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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대만선교 기상도> 
       자료원 : 국민일보 22면
       국가명 : 대만
       발행일 : 94년 10월 11일
    

    기독교 현황/복음화 예측 "대체로 맑음"

    ⊙ 17C때 선교불구 국민 3%만 신도/농촌교회 등 40% 목회자조차 없어

    대만은 중국선교를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할 하나의 관문으로 부각되 고 있다.중국선교전문가들은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고 언어와 문화등을 쉽게 익힐 수 있는 곳으로 대만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현지 한인선교 사들도 대만교회는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면서 중국선교에 앞서 대만선교에 한국교회가 더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고 지적하고 있다.본지는 최근 대만기독교의 현황,한인선교사들의 선교상 황과 향후 중국선교 전진기지로서의 대만의 위상을 알아보기 위해 현지취 재를 했다.대만선교기상도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서부에 있는 완화야시장. 불야성을 방불케하는 시 장 내부를 지나다보면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는 중국인 특유의 음식관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야시장에서 나오면 타이베이 최고의 사찰인 롱산스 (용산사)에서 흘러나오는 향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대중교통수단 오토바이의 물결,유교 불교 도교와 재래민간신앙이 결합된 [바이바이]교,음식과 과일천국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대만. 복음의 전래 역사가 한국보다 오래됐으나 전인구의 3%미만이 기독인일 정도로 복음의 사각지대다.

    1554년 포르투갈무역선에 의해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의 [포모사]로 불 리며 알려지기 시작한 대만은 17세기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연이은 점령통 치하에 놓이게 된다.대만선교도 이때 시작된다.1627년 네덜란드 조지 캔디 뒤스선교사가 최초로 복음을 전한 이래 1664년까지 37명의 선교사들이 고 산족을 대상으로 선교했다.그러나 명나라의 패망과 함께 복건성에서 난민 이 대거 유입된 이후 1백82년간 복음의 문이 닫힌다.

    1859년엔 카톨릭선교사가,1865년엔 영국 맥스웰개신교선교사가 대만으로 들어오면서 남부지역에는 영국 선교사,북부에는 조지 매케이 선교사를 필 두로 한 캐나다선교사들의 분할사역이 이루어졌다.오늘날 대만기독교회 교 세중 50%를 차지하는 장로교회의 초석이 이들에 의해 조성됐다.

    1949년 중국대륙의 공산화이후 수많은 교단이 대만으로 옮겨오게 된다.고 산족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있었으나 대만교회는 목회자등 전임사역자의 부족,성도들의 전도열의 결핍,신학교의 학교법인 무인가에 따른 무특혜 무 보조,독립교회의 확산,보혁갈등등 요인으로 침체기에 빠지게 됐다.특히 불 교 도교 뿐 아니라 조상의 위패 재물신 등의 사당을 차려놓고 복을 희구하 는 대만인들의 사고구조속에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의 신에 불과하다는 사 상이 심어져 있는 것도 기독신앙 침체의 원인이다.

    대만에서 목회자의 권위는 찾아보기 힘들다.장로나 집사의 영향력이 목회 자보다 강하다.장로교의 경우 3년마다 목사에 대한 신임투표를해 목회자가 3분의 2이상의 표를 얻지 못하면 사역지를 떠나야 한다.기타 교단에서도 목회자는 소신껏 일을 추진하기 힘든 실정이다.

    대만신학원,중화복음신학원,옥산신학원등 20여개의 신학교와 기타군 소신 학교에서 배출되는 목회자중 3분의 2가 여성이며 대다수가 교회개척을 생 각하지 않는다.신학을 졸업해도 다른 직장을 찾는 수가 적지 않으며 미국 유학을 떠난 신학생은 학위과정을 마치고도 대만으로 돌아오지 않기 일쑤 이다.

    목회자의 기근현상은 교회가 세워져있어도 목회자가 없는 곳이 40%에 이 른다는 통계에서 쉽게 엿볼수 있다.농촌교회의 열악성은 더욱 심각하다. 이상란선교사(핑안당)는 『대만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인정받기 어려운 것은 대만교회의 기질에도 연유하지만 목회자들의 열심부족도 하나의 원인 』이라면서 『목회자들이 최선을 다해 기도말씀읽기운동과 평신도 먼저 섬 기기운동을 편다면 대만교회도 부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명주선교사(터우우교회)는 『대만교회 지도자들은 한국교회의 부흥을 무척 부러워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대만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성장을 위 해 힘쓰고 있기 때문에 대만교회의 장래는 어둡지만은 않다』고 강조했 다.

    2천년 복음운동/2백만 성도목표 초교파적전도

    ⊙ "8월 본토침공설" -- 교회지도자들 해외이민 "골치"/내년 노동자 에 집중 96년엔 중국대륙까지 공략

    지난 88년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대회가 대만에 서 개최 되었다.이때 기독교지도자들은 교파를 초월,뜻을 모을것을 합의하 고 각 교파대표 20여명이 모여 교회성장 방법론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그 후 모임은 60명으로 확대돼 향후 대만교회의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대만교회의 장래를 가늠할 수 있는 2000년 복음운동은 이같은 과정을 거 쳐 탄생했다.[2000년까지 1만교회,2백만성도,2백명의 해외선교사파송]을 목표로 한 2000년 복음운동.현지교회지도자들이 대만기독교의 장래가 2000 년 복음운동에 달려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다.

    89년 당시 2천62개의 교회가 91년에는 2천9백27개가 되었고 주일학교 어 린이의 출석률도 89년에 비해 괄목할 정도로 늘어났다.매주 교회에 출석하 는 성도도 20만4천1백79명에서 91년에는 21만3천6백95명으로 집계돼 4· 66%의 성장률을 보였다.한편 89년 25명에 불과했던 해외선교사가 현재 58 명으로 늘어났으며 40개교단이 대만교회의 성장을 위해 뛰고 있다. 2000년 복음운동본부(대표 저우리엔화)는 매주 5천명의 기도동역자에게 [2000년 기도사명단]이라는 기도요청서를 보내고 있으며 통신문도 1만5천부를 발송 하고 있다.

    운동본부측은 특히 올해를 여성가정의 해로 삼아 여성들의 참여를 유도하 고 있다.특히 [가정은 사회의 기초석]이라는 주제로 열린 가정성장강좌는 큰 인기를 끌었다.지난 7월28-29일 핑동성교회에서 열린 이래 8,9월에 타 이베이 타이중 화리엔 타이동 카오숭 등지에서 개최돼 호평을 받은바 있 다. 2000년 복음운동본부측은 2000년까지 집중공략대상을 선정하고 있 다.91년은 아동과 소년전도해,92년은 청년전도해,93년 노인전도해,내년은 노동자전도해로 선정했다.96년이후에는 도시·농촌은 물론 중국대륙까지 포함하는 등 더욱 구체화한다.2000년은 총동원 전면전도해로 삼았다.

    시아중지엔목사(2000년 복음운동 총간사)는 『과거 각 교파들이 모여 함 께 일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2000년복음운동하에 전교단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면서 『대만교회의 장래가 이 복음운동에 달려 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0년 복음운동의 여성분과위원 장인 장지엔구어씨(시아중지엔목사의 사모)는 『대만에서 대표적 교단인 대만장로교회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면서 『2000년 복음운동의 목 표가 달성될 기틀이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만교회성장에 대한 장애요소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내년 8 월 위기설도 전형적인 예의 하나.95년이 국방면에서 가장 취약한 시기로 중국 본토에서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같은 소문은 기독인들을 동요 시켜 교회지도자까지 이민가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미아오리현 시후향에서 사역하고 있는 타이비드어목사(핑안당)는 『 하나 님을 경외하는지,말세를 위해 사는지 구분이 안되는 기독인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어 걱정』이라면서 『대만교회의 장래는 교회지도자들이 얼마나 하 나님앞에 바로 서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타이비드어목사는 특히 『일부 교회지도자들이 내년 위기설에 의해 캐나 다 필리핀 등지로 이민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분개하면서 『대만교 회의 발전을 위해 한국교회 성도들이 기도해줄 것을 바란다』 고 덧붙였 다.

    문서선교/[신앙의 생활화]강조 활동 "왕성"

    ⊙ [논단사],65년 창간 각 교단 소식 등 전달/옥중전도 [컹성투안치] 3천 명에 "세례"

    타이베이시 중시아오동루2투안 85호.대만 유일의 기독교대변지인 [기독교 논단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재단법인 기독교논단기금회가 발행하는 기독교논단은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하는 주간신문이다. 지난 1965년 10월 31일 창간된 이 신문은 4개교파 연합운동의 산물.장로교 감리교 자유감리 교 성공회등이 참여,기독인들에게 각교단 교회 소식과 활동상황을 전하려 는 목적으로 창간됐다. 발행부수 1만5천부인 이 신문의 사시는 [예수 그리 스도를 높이 모시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성도를 양육훈련하고 복음을 전 한다]는 것.매주 12면이 교단 지역교회 활동소식,경제·사회문제등에 관한 기독평론,간증,기독문화계동향,가정생활,1주일 QT,기독소설,아동을 위한 신앙만화등으로 구성된다.현재 20여명이 취재 편집기자등 본사 직원과 각 지역의 파트타임기자들이 뛰고 있다.

    지엔홍지씨(기독교논단 이사장겸 발행인)는 『각 교파 교회간의 교량역할 에서부터 정부와 사회를 향해 기독인들의 생각과 의견을 제시하는데까지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일간지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자를 만난 지엔홍지이사장과 린이링사장 겸 총편 집인은 국민일보가 한국유일의 [복음실은 종합 일간지]라는데 대단한 관심 을 보이면서 회사의 규모와 발행부수 등을 묻는 등 하루빨리 대만에도 국 민일보와 같은 신문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기독교의 장래를 가 늠할 수 있는 또하나의 예를 교도소선교에서 찾을 수 있다.13년전 창립된 [기독교컹성투안치]는 교도소를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대만내 최초의 선교단체.전 국민의 3%에 불과한 기독교세이지만 타종교가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있다.

    수찬황전도사(컹성투안치 타이베이구치소 교도소담당)는 『범죄자들의 재 범률이 높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기독인 루구어동 교도소소장이 은퇴후 창립한 이래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전하면서 『현재 대만내 모든 교도소 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며 15개의 교도소엔 교목이 있 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언급했다. 컹성투안치는 세례도 베풀고 있다.3천 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바 있으며 지난 1일에는 군교도소인 [밍드어산좡]에서 21명의 세례식을 거행했다.

    한인선교사로서는 특이하게 컹성투안치와 동역하고 있는 이상란선교사 (핑안당)는 『수린의 [유에한당]에서 목회할 때부터 교도소선교사들과 함 께 사역하며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준 바 있다』고 말했다. 이선교사는 또 한 『한 기독인의 노력으로 옥중선교가 가능해졌고 지금까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대만과 대만인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낀 다』고 덧붙였다.

    한인교포사역/교포들 줄어 유학생 대상 선교

    ⊙ 한중수교뒤에 외교단절되자 급격히 격감/짠양교회,방황하는 학생들의 [방주]역 "톡톡"

    현재 대만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인선교사는 60여가정(모단체에 가입한 선 교사통계).70년대부터 사역하고 있는 유준환 김달훈 황영모 김홍초목사 이 후 80-90년대에 선교사들이 꾸준히 늘어났다.이들은 한인사역,대만교회와 의 협력사역,교회개척,산지족사역,캠퍼스사역,섬사역,원주민어사용 사역등 을 담당하고 있다.

    요즘 전통적인 한인교포사역에서 유학생사역으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 눈 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특히 한·중수교와 함께 대만과의 단교가 이루어진 후 한인교포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

    타이베이한국교회(김달훈),카오슝한국교회(한덕성),룽화한인교회(이기 복),타이베이짠양교회(이재윤),타이중한국교회(최관용),신왕아이교회(이택 섭),타이베이한인선교교회(이승곤),지롱한국교회(김동렬)등이 대표적인 한 인교회. 타이베이시 무자시우밍루2투안에 있는 짠양교회.지난 88년11월 창 립된 이 교회는 자비량선교사인 이재윤목사(52)에 의해 목양되는 대표적 유학생교회다.특히 유학생들에게 이목사와 김남희사모(50)는 모국에 계신 부모와도 같은 존재라고.

    동오대 중문연구소 박사과정 재학중인 서재선씨는 『유학생활중 방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짠양교회가 방주역할을 해주고 있다』면서 『특히 사모님이 일일이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신앙의 모태가 되 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회는 에스더 믿음 사랑등 구역모임도 갖고 있으 며 청년회(회장 정진강집사)를 조직,[울타리]라는 회지도 발간하는등 유학 생들이 바쁜 생활중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유학생들은 영적 육적 선교훈련장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이 교회출신자들은 귀국후 대학교수 고급공무원 일반무역업체경영자 종합 상사근무자 등으로 재직하면서 향후 선교를 지원할 자원들로 [울타리선교 회]모임을 갖고 있다. 이재윤목사는 『사업을 하던중 38세에 신학을 시작,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면서 『전도하는 교회,가르치는 교회,치료하는 교회라는 목회철학을 가지고 유학생을 지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타이베이시 루오스푸루3투안에 있는 타이베이 한인선교교회는 감리 교선교사들의 십시일반후원으로 세워진 선교역사상 보기드문 교회. 대만 현지목회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준 케이스다.이 교회는 대학재학 유 학생보다 언어연수생 중심으로 사역,발전일로에 있다.

    특히 이승곤선교사는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한후 대만 현지에서 중화복 음 신학원에서 공부하는등 대만선교를 위해 뛰고 있는 젊은 목회자. 이선교사 는 『많은 사람이 대만으로 어학연수를 위해 온 후 방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상황하에서 교회가 위안을 주고 있다』고 전하면서 『단기연수생보다 먼저 대만에서 생활한 선배로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역을 하려 고 한다』고 말했다.

    여성선교사/교회개척·캠퍼스 사역 "구슬땀"

    ⊙ 기숙사 심방 성경공부통해 제자화유도/제적성도 15명으로 출발 무려 10배 확장/진실된 목회자모습 투영·현지어 공부도 열심 여성선교사들의 활약 또한 대단하다.현재 여성선교사는 11명.교회 개척,현지교회와의 협 력,캠퍼스사역등을 담당하고 있다.이중에는 현지에서 대만신학원,중화복음 신학원등을 졸업한 후 사역하는 선교사도 있다.김용선(반치아오침례교회), 김미경(타핑린교회),권정숙(롱언장로교회)선교사등이 그 주인공.

    여성선교사로 성공적인 교회개척사역을 하고 있는 진윤숙선교사(리밍교 회).지난해 6월부터 타이중 리밍루에서 개척사역중인 진선교사는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평신도의 제자화훈련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교회가 좀 더 성장하면 현지인들에게 물려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표준어인 만다린 어로 사역하는 진선교사는 좀 더 전도에 힘을 기울이기 위해 대만현지어를 공부하기도.

    대만에도 서양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기독대학이 있다.동오대,동해 대, 중원대등 기독신앙의 모체인 이들 대학에서도 여성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 다.동오대의 김경희선교사와 동해대의 박만선선교사가 대표적인 캠퍼스사 역자.이들은 각 대학의 [기독활동중심]인 교목실에서 사역하고 있다.

    박선교사는 『기숙사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심방,기도해주고 성경 공부를 통해 제자화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사랑과 관심을 갖고 대하자 많은 학생이 부모와 같이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교회를 맡아 놀라 운 속도로 성장을 시킨 선교사도 있다.6년전 재적교인 15명으로 시작해 1 백50여명으로 성장시킨 이상란선교사. 그는 선교사로서는 특이하게 현지감 리교총회의 요청으로 타이베이현 유에한당에서 사역한 경우.

    특히 요즘 이선교사에 대해 대만교회지도자들은 감격해 한다.대만교회 역 사상 선교사 신분으로 초유의 부흥 역사를 이루었기 때문만은 아니다.대만 감리교총회의 요청으로 성도 10명전후인 핑안당(타이베이시 시엔엔루)으로 사역지를 옮겨왔다는 것이 주된 이유. 민한식선교사(푸인당)는 외국어대중 문과를 졸업한 후 이랜드에서 근무하던 중 선교에 헌신한 케이스.중화복음 신학원을 졸업한 후 대만교회를 맡아 사역하고 있다.

    민선교사는 『현지언어구사가 선교사역에 있어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자질일 것』이라면서 『한인선교사들이 대만성도들에게 진 실된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교회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이 무한 하다』고 강조했다. 유환준선교사는 3개교회를 개척,순회설교를 하고 중국 개혁종신학교를 운영하면서 교회지도자를 길러내고 있다.이진희 김학천 정 한진 강희영 김종호 김광한 서상진 박인수 지광섭 임현진 선교사 등도 교 회개척 또는 현지교회와 협력사역을 하고 있다.목회자가 없는 교회에 부임 해 사역하는 선교사도 있다.박태선(콘양지에침례교회),김상회(성결교반치 아오교회)선교사등이 그들.<함태경기자>

    특수선교/원주민 80% 복음화 -- 빈곤이 걸림돌

    ⊙ 어려운 여건속 신앙생활 다시 세속화/고산족 등 9개 종족 대부분이 빈민가

    전통과 가문을 중시하며 조상숭배 빠이빠이를 믿고 있는 객가인(학카인) 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목회자가 있다.한국선교사로는 최초로 무교회지역만 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지청푸인](1980년 창립)에 의해 미아오리에 파송된 황명주선교사(터우우교회)가 그 주인공. 황선교사는 『객가인들은 대가족 사회를 이루면서 외부에 대해선 폐쇄 적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어렵다』면서 『특히 같은 민족끼리만 도움을 주고 받고 있어 대만내에서도 무교회지역이 가장 많은 곳이 객가인의 거주지』라고 말했다.

    대만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고산족은 야미 아미 타이야르 등 9개 종족에 달한다.복음화율은 80%에 이르나 이들의 대부분은 낮은 교육수준,경제적 곤란,목회자의 절대부족등 어려운 여건속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특히 젊 은이들은 도시로 나와 막노동과 공장직공 등으로 일하면서 도시빈민층을 형성,신앙을 잃고 세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을 위해 목회중인 한국선교사도 적지않다.박종산(중리시 네이리 선교 교회) 황금만(지아이 동스교회) 김기용(타오위엔 바링치아오교회) 김윤희 (화리엔 야저우선교교회) 선교사등이 그들. 50세에 신학을 공부,75년부터 타이야르족을 위해 목회하고 있는 린아우목사(74·칭안촌 순복음교회)는 『청년들이 도시로 나갔기 때문에 교회성도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라면서 『한인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사역이 적지않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섬 선교에 나선 오흥현선교사(마주 칭수이기독교회)는 특이한 케이스.미 혼 목회자인 그는 타이중에서 사역한 후 중국대륙이 보이는 섬마주에 교회 를 개척한 최초의 선교사다.현재 이 교회에는 5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대 만어로 목회중인 선교사도 있다.김기문(카오슝 이신교회) 김석준 (카오슝 쿠이린장로교회)선교사가 그들.이들은 OMF선교사로 2년간 대만어를 집중적 으로 배운 바 있다.제자화와 선교화된 교회를 지향하며 평신도훈련에 중점 을 두고 있다.

    이신교회 성도인 송진즈씨의 집에서 드린 구역예배에 참석한 기자에게 리 지아언씨(이신교회)는 『대만 목회자보다 신앙적인 면에서 도전을 주고 있 으며 선교사의 깊이 있는 사역에 은혜를 받곤 한다』면서『기도의 중요성 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장애인 선교사도 있다.타이베 이 임마누엘교회의 최명의선교사. 그는 지난 85년 국제구제사업기구인 국 제특수선교회 네빌무어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교회에서 사역하는 화가이면 서 장애인이기도 한 농아 선교사다.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족 우선주의 벗어나야"

    ⊙ 대만거쳐 중국문화 이해한 후 [대륙] 진출/선교사 기독서적 부족 자녀 교육 등 애로

    선교사들이 한결같이 꼽고 있는 애로점은 다음과 같았다.[선교사와 사모 에 대한 재교육부재][자녀교육][중국대륙선교 우선,대만선교 차선이라는 한국교계의 고정관념]등이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후 사역비와 후원금을 보낼뿐 현지에서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엔 무관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선교사들은 특히 각종 기독서적의 출간이 활발치 못한 대만교계의 상황하에서 재충전할 자료의 빈곤을 느끼고 있다.모국에서 출판되는 수많은 신앙서적들을 읽고 각종 세 미나에 참석하고 싶으나 일일이 책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도 용이치 않으며 선교지를 떠나 세미나에 참석할수 없는 처지라고 안타까워했다.

    민한식선교사(푸인당)는 『한국교계가 신앙 목양서적을 보내주는 운동과 선교사를 위한 세미나를 선교지에서 자주 열어주는등 재교육에 대해 관심 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영숙씨(이상란선교사 사모)는 『한국 교회가 사모들을 위해 많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으나 선교지에 나가있는 선교사 사모들을 위해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고 아쉬워했다.

    선교사들은 향후 모국으로 돌아갔을때 자녀들이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 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한국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 태에서 적잖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한편 선교사들은 대만을 중국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라고 강조했다.많은 선교사가 현재의 중국대륙선교 우선 정 책이 시기상조라고 분석했다. 중국과 중국교회,중국인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실적위주의 선교로 인해 앞으로 준비된 선교사가 대륙에 들어갈 때 많은 장애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교회의 왜곡된 선교전략에 의해 대만에서 철수하는 선교사도 적지 않 은게 사실이나 선교사들은 사역하는 교회를 통해 대만 현지인들에게 선교 비전을 심어주고 있으며 대만교회와 협력,인재를 양성해 파송토록 유도하 고 있다.선교사중에는 대만을 중국선교의 전초기지화한 후 직접 중국을 오 가며 현지사역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타이중 리밍교회(진윤숙선교사 시무)의 경우 중국과 중국선교사를 위한 기도시간을 갖고 있으며 선교헌금도 보내고 있다.박모선교사는 [선츠녹음 신학원]사역을 통해 중국선교를 하고 있다. [중국선교의 어제와 오늘],중 국 최초의 개신교선교사 [로버트 모리슨]등의 책을 펴낸 이병길선교사(용 신교회)는 『대만은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지역이자 모델』 이라고 지적했다.

    서상진선교사(타이중 순복음교회)는 『대륙선교하는데 대만을 경유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언어습관등 문화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조선 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선교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우려했다.

    이승곤선교사(타이베이한인선교교회)는 『대륙선교하는 대만동역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중국내 한국선교사들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면서 『대만을 통해 중국문화를 익힐 수 있는데 굳이 준비없이 대륙으로 들어가려고 한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고 말했다.

    효과적 복음전략

    ⊙ "대만·홍콩을 알아야 [대륙]이 보인다"/정보·교류많아 시각 교정에 도움/사역 [노하우] 배울만 -- 제휴 바람직 대만에서 사역하고 있는 L선교 사는 한국의 중국선교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고 한다.한국교계와 선교단체 가 중국대륙만을 생각하고 대만이나 홍콩을 통한 중국선교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대만 선교여행을 다녀온 많은 선교사 지망생들은 L선교사와 같은 마음을 갖곤 한다.또한 동족을 복음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중국선교에 임하는 이들 의 선교전략과 열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대만이라고 꼽고 있다. 대만의 열심에 못지않은 곳이 홍콩이다.많은 교회와 선교단체 혹은 각종 라디오매체가 중국을 타깃으로 삼아 선교에 전력하고 있다.홍콩은 현재의 중국교회를 가장 이해하기 쉬운 곳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중국과 혈연과 지연 등으로 밀접한 지역인 대만과 홍콩.이곳의 교회와 선 교단체들이 중국선교를 위해 뛰고 있다.지금까지의 한국 크리스천의 중국 선교와는 달리 매우 구체적으로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점을 갖고 있는 대만과 홍콩 크리스천의 중국 복음사역은 다 섯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중국과 중국교회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에 힘쓰고 있다.홍콩의 CCRC 나 대만의 중국복음회 등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얻는 정보를 토대로 중국 기 독교상황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각방면에 대한 모니터를 하 고 있다.따라서 이들에게서 나오는 출판물들은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시각을 가져다주고 있다.

    둘째,라디오방송을 통한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방송선교 양육 프로그램이 정착돼 있다.라디오를 통해 보내지는 복음의 메시지와 지도자 양육과정은 훌륭한 선교자원이 되고 있다.

    셋째,성경과 복음서적을 꾸준히 중국신도들에게 전달하거나 발행하고 있 다.교육용 경건서적,각종 신학서적과 단행본들이 충분치 못한 중국 실정을 감안,복음증주협회등 각종 기관들이 교회지도자들을 위해 참고 서적과 성 경공부교재들을 제공하고 있다.

    넷째,개인적인 접촉이나 교회와 기관간 합작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 다.해외거주 화교들의 중국방문이 자유롭기 때문에 홍콩과 대만인들은 중 국내 친척 친우를 방문하면서 개별적으로 선교한다.홍콩의 크리스천중에는 홍콩 기업에 취업나온 중국인을 대상으로 양육하는 사람들도 있다.홍콩에 서는 중국교회 지도자를 초청,유대관계를 갖기도 한다.

    다섯째,중국선교에 헌신할 수 있는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대만의 도생 신학원은 커리큘럼상에 대륙전도 훈련과정을 두어 중국대륙 방문과 함께 선교사역을 실제로 체험하게 한다.

    이상란선교사(대만 수림요한당)는 『대만 홍콩에서의 중국선교에 대한 열 정은 매우 강렬하다』면서 『한국내 선교단체들이 대만 홍콩의 선교단체와 연대해 중국선교에 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대만 이나 홍콩에서 사역한후 중국현지 양육에 임하면 중국에서 부닥치게 되는 각종 선교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영학선교사(홍콩주재 OMF선교사)는 『홍콩 크리스천들은 중국현지에서 여러형태로 은밀히 선교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크리스천도 중국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홍콩의 선교방법을 배우고 중국선교에 뛰 어든다면 적잖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함태경기자>


    58년 대만진출 김영진목사

    선교원 등 설립/"아직할일 많아"-- 딸·사위도 [같은 길] [1956년 내게는 선교사가 되어서는 안될 이유가 3가지 있었습 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 선교부의 일방적인 선교사선발대상이 되었을 때 김영진목사(73·은퇴선교사)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생 세 명의 학비며 뒷바라지를 해야 할 한 가정의 장남으로서의 책임, 담임 하고 있던 부산 제2영도교회가 당시까지는 그 지역에서 튼튼히 뿌리 내리지 못했으며 선교 적 소양과 자질이 부족하다는 세가지 [불가론] 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설명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선 강권하여서 자신을 1958년 대만으로 파송 했다고. [당시만해도 해외이주나 여행이 자유롭지 못해 대행기관이 있을리 만무였습니다. 따라서 혼자 여권수속이니 비자신청이니를 모두 해결해야 했습니다]

    당시 39세의 나이로 기후 문화 언어마저 낯선 대만으로 향한 김 선교사는 당시를 회상해 보면 지금도 막막한 기분이라고 술회한다. 부산항에서 화물 선을 타고 이틀만에 다다른 대만 기륭항. 그에겐 선교정 책이나 지식이 없 었다.

    [한가지 나를 초청해주고 대만에서의 사역중 협력할 존 스톤과 앤 드류 선교사가 있다는 말만 믿고 떠난 것입니다]

    대만에서 김선교사가 머물러야 할 집은 겨우 비나 가릴만한 짓다만 가옥 이었다. 침구가 없어 첫날은 시멘트 포대를 깔고 덮고 자야했다고 김선교 사가 대만에서 벌인 사역 중 주요 활동은 전도와 교회개척. 현지동역자와 의 대화부족으로인한 오해로 갈라서기도 하는 아픔도 맛보 면서 1990년 은 퇴 할 때까지 10개 교회와 신학교 선교원등을 설립했다. 김선교사는 신죽 지역에 교회공동묘지인 야곱산 묘원에 자신의 묘터를 마련해놓고 은퇴후에 도 계속 대만에 남아 원로선교사로 대만복 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특히 김선교사는 선교사훈련과 전략정책의 필요성을 절감, 총회선교부의 훈련원을 설치하는가 하면 실경험을 바탕으로 선교행정을 잠시 맡기도 했 었다. 또 김선교사의 장녀인 린나씨는 대만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김 영수선교사와 결혼, 부친의 33년 사역의 대를 이어 대만선 교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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