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저 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제7과 나의 돋는 해이신 예수님


본문 : 누가복음 1:78-79, 말라기 4:1-2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78-79)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1-2)

그림 : 해돋이 저는 지난 8월5일-16일에 영국을 다녀왔습니다. 그 때 한국날씨가 하도 더워서 어서 빨리 영국에 가야지 그러면 조금이라도 덜 덥겠지 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유럽 전체가 몇 십 년만에 제일 더운 날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프랑스에서는 독거 노인들이 몇 천명이 죽었습니다. 영국의 도박사들은 날씨가 연일 최고더위를 경신하자 돈을 잘못 걸어 망한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영국의 집들은 에어컨과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더운 날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자상가를 갔을 때 “선풍기가 다 팔렸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창에 써 있었습니다. 아마 이런 더위가 매년 계속된다면 영국의 가옥구조도 변경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온이 몇 도만 더 올라간다면 심각한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선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태양을 조금만 더 지구에 가까이 접근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조금만 더 멀리하시면 어두움과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우주선을 쏟아 올린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지구의 온난화 문제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일어난 문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해 때문입니다.
대구유니버시아드에 참석한 북한 응원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이 함께 찍힌 현수막을 상기된 얼굴로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울먹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상을 저렇게 낮은 곳에 걸려있고, 귀퉁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 맞으면 안된다고 고이고이 접어가지고 갔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태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수령님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는 심판 날에 임하실 그리스도의 모습을 ‘해’로 비유했습니다. ‘해’로 표현한 것은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우상화 시켜서 섬기라는 뜻에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악인과 의인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임하시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1. 심판 날에 악인에게는 극렬한 풀무 불로 임하셔서 그들의 뿌리까지 태우십니다.

정원을 가꾸어 보신 분들이나 농사를 지으셨던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잔디밭이나 농지에 잡초가 자라나는데 잡초는 잘 보이지 않으려고 납작한 것이 많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아 살아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뿌리가 더 깊이 박혀있습니다. 이것이 잡초들이 살아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뿌리를 다 뽑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멀쩡한 것까지 뽑힐 염려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염려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 뿌리까지 다 태우십니다. 완전한 결산을 하는 것이며 악은 모두 거두어 하나도 남김없이 그 근원을 모두 불로 태우신다는 것입니다(마13:41-42).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1절)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를 다스리고 자신들이 많은 나라를 통치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셨습니다. 유대인만의 구주가 아니요 이 세상의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혈통만 믿고 자신들의 행동과 죄는 뒤로했습니다. 유대인이니까 의로운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기만 하면 의로워진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오래된 영국교회들도 이러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8월 10일 웨일즈의 한 개척교회에서 주일오전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교회의 목회자는 영국의 큰 교회(건물만)에 담임하게 되었는데 그는 뜨거운 가슴을 막을 길이 없어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서 전도했습니다. 이런 영국의 목사를 찾아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권위가 실추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쫓아내었다는 것입니다. 왜 영국의 교회들이 오늘날처럼 되었는지 약간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텅 빈 큰 교회건물들을 옆에 두고 작은 공간에 임시 막사처럼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날은 영국에서 몇 십 년 만에 제일 더운 날이라고 한 날이다. 선풍기 하나가 강대상 옆에서 돌아갈 뿐이었는데 열을 식히는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땀의 뒤범벅이 되었어도 살아있는 그 느낌은 영국의 큰 성공회의 많은 형식의 예배분위기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 그러나 의인에게는 의로운 해로 떠오르십니다.

어느 날 문득 저 동녘하늘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순간 숨이 머물 것 같은 감동을 느껴보신 적이 없으신지요? 태양은 매일 떠오르지만 매일 새것입니다. 해가 없다면 이 땅의 동, 식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태양의 광선이 식물과 동물의 생명을 위해서 과 열을 주는 것처럼 ‘의로운 해’, ‘돋는 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을 위해서 떠오르신 것입니다.

교만한 자와 악한 자에게 내리시는 심판과는 반대로 말라기 저자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사람이 의인이라는 말 아닙니까? 또한 이 사람에게 의로운 해, 바로 치료하는 광선을 비쳐준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의 표현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이와 같이 기쁜 일을 신약본문 눅1:78절은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일이 시험 보아서 된다든가, 돈 있어야 된다든가, 힘있는 사람만 된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은 아무래도 제외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이지 않습니까? 돈도 아니요, 힘도 아니요, 머리도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이름만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님들은 큰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부모님을 기억하고 함께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시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녀가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해서 나만을 위해서 살라고 말하지는 않으십니다. 더욱이 이 세상의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가진 것 중에 무엇이 필요하신 분이겠습니까? 사실 다 그분의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이름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기억하고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름만 부르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종교가 기독교 외에 어디 또 있습니까?

저는 요즘 모든 것이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더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중국에 갔을 때 제가 설교하는 것이 목사의 설교를 처음으로 듣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사에게 처음 축복기도와 안수 기도를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감격과 감동도 컸겠지만 저 역시 감격스런 일이었습니다. 중국 땅에 머물며 살아오신 그분들의 애환을 제가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그리고 두만강가로 바로 건널 수 있는 작은 강을 앞에 두고 손에 잡힐 듯한 산을 바라보며 그곳이 북한 땅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왜 또 그리 슬퍼지는 것입니까? 백두산에 올라갔으나 천지를 보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그분들이 더 미안해하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분들의 잘못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런 슬픔도 이 땅에서 잠시뿐입니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중국의 조선족 할머님들은 저의 두 손을 꼭 잡고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제가 다시올 때까지 건강하게 사셔야 됩니다.”라고 인사하고 돌아왔습니다.
계 21: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찬송가 외엔 아는 노래가 거의 없습니다만, 세상 가요이지만 심수봉씨의 “젊은 태양”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한 여인의 허스키한 음성으로 흘러나오는 조용한 노래에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햇빛 쏟는 거리에 선 그대 그대
고독을 느껴보았나 그대 그대
우리는 너나 없는 이방인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햇빛 쏟는 하늘 보며 웃자 웃자
외로움 떨쳐버리고 웃자 웃자
우리는 너나 없는 나그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종 소리 바람 소리 고이 고이 잠들던 날
먼 하늘에 저 태양이 웃는다
햇빛 쏟는 거리에 선 그대 그대
고독을 느껴보았나 그대 그대
우리는 너나 없는 나그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아~ 아~ 아~ 아~

모진 바람 거센 파도 가슴 속에 몰아쳐도
먼 하늘에 저 태양이 웃는다 
햇빛 쏟는 거리에 선 그대 그대
고독을 느껴보았나 그대 그대
우리는 너나 없는 이방인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햇빛 쏟는 하늘 보며 웃자 웃자
외로움 떨쳐버리고 웃자 웃자
우리는 너나 없는 나그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후렴에서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하며 사라지는 노래는 여운을 남깁니다.
호이토 맨 이라는 사람은 “추위에 떤 자일수록 태양의 따뜻함을 느낀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고뇌를 맛본 자일수록 생명의 존귀함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이 없는 사람은, 삶의 고난이 없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깊이 알기란 어렵습니다.
태양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하다는 것과 생명 아닙니까?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은 따뜻한 봄날의 햇살처럼 생명의 빛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축복이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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