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러시아 상업은행들이 GKO를 담보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왔다는 점에서 이는 러시아 대외 부채의 지불유예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즉 이번 방침은 90일 동안의 모라토리엄 기간을 거쳐 단기부채의 상환일정을 3~5년으로 연장하는 채무 리스케줄링 (기한연장) 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이는 사실상 러시아가 상환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해외 투자가들의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러시아의 외채문제가 해외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그 기간중 채권자들에게 상징적인 이자만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만기가 1년 미만인 GKO의 규모는 수십억달러 규모로 파악되고 있으며 대부분 러시아 국내은행이 이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자본은 10억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GKO는 시장이자율이 1백~1백50%에 달해 그동안 국내외 은행 및 투자기관들의 집중적으로 매수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동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로 인해 러시아 금융시장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이 대규모로 GKO를 팔아 치우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외국인들의 이탈로 생긴 국내 금융시장을 지탱하고 정부의 자금조달계획을 예정대로 집행하기 위해 국내의 대형 상업은행들을 강박하는 GKO를 대량으로 인수케 했다.
또 자금조달의 원활화를 위해 60~1백20% 정도였던 이자율의 하락을 방치해 최근엔 1백60%나 되는 고율의 GKO가 속출했다. 이에 따라 상업은행들은 러시아 정부보증 고율의 GKO를 구입해 이익을 내기 위해 GKO를 담보로 외국의 금융기관들로부터 저리의 달러를 도입, 러시아의 외채도 급격히 늘어갔다.
98년초부터 러시아 정부의 재정위기가 고조되자 GKO에 대한 정부의 지불능력이 의심받게 됐으며 이를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높아갔다. 이에 따라 러시아 상업은행들에 대한 외국은행들의 자금회수압박이 가속됐다.
따라서 이번에 러시아 정부의 GKO에 대한 5년동안의 리스케줄링은 결국 러시아은행에 돈을 빌려준 외국은행들을 압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1천5백~1천6백여개에 달하는 러시아 상업은행 중 약 20~30개만이 이 과정에서 살아남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제 문제의 관건은 모라토리엄이 초래하는 러시아 금융시장의 공황적 상황과 신용도 하락, 리스케줄링의 과정이 총체적인 금융시스템 붕괴로 이어질까 하는 점이다. 러시아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경우 세계 금융전반에도 커다란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시장관계자들은 "정부의 발표연기는 금융시장 안정화대책의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뭔가 더 나빠질 것을 의미하는 것" 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네자비시마야 가제타 신문은 정통한 정부 소식통을 인용, 러시아 정부가 조만간 만기가 도래할 정부의 국내부채 (GKO) 를 5년동안 동결한 후 매년 20% 정도씩의 이자를 지급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밝혀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 경우 단기도래할 GKO를 사실상 5년동안 지불정지하는 것이며 연 1백50% 정도씩 달했던 최근 이자율의 극히 일부만을 채권자들에게 지불하는 것을 의미해 러시아 은행의 부실이 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 신문은 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가 18일 오후 6시부터 주요은행장들을 불러 이같은 방안을 통보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전했다. 이 와중에 겐나디 셀레즈네프 러시아 국가 두마 (하원) 의장은 2개월 이내에 루블화의 추가 평가절하가 있을 수 있다고 18일 경고했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최근 일본정부에 일본 수출입은행의 8억달러 융자를 연내로 앞당겨 실시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일본정부는 적극 검토키로 했다고 19일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날 주식시장은 전날 주가가 급락한데 따른 개인들의 반발 매수세가 대거 유입되면서 주가가 급등했으나 외국인.기관들이 '팔자' 에 나서 상승폭이 제한됐다. 대형주와 중소형주 모두 강세를 보였으며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각각 7천7백47만주.3천8백81억원으로 전날과 비슷했다.
감자 (減資) 비율이 축소될 것이란 전망속에 서울.제일은행이 상한가를 기록했으며 신한.상업.한일.조흥은행 등 다른 은행들도 일제히 주가가 올랐다. 외국인 보유한도를 확대할 예정인 포항제철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으며 삼성전자.한국전력 등 대형우량주들은 외국인의 '사자' 가 몰리면서 주가가 상승했다.
또 5천만달러 외자도입에 따라 코오롱상사.코오롱과, 세제없는 냉각장치 개발을 발표한 신동방이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3백70만주 넘게 거래된 금강개발이 거래량 1위를 차지했으며 쌍용증권.국민.상업.신한은행 등도 1백90만주 이상 거래됐다.
외국인은 삼성중공업.LG전자.상업은행 등을 중심으로 1백55억원어치를 팔았고 기관투자가들도 1백6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3백14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소로스는 지난 1998년 8월 13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국제통화기금 (IMF) 의 처방이 완전히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 전제, "내가 충고하는 페그제 (고정환율제) 도입.루블화 평가절하 등을 무시하면 러시아는 채무불이행 사태를 맞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극심한 금융혼란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루블화의 15~25% 평가절하 ^유로 또는 달러에 환율을 연동시키는 페그제의 도입을 제시했다.
그는 또 IMF 등 국제 사회가 지원키로 한 2백26억달러 외에 서방선진7개국 (G7) 이 1백50억달러를 추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3월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지와 인터뷰를 할 때도 "외국에서 빌린 차관을 러시아가 생산분야가 아닌 재정적자 충당.기업부채 상환에 이용하고 있다" 며 "이 때문에 경제위기가 닥쳐올 것" 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헝가리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 조지 소로스는 옛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해왔다.
그는 실제로 지난해 자금압박을 받고 있던 러시아 정부에 비밀리에 수억달러의 단기 긴급융자를 해주었으며 국영기업 민영화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제위기의 원인이 재정적자와 단기국채의 과도한 발행에 있었다는 지적도 러시아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다만 앞으로 러시아의 채무상환연장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한국의 주식시장에 미칠 여파도 지적할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경제의 몰락은 인근 협력국가와 동유럽 제국은 물론 독일 등 서방경제에도 깊은 주름살이 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의 재빠른 경제지원이 없으면 그동안 시장경제와 친 (親) 서방을 표방해 온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생명도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클린턴의 지도력이 성추문에 휘말려 흔들리고 있고 국제통화기금 (IMF) 의 여유자금도 충분치 않아 과연 얼마나 선진국의 민간자본 지원이 있을지 의문이다.
단기적으로 러시아에 빚을 준 유럽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줄이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채권회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고, 달러화의 강세는 일본 엔화의 약세와 중국 위안화의 절하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수렁에 빠진 한국경제를 둘러싼 국제경제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악화일로에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급유예 선언은 최악의 상황의 시작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러시아경제의 파산은 구조적으로 예견돼 왔던 것이다. 외국에서 빌린 돈도 모자라 단기국채를 발행해 공무원봉급 등 재정지출을 메워 온 경제였기 때문에 장래가 지극히 불투명했다.
얼마 전 퀀텀펀드의 소로스 회장이 루블화 절하와 서방의 경제지원이 없으면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도 이같은 러시아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방의 금융기관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을 더 붓지 못하다 이번의 극한상황을 맞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 강대국으로 우리가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도움을 받아야 할 중요한 외교파트너다.
이번 사태가 서방선진국의 협조융자로 잘 수습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바람직하다. 또한 우리로선 나름대로 단기적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현재 4백억달러대의 우리 외환보유액은 외부의 충격을 견디는 벽으로는 약하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재로 주춤했던 금융 및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을 빨리 매듭짓고 경제재건에 나서는 것이다.
수출을 늘리려 해도 구조조정이 끝나 금융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빨리 구조조정을 끝내면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투자기회를 노리는 국제금융자본은 대상을 찾고 있다. 세계 어디를 봐도 마땅한 투자대상이 없는 요즘 빨리 수용태세를 갖춘 나라가 돼야 한다.
◇ 모라토리엄 범위 = 러시아 정부는 17일 "외국인 소유의 채권 및 단기 환 (換) 거래 계약에 따른 지불을 90일간 유예한다" 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에 대해 내년 1999년 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국채 4백억달러와 기업.은행의 외채 4백억달러가 그 대상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 현지에서도 지불유예 조치의 정확한 범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확한 내용은 19일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 환율변동폭 확대는 평가절하인가 = 루블화의 하루 변동폭은 이번에 달러당 6.1~6.3루블에서 6.0~9.5루블로 확대됐다. 이번 조치는 루블화 가치의 하락을 용인한다는 뜻으로 해석돼 사실상 평가절하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환율변동 상한선을 기준으로 할 때 변동폭은 50.8% 확대됐고 달러에 대한 루블화 가치는 최고 33.7%까지 평가절하될 수 있다.
◇ 러시아 외채 규모는 = 정부 외채가 1천2백50억달러 (97년말 기준) 로 발표된 바 있으나 민간외채 통계는 정확히 발표되지 않고 있다.
보리스 넴초프 부총리는 최근 총외채가 2천억달러, 그 가운데 단기국채 발행규모는 6백억~7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총 외채는 지난해 1997년 말 현재 1천8백억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 현지 상황은.
"모스크바의 대부분 금융기관들이 달러 송금과 인출을 중단한 상태다. 또 물가폭등에 대비해 생필품을 구하려는 시민들이 상점가에 진을 치고 있지만 대형 상점들이 영업을 중지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 우리나라 업체 동향은.
"현지 상황이 극히 불투명해 영업활동을 자제하고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지.상사들이 며칠 전부터 사전대책회의를 갖고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해 왔다. "
- 대 (對) 러시아 수출타격은 얼마나 되나.
"올 하반기중 7억달러 수출을 기대했으나 이같은 목표달성이 불가능해졌다."
◇러시아 경협 차관 = 한국 정부가 아직 돌려받지 못한 러시아 경협차관은 이자를 포함해 17억7천만달러다.
지금까지 지원한 20억5천만달러 (원금 14억7천만달러+이자 5억8천만달러) 중 2억8천만달러를 알루미늄.우라늄.수송용 헬기 등 현물로 돌려받고 남은 규모다.
17억7천만달러 가운데 1억7천만달러는 연내에 현물로 돌려받기로 일정이 잡혀 있으며, 나머지 16억달러의 상환일정은 연내에 확정지을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전망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16억달러는 당초 94~99년에 돌려받기로 했다가 아직 못받고 있는 것이다. 이중 원금이 12억달러이고 이자 2억달러, 연체이자 2억달러다.
양국은 16억달러의 상환일정을 확정하기 위한 실무회의를 지난달부터 진행중이다.
이달 말까지 양국의 입장을 담은 의향서를 교환하고, 다음달 실무회의, 연내 경제공동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최종 결론을 내기로 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파리클럽이라 불리는 19개 채권국에 들어가면 빚을 탕감해주고, 상환일정도 연장해야 하는 등 조건이 불리해진다" 며 "따라서 우리는 파리클럽에 들어가지 않고 독자협상을 계속 진행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사정이 어렵다고 버티면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금과 다름없는 알루미늄 등 원자재를 한국에만 주는 것에 대해 주요 채권국이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은 일단 사태 추이를 두고 보자는 분위기. 우선은 돈을 떼일 가능성이 있는 거래는 유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기회를 활용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업계 움직임 = 기업들은 일단 사태 추이를 두고 보자는 분위기. 우선은 돈을 떼일 가능성이 있는 거래를 유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기회를 활용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현대그룹의 러시아 대책팀은 이번 사태 이후 수출가격이 떨어진 러시아산 철강재 및 석유화학제품을 삼국간 교역에 적극 활용할 경우 적지 않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물산은 루블화 평가절하에 따른 러시아 철강.석유화학제품의 수출경쟁력이 향상되면서 교역기회가 증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