대해 알고 있지만, 정작 배울 수 없고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교육 첫 날, Photoshop을 이용하여 할 수 있는 Graphic 작업들을 알려주고, 그 예를 보여 주었다. Product design, Movie Poster, Advertisement, 그리고 Web design등. 그들은 첫날부터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신들이 배우게 될 교육이 어떻게 쓰이게 되는지 알게 되면서,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Photoshop역시 약 1주일의 시간에 다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이 시간으로는 정말로 맛만 보고 끝날 것만 같았다. Photoshop을 담당했던 “Mina“님은 어떻게든지 더 알려주고 배우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Tool bar를 이용하는 방법과 기능들. 그리고 각 메뉴에 숨겨진 기능과 효과들. 어떻게 사용해야하며 사용했을 때 어떠한 느낌이 나는지. 하나하나 필기하면서, 실습하면서 그들은 배워갔다. 까다롭다는 Layer교육이 끝난 후, 마지막 날 그들은 자기나라인 파키스탄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보았다. 여러 가지 준비된 이미지들을 가지고 그들의 느낌과 감각으로 만들어 낸 포스터는 누가 봐도 훌륭하다고 말할 만 했다.

드디어, 우리는 이들에게 한국에 대한 소개를 할 수 있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면, 파키스탄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이렇게 묻는다. “중국인 인가요?” 아니라고 하면, 그들은 “그럼 일본인 인가요?”라고 묻는다. 너무나 아픈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접하는 모든(?) 동양 문화는 중국문화 아니면 일본문화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파키스탄에 중국음식점이 있다. 이것은 이들에게 특별한 외식거리로 정착되어 있었으며, 우리나라 7,80년대에 레스토랑에서 양식을 먹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는 일본 자동차가 무수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Honda, Toyota, Suzuki등등. 우리나라의 Samsung, LG, Kia, Hyundai도 있었지만, 아직 그리 큰 비중을 잡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들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정말로 의미 있는 것이었다. 전부에게 다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입을 통해 점점 알려진 한국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쁘고 긴장되었다. 우리는 최선교사님께 한복을 빌려 입어 보이며, 한국의 전통의상을 선 보였다. 그리고 젓가락, 숟가락 문화와 온돌 문화, 현대화된 한국의 사회, IT현실과 Power에 대해 설명하였다. 때로는 웃었고, 때로는 감탄하는 파키스탄 사람들을 보면서 문화교류와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마지막 날, 드디어 수료식을 했다. 모두가 아쉬운 마음과 무언가를 해 냈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수업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지각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우리는 준비한 수료증을 주기로 했었다. 한국에서 준비할 때, 넉넉하게 50장을 준비해 갔었는데 너무 많은 학생들로 인해 우리는 전날 밤을 새면서 50장을 더 만들어야 했다. 전날 밤의 우리 숙소는 정말로 전쟁터와 같았다. 컬러 프린터를 선교사님께 빌리고, 학생들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한장 한장 다시 만들었다. 누구하나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하루가 다 가고 있었고, 밤은 깊어가고, 수료증은 더 만들어야하고.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전압이 일정하지 않고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 파키스탄의 현실이 드러났다.

열심히 작업하던 새벽에 정전이 된 것이다. 우리는 급하게 촛불을 켜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프린터는 작동하지 않지만, 다행히 노트북은 배터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 동안 작업한 내용은 날라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 새벽에 작업한 내용이 다 없어졌다면,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렵게, 어렵게 작업을 끝내고 학생들을 기다렸다. Class별로 수료증을 주고, 수료식을 시작했다. 한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준비한 수료증을 주었다. 또한 Class별로 찍었던 사진을 인화하여 수료증과 함께 주었다. 그들에게 추억이 되길 바라며.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인사동에서 전통부채를 100개 구입해서 가지고 갔었다. 50개는 Faisalabad에서 사용하고, 나머지 50개는 Karachi에서 쓸 계획이었는데, 우리는 회의를 통하여 이곳 Faisalabad에서 모두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수료자 전원에게 한국의 전통부채를 선물로 주었다.
2003년 8월 6일(수) - 멀뵈양 교회(현지교회) 방문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파키스탄에서 첫 현지 교회를 가는 날이라는 점에서 이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오늘은 수요일이고, 수요기도 모임에 참석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최아브라함 선교사님께서 현지인 목사를 양육하시고, 자립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교회이다. 그런데, 몇 달 전 수요기도 모임을 현지인 목사를 중심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는데, 선교사님이 참석하지 않으니 흐지부지 없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선교사님은 그들을 많이 혼 내셨고 다시 모이고 기도하도록 하시며, 다음에 또 “도적같이“와서 보겠다고 하셨다고 얘기해 주셨다. 오늘이 바로 그 “도적같이 오는 날“이였던 것이다. 무척이나 떨리고 간절한 마음이 가득했다. 멀뵈양 교회는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표현보다는 교회에 가기 너무 힘들었다. Faisalabad의 Main Street(?)에서 훨씬 떨어져 있으며,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30분이나 더 들어가야 했다. 도착하니 주변은 어두워져 있었으며, 주위에 불빛이라곤 교회에 걸려둔 백열전구 2개뿐이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현지 교인들이 많이 모여 있었으며 기도와 찬양을 하고 있었다. 비록 우리는 그들의 말을 모르지만, 우리의 언어로 함께 기도하며 기도모임에 동참하였다. 도착해서 놀란 것은 이들은 남녀가 따로 앉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초기 교회의 모습도 이러했다고 들었는데, 과거의 체험을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내가 쑥스럽고 신기했다.
2003년 8월 7일(목) - Restaurant
교육이 끝나고 최선교사님 가정과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 Faisalabad의 restaurant에 갔다. Faisalabad에서 좋은 음식점으로 통하는 곳이었는데,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았었다. 우리는 파키스탄 음식을 너무나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restaurant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약간 썰렁하고 칙칙했는데, 이것도 “파키스탄의 문화려니~“하고 즐겁게 먹었다. 파키스탄에서는 한사람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00원 정도면, 정말로 근사하게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2003년 8월 9일(토) - Restaurant
길지 않았던 교육의 마지막. 수료식을 마치고, 우리는 이준재 목사님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파키스탄에 있는 중국집(이렇게 표현하니까 쫌 가벼워 보이지만, 제법 고급 restaurant이다.)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면서 파키스탄의 현황과 사역에 대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2003년 8월 10일(일) - Visiting
파키스탄에서 맞는 첫 주일입니다. 우리는 현지인 교회인 “UP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Urdu로 진행되는 예배에 도저히 알아들을 길이 없었지만, 교회의 분위기와 예배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현지인 목사님과도 짧은 만남을 가졌고, 컴퓨터 교육을 받았던 학생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Faisalabad를 돌아보면서, 현지인 학생의 집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후 2시부터 엄청난 비가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오후 4시까지 폭우가 내렸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모든 오후 일정이 취소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비가 너무 내리고 있으며, 쉽게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한가로운 오후의 낮잠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리던 비는 한순간에 멈춰버렸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햇빛이 비췄고, 우리는 취소되었던 오후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거리는 온통 물바다였습니다. 비가 내리지 잘 내리지 않으며, 비가와도 그리 많이 오지 않는 파키스탄에는 하수도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는 기간에 파키스탄은 기상이변이라 할 만한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온 거리는 물에 잠겼습니다. 빈민층 사람들의 집은 모두 물에 잠기고, 이 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집에서 물을 빼는 사람들. 빈민층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해서 벽돌을 살 수가 없습니다. 파키스탄에서의 벽돌은 집을 의미합니다. 벽돌을 사서 집을 만드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넉넉하지 못해서 벽돌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몇몇은 집에 지붕이 없습니다. 그런 집에 비가 내렸으니, 집안은 끔찍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또 걱정되는 것이 전염병입니다. 이들에게는 이렇게 비가 오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병에 대한 면역력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라 의료혜택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우리 팀은 이렇게 한번씩 비가 와주면 시원해지고 기분도 상쾌해져서 좋았지만, 그들을 보니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거리와 집에 넘쳐나는 빗물들, 그리고 그 물속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정말로 그들에게는 따로 수영장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것이 파키스탄 빈민층의 현실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잘 사는 사람들은 부러울 정도로 잘 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너무나 힘든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답답한 것은 그러한 현실을 떨쳐낼 방법이 그들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받지 못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눈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의 배고픔이 그들에게는 해결해야할 가장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비가 내린 거리를 지나 현지인 가정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교실 밖에서 학생을 만나니, 너무 반갑고 다정했습니다. 또한 이렇게 현지인 가정의 상황을 알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너무나 귀한 음식을 대접해 주어서 감사했습니다. 맛있는 차, 짜이(현지에서는 “짜에“라고 발음합니다.)와 파키스탄의 쿠키와 과자(우리나라 라면땅, 뽀빠이 같은 과자가 있음)를 대접받았습니다. 우리는 그곳의 삶과 가정형편, 가족구성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작은 집, 방이 2칸, 부엌과 마당이 있는 곳에 11명의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 넓은 곳도 아닌데, 하지만 그들은 웃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2003년 8월 11일(월) - PCRM & PBS
오전 9시에 PCRM(Pakistan Christian Recording Ministries)에서 “Urdu성경녹음“에 대해 미팅을 가졌다. 상호간에 있었던 약간의 문제를 확인하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PCRM에 대해 소개를 받고 현재 하고 있는 사역과 진행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Pakistan에서 참으로 반갑고 뿌듯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Deawoo Express]이다. 이곳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고속버스터미널이다. 대우건설과 대우자동차가 함께 만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모든 버스는 Deawoo버스이다. 그리고, Pakistan의 고속도로를 대우건설이 놓았다고 했다. 역시 이렇게 좋은 도로는 없을 정도였다. 파키스탄사람들이 놓은 도로는 아스팔트를 깔았지만, 울퉁붕퉁하다. 하지만, 한국사람이 만든 도로는 달랐다. 약 3시간의 거리를 다시 달려서 Lahore로 가는 길은 우리에게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Pakistan에 처음 도착해서 달렸던 도로. 그 새벽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폭우 속을 뚫고 지나왔던 도로. 긴장한 우리에게 끝없을 것만 같았던 긴 도로. 우리는 그 길을 이렇게 다시 달리고 있었다. 약간의 여유와 Faisalabad의 그리움, 그리고 아쉬움을 가지고. 몸은 피곤했지만 이 땅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오후 4시쯤, Lahore에 도착했다. 여기는 Faisalabad보다 더 더운 것 같다. Faisalabad에서도 쓰지 않았던 Sun-glasses를 사용하고, 우리는 다녀야 했다. P선교사님께서 Pickup해 주셔서 우리는 편하게 P선교사님 댁에 갈 수 있었다.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P선교사님 가정과 L선교사님 가정에 너무너무 감사했다. 우리는 짐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PBS(Pakistan Bible Society)로 향했다. Urdu 성경녹음에 관한 일과 PBS을 보기 위해서 갔었는데, Anthony Lamuel(General Secretary)의 친절한 아내로 너무나 귀한 구경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PBS에서의 일을 마치고, 다시 P선교사님 댁으로 돌아와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 8시경 자매님들의 옷을 몇 벌 더 구입하기 위해 선교사님들의 안내로 옷가게에 가서 현지 옷을 구입하고, 자매들은 L선교사님 댁으로 갔고, 형제들은 P선교사님 댁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2003년 8월 12일(화) - Lahore trip
Lahore. Lahore는 문화유적의 도시라고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주“와 같은 곳이다. 엄청나게 큰 Fort와 유적지, 그리고 Mosque. 우리는 오전에 차를 rent하여 Pakistan의 박물관에 갔었다. 너무나 볼 것이 많고 다른 문화와 역사를 체험하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랍고 신기했다. 특히 간다라 문화를 모아둔 곳에서는 책에서만 보았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오전의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현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 Pakistan에서 유명한(?) Lahore Fort로 향했다. 많은 식민통치가 있었던 그 곳. 그래서 그들을 공격에 방어하여 자신을 지키려 했던 곳. 많은 나라의 문화와 오랜 역사의 흔적이 있는 곳을 보게 되었다. 왼쪽 사진은 Lahore Fort의 전경이고, 오른쪽 사진은 Lahore Fort Map이다.
우리는 빠르게 Lahore Fort구경을 끝내야 했다. 18시 30분까지 가야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Wagah-Border이다. 이곳은 Pakistan과 India의 국경지역으로 저녁 6시30분~7시에 양국가간의 국기 하향식이 있다. 정말로 보기 좋고, 멋진 장면들, 그리고 양국간의 자존심이 달린 의식이었다. 우리는 늦지 않게 Wagah-Border에 도착하였다. 그곳의 Ranger에게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국기하향식의 앞쪽에 앉았다. 약 2미터가 되는 철문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가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처럼, Pakistan은 India에서 독립한 나라이다. (하지만, 독립하기 전에는 하나의 India였다.) Pakistan의 역사를 조금 살펴보면, Pakistan은 1947년 8월 14일에 독립한 나라이다. 이 때 Pakistan의 독립을 이끈 인물은 Mohammad Ali Jinnah였다. 인도에 간디가 있었다면, Pakistan에는 Jinnah가 있었다. Jinnah는 간디의 방법과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 문화의 국가를 제안하였고,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던 인도의 한 부분을 1947년 8월 14일 분리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Pakistan의 독립시간은 1947년 8월 14일 24시라는 것이고, India는 1947년 8월 15일 00시라는 것이다. 두 나라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분리되었는데, 같은 시간을 서로 다르게 보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이곳의 열기는 대단하였다. Pakistan은 Pakistan나름대로 열기가 뜨거웠고, 응원(?)도 대단했다. 건너편 India도 열심이었다. 엄청난 소리. 함성. 마치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서로의 국기를 흔들며, 기세싸움을 하듯 서로 지지 않으려고 했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양국의 의장대(?)는 서로 엄청난 기세와 절도 있는 자세로 의식에 임하고 있었다. 우리가 녹화한 비디오를 보면 나오지만, 엄청난 일이 일어났었다. 그것도 국경지대인 이곳에서. 서로 멋지게 걸어오는 양국의 의장대 병사들이 국기 있는 곳까지 빠르고 멋지게 걸어오다가 그만 India 병사가 넘어진 것이었다. 그 순간 Pakistan 사람들은 함성과 환호, 그리고 박수와 웃음이 가득했다. 마치 무슨 경기에서 이긴 것처럼. 하지만, 반대쪽의 India는 상황이 정 반대였다. 적국 앞에서, 그리고 많은 국민과 외국인 앞에서 너무 창피한 일을 당해서인지 황당하다는 분위기였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 병사는 국기 하향식이 끝난 뒤 엄청 맞았거나 감옥에 갔을 것 같다. 너무 재미있고 보기 드문 장면이라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아래의 사진들은 국기 하향식 때 찍은 사진이며, 의장대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늦은 시간(정확히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Wagah-Border의 재미있는 구경을 마치고, P선교사님 가정, L선교사님 가정과 함께하는 마지막 저녁을 Pizza hut에서 먹었다. 너무 짧은 만남이었지만, 선교사님들의 사랑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 후, 늦은 밤차로 Islamabad로 옮겼다. 역시, Deawoo Express를 타고 컴컴한 밤을 지나, 새벽 3시쯤 Islamabad의 임시 숙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한인 아주머니께서 운영하시는 Guest house로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음식도 환경도 한국의 민박집과 같았다.
2003년 8월 13일(수) - Faisal Mosque & Murree
우리는 전날 새벽에 Islamabad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 아주머니의 한국식 식단을 보면서, “여기가 한국인가?“하는 착각이 생길 정도였다. 심지어는 반찬까지 한국식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주방장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파키스탄 사람인데,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음식점에서 일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음식 맛을 참 잘 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등. 우리는 오후 비행기로 Islamabad Airport를 통해 Karachi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비행기 표도 구입하였고 해서, 우리에겐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곳에 가 보기로 하였다.
Islamabad는 Pakistan의 수도이다. 원래는 이곳이 수도가 아니라, Karachi가 중심도시였는데, 수도 이전을 하면서 계획도시로 만든 곳이다. 그래서인지 도시가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오전 10시쯤, 우리는 Islamabad에 있는 Faisal Mosque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이슬람 사원인데, 엄청난 크기와 규모를 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라마단 기간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약 6만 명이 한번에 들어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Mosque안에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내부를 찍을 수 없었고, 외부의 시설만 사진에 담았다. Mosque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한다. 그들 말로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신발을 벗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약간의 돈을 주고 신발을 맡겼다. 그리고 Mosque안에 들어온 사람들, 즉 기도하러 온 사람들은 자신을 깨끗이 씻는 마음으로 손과 발 심지어는 머리까지 씻는다. 옆의 그림은 Mosque안에 있는 수돗가이다. 무슨 목욕탕처럼 이런 것들이 사방에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 사람들이 앉아서 씻는다. 이곳의 내부는 모두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이지만, Mosque밖의 대리석은 햇빛에 달구어져 있어서 너무 뜨거웠다. 맨발로 다녀야하는 Mosque에서 우리는 너무 뜨거워서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이 나라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Mosque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관심어린(?) 시선과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기분도 좋고, 마치 우리가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관심이 둘러싸여 난감할 때도 있었다. 우리는 Faisal Mosque근처에 있는 “다마네코” 산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서는 Islamabad가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전경이 좋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Islamabad를 사진과 눈과 마음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Pakistan의 최대 휴양지로 불리는 Murree로 향했다. Murree는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로, 항상 시원한 기후를 보이기 때문에 Pakistant 사람들도 좋아하는 지역이다. 이곳에 있는 Foreign Language School을 방문하기로 하였는데, 최근 Pakistan 내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도 이곳에 들어가는데, 외부에 노출될까봐 무척이나 조심했었고, 오후 늦게 우리는 Samuel의 집으로 옮겨서 Urdu 성경 관련 일을 하였다. 다시 Guest house로 돌아온 시간은 약 10시로 우리는 늦게 저녁을 먹고 잠들었다.
2003년 8월 14일(수) - Independent day & PIC
오늘은 Pakistan의 독립기념일이다. 그래서 수도인 Islamabad는 더욱 들떠있었고, 떠들썩했다. 모든 사람들이 국기를 들고 다녔고, 택시, 오토바이, 사람들은 모두 국기를 달고 다녔다. 인도라는 국가가 분열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이슬람교의 사람들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된 모양으로 독립이 이루어졌다. 아직도 분쟁지역인 Kashmir을 생각하면, 이들의 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에겐 아직 평화가 없는 듯 했다. 물론 큰 전쟁이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지만,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폭탄과 같이 불안 불안했다.
우리는 오전에 East Point에서 땅밟기를 하고 점심은 좀 늦었지만 J목사님과 함께 먹었다. 우리는 Karachi로 이동하기 위해서 Islamabad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PIC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독립기념일이라 이곳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도로가 풀리기를 기다렸고, 늦지 않게 Islamabad Airport에 도착하여 Boding을 했다. 드디어 우리는 마지막 교육지인 Karachi로 향하고 있었다. 너무나 빡빡한 일정이라 그런지, 모든 단원들은 Karachi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이 들었고, 한참을 자고 난 후에 우리는 Karachi에 도착하였다. Karachi International airport. 하지만 이곳의 이름은 Jinnah International Airport였다. Jinnah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Pakistan을 창시한 “파키스탄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그가 이곳 Karachi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곳 공항은 Jinnah International Airport였다. 이곳에 도착하자, J선교사님과 P선교사님께서 우리를 Pick-up해 주었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K간사님 댁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우리는 공항 앞에서 짐을 차에 실으며 분주하게 있었는데, 어떤 파키스탄 남자가 사진기를 들고 나에게 오는 것이었다. Urdu를 모르는 나는 짐작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는 구나!“ 싶어서 그의 가족을 찍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색을 하면서 말은 하는 것이었다. 영어로 말을 하는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같이 찍자는 말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다가 외국인인데 이렇게 말하다니 놀라웠다. (이 만큼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외국인)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우리 봉사단원들은 그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 본 사람과의 사진은 참으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K간사님 댁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Karachi에 계시는 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2003년 8월 15일(금) - Visiting the Good Samaritan Hospital & Karachi.
우리는 오전에 우리가 생활하게 될 The Good Samaritan Hospital과 직업훈련원을 둘러보았다. 이곳의 생활과 주변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건물의 위치와 여러 가지 규칙들에 대해 들었다. 병원의 원장 선생님도 찾아 뵐 수 있었고, 우리가 교육하게 될 장소와 컴퓨터 현황, 그리고 이 지역의 교육 현실에 대해 듣게 되었다. 점심때가 되어 병원의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이 곳에서도 “커리“처럼 생긴 파키스탄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먹는 식사이지만, 왠지 병원 밥은 기분을 안 좋게 했다. 내가 환자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점심을 먹고, Computer Setup과 Repair를 시작하였다. 여기는 직업훈련소라 Computer가 여러 대 있었다. 하지만, 각각의 사양이 다 다른지라 Computer배치와 Program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특별히 Photoshop은 최저사양이 펜티엄II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에 맞는 컴퓨터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 문제였다. 점심 먹고 뜨거운 햇빛을 피해 건물 안에 있다지만, 한국인에게는 역시 더운 날씨였다. 온 몸에는 땀이 흐르고, 통풍이 잘 안되는 곳에 A/C도 없어서 Setup하는데 무척 힘들었다. 작업 중간에 먹는 Pepsi 한 잔은 정말로 시원했고, 맛있었다. 우리가 Setup을 끝내고 보니까. 몇몇 개의 부품이 부족했다. Monitor 5대와 Cable, keyboard 3개, Mouse 3개 Extension 2개가 필요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다시 교육장이 있는 The Good Samaritan Hospital로 향했다.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제일 처음 보이는 벽, 그 벽이 우리의 타겟이었다. 즉, 크고 화려한 현수막을 걸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서로 누가 말할 것도 없이 다들 그곳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직업훈련원 쪽에 말씀드려서 현수막을 걸기로 했다. 다시 펼친 현수막. 잠시 Faisalabad의 추억에 잠겼다. 이 현수막 아래에 모두가 모여서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지냈는데. 1주일이 지난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너무나 짧은 만남이여서 그들이 그립고, 보고 싶고, 궁금해졌다. 이곳에서 만나게 될 학생들도 그들과 같을까? 아니면 그들과는 다를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곳 파키스탄 사람들의 종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게으르고, 어떠한 일에 대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교육이 시작하기 1시간 전에 모여서 교육장 문을 열어달라고 하던 사람들. 교육이 끝나고 집에 가는 것이 아쉬워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 너무나 열정적이고, 친근했던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 지역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봉사단이라는 임무에 마음이 새로워졌다. 멋지게 현수막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H선교사님 댁에서 있을 금요 모임에 잠시 참석하여 여러 선교사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J선교사님과 컴퓨터 교육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2003년 8월 16일(토) - Jinnah tomb & Edhi
우리는 다음주부터 교육이 있기 때문에 16일, 17일 양일간 Karachi tour를 하기로 하였다. 처음 간 곳은 “Pakistan의 아버지”로 Jinnah의 무덤에 가기로 하였다. 파키스탄에서 Jinnah는 파키스탄의 독립을 이끈 지도자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지만, 대부분이 존경이상의 숭배를 하고 있으며, Jinnah의 무덤 역시 신성한 곳으로 여기며 관리하고 있다. Jinnah 무덤에 들어갈 때에는 마치 Mosque에 들어갈 때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Jinnah가 파키스탄 사람들의 생각 속에 어떠한 위치를 갖고 있는지 알게 하는 단면이다. Jinnah tomb을 본 후, 우리는 Karachi museum에 갔다. Karachi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었지만, Lahore에서의 규모보다는 작았다. 하지만, Pakistan의 독립에 관련된 부분과 Jinnah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점심을 KFC에서 간단하게 먹고 컴퓨터 부품과 모니터를 구입하러 전자상가에 갔다. 여기도 역시 전자상가라 서울의 그것과 같이 바쁘고 시끄럽고 분주했다. 우리는 적절한 모니터와 부품들을 구입하고 Edhi를 방문하기로 했다. Edhi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인종, 종교, 나이, 성 등 어떠한 것에도 제한받지 않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구해주는 사업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하면, 구급차와 치료사업일 것이다. 파키스탄 어느 곳에서도 사고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아는 곳이 바로 이 Edhi center이고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은 Edhi의 구급차이다. Pakistan의 보건복지부에 Edhi에게 모든 힘을 위임할 정도로 Pakistan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Edhi center는 이름이 있고 힘이 있다. 우리는 그의 철학과 사업의 방향등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고, 그가 얼마나 Pakistan사라들의 복지와 건강에 아무런 욕심 없이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와의 만남 속에서 이 땅에 빈민과 서민들을 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에게 우리가 준비해 간 한국의 부채를 선물로 주었고, 함께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2003년 8월 17일(일) - Karachi Trip
우리는 오전에 “카라치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Karachi에 계신 한국분들과 예배 후 교제를 나눴다. K간사님 댁에서 특별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동안 수고하신 한국 영사님께서 한국으로 가시고, 새로운 영사님이 오셔서 대접하는 점심이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오시는 영사님을 환영하며, 그동안 수고하신 영사님께 감사하는 점심식사였다. 우리가 이곳에서 영사님을 뵙게 될 줄이야. 영사님과의 점심식사는 너무나 풍성하고 푸짐했다. 하지만, 영사님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떨리고 긴장되어서 소화가 되는지 어쩌는지도 모르고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사님이 돌아가신 뒤, 빠르게 Karachi tour를 시작하였다. 가장 처음에 간 곳은 “압둘라샤가지”의 무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사람들이 숭배하고 있는 미신지역이었다. “압둘라샤가지“는 파키스탄 사람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살아온 장군이란다. 그런데 정쟁에서 살아온 후에 그가 치유의 능력을 받아서, 사람들을 치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밑에는 제자가 5명이 있었고, 그들을 키우면 사람들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죽자 사람들은 그의 무덤을 만지기만해도 병이 낫는다고 믿었고, 그 후 사람들은 그의 무덤에 매일 찾아와 무덤을 만지고 빌고 지내게 되었다. 그의 제자 5명도 같은 능력이 있다고 믿고 그 제자의 무덤도 같이 두고 있었다. 워낙 파리가 많은 지역인데다, 관까지 두고 있으니 파리가 득실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매일처럼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미친 사람도 있었고, 별별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곳에서는 향을 피우는데, 그 냄새가 좋지는 않았다. 현기증 날 정도의 분위기에 질려서 우리는 그곳을 곧 빠져나오게 되었다. 아직도 이러한 미신을 믿는 이곳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압둘라샤가지“의 무덤을 나오면서 근처에 있는 ”힌두템플“을 보았다. 사원이라고 하기 너무 초라할 정도로 외진 곳에 있었고, 너무 더러운 환경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근처에서 McDonald를 발견하였다. 이슬람 문화가 아무리 미국을 싫어한다고 해도, 알게 모르게 다 들어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McDonald“, “Pizza Hut“, 'KFC', 'Pepsi', 'Nestle'등등. 많은 제품들이 이들 곁에 있었다. 우리는 McDonald를 본 김에 이곳에서 먹는 햄버거를 먹어보기로 했다. 가격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지만, 역시 쌌다. 이곳에는 어느 나라의 McDonald와 마찬가지로 종업원들이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McDonald의 고유의 유니폼. 옆의 사진은 남자 직원(또는 아르바이트)의 옷차림을 McDonald인형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우리를 신기하게 보는 가운데 찍은 것이라 쉽지 않았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손님이 먹고 난 후, 종업원이 버린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오우에는 Jinnah의 여동생 집을 가 보았다. 넓은 잔디에서 우리는 Karachi tour의 마지막 여유를 즐긴 후 P 선교사님 댁에서 기도모임을 가졌다. 선교사님께서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2003년 8월 18일(월) ~ 22일(금) - Karachi Education
드디어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첫 만남은 나에게 묘한 흥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하나둘씩 모이는 학생들. 그들을 보면서 놀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일명 “검은 망토의 여인“(내가 붙인 이름이다.)이다. 우리 교육장에 모슬렘 사람들이 신청했던 것이다. Pakistan을 돌아다니면서, 검은 망토를 입은 여인들이 모슬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만나게 되다니 너무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들은 다른 옷을 입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이렇다. 검은 망토의 안쪽에 여러 가지 옷을 입고 있었다.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러 가지 셔츠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서양 사람들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멋을 내고 있었다. Faisalabad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 대한 소개와 한국에서 왔음을 알렸다. 또한 우리는 1주일간의 교육을 통해 어떠한 것을 가르치고, 또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첫 만남이라, 아직은 서먹한 분위기였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리와 우리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었고, 우리 역시 그들과의 1주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간단한 소개와 질문이 끝난 후, 출석부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어제 설치해 둔 현수막 앞으로 모여 Class 별로 찍기로 하였다. 이 곳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기 때문에 Class를 또 만들어야 했다. Karachi에서 교육하는 Class는 [Windows Basic - AM], [Microsoft Word], [Adobe Photoshop7], [Windows Basic - PM], [S/W, H/W Repair]이렇게 5반이 운영되었고, 직장인들과 학생들을 위해서 오후반은 조금 늦게 시작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이 곳 Karachi에서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직업훈련소는 Karachi의 Orangi town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곳 역시 빈민층이 살고 있는 곳이다. Karachi는 Pakistan의 대도시 중에 하나이지만, 도심에서 조금 멀어지면 사정이 다르다. 이곳의 사람들 역시 교육에 대한 혜택을 고르게 받지 못한 체 어렵게 삶을 살아가는 부류였다. 이 곳 직업훈련소는 많은 Computer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교실도 2개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2 Class를 동시에 운영할 수 있었다. 교육방법은 직업훈련소에 계시는 분(한인)이 한 Class를 통역해 주시고, 자비로 봉사단과 함께 한 분이 또 한 Class를 통역해 주셨다. 오전에 [Windows Basic - AM] 교육을 하였고, 점심 식사 후, [Windows Basic - PM]과 [Microsoft Word]를 같은 시간에, [Adobe Photoshop7]과 [S/W, H/W Repair]를 같은 시간에 하였다. 하루의 교육이 모두 끝나면 오후 6시쯤이 되었던 것 같다.
Faisalabad보다 환경이 비교적 좋기 때문에 학생들이 편하게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이곳의 교육장에는 A/C가 없어서 단원 모두가 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래도 Faisalabad는 A/C가 있어서 시원하고 서늘했었는데. 너무 더운 오후에는 Faisalabad의 시원한 교육장 생각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했지만,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만나면 그들의 배움과 그 기쁨에 모든 걱정을 잊어버렸다.
컴퓨터를 다뤄보지 못한 학생들이 많아서 Windows Basic course는 항상 만원이었다. 그들은 마우스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 그 미세한 움직임에 힘들어했지만, 즐거워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그것도 첨단 기술인 Computer에 대해 배운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큰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Microsoft Word Class는 그들에게 보다 멋진 문서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교육하였다. 기본적인 Windows에 대해 익숙한 그들은 문서를 만들고 Text를 변환하는 것에 대해 신기해하며 공부하였다. 특히 Word class에서 제공한 교재를 항상 들고 다니며, 배움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Adobe Photoshop7 Class는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Photoshop을 배울 여건과 수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몇 시간에는 어려워하던 그들이 Photoshop과 Image processing에 익숙해지면서 그들은 이 시간을 즐겼으며, 수업이 더 할수록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Image로 표현될 때마다, 우리는 이들의 잠재력에 놀라게 되었다. 이 곳 Karachi에서 처음으로 교육되어지는 S/W, H/W Repair Class는 직장인이나 컴퓨터의 내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늘 어렵게만 여겨졌던 Computer를 내 손으로 고치며, 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집중하게 하였다. Computer내부의 Chip과 Device의 특성, 그리고 Drive와 Installation에 대해 하나하나 잊지 않으려고, 필기하며 수업에 임했다. 수업이 끝나갈 쯤에 우리는 “한국문화와 IT현황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그들에게 한국은 어떠한 느낌일까? 우리 봉사단을 보며, 좋은 이미지를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하였다. 다른 문화에 대해, 그리고 다른 나라에 대해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신기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처음 파키스탄에 왔을 때 느꼈던 모든 문화적인 충격이 신기하고 즐거웠던 것처럼, 그들도 그러했다. 다음에 그들이 한국에 온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즐거운 충격과 흥분에 쌓이길 바란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파키스탄에서 바라보는, 그리고 느껴지는 한국은 너무 소중하고 사랑하는 나라였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미처 몰랐지만.
우리는 예정대로 지원받은 물품(Notebook, Digital Camera, PC Camera, Software, etc)을 전달하는 “인수인계식“을 하였다. 약 3주간의 정들었던 물품이며, 우리 봉사단이 교육하면서 사용했던 것이라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이곳의 어려운 현실과 더 좋은 사용을 위해서 쓰여 질 것이라 믿기에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주는 사람의 넉넉한 마음과 받는 사람의 기쁨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짧았던 1주일의 교육이 끝나고 이제 그들은 수료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수료증에 쓰면서(computer로 Printing하였음), 그들의 얼굴과 함께한 시간을 하나하나 떠 올렸다. 그들에게는 무료로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들과 함께 파키스탄에서의 좋은 기억을 얻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각 Class별로 수료식을 진행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축하해 주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헤어짐은 힘든 것이다. 우리를 믿고 따라주며, 사랑해주었던 그들과 작별을 해야 하는 현실이 힘들고 아쉬웠다. 그들도 그랬는지, 자신이 쓰던 펜을 선물로 주고, 꽃을 사다주고(파키스탄에서의 꽃 선물은 특별하다), “멘디“를 해주고. 그들과의 힘든 헤어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Jinnah International Airport로 향했다.
2003년 8월 20일(수) - Trinity girls' high school
오전 시간을 통해, Trinity girl's high school을 방문하였다. 너무나 친절한 안내와 환대로 너무 감사하게 학교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Pakistan에서의 교육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우리에겐 귀한 시간이었다.
2003년 8월 23일(토) - Return
3주간의 활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의 마음은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을 얻은 기쁨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비행기에서 그리고 Bangkok (Transfer)에서 우리는 밀려오는 잠에 취해 있었다. 다시 언제 밟게 될지 모르는 땅, 파키스탄. 다시 밟는 그날까지, 그리고 우리와 함께 했던 그들을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귀한 경험과 보람을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