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선교사 수필
사랑하는 러시아를 위하여.
남 정우
러시아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신뢰성(trust)과 자발성(voluntary)이다. 달러가 아니다. 석유가 아니다. 지식과 기술이 부족해서 러시아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러시아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너무너무 불편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 상호간에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서로 믿지를 않는다. 사회 경제산업활동의 기초가 안정된 은행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러시아에서는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는다. 수많은 은행들이 있다. 그러나 은행이 하는 일이란 크레디트 카드 대금결재(크레디트 카드도 우리나라 개념과는 달리 선불 카드처럼 쓰인다. 은행에 들어있는 돈만큼만 쓸수 있다), 환전, 외환투기 뿐이다. 또 할부라는 게 없다. 2만불이 넘는 차를 사도 무조건 현찰,일시불로 그자리에서 지불해야 한다. 1급 금융기관인 은행에 대한 국민의 신용도가 이정도이니 우체국이나,보험이나 조합이나 회사 금융기관의 신용도는 말할 것도 없다. 산업 경제활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병원에서 환자는 의사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군대에서 장교의 말을 병사가 믿지 않는다. 교회에서 신자들이 신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대통령의 말을 믿는 국민은 더더구나 없다. 그대로 믿고 따르면 바보가 되고 만다. 믿는 사람이 있다면,부모의 말과 친한 친구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러시아에 살다보면 의심받고 의심하는 습관은 밥먹듯이 된다.
두번째는 자발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고르바쵸프가 대통령 집무실을 나와 퇴근하는 길에 앞서가는 트럭을 보았다. 감자를 싣고가던 그 트럭은 감자를 길바닥 위에 하나씩 흘리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고르바쵸프는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모스크바에서 50km 남짓 떨어진 시골 어느 마을까지 따라갔다. 창고에 도착한 트럭이 정지하고 운전수와 조수가 차에서 내리자 고르비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트럭에서 감자가 계속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물었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해서 줄을 꽉 묶은 다음 달릴 것이지, 왜 그냥 계속 달려왔느냐고 또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하는 말인즉, "우리의 책임은 감자를 농장에서 이 창고까지 시간 내에 운반하는 것이지, 떨어진 감자를 줍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고 태연스럽게 대답하더란다. 아연실색한 고르비가 트럭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에는 감자가 1/3밖에 남지를 않았다. 러시아는 거대한 노예들의 국가라는 인상을 풍긴다.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동네 가게를 바보면 어느누구도 "어서 오세요!" 인사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 가게가 아니기 때문이라는게 그 이유이다. 도둑질은 습관적이다. 가책감도 없다. 마치 군대 병사들이 "위치 이동"하는 심리와 똑같다.
러시아는 위대한 나라이다. 영토가 그러하고 천연자원이 그러하고 국민들의 예술적인 소질과 과학기술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나라와 민족을 이토록 비참한 나라로,살기 힘든 나라로 전락된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상호간의 신뢰성과 자발성을 메마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러시아 국민사회에서 인간상호간의 신뢰성과 자발성을 메마르게 만들었는가? 간단하게 대답하자면, 그것은 공산주의 사상과 관료체제이다.러시아 국민들은 아직도 "공산주의 사상 그 자체는 좋은 것이다.문제는 1970년 후반기부터 국가 고급 공무원들의 부패로 말미암아서 소련이 망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공산주의 사상 자체가 지니고 있는 허구성과 죄악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공산주의 사상은 "평등"에 강조점을 둔 어린아이 같은 낙관주의적 이데올로기이다.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이 지니고 있는 "죄악성"과 "삶의 욕구들"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고, 강압적인 교조주의적 사회조직으로 인간을 개조해 나갈 수있다고 낙관했다. 신,구약 성경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류역사의 고질적인 죄악성의 현실을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자기소유에 대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애착심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의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심(hatred)"에서 공산주의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진 자들과 불평등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의 강도에 따른 증오심의 강도가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의 에너지를 제공해왔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있는 운동권 학생들은 오늘날에도 좌익운동권을 확대해 나가기 위한 제1단계 활동으로서 가진 자들과 사회불평등 구조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증오심을 키우는 것이다. 증오심이 강해져야 적극적인 좌익운동을 위한 투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기와 기초 위에 건설된 공산주의 사상과 실천은 근본적으로 인간성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었다. 공산주의가 퍼져나가는 곳에는 어디서나 인간성을 메말리는 결과들이 증대되었다. 가정이 파괴되고,종교가 파괴되고, 대신 의심과 감시가 날로 강화되고 사람들은 피동적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았다. 한마디로 공산주의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화학약품과도 같았다. 공산주의가 생산한 부정적인 결과들은 러시아에 살면 살수록 가슴 깊이 느껴진다. 그러한 결과들 가운데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심각한 증세를 언급하라고 한다면,인간 상호간의 신뢰성의 부재와 자발성의 부재이다.
그러나 지금은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경험하면서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모스크바 거리의 모습과 시민들의 모습과 텔레비젼 뉴스거리가 달라지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1년은 10년과도 같다. 4년 전에 모스크바에 들어오신 분들은 모스크바의 모습이 흡사 우리나라의 60년대의 거리 모습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후에는 70년대 모습과 비슷해 졌고, 작년에는 80년대 모습과 비슷해졌고, 금년 96년도는 우리나라 90년대 초반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들이 많아지고 광고들이 쏟아지고 외국사람들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면 사실인 것 같다. 곧 러시아가 부흥될 것 같고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러시아가 깊은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된다. 병의 근본 원인은 "신뢰성"이라는 비타민과 "자발성"이라는 비타민의 결핍증이다. 이때문에 전반적인 사회조직들이 심각한 영양실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교육조직,군대조직,정부조직,종교조직 등 모든 사회 국가 단체들이 신뢰성과 자발성의 부족으로 피곤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직 마피아 조직만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건강한 자본주의는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성과 자발성에 기초해 있으며,그러한 기초는 청교도적 신앙과 윤리적 가치관에 의하여 생성되며 지탱된다. 그런데 현재 러시아는 타락한 자본주의 겉모습만 흉내내는데 급급하고 있다. 오히려 소시민들 사이에 자본주의에 대하여 염증만 야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약을 먹여야 한다. 신약과 구약을 먹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쉬운 말로 설명하고, 가르치고, 암송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실천하게 만들어야 한다.하나님의 말씀이 제일 좋은 비타민제 이다. 기독교 신앙은 신뢰성과 자발성을 불러일으키는 샘물이다. 특별히 청교도적인 신앙과 윤리를 가르치고 확산시키는 일이 러시아를 진정으로 건강하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통찰과 진단과 처방전은 유독 러시아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을 보다 건강하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드는 지름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