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 미전도종족
월드뉴스
세계기도정보
종합게시판

Kazakstan
(카자흐스탄)

 



I. 카자흐스탄 개요
  • 면적 : 2,717,300㎢ (면적 상 세계9위, 남한의 27배)
  • 인구 : 1,680만 명(1997년 기준)
  • 수도 : 아스타나 (수도 1997년 12월 이후부터)
  • 주요도시 : 알마타(남쪽 수도), 아스타나(수도), 카라간다
  • 언어 : 카자흐어(정부, 관공서 공식 사용 언어), 러시아어
  • 인종 : 카자흐인 51%, 러시아인 32%, 우크라이나인 4%, 독일인 3%, 10만여명의 고려인
  • 식습관 : 카작인의 음식에는 고기와 기름, 향내 나는 풀, 진한 양념들이 많이 사용된다. 보통 하루에 한끼 정도는 물기가 있는 따뜻한 음식을 해 먹고, 나머지는 빵과 차로 간단히 먹는다. 주식은 빵이며, 쁠로프나 만띄, 베스바르막 등의 음식을 많이 먹는다. 보통 빵 대신 바우르삭(마름모나 둥근형의 튀긴 빵)을 먹기도 한다. 그 밖에 다른 종족들로부터 전해 온 음식들도 해먹는다.
  • 기후 : 건조한 대륙성 기후, 광활한 스텝지역으로 국토의 3%만이 숲
  • 종교 : 회교 40%, 무종교/기타 32.6% 불교 0.3% 기독교 27%
         - 종교적 활동들/ 축제들 ·민속 이슬람 ·샤머니즘과 조상 숭배, 초자연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으며 최근 정통 이슬람 선교사들이 진출
  • 정체 : 공화제(대통령제), 의회는 양원제
  • 주요인사 : 대통령(누루술탄 나자르바예프 (N. Nazarbayev))
  • 화폐 : 텡게 (Tenge) 139텡게/1$(2000년 10월 10일)
  • 국민총생산 : 국내총생산 - $486억불, 1인당 국민소득 - $2,800불
  • 무역 : 주요자원 - 석유, 천연가스, 석탄, 구리, 주석, 우라늄
  • 문맹률 : 2.47%
  • 국경일 : 국가성립 - 1991.12.21, 공화국의 날 -1991 12.16, 국경일(Independence day) - 1991.10.25

II. 카자흐스탄 약사
카작인은 몽골제국시대에 정치적인 이유로 그 지배를 이탈하여 집단을 이루고 지내던 튀르크계 부족으로서 몽골제국 붕괴 후 러시아제국에 예속된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15-16세기에 카작인들이 러시아 중앙부에서 남방 변경지대로 이주해 형성한 자치적 '농민군사공동체'를 '카작인'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뜻은 '초원의 말타는 자'로서 모험자, 자유인을 의미한다. 기원후 4-6세기 돌궐제국을 건설했던 고대 튀르크족은 8세기에 이르러 중국 당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하여 현재 카작스탄 지역에 유입했다. 8세기 초 튀르크계 튀크케쉬 부족이 일리강과 추강 중간지역에 칸국을 건설하였고 751년 탈라스 국제전에서 아랍의 도움으로 중국군을 격퇴한 튀크크계 카를룩이 766년 이 지역에 칸국을 세웠다. 탈라스 국제전을 통해서는 이 일대의 튀르크족들이 이슬람화 되었고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이슬람은 남부 카작스탄에 널리 퍼졌다. 9세기에서 11세기에는 카작스탄 남부와 남서부에 봉건국가를 이룬 튀르크계 오우즈부족의 지배를 받았다. 이무렵 북부와 중부지역에는 목축을 하는 튀르크계 부족인 키막과 큽착 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카라한조와 셀축제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으나 카라한이 거란에 의해 1130년 붕괴되면서 12세기 등장한 몽골제국 때까지 거란이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13세기 초, 카작스탄 지역은 몽골제국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징기스칸 후손들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몽골제국 후기, 카작스탄은 큽착칸국의 지배하에 놓이고 몽골제국 붕괴 후에는 백호르드와 모굴리스탄의 통치를 받았다. 15세기 중엽까지 큽착초원을 중심으로 등장한 우즈벡족이 시르다리야를 건너 서튀르키스탄으로 이동하여 부하라 칸국을 건설하였는데, 이때 카작인들은 우즈벡족으로부터 분리되어 현재의 카작 초원 중부와 남동부로 이동하여 독립적인 유목민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카작민족공동체 형성의 시작이다. 16세기 중엽 주변 칸국들의 붕괴와 함께 그에 속해 있던 카작인들이 카작민족공동체에 합세하게 되었고 카작공동체는 민족공동체로 정착하게 되었다. 17세기 중엽, 카작 민족은 3개의 호르드(大호르드, 中호르드, 小호르드)로 나뉘어 세력이 약해지면서 대, 중호르드는 중가르(큽착칸국의 후예)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18세기 초, 중가르칸국의 침입과 내부분열로 쇠약해졌을 때 러시아는 이미 카작북서부 인접지역까지 진출해 있었고 경제적인 목적으로 카작의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작은 1726년 러시아 편입을 요청하게 되었고 1731년 수락되어 실질적으로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러시아의 카작식민통치는 경제적으로 카작스탄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카작인들의 러시아 지배에 대한 불만은 팽배해져 갔다. 수 차례의 반러시아 폭동이 1917년 10월 혁명 때까지 계속되었다.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요교역이나 기술 집약적 산업은 러시아인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카작인들은 광산노동자, 농민으로서 경제활동에 참여했다. 소수의 카작인만이 민족자본을 형성시켜 나갔다. 이후 보수-민족주의 노선과 마르크스 사회주의 노선의 격렬한 국내전이 있었고 결국 마르크스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1920년 10월 카작스탄 소비에트 입헌회의를 통해 현재의 카작과 키르그즈를 포함하는 키르그즈스탄 사회주의 자치국이 출범하였다. 그후 1922년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하였고 1924-25년,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이 민족 거주지역에 따라 민족 단위국가로 재편성되면서 키르그즈 공화국과 분리가 되어 카작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출범되었다.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된 후에 카작스탄의 산업화는 가속화되었다.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장악하면서 개방정책과 함께 카작스탄에도 새로운 변혁이 일어났다. 카작 민족주의 운동이 가속화되고 결국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1991년 12월 25일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자료출처 : KOICA(한국국제협력단)


III. 카자흐스탄 선교정보
공산주의의 종교에 대한 탄압이 더 많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력한 회교 집단이 회교화를 위해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대다수 비회교 집단과 종족적 다양성이 이슬람의 위협을 제한하고 있다. 종교에 관한 정부의 무간섭주의가 정책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지만, 종교간 접촉은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종교에 관한 수치는 추정치이다. 회교 40%, 무종교/기타 32.6% 불교 0.3% 기독교 27%로 추정된다.
IV. 카자흐스탄 현지 소식
현지언론
현지소식

KCM Home | 세계선교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