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줄리아 선교사님
너희가 무엇을 보러 광야에 갔더냐?
너희가 무엇을 보러 아프카니스탄에 갔더냐?
전쟁으로 무너진 산들과 도로, 나무 한그루 없는 돌산, 파키스탄 보다 성적인 얽눌림, 여성과 아이들의 존재 없음, 가난으로 찌들은 얼굴, 앞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어두움, 견고한 요새....
외국인의 목에 걸린 현상금 천불, 그들과 함께 하는 현지인들에게 걸린 현상금 오백불, 권력과 권세로 구분되어진 높은 성....
가난한 자들의 구원을 소망하는 손길, 병든자들의 간절한 치유의 소망, 진리와 거짓 사이에 방황하는 영혼....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의 고백처럼, 그 부르심을 이루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바울의 고백처럼 달려 가는 선배님들....
제가 광야에서 보았던 것입니다. 전기도 없고, 자유도 없고, 그저 먼지 처럼 자욱한 답답함만 있던 그 땅에 소망의 샘이 솟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그 곳에 머무시는 사랑하는 동역자들, 진리와 거짓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 그 아프칸에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샘이 작은 물줄기이지만 끊이지 않고 흐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누름을 감당할 수 없어 엎드려 질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이 힘겨웠습니다. 그런 저를 주님이 붙드시고 주님이 일하시는 구석 구석으로 나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충성된자.... 추숫날 얼음 냉수 같은 충성된자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광야에는 절대 채색옷을 입은 사람은 없습니다. 보기에 좋고 멋진 집도 없습니다. 그저 뜨거운 태양을 가리기 위한 흙담 위의 지푸라기 지붕일 뿐입니다. 멋있는 짚차나 벤츠가 있기도 바랄 수 없는 험한 돌길이 온 몸을 두들기며 지나쳐 갑니다.
그런 광야에 주님은 충성된자를 부르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고,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생명도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지고 이 광야로 올자가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결국 저는 같은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써 주십시오.'
광야와 같은 파키스탄 그리고 그 이웃 아프카니스탄, 추숫날의 얼음 냉수 같은 충성된 자.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영적 요새와 같은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이 땅의 복음화는 결코 저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오십시오.
여러분이 기도로 후원해 주십시오.
주님의 나라가 속히 오도록, 우리의 이 무거운 십자가가 속히 가벼워 지도록....
광야에서
줄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