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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닥터홀의 조선 회상
지은이 셔우드 홀 지음
출판사 좋은 씨앗

MIR 13기 강 정 민



지금 서점에 가 본다면 선교 섹션에 많은 다양한 선교에 관한 책들이 있을 것이다. 수년 전 개인적으로 나는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기독교서점에서 오직 선교에 관한 섹션을 뒤지고 다니며 서슴지 않고 선교에 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선교에 관한 기본개념과 자세와 방향설정과 다양한 기술에 관한 서적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자신있게 '조선회상' 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1984년 동아일보사에서 오직 5000권의 책을 출판하고 절판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 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제본을 해서 돌려서 읽는다는 소문까지 들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최근 2003년 2월에 다시 '좋은씨앗' 출판사를 통해 책이 나오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조선회상 (With Stethoscope in Asia : Korea) 은 셔우드 홀(sherwood Hall)의 부모였던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과 로제타(Rosetta) 두 의료선교사의 조선에서의 선교사역과 1893년 조선에서 태어나 1940년 추방될 때까지 역시 조선에서 사역했던 셔우드 홀과 메리안(Merian) 두 부부의 의료선교에 관한 회상록이다. 그는 은퇴한 후 73세의 나이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인의 눈으로 격변기인 1800년대 후반의 모습을 보는 시각과 달리, 선교사의 아들로 조선에 태어나 선교사역을 했던 외국선교사의 눈으로 조선과 조선인을 보았던 시점이, 그들 가족의 헌신된 선교사역과 함께 당시의 재미있는 조선의 옛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어 그 재미를 더하고 있다.

1890년 닥터 제임스 홀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난지 20 여일만에 일본을 거쳐 조선에 도착한다. 그는 조선의 첫 인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890년 10월 10일 조선해안이 시야에 들어왔다……최선을 다해 일하려고 오는 나를 이 나라의 산야는 별로 환영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우리는 남자들만 볼 수 있었다. 여자들은 해가 져서 남자들이 집에 들어온 뒤에야 밖에 나올 수 있다….진귀한 풍속이다…이들은 내가 보기에 일본인이나 중국인들과는 상당히 달라보인다. 부산에서 처음 본 몇 사람은 오히려 북미의 인디언을 연상시켰다. 인디언보다 키가 크지는 않지만 일본인들보다는 더 크다. 그들 모두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 아버지 제임스 홀의 선교사역이 상세히 나와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1894년 청일전쟁 당시 평양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제임스는 말라리아에 걸려 회복하지 못하고 1894년 11월 24일 순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부인 로제타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내가 평양에 갔었던 것을 원망하지는 마시오. 나는 예수님의 뜻을 따른 것이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소.'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제임스 홀이 세상을 떠났을 때 로제타는 1살 된 셔우드와 배속의 7개월 된 아기를 가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뱃속의 아기도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아 하나님의 품으로 가게 된다. 로제타의 일기에서 보면
'5월 23일, 새벽 3월 30분에 다시 고통스러워했다…….아침 10시경에 나는 흰 민들레 꽃을 에디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애기는 좋아서 오랫동안 쥐고 있었다….오후 3시, 애기의 손과 발이 차다..6시 45분 애는 쉬지 않고 숨을 몰아쉬고 ….7시 15분, 열은 화씨 105도…7시 30분 피하 주사…8시 25분 열은 화씨 106도 숨이 가쁘다. 애기의 얼굴은 평화스러워졌고 호흡의 간격도 길어졌다…크게 뜬 눈으로 엄마를 보면서 이 작은 영혼은 이렇게 떠나갔다…오후 8시 40분 에디스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이 이미 책의 전반부에서 셔우드의 아버지와 여동생의 순교가 그 황량했던 조선 땅에서 생명을 바친 선교사역의 모습에 지금 복음을 전해 받은 자로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그 이후 로제타는 아들 셔우드를 홀로 키우며 조선에서의 여성의료선교에 힘쓰며 1943년 은퇴 할 때까지 많은 후계자를 길러내고 병원을 세우고 여성교육에 힘쓰며 복음을 전도자로 생을 조선선교에 바친다. 셔우드 홀의 획을 그은 사역이었던 결핵요양원 설립과 크리스마스 실 발행으로 시작한 최초의 결핵퇴치 사역의 시작은 어머니 로제타가 길러낸 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 에스더'가 폐결핵으로 사망함으로 크게 충격을 받게 되고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당시 죽음밖에 길이 없었던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사역에 전념하게 된다.
' 내게 있어서 에스더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그녀를 이 세상에서 앗아갔고 그녀가 사랑한 수많은 동족들의 생명을 앗아간 병. 나는 이 병을 퇴치하는 데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나는 반드시 폐결핵 전문의사가 되어 조선에 돌아올 것과 결핵요양원을 세우기로 굳게 맹세했다. 이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4년 전 닥터 하아디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준 말을 수없이 되새겼다.'높은 이상과 고상한 동기도 연적인 힘이 없다면 실천하기에 미흡하다' '
현재 한국에서는 결핵이 거의 없어지고 크리스마스 씰에 관한 기억도 단순히 옛 과거의 추억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당시 결핵은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었으며 크리스마스 씰은 1932년 셔우드 홀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1998년 이 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아마추어로서 짧게 만든 적이 있었는데 촬영을 위해 당시 셔우드 홀과 함께 결핵요양소에서 사역했던 '문창모' 의사 선생님을 직접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터뷰 당시만 해도 90세가 넘으신 연세이셨지만 여전히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계셨었다. 그분은 셔우드 홀과 함께 일 하셨고 셔우드 홀이 일제에 의해 추방 된 이후에도 그 결핵퇴치 사역을 계속 유지해 오셨었는데, 당시 결핵이라는 병은 불치의 병으로 인구의 1/4이 죽어가도 어찌할 수 없는 병이었다고 하셨다. 처음엔 요양소도 겨우 세울 수 있었고 크리스마스 씰도 잘 보급되지 않았지만 셔우드 홀의 노력으로 지금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번역자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을 펴면서 셔우드 홀 부부를 한국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생을 바쳐 조선과 이 후에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하셨던 부부가 한국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입을만한 양복 한 벌이 없어서 주위에서 도와 주셔서 한 벌을 사셨고, 부인 메리안도 다른 사람에게 옷을 빌려 입고 한국을 방문했다고 전한다. 이 책이 1984년 동아일보사에 의해 출판될 때까지도 셔우드 홀과 부인 메리안은 캐나다에서 생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추천문을 쓰신 문창모 선생님도 산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계셨었다. 하지만 지금, 이미 셔우드 홀은 1991년 4월 5일 98세의 나이로 그리고 메리안 역시 5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문창모 선생님도 몇 해전 작고 하셨다.
지금은 그들이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하였지만 한줌의 재가 되어 고운 병에 담겨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 그들 부모와 여동생과 아들과 함께 묻혀있다. 100년 전 몇 해 사역하지 못하고 순교하였던 아버지 제임스 홀과 100년 뒤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재가 되어서라도 한국에 돌아와 묻히고 싶었던 그 아들의 묘, 그리고 그 가족들의 묘를 지금양화진으로 가면 만날 수가 있다.

100 여년 전 죽음을 여의치 않고....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의 말씀에 조선이라는 땅이 세상 끝이라고 믿고 복음을 들고 온 많은 선교사들이 있었고, 그들은 순교했고 또 서서히 생을 마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 통해 그들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감사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선교에 관한 기본개념이나 조직적인 기술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2 대에 걸친 한 가족의 조선을 사랑해서 조선에서 살았던 삶을 회상하며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엔 '조선회상'을 읽은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아주 귀중하고 귀중한 보배가 숨어있다. 글을 마무리 하며 바라는 것은… 그 보석의 비밀을 함께 누리고 싶다.






[ Webzine MIR 2003년 10월호 Ind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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