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저 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제20과 나의 구주이신 예수님


본문 : 누가복음 2:11, 사도행전 13:23-31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23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행 13:23-31)

1.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주

그림 : 천국 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 (마16:13-20,막8:27,30,눅9:18-21) :  페루지노의 1481년 프레스코로 시스틴 성당에 소재해 있으며 크기는 약 3.3*5.5CM이다.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금과 은으로 된 두개의 열쇠를 주는 장면으로 양편에 사도들이 늘어서 있으며 왼쪽으로부터 네번째에 유다도 있다.  배경 중앙의 예루살렘성전으로부터 투사된  투영도법적인 선을 바탕으로  장면이 구성되고, 주제의 포인트인 열쇠가 중심선 위에 수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지극히 효과적이다. 양쪽의 개선문은  콘스탄틴누스 문을 흉내내고 있다.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셨는데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인간의 구원입니다. 이 점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의 높은 이상들을 설명해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방법과 길을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즉 석가모니가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설명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사해주거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한사람이 강물에 빠졌습니다.
한 사람이 “왜 위험한 강물에 들어갔느냐? 가지 말라고 했지 않더냐?”
다른 사람은 “손을 이렇게 하고, 발을 이렇게 하여 수영을 하여 빨리 물에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웃옷을 벗고 물 속에 첨벙 들어가 그 사람을 붙잡아 나왔습니다.”
한사람은 유교이고, 다른 사람은 불교이고, 또 다른 사람은 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달려 자신을 희생한 분입니다. 기독교가 왜 세상의 영화를 부러워하지 말고 경건한 생활을 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결코 이 땅의 축복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이 구원을 받아야 되는 문제를 생각하면 이 세상의 축복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이 땅의 축복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 땅의 축복도 의미가 있어집니다. 구원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향락을 위해 재물과 시간을 사용할 것입니다. 좀 나은 사람들은 사회의 구제를 위해서 재물을 나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드려지는 예물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2. 예수의 이름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실 것이다.” 또는 “구주”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누가 지어 주셨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누가 제일 권한이 있습니까?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아버지 되는 요셉에게 친아버지인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마 1:20-21에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직접 예수(구주)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 뜻으로 말하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나의 “구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분을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을 부르기는 해도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뜻과 의미를 모른체 부르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예수 이름이 왜 능력이 있습니까? 왜 예수이름만 부르면 마귀가 도망갑니까? 죄인은 누구를 보면 도망갑니까? 첫째는 자기가 죄지은 사람을 만나면 도망갑니다. 그리고 경찰을 보면 도망갑니다. 마귀는 예수님만 보면 도망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사단은 도망갑니다. 무서워서 벌벌 떱니다. 그분이 사단을 이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녀 가신지 2000년이 넘었습니다. 예수 이름 불러서 손해본 사람 있으면 말해 보세요. 예수 이름은 절망에서 소망을, 죽음에서 생명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엡 1:21) 하셨으며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고 하셨습니다.

3. 우리의 속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오늘 우리는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당신의 독생자를 “예수(구주)”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에 대해서 조금 더 증거 하고자 합니다.
기독교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음으로 종교적 삶(권리와 의무)을 시작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하나님은 그의 생애 속에서 생동력 있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학자들에게만 필요한 교리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우리 모두의 생활 속에 역사 하시는 실제적인 체험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나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변을 해 주어야 합니다.
(1)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2) 성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3)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4. 구주를 증거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13:23-31의 말씀은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안식일날 유대인 회당에서 증거 한 것입니다(행13:14). 바울과 일행은 안식일에 이 유대인 회당에 가서 앉아있었습니다. 회당장이 성경을 읽은 후에 사람을 보내서 바울 일행에게 할말이 있으면 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절호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손짓을 해가며 유대인에게 증거 합니다(행 13:16).

바울이 증거 한 핵심적인 것은 예수님은 구주라는 것입니다. “23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리고 26절에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이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상표 인지도를 조사하여 보고한 것에 보면 전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코카콜라”라는 말을 들어보았느냐고 물어보고 그리고 “예수”를 들어보았냐고 질문했습니다. “코카콜라”를 들어보았다고 대답한 사람은 조사대상 사람 중에 90%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들어봤다는 사람은 70%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한 회사의 브랜드의 이름보다 예수의 이름을 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전합니까? “예수” 이름만 전하면 됩니다. 그 이름 자체가 구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카톨릭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예수님의 이름으로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해야 됩니다.

♬ 1245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5. 거짓 증인들을 조심하십시오.

상표도 유명해지면 가짜 상표를 붙여 파는 악덕 상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유명하고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5)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을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우리 교회의 부흥, 우리 가정의 문제, 나의 문제들 모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만 불러 보세요. 예수 이름 자체가 능력이요, 구원이요, 생명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주앙교회 이름에 자부심을 갔습니다. 어떤 분은 약간 현대적이지 못하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의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만을 바라보라! 주님을 만을 바라보라! 온전히 예수 이름만을 부르라! 이런 성도들에게는 구원과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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