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저 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제26과 나의 창조주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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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1-1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림 : 요한복음서 도입문 도해 : 요한복음서의 서두의 구절[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를 도해한 것이다. 이 복음서의 제1장은 어두운 세계를 비추는 참된  빛에 관해 추상적인 어조 설명을 가하고 있지만 이 화가는 이것을 하늘과  땅으로 바꾸어 설명한다. 하늘은 중앙의 옥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가 모습을 나타내고 그 좌우에 여섯개의 붉은 날개를 가진 두 두 케루빔이 시중을  들고 있다. 하늘은 빛으로 가득차 있고 태양과 달이 나란히 빛나고 있다. 그리스도는 왼손에 [생명]이라 쓰여진 글을 들고 오른손에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들고 있다. 이 신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지상에 태어난다. 세계는 땅과  바다로서 표현되었는데 이것들은 의인화된 고대신의 잔재이다. 11세기초 사본화 27.8*20.5cm 힐데샤임 대성당 도서관. 오늘 본문 요한복음1:1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왜 자신의 복음서시작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까?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시작하고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으며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로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던 창조주이시라면 바로 예수님도 창조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1:10)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첫 이적의 사건을 2장에 기록하는데 이것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표적)인 것입니다. 요2:1-12에 기록된 “가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갈릴리 가나 지역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곳에 있었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초청을 받아서 그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정확히 누구의 잔치인지는 모르나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 제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일가나 친척의 결혼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잔치에 충분히 있어야할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아마 생각보다 하객들이 많이 온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직까지 한번도 예수님은 이적을 일으킨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적을 일으켜 준다고 믿고 예수님께 말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 없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가까운데 가서 포도주를 사올 수 있는 것이라면 구태여 예수님께 말하지 않고 자신이 하인들에게 직접 포도주를 사오라고 권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이 난감한 일을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은 처음에는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야흐로 때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 항아리 여섯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을 보시고 그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가득히 채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항아리에 물은 아구까지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요2:8)고 하셨습니다. 흔히 ‘물이 변하여 보도주가 되어라’는 기도나 주문 등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퍼다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포도주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주의 맛은 다른데서 구할 수 없는 맛을 내었습니다.“

저에게 온 메일을 하나 소개합니다.

“이 목사님께 e-mail로 문안 인사를 드려 죄송합니다. 충남에 사는 김.. 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결국 성경은 예수님을 기록한 것인데,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고 또한, 나름대로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되는데, 아니 공관복음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정체성에 의심이 갑니다.
과연 예수님이 god 혹은 human인가조차 이해가 안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가 과연 단순히 god을 의미하는 것인 지요? 외국에서나 학계에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설은 정말 신화로서 받아드리는 것인 지요? 우리가 아담하와로 인해 죄인인가요?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돌아가셨나요?
저는 하나님은 존재하고, 예수님이 god 혹은 human이든 신앙에는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부처님이 인간이었기에 불자들이 믿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러나 신앙으로서가 아닌 현대 신학으로서의 견해로서 알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사실을 안다는 것은 무리지만요. 저는 안티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제가 교회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단지 저희교회 목사님께 누가 될까봐서 입니다.
이영제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드린다는 것이 죄송스럽지만, 제가 자꾸 이런 갈등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목사님의 견해를 듣고 싶으며, 제가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또한 소개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분이 이분뿐이겠습니까? 우리 또한 이러한 궁금증과 문제들을 안고 있으면서 나는 아닌 것처럼 행동하거나 그저 교회에 와서 고개나 끄덕이다가 평생을 지낼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문제에서 확실히 믿음이 있는 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11)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다가는 큰일납니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1)고 했습니다.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아닙니다.
위의 분의 글에서 한가지 이상한 곳이 있습니다. 저에게 상담을 요청하면서 ‘신앙으로서가 아닌 현대신학으로서의 견해’를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신학이 예수그리스도를 창조주로서 또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다른 종교의 교주처럼 그런 성인의 한 분으로 예수를 믿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 믿음에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언 듯 볼 때 신앙이 깊으신 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분이 꼭 진실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신, 그분만이 유일하신 우리의 구주라는 사실을 믿고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솔직히 신앙으로서가 아닌 신학으로 대답해 달라는 이분의 말뜻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분의 질문의 의도 속에 나타난 생각은 ‘신앙’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신앙은 제대로 된 신학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학과 신앙은 일치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짓을 신앙으로 밀어 부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설교했다고 해도 만일 그런 식의 설교를 전했다고 하면 그것은 모두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상담을 하신 분이 미리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질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 자신의 생각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또 다른 목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로서가 아닌, 즉 배운 대로만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대답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한 개인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중에서 특히 요한복음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해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오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혼자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오셨고 그분과 동행하셨습니다. 다음 성경의 구절들이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요3:34)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요3:35)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7:16)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7)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요8:26)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8:28)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요8:2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12:49)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요12:5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11)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0)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 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17:9)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17:10)
이 정도면 믿으시겠습니까! 요한복음은 한마디로 예수님이 늘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나타납니다. 저는 요한복음을 너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42번이나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1장으로 되어있는 요한복음 중에 17장에 걸쳐 나타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요한이 자의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아버지께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이 비밀은 하나님께로 오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분에게 생명이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서 6일만에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그 자체로도 힘이 생깁니다. 생명이 그 안에 있습니다. 세상의 학문이 구원시키는 것 아닙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께 생명이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2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우리 또한 사람의 방법으로 난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고 말합니다. 천지의 창조와 천사들도 예수님을 위해서, 그분에 의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계3:14)라고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님은 육체로 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 이셨습니다. 말씀을 하실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라는 말을 사용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주님만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없는 것도 창조되는 힘이 나타납니다. -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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