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와 통일 시대를 위한 대북 선교의 전략

(신앙계 2000년 8월호 기고문)

북방선교회 강석진목사

1980년대 초기부터 일기 시작한 북한선교의 전략은 통일이 되면 북한에 교회를 건축하고 한국 교회에서 준비된 사역자들이 북한에 들어가 전도를 하고 교회와 신학교를 세워 한국과 같은 교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북한의 현 체제와 교회를 인정하며 북한의 지하 성도들과 함께 협력 관계를 통한 복음화 또는 교회 회복이 아니었다. 마치 무주공산을 차지하듯 한국의 대형 교회가 주도하여 주요 도시에 대형 교회를 세우고 유명목사들은 평양에서 대형 전도.부흥 집회하는 꿈을 가졌었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반면에 북한은 내적으로는 1972년 남북간에 "7.4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그 해에 조선기독교도연맹의 평양신학원을 개원하였고 1989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종교학과가 신설되고 기독교학과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신학원과 기독교학과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당국은 1988년 봉수교회를 세워 대외적으로 해외 교회 기관들이나 해외 한인 교회들과 빈번한 교류를 갖어왔다.
북한은 1974년 노동당 외곽 기구로 위장 종교 단체인 "조선기독교도연맹"을 재정비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북한에도 기독교가 존재하며 신앙의 자유가 있음을 알리고, 통일 전선의 방편으로 이용하여 WCC와 같은 세계 기독교 단체 모임에 참여를 했었다. 특히 한인 동포들이 많이 사는 미주 지역의 한인교회와 미국 교회와도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미주의 한인 기독인들 가운데는 이북 출신의 기독교인과 목회자들이 평양을 많이 방문하므로 대북 선교와 상호 교회 교류 차원을 통한 교회의 지원이 점차적으로 활기를 뛰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문 사역은 순수한 상호 교회 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편중된 북한 측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었으며, 1992년에 문을 연 칠골교회 역시 교회의 순수성을 대외적으로 의심을 받아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도 제한된 방문이 이어지면서 북한 교회의 창구로 공식화되었고 남.북 기독교의 교류가 형성되었다.
1994년 김일성주석이 사망한 이후에는 북한의 급격한 경제 붕괴와 식량난으로 인한 아사자들이 대량 발생되는 심각한 상황과 매년 이어지는 홍수로 인한 각종 전염병으로 노약자들이 사망하고 아동들의 약 70%가 영양 실조에 걸리게 되어 북한 당북도 이러한 심각한 사실들을 대외적으로 알리면서 유엔 산하의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세계식량기구(WFP). 국경없는의사회(MSF). 월드비젼 등 국제적인 구호 의료 단체들이 양식과 의약품을 대대적으로 지원하였다.
1998년부터는 북한의 조선기독교연맹의 대내외적인 활동으로 식량난에 많은 도움을 준 공로를 인정받음으로 그 위상이 높아졌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기독교단체나 교회들도 자신들의 명의로 모금을 하고 양식을 중국과 인천을 통해 직접 보내므로 이를 발판으로 남쪽의 교회 인사들이 조선기독교도연맹의 방문 요청으로 평양 방문도 활발해졌다.
이를 통해 단순히 같은 동포들 돕자는 구호 차원뿐만아니라 대북 선교 목적으로 많은 물자들을 지속적으로 보내며 남북 교회 교류에 대한 제안을 해왔었다. 이러한 교계의 대북 지원은 북한내에서도 조선기독교 연맹의 위치를 견고히 함과 강영섭대표의 권력 서열이 높아짐으로 더욱 그 운신의 폭도 넓혔다. 그 명칭도 "조선그리스도연맹"으로 개명되기도 하였다.
여기에 한국교회는 평양 방문을 통해 대북 사역을 선점하려는 의욕과 교파와 교단간의 덕스럽지 못한 경쟁 사례도 있었고, 한국 교회의 과당 경쟁적인 대북지원 및 줄대기식의 방문 열기가 북한으로부터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한국교회는 남과 북의 기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통일을 위해 기독교 행사를 평양이나 서울에서 공동 개최하자는 제의나 북측 기독교 대표들이 한국을 방문해달라는 요청에 아무 성의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북한의 기독교가 아직은 자신들의 독립된 대표성이 없으며 독자성과 자율성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북측의 종교정책은 기독교의 활동을 극히 제한된 테두리에서만 허용할 뿐이다.

통일을 이룬지 10 여년이 되는 독일교회는 민족의 염원을 이루기까지 동.서독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더불어 모든 조건이 우월하고 풍부했던 서독교회의 일관성 있는 동독인들과 교회를 향한 헌신적인 물질 지원과 동독교회와 견고한 연대 관계를 유지했었다. 또한 서독 정부의 긴밀한 지원과 협조라는 총체적인 조화와 협력이 민족 통일과 교회 통일을 일구워 내었던 것이다. 동.서독 교회간의 협조 체제 유지와 양 정부간의 협력이 어떻게 이루워졌는지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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