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저 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제11과 나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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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0:1-18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림 : 선한목자 : 요10:11-14의 기술에 의거한 것으로 양들은 물론 성도들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천국의 평화로운 정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목자가 양들(때로는 소나 개 등의 가축도 끼어 있다) 에게 둘러싸여 있는  전원의 풍경은 그리스도교 이전부터 있었는데. 아마 그것들은 낙원내지는  천국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인물이나 양의 표현법 등은 극히 고대풍이지만 지면을 수직으로 받치고 양 등을 아래위에 배치하는 방법은 물론 새로운 시대 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424-425년경 모자이크 라벤나 갈라. 브라체디야 묘당 북쪽 입구의 반원벽. 오늘 말씀은 양을 치며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양이라는 말이 약 500번 넘게 나옵니다. 양은 창세기 4장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아담의 두 아들인 가인은 농사를 지었는데 아벨은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양은 인류 시초부터 사람과 함께 살아온 동물입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은 목축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때는 마을마다 공동 소유로 의 우리를 지었던 것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이리와 짐승 떼와 도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양의 우리는 약 3m 정도의 높이로 울타리가 처졌고 밤이 되면 목자들은 그의 양떼를 우리에 넣어두었고, 문지기는 그 앞에서 밤새도록 보초를 섰습니다. 그런데 이런 양들을 노리고 몰래 찾아오는 자들이 있었으니, 절도요 강도였습니다. 이들은 캄캄한 밤에 양들을 훔쳐 팔아먹고자 아무도 모르게 담을 넘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아무 거리낄 것이 없기에 떳떳하게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목자들이 오면 문지기는 문을 열어 줍니다. 그러면 목자는 들어가 각각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얼룩아, 순둥아, 말썽아” 그러면 양들은 신기하게도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부르고 양이 그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목자와 양의 관계가 인격적이고 긴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목자는 양들을 도매금으로 부르거나 번호를 붙여 부르지 않습니다. 평소에 관심을 갖고 살피며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고, 양도 목자가 자기에게 붙여준 이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친히 양의 문이 되셨고 우리가 어떤 문으로 들어가야 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1. 양의 특성

양의 특성을 이해하면 왜 예수님이 우리를 양에 비유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양은 스스로 길을 찾아가지 못합니다.
와 고양이 등은 쉽게 길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양의 시력은 3m앞도 잘 보지 못한답니다. 충성스런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우리나라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울산에서 살던 분이 가끔 에게 돈을 입에다 물려주고 푸주간에 가서 고기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이 는 영리하여 자신이 먹고싶은 고기를 먹지도 않고 심부름을 잘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서울로 이사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깜박 잊고 에게 고기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이 는 돈을 물고 울산까지 내려가려고 고속도로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탈진하여 그만 고속도로에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비나 연어 같은 동물은 오랜 시간 먼 거리를 여행하고도 자기의 본향을 찾아가는 놀라운 방향감각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은 쉽게 길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목자의 인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삶의 방향 감각에 둔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목자 되신 주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2) 양은 스스로의 방어능력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습니다. 고슴도치는 밤송이처럼 생겨서 구분이 잘 안되고 잘못 접근하면 찔리기만 합니다. 카멜레온은 자신을 위장하는 대표적인 동물입니다. 아니면 스컹크처럼 가스를 내뿜는 다는가, 빨리 도망갈 수 있는 다리가 있던가 아니면 덩치가 있던가 합니다. 그러나 은 특별한 무기가 없습니다. 공격할 수 있는 무기도 피할 수 있는 빠른 달리기도 상대에게 치명적을 가할 수 있는 독도 위협을 줄 수 있는 덩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양은 평안한 가운데서 살며 번식도 합니다. 그 이유는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사단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특별한 무기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비무장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할 때의 방법이 총칼을 앞세우고 가면 안됩니다. 그러나 목자이신 주님이 지켜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3) 양은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양은 스스로의 방어능력이 없는 만큼 겁이 많은 짐승입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무리를 지어 살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무리도 얼룩말처럼 다른 짐승으로부터 특별한 방어수단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저 겁이 많기 때문에 모여있을 뿐입니다. 이리가 한 마리만 양 우리로 뛰어들어와도 양들은 힘을 합해서 물리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두 흩어지고 맙니다. 돌봐 주는 목자가 없다면 결국 죽고 맙니다.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양의 특징은 항상 목자와 연관됩니다.

4) 양은 깨끗하지 못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자신들의 몸을 혀로 핥아서 씻든지 풀에 구르든지 물로 씻든지 하면서 나름대로 청결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양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물이 몸에 묻으면 그대로 더러운 채로 있습니다. 목자가 씻어줄 때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깨끗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죄에서 사하여 주십니다(요일1: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8)라고 하셨습니다.

5) 양은 양식이나 물을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먹이를 찾는데 비해 양은 돌봄이 없으면 독초도 해로운 줄 모르고 뜯어먹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의 돌봄 없이는 스스로 살아갈 아무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도는 여러 가지 세상적인 교훈 이단의 유혹과 타종교의 호기심으로부터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면 구분하지 못합니다.

은 이처럼 부족한 것이 많은 동물입니다. 양에 대한 문화적 인식에 차이가 있는데 우리 한국에서는 좋게 말하고 있습니다. 온순하고, 인간과 가까이 생활하고, 깨끗한 동물, 하얀 털을 갖고 있는 호감 있는 짐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동지방에서는 생각이 모자라는 놈, 고집이세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줄 모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심한 욕이 ‘개새끼’라면 중동에서는 ‘양 같은 놈’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53:6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갈 길로 갔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양은 고집이 세고 성질이 급한 동물입니다. 우리보다 오래 전부터 양을 치며 살아온 중동의 사람들이 양에 대해서는 더 정확하게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양이 잘하는 것 하나 있습니다. 양에게 발달된 것이 있다면 귀뿐입니다.

2. 양은 주인의 음성을 알아야 합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10:3-5)

양의 주인은 자신의 양들이 알아듣는 이름을 부릅니다. 양들은 사람과 달리 청각이 발달되어 있어서 목자의 음성과 타인의 소리를 구분합니다. 목자가 아니면 양들은 순간 흩어져 자신들에게 닥칠 위험한 상황을 피합니다.

양은 아무능력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재주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목자의 음성 같지만 삯군목자가 있습니다. 돈을 받고 고용된 목자는 진정한 목자가 아닙니다.

3. 삯군목자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양이 300마리 이상일 경우 대규모 목축에 속하기 때문에 별도로 을 칠 일꾼을 고용했습니다. 이들은 임금을 받고 을 치는 목자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렇게 고용된 삯군 목자는 목자가 아닌 것입니다.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있어서 제일 경계해야 되는 것은 이리떼나 맹수들입니다. 진정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지킵니다. 다윗도 양을 칠 때 사자과 정면으로 대결한 적이 있었습니다(삼상17:34-37). 이런 위협이 있을 때 삯군목자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습니다. 미쉬나(Mishnah)에 보면 삯군목자의 책임한계는 이리 한 마리의 공격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리 한 마리의 공격으로부터의 공격은 막아야 할 책임이 있지만 2마리 이상의 이리떼나 다른 맹수들로부터 지킬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삯군목자는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12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단순히 직업으로 택한 목사와 사명으로 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교회선택이 한 목회자의 고매한 인격, 뛰어난 지식, 교회의 아름다운 건물,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잘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한 목자”입니다.

4.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오늘 본문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절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7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그리고 18절에서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본문을 통해서만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세 번 언급하시고 18절에 다시 생명의 권한에 대해서 말씀하심으로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선한 목자로서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는 십자가 대신에 양이 한 마리가 올려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교회를 건축할 때 지붕에 한 인부가 떨어져 죽을 뻔하였는데 마침 지나가던 양떼 위에 떨어져 다행히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에 죽으신 속죄 제물로 오셨습니다.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죽은 양하고는 다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분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에 대해서 양 자신보다 목자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① 양의 필요 ② 양의 건강 상태 ③ 양의 요구 등을 다 알고 계십니다.
시편기자는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와 같으신 분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따라나선 여러분들 정말 잘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절)고 하셨습니다. 아직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을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과 같이 우리도 기도하며 양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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